문화 생활(文化生活)

서울극장 멤버십데이-'덩케르크(Dunkirk)' 감상(2017/07/24)

HoonzK 2017. 7. 26. 17:07

  한 병사가 좌절감에 빠져 울먹인다.


  못 돌아갈거야. 우린 죽고 말거야. (I'm not going back. We're gonna die.)

 

 그런 절망 속에서 이 영화는 희망을 보려고 한다.

 

극히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내게 죽지 말라고 했다. 좌절해 있는 내게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했다.

갇힌 자, 풀려나고자 할 것이고,

집을 떠난 자, 돌아가고자 할 것이며,

죽음을 앞둔 자, 살아 남기 위하여 발버둥칠 것이다.

<덩케르크>는 집을 떠나 적에게 포위된 채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자들이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벌이는 사투와 그 사투를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덩케르크>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 덩케르크(Dunkirk) 해안에 고립된 영국군, 연합군의 구출 작전을 그리고 있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가 전투 장면을 다루는 것과 달리 철수와 생존에 집중한 드라마이다. 덩케르크에서 영국의 도버 해안까지는 75킬로미터.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화물선, 어선, 유람선, 구명정 등 860여 척의 선박이 동원된다. 독일 폭격기를 막기 위하여 영국의 스핏파이어 전투기도 출격하였다. 영화에서는 1회 출격 장면만을 다루지만 철수 작전 열흘 동안 영국 공군이 펼친 공중 작전은 무려 3천 5백회가 넘었다고 한다. 민관군이 합동한 작전을 통하여 무려 33만 5천 명의 군인이 목숨을 구한다. (실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참여한 민간 선박과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영화에 쓰였다고 한다.)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해군 함장은 30만 명을 구했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so far. 그는 프랑스 군인들을 더 구해야 한다며 철수하는 배에 오르지 않는다. I'm staying for the French. 철수 군인들이 바다를 향하여 줄을 서 있는 장면이 원경으로 잡히며 생존을 위한 사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실화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준 대로 시간과 공간을 비트는 능력을 발휘한다. 같은 소재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변(잔교Mole)에서의 일주일, 바다(Sea)에서의 하루, 하늘(Air)에서의 한 시간. 각각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철수 병사들, 민간인 선박 소유주, 전투기 조종사의 각기 다른 시각에 맞추어 영화를 편집한다. 서로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존재들을 한 순간에 몰아 넣어 생존의 순간을 포착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화면 속에서 생존을 향하여 움직인다. (놀란 감독은 아이맥스로 볼 것을 권장했다.)


 총을 맞거나, 떨어지는 포탄에 희생되거나,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거나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모두가 불안하다. 덩케르크의 군인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렇다. 한사코 죽음을 미루고자 애쓰는 존재의 심리를 반영한 듯 한스 짐머의 음악은 사무치게 긴장감을 자아낸다.

 

 생환해 돌아온 군인들은 열차 안에서 축 늘어져 있다. 그 때 한 시민이 차창을 두드리며 병맥주를 건네준다. 살아 남아 돌아온 것이 부끄러운 병사가 중얼거린다. 그냥 살아돌아왔을 뿐인데요. 시민이 외친다. 그거면 충분해.(That's enough.) 처칠의 연설이 실린 신문을 병사가 읽는다. '전쟁에서 철수는 승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덩케르크의 철수는 명백한 승리입니다.'

 

 연출과 편집만으로도 이 작품은 걸작이다. 실제 덩케르크 철수 현장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실적인 긴장감은 최고다. 우리가 영화관에 들어가 2시간 전후 앉아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덩케르크>이다.

 

 

월요일은 서울극장 멤버십데이. 회원카드가 있으면 5천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덩케르크> 마지막 회를 보았다.

 

 

살아남는 것이 승리다.

전쟁에서 철수는 승리가 아니지만 덩케르크에서의 철수는 승리라고 해석된다.

이 영화는 내게 죽지 말라고 했다. 좌절해 있는 내게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서울극장 1층 라운지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조형물이 마련되어 있다.

 

 

함장과 전투기 조종사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함장은 철수하는 배에 타지 않고 다른 연합군들을 더 구하겠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 캐네스 브래너였다. 기름이 떨어져 적진에 비행기를 착륙해야 했던 비행사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만족감을 보이며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톰 하디였다.

 

 

서울극장 2관. 좌석이 300개가 넘는 큰 관이라 제법 거대한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400석이 넘는 대한극장 10관이나 11관에서 한번 더 봐야겠다.

 

 

※ 자기 때문에 쓰러진 친구의 안위를 묻는 군인에게 구조 지원자 피터는 '당신 때문에 내 친구가 죽었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괜찮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