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싫거나 힘들 때 일정에 들어 있는 마라톤 대회. 미리 정해놓은 운동 프로그램 덕분에 귀찮고 힘들더라도 대회장에 나가 달리게 된다. 달리기 전에는 그렇게 싫었는데 달리고 나면 기분이 어느 정도 좋아진다. 운동이 침체되어 있는 몸을 살려준다고 할까. 열흘 내내 스트레스로 시달리고 그 스트레스 위에 더 강한 스트레스를 수여받고 걱정 근심하는 것도 지쳐 쓰러져 있다가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이왕이면 6시 30분 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조조할인이라도 받으면 좋겠으나 피곤한 나머지 몸이 굼떠서 기준 시간을 살짝 넘기고 말았다.
월드컵경기장역을 빠져 나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은 어느 대회에 출전하느냐고 물으시는 분은 놀랍게도 권대현님이었다. 발목 때문에 마라톤 대회에 거의 나오지 못해 얼굴 뵌 지 3년이나 되었는데 같은 대회에 나왔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정작 얼굴을 뵌 것은 하프 완주를 마친 후였다. 달리기 전에 아는 분 뵙기가 너무 힘들었다. 풀코스 종목이 없으니 더 그랬다. 달해아름다워님만 잠깐 뵙고 여자부 1위 하세요라는 응원을 해 드렸다. 뵙기를 바라는 분은 오직 아세탈님인데 출발할 때도 보이지 않았다. 2시간 페이스메이커 바로 뒤에서 사회자 배동성의 출발 함성을 기다리면서 갑자기 뒤쪽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아세탈님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외롭게 출발하였다. 달리고 싶은 의욕이 거의 없었다. 너무 지쳐 있는 내 자신을 느꼈다. 첫 1킬로미터가 오르막이라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몸이 가라앉아 있었다. 목동마라톤클럽의 2시간 페이스메이커는 금방 넘어섰지만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첫 1킬로미터 지점까지 5분 20초가 걸렸다. 1시간 52분대의 기록이 예상되었다. 꼭 1시간 44분대 아니면 1시간 39분대에 들어가야 하는가? 여유를 가져야지. 오늘은 덥고 내 몸도 힘든데. 한강시민공원으로 진입하는 램프가 내리막이라 조금 빨라졌을까? 2킬로미터 지점을 출발한 지 9분 50초만에 통과했다. 1시간 43분대 골인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어느덧 1시간 45분 페메가 옆에 있었다. 3킬로미터까지는 함께 달렸다. 15분이 되기 전에 3킬로미터를 지났고 페메와 결별한 후 나 홀로 페이스를 맞추어 달렸다. 노곤하고 고단하고 무기력했다. 암울하고 막막했다. 그렇다고 해도 달릴 때에는 달리기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4킬로미터를 조금 넘어서서 반환했고 곧 급수대가 나왔다. 물 마시는 데 신경쓰느라 5킬로미터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건너편에서 10킬로미터 주자들이 몰려 오는데 아무리 찾으려 애써도 권대현님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달리는 수밖에. 10킬로미터 종목에도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다. 50분, 1시간. 10킬로미터 후미 주자들이 지나가면서 주로가 한산해졌을 무렵 낯익은 분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세탈님이었다. 갑자기 힘이 쏟아났다. '늦게 출발하셨네요.' '10킬로미터만 달리려고요.' '아! 저런!' 힘이 빠졌다. 먼저 골인한 후 책이라도 읽으면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조금씩 스피드는 올라 10킬로미터 지점을 48분이 되기 직전 통과했다. 1시간 39분대는 못 들어가도 1시간 42분대는 무난해졌다. 2차 반환하기 전까지는 맞바람에 햇빛을 받으며 달리고 있지만 반환한 후에는 바람과 해를 등질 수 있으니 골인 예상 기록이 당겨질 수도 있었다. 욕심을 내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달렸다. 자세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여러 명을 제쳤다. 10킬로미터부터 11킬로미터까지는 4분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아마 거리 표지판이 잘못 놓이지 않았을까 싶다. 11킬로미터부터 12킬로미터까지는 5분 가까이 걸렸으니 말이다. 13킬로미터에서 더 나아갔다가 반환했다. 바람을 등졌다. 이제 눈부실 일도 없었다. 15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1시간 11분대였다. 남은 6.1킬로미터를 28분 중반으로 달려주면 1시간 39분대 골인이 예상되었다. 그렇게 피곤했던 대전마라톤에서 15킬로미터 지점을 1시간 12분대에 통과하면서 1시간 37분대로 골인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여유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기온이 높은 날이라고 했다. 건드리지도 않던 물 스폰지를 잡아 물을 짜서 얼굴에 뿌렸고, 스폰지에서 물이 별로 나오지 않으면 아쉬웠다. 대전마라톤에서는 뜸한 거리 표지판으로 페이스 조절하기가 어려워 무작정 내달렸지만 이 대회는 1킬로미터마다 거리 표지판이 있으니 조절이 가능하였다. 5.1킬로미터를 24분으로 달리면 1시간 39분대가 가능하다. 2.1킬로미터가 남았을 때 1시간 29분대라 1시간 39분대 골인이 무난하다. 이런 식으로 여유가 생기니 죽자살자 달리지 않게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줄줄이 제치고는 있었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리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평화의 공원 올라가는 오르막에서 예전같으면 거칠게 내달렸겠지만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조금 굼뜨게 달렸다. 1.098킬로미터 남기고 물 한 잔을 마시며 시계를 보니 1시간 33분대. 1시간 39분대가 눈 앞에 보였다. 4월에 1시간 30분대 들어간 적이 있었던가? 몇 명의 주자들을 제치는데 아세탈님이 걷고 있었다. 걸어가시면 어떻게 해요? 정말 힘드신 모양이었다. 출발하신 지 1시간 20분 정도 되어가는데 아직도 골인 못하신 걸 보면...... 중간 도로로 꺽을 줄 알았는데 차로변까지 나아가 크게 돌아서 달려야 했다. 이렇게 멀리 돈다면 1시간 39분대 못 들어가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걷고 있는 10킬로미터 주자들 틈새를 지그재그로 빠지며 달려서 우회전한 뒤 골인 아치를 향하여 달렸다. 강하게 스퍼트했다.
01:38:11.05
2010년 4월 포천하프마라톤에서 1시간 39분 58초로 달리고, 2012년 4월 29일 양천마라톤대회에서 1시간 38분 59초로 달렸던 일을 기억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기록은 4월 최고 기록이었다.
골인한 후 물 병 두 개를 받아 하나는 마시고 하나는 바로 들어오시는 아세탈님께 드렸다. 아세탈님과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권대현님 일행을 만나 족발 몇 점을 나누고 왔다.
하프코스도
K2 기념 티셔츠가 아니었다면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홈플러스 상암점 FOOD CAFE에서
아세탈님과 회냉면을 먹었다.
더울 때 어울리는 음식
아세탈님은 회냉면으로 부족하다며 KFC에서 크리스피치킨 세트를 사 오셨다.
콜라는 1회 리필이 된다고 하니 2번 마셨다.
이 푸짐한 점심 식사..... 하프를 달리고 너무 많이 먹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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