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5회 경기마라톤대회(2017/04/23)-FULL 138

HoonzK 2017. 4. 24. 10:21

 수원에 가야 했을까? 경기마라톤대회 풀코스는 오르막이 잦아 힘들고, 날씨가 더웠으며, 내 무릎 상태까지 좋지 않았는데......

 

 대회 전날밤 로운리맨님이 응원을 보내셨다.

 

 건달님. 무릎 괜찮으시죠? 내일 경기 마라톤 잘 완주하세요. 조금 부럽습니다. 서브 330 하실 겁니다. 시골길 언덕 지날 때까지 오버페이스하지 마시고 후반에 조금 지겨운 오르막만 이겨내십시요. 건달님은 경기마라톤 풀코스를 지배하실 겁니다. 위버맨쉬(Übermensch).

 

 맨소래담을 왼쪽 무릎에 떡칠하고 지내길 사나흘. 토요일 밤에도 발랐다. 대회 전날 늘 그랬듯이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새벽이 깊도록 스마트폰으로 13로 바둑도 두고, 사활 문제 풀이도 하면서 버티었다. 3시간 남짓 잤나? 새벽 4시 9분 기상. 밥먹고 4시 40분 집을 나섰다. 5시 30분 서울역 도착. 버스 안에서는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5시 50분 무궁화호 탑승. 영등포역에서 내 옆좌석에 승객이 앉았다. 20분간 잠이 들었다. 수원역 도착 안내 방송을 듣고 눈을 떴다. 잠깐이나마 잔 덕분에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 졸리지 않았다. 서울행 전철을 타고 화서역으로 이동하는데 개찰구에서 '환승입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서울역 앞에서 버스에서 내린 지 아직 1시간이 지나지 않은 덕분이다.

 

 화서역에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는 사이 화장실에 들렀다. 37번 버스를 탔다. 달리기 복장을 한 어르신 한 분이 기사에게 물었다. '종합운동장 가나요?' '안 가요!'라는 기사의 차가운 대답. 내가 급히 외쳤다. '타세요!' 어르신이 올라탔다. '마라톤대회 가시는 거잖아요? 저도 가거든요. 수성중 사거리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되요.' 이 분은 86세로 대회 최고령 참가자라고 했다. 그냥 쉴 수도 있지만 꾸준히 운동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고 하였다.

 

 수원종합운동장사거리. 귀에 익은 목소리. 헬스지노님이 인사했다. 어제 와서 찜질방에서 잤다고 했다.

 

 수원FC 임시 가설 응원석에 앉아 옷을 갈아 입었다 希洙형님과 만났다. 5시간 정도 걸리는 페이스로 완주하겠다고 하시며 파워젤 하나를 주셨다. 용왕산마라톤클럽에서는 Ki-soo님도 오셨다. 기아 뉴모닝 자가용은 다른 사람의 차지였다. 헬스지노님은 내게 자기처럼 민소매를 입으라고 권했다. 로운리맨님이 집안 일로 못 나오게 되었다고 하자 매우 안타까워 하셨다.

 

 그나저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달리다가 무릎 통증이 심해지면 어쩌나? 무릎 통증도 베타 엔드로핀으로 감당할 수 있나? 테이핑을 해서 대비는 했다. 希洙형님과 출발했다. 바리케이드 사이를 빠져나가는데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옆에 있었다. 이게 돌아올 때는 오르막이랍니다. 만석공원쪽부터 쭉 오르막이라 5년 전 아주 죽을 뻔 했지요. 希洙형님 앞으로 나아간 뒤 곧 장안문이 보였다. 1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5분 37초가 걸렸다. SUB-4 페이스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이름. 한구님이 따라붙으며 인사하셨다. 어제도 공원사랑마라톤에서 풀코스를 달리셨다고 했다. 장안문 앞에서 우회전. 화성 성벽을 따라가는 동안 페이스가 조금 올라갔다. 2킬로미터 지점 10분 30초 통과.  4시간 페메는 이제 내 뒤에 있었다. 화서역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4킬로미터 지점에서 파워젤을 먹었다. 무릎 통증이 느껴졌다. 무릎에 붙인 테이프가 아주 성가시게 펄럭이고 있었다. 결국 5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떼내어 버렸다. 맨 무릎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되지만. 5킬로미터는 26분이 걸렸다. 오늘은 이렇게 달리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부상이지만 선전하고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코스는 꾸준히 이어졌다. 7.5킬로미터 지점에서 성균관대역을 지나며 지하차도를 오르내리는 코스로 접어 들었다. 옆구리살은 계속 빠져서 이제는 잘 잡히지도 않지만 무릎 통증이 두려워 스피드를 올릴 수가 없었다. 그냥 달려도 5분 이내로 페이스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려웠다. 시간은 꾸준히 까먹었다. 의료팀을 만나면 스프레이를 뿌려야 했다. 결국 10킬로미터를 51분을 넘겨서 지났다. 나름대로 분전하여 제쳤던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어느새 내 앞으로 나와 백 미터 이상 앞에 있었다. 329를 하고 싶지만 329는 안된다. 후반에 날씨는 더워질테고, 코스도 어려워질테고, 내 몸상태는 더 나빠질 것이다. 자세를 바로잡으며 달리는 데 신경쓴 결과 15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3시간 40분 페메를 다시 제쳤다. 앞에 있는 3시간 40분 페메도 16킬로미터 지점에서 추월했다.

 

 어느덧 내가 달리는 곳은 화성시였다. 17킬로미터 지점을 전후하여 아주 긴 오르막이 나왔다. 조심하면서 잘 넘었다. 오르막을 넘은 후 화산터널을 통과했다. 햇볕을 받고 달리다 그늘로 들어가니 매우 시원했다. 터널에 들어가면 소리지르는 주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없었다. 융건릉을 감아돌면서 화장실을 찾았다. 19킬로미터 지점에서 일을 보고 오니 몇몇 주자가 내 앞으로 나왔다. 3시간 40분 페메도 바짝 붙었다. 하프 지점을 1시간 49분에 지났다. 만약 내가 3시간 29분대에 골인하려면 남은 하프를 1시간 40분에 달려야 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오르막이 너무 잦고,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산술적으로 3시간 38분 골인이 예상되지만 더 밀릴 수도 있었다. 3시간 40분 중후반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다섯살 젊었을 때 세운 경기마라톤의 3시간 50분 기록은 깨뜨릴 수 있으리라. 주로 곳곳에는 수원샛별마라톤클럽 주자들이 등에 명홍진 회장 100회 완주 축하 문구를 달고 달리는데 정작 명홍진 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22킬로미터를 지나면서 업다운은 반복되지만 페이스는 좋아졌다. 무릎 통증이 잘 느껴지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로운리맨님. 오늘 풀코스 못 뛰시니 그 힘 좀 씁시다. 35킬로미터까지만 힘을 빌려주세요. 35킬로미터 이후에는 제 후반 스퍼트로 감당할테니. (아주 낭만적이고 비합리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가족과 친구의 응원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19킬로미터 지점에서 나를 제친 여성 주자를 제치고 아이언맨 복장을 한 주자도 제쳤다. '아이언맨 맞나요?' '네. 아이언맨 맞습니다. 파이팅' 로운리맨님이 힘을 잘 빌려주고 계시나 보다. 킬로미터당 4분 40초의 페이스도 나왔다. 몹시 더워져 물도 자주 마셔야 했고, 스프레이도 뿌리고, 스폰지도 꼭 써야 했는데 오르막을 만나도 5분 페이스를 넘지 않았다. 25킬로미터 지점이 나왔다. 로운리맨님. 앞으로 10킬로미터만 같이 뜁시다. 26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산업단지 사거리를 만났고 초반에 뛰었던 코스를 되밟게 되었다. 페이스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29킬로미터 지점에서 평택항 마라톤 안내문을 달고 달리던 주자를 제쳤다. 19킬로미터에서 나를 추월하고 5백 미터 이상 거리를 벌렸던 사람이었다. 100미터 전방 3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 등장. 헬스지노님이 보였다. 상구운지하차도 오르막에서 스피드를 바짝 올린 뒤 31킬로미터 지점에서 헬스지노님 일행을 제쳤다. '지노님 파이팅입니다'라는 응원에 헬스지노님은 '네'라고 짧게 답했다. (헬스지노님은 골인한 후 나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후반에 너무 힘들어 마라톤을 때려치우려고 했는데 그래도 SUB-4는 했으니 참는다고 했다.) 헬스지노님 앞으로 나아가며 거칠게 내달렸다. 누가 내 발걸음을 보고 무릎이 아픈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완주한 후 고장날지 모르겠으나 일단 달렸다. 로운리맨님. 몇 킬로미터 남지 않았습니다. 35킬로미터 직전 Ki-soo님을 뵈었다. SUB-3 완주의 이력을 갖고 있는 Ki-soo님도 지친 모양이었다.  '아까 希洙형님과 사진 찍어드렸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35킬로미터 지점. 로운리맨님과 작별을 고하고 이제 내 힘으로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상태가 좋은 게 아니라서 이제는 천천히 달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화서역을 지난 후 쌍우물삼거리까지 나아가 36.147킬로미터 지점에서 유턴하며 칩 인식 패드를 밟는데 그 거리가 아득히 멀었다. 수원샛별마라톤클럽 주자가 또 나왔네. 명홍진 회장 100회 완주 응원하는 문구를 단. 아! 내 앞에서 달리는 분이 명홍진 회장이었다. '100회 파이팅!' '감사합니다. 아주 힘드네요.' '그래도 끝까지 하셔야 합니다.'


 5킬로미터를 남았을 때 나를 추월하는 주자가 있었다. 22킬로미터 이후 나를 추월한 유일한 주자였다. 그는 달리면 달릴수록 나와 격차를 벌렸다. 이제 3시간 29분대는 불가능했다. 5킬로미터를 20분에 달릴 수는 없었다. 이 덥고, 오르막이 있는 경기마라톤코스에서 부상을 견디고 있는 주자는 더더군다나.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달렸다. 우회전하는 근로복지관 삼거리가 지독하게 멀었다. 5년이 지나도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만석공원을 감아도는 구간에서 스피드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끝내 40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했다. 지난 해 춘천마라톤처럼 남은 2.195킬로미터를 9분 21초에 달려도 3시간 29분대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물 마시고 차 조심하면서......

 

 파스 냄새로 버무려진 주자, 이를 악물고 스퍼트했다. 멀리서 흔들리는 내 버프 자락을 여자의 머리카락으로 본 사람이 있었나 보다. 여자였으면 4등일텐데라는 말을 했다. 빛바랜 파란색 트랙 위를 질주하여 골인했다. 멋집니다라는 멘트도 들었다.

 

아! 3시간 33분 43초 38

 

 마지막 5킬로미터를 23분대로 달렸다. 그래도 후반 하프를 1시간 44분대로 달린 덕분에 333은 했다.

 

※ 무릎 통증을 다스리려고 스프레이부터 찾아 뿌렸고, 맨소래담도 발랐다. 希洙형님은 30킬로미터만 달리고 택시를 타고 왔다고 하셨다. Ki-soo님은 30킬로미터 이후 너무 덥고 힘들어 걷뛰를 반복했다고 했다. 아세탈님은 짧은 거리로 전환하시다 보니 주로에서도 뵐 기회가 없었다. 5년 전 나를 응원했던 수원 거주민은 뵐 수가 없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KT위즈의 야구 경기를 보고 왔을텐데 그럴 수 없었다. 골인한 후 너무 허기가 져서 주최측이 제공한 간식을 모두 먹어치우고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과 사발면도 먹었다.

 

 

영화 <페이스메이커>에 등장했던 코스, 내가 5년 전 달렸던 코스와는 달라졌다.

오전 7시경에 찍은 운동장 진입로 사진. 이쪽으로 골인하게 될텐데......

 

이 길이 아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수원FC 임시가설 응원석. 인형 때문에 몇 번 놀랐다.

 

希洙형님이 찍어준 사진.

골인 후 바로 먹었다.

허기가 져서 수제초코파이도 먹었다.

 

CU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육개장 사발면을 먹었다. 4850원을 SK 텔레콤카드로 할인받아 4650원에......

 

사실 자장면을 먹고 싶었는데..... 중국집을 찾을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