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7 대구국제마라톤대회(2017/04/02)-HALF 153

HoonzK 2017. 4. 4. 17:20

 대구역 근처. 하얀성 모텔. 4년만에 다시 왔다. 그 때도 대구국제마라톤대회를 하루 앞두고였다. 양말을 벗어 버리고 물집이 생긴 엄지발가락에서 피를 짜낸 다음 샤워하고 빨래하였다. 밤 9시가 되기 전에 시체놀이를 하였다. 그동안 너무 잠이 부족했고 오전에 풀코스까지 달렸더니 TV를 켜놓은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5시 59분 기상하기 직전 벽쪽에 다리를 올리고 피로를 풀었다. 풀코스를 달리고 난 바로 다음날 하프를 달리는 일은 오늘로 네번째였다. 누구는 풀코스를 연달아 달리기도 하니까 이 정도는 견딜만 하였다.


 국채보상공원 대회장까지는 걸었다. 짐이 많아 중앙로역 물품보관함에 넣고 움직였다. 대회장 물품보관소에 도착하니 어느새 7시 20분이었다. 스트레칭에 조금 더 신경쓰고 짐을 맡겼다. 봉투가 작아 32리터 배낭을 넣는 데 조금 힘들었다. 밀어넣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옆부분에 여유가 없어 물통을 빼야 했다. 어느새 참가자들이 가득 들어차 풀코스 출전하는 로운리맨님을 찾을 길이 없었다. 화장실을 찾는 게 그리 쉽지 않아 8시 10분 풀코스 주자들 출발 장면을 놓쳤다. 대구광역시립 중앙도서관까지 가서 화장실을 이용한 뒤 주로쪽으로 갔더니 진행요원이 빨리 출발점으로 가라고 했다. 출발점으로 이동하는 사이 하프 주자들이 출발했다. 선두 주자가 출발한 지 1분이 지나서야 출발 아치를 지날 수 있었다. (마라톤온라인에 올라온 동영상에 4분 10초경 내 모습이 잡혔다. 아주 잠깐.) 택배가 올 때 배번의 칩 부분이 사정없이 꺽어져 있었기 때문에 칩이 손상된 것같아 넷타임을 믿지 않고 나 스스로 기록을 체크하기로 했다. 출발하자마자 만나는 오카리나 연주팀, 색서폰 동호회, 밴드 등의 공연이 연달아 있어서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지난 해 서울 하프마라톤이 자꾸 떠올랐다. 대구 단체팀의 응원부대까지 있었다. 힘이 날 수밖에 없는 레이스가 되었다.


 2킬로미터 지점을 10분 30초에 통과했다. 풀코스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빨랐다. 동신교를 건너 청구네거리에서 우회전하고 수성네거리쪽으로 나아가면서 대구 지하철 2호선을 따라갔다. 공중 고가에 모노레일로 조성된 구조물을 따라 달리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3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나기 전에 2시간 페이스메이커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1시간 50분대 완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범어네거리에서 황금네거리를 거쳐 두산오거리까지 나아가 5킬로미터를 넘었는데도 급수대가 나오지 않아 아주 애를 먹었다. 쌀쌀하기는 했지만 덥기도 한 날씨라 수분이 필요했는데 언제 나오려나 싶었다. 6킬로미터 쯤에서 나왔다. (대회 책자에 소개된 내용을 미리 잘 살폈다면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마라톤 대회마다 정보를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파워에이드를 마시고 생수까지 마셨다. 8킬로미터를 지나면서부터는 신천을 옆에 놓고 달리는 레이스가 이어졌다. 대구에 왔을 때 자주 달려보았던 신천 산책로가 보였다. 샛노란 개나리가 주로를 다채롭게 만드는 것같아 보기 좋았다. 달리는 도로변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경주가 아니라 대구야말로 벚꽃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었다. 10킬로미터 지점을 52분대에 통과했다. 힘들었다. 생애 첫 하프를 완주할 때 생각이 났다. 10킬로미터를 달리고 또 그보다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부담감이 몹시 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는가? 풀코스 바로 다음날 하프를 달리는 게 처음도 아니고. 동신교를 지나는 12킬로미터 지점에서 한 외국인이 입은 티셔츠가 눈길을 끌었다.

 

Doubt kills more dreams
than failure ever will

 

 아! 좋은 말이다. 실패해서 꿈을 잃는 것보다는 미리 의심해서 꿈을 잃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의심은 실패보다 더 많은 꿈을 사라지게 한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지. 나는 달리면서 내내 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많은 의구심으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달리지 말고 그냥 달리자. 지금 현재 페이스도 많이 올라와 1시간 52분 내외이지만 조금은 더 당길 수도 있지 않을까.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몸이 허락하는대로 나아가자.

 

 신천을 건너 대구역 방향으로 건넜다. 급수대가 주로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하프 급수대라는 표시를 보고도 가지 않은 게 실수였다. 아무도 그쪽으로 가지 않았고 15킬로미터가 아닌 14킬로미터 지점이라 또 다른 급수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놓치면 안되었던 급수대였던 것이다. 간식 제공처가 좀더 지나 나왔다. 바나나 반토막을 집어 들었는데 그것도 나 혼자만 대열에서 10미터 쯤 빠져나와 들른 것이었다. 대구역 앞을 지나자 중앙분리대 건너편으로 엄청나게 많은 10킬로미터 주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안쪽 라인으로 하프 주자들의 공간이 제공되었는데 가끔 넘어들어오는 10킬로미터 주자들을 대회진행요원들이 내보내어 주었다. 아하. 목이 말라라. 확실히 덥구나. 더우니 힘들구나. 북비산 네거리 앞쪽에서 반환했다. 21.0975킬로미터의 거리를 채우기 위해 태평네거리에서 서성네거리쪽으로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17.5킬로미터 지점에서 받은 스폰지로 얼굴을 적시고 흘러내리는 수분을 조금 섭취했다. 먹을만한 물은 되지 못하겠지만 갈증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서성네거리쪽에 급수대가 있었다. 파워에이드를 마시고 마지막 힘을 발휘했다. 확실히 초반과는 다른 페이스였다. 내가 추월하면 바로 따라오는 주자들이 있었지만 더 스피드를 올려 떨어뜨렸다. 20킬로미터 지점 중앙네거리에서 알았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잡을 수는 없겠지만 1시간 45분대로는 들어갈 수 있겠다는 사실을. 마지막 직선 구간에서 10킬로미터 주자들을 피해 이리저리 빠지며 질주했다. 칩이 손실되었을 것을 감안하여 골인하기 직전 시계의 스톱 버튼을 눌렀다. 1시간 45분 58초. 선방했다.

 

2016년 6월 5일 풀 6월 6일 하프 01:52:04
2016년 10월 2일 풀 10월 3일 하프 01:54:18
2016년 12월 3일 풀 12월 4일 하프 01:52:08

 

그런데
2017년 4월 1일 풀 4월 2일 하프 01:45:58

 

 나름 기록적인 레이스였네. 완주한 후 시간이 없었다. 일단 빨리 옷 갈아입고 로운리맨님 응원하러 가야지. 내가 출발점으로 갔을 때에는 이미 2회전을 마친 다음이라 천상 마지막 회전 때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앙로역에 들러 물품을 재보관하고 알라딘 중고서점 대구점에 들를 시간도 충분했다. 이동하는 동안 주먹밥 하나 사 먹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연필을 사 갖고 나온 뒤 그 앞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만난 하프코스 20킬로미터 표지판 ...... 이곳으로 돌아오겠지.

 

 

77번 물품보관함에 짐을 넣어두고......

 

 

 

20번 출구로 돌아와야 해...... 짐을 찾으려면....

 

 

로운리맨님을 미리 만났다면 내가 하프 달린다는 사실을 알리며 '서프라이즈!'할 수도 있었는데.....

 

 

5년 연속으로 세계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Silver Label 등급을 받고 있는 대회인데..... 처음으로 은메달 등급을 받았던 2013년에 나는 풀코스를 달렸다.

대구에서 하프가 처음은 아니다. 금호강마라톤에서 몇 차례 달렸다.

 

바람막이..... 기념품....

 

 

 

신천변 위 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골인 지점이 가까워지고.....

 

 

넷타임과 내가 잰 기록이 정확히 일치했다.

 

 

 

칩이 손실되지 않아 기록을 건졌다.

 

하프를 달리고 나니 엄지발가락의 혈흔이 양말에 배였다.

 

이 덕분에 물집에 차 있던 피는 완전히 빠졌다.

 

 

 

 

 

달리는 동안 풀코스 주자들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시간대 편성을 통해 풀코스 주자와 만날 수 없게 한 하프 코스다.

 

 

 

 

 

 

 

 

 

 

시민들은 많이 불편했나 보다. 좀 심하게 올린 글을 보면 아래와 같다.

 

마라톤 코스 변경해라.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교통통제하나. 공산독재국가냐. 참말로 욕나오고 증오스럽다. 마라톤 하는 것은 지 자유나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하나도 개선 안되고 . . ㄱ같은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