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7 여의도 봄꽃 월드런 마라톤대회(2017/04/09)-FULL 137

HoonzK 2017. 4. 10. 21:53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벚꽃이 피었다. 벚꽃 핀 한강변을 따라 21.0975킬로미터 구간을 두 번 왕복하는 풀코스 레이스에 나섰다. 마포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 아래를 오가는 이 단조롭고 평탄하기 이를 데 없는 코스는 자주 달려 보았던 터라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4월치고는 더운 날씨를 감안해야 했다. 기온이 오르면 달리기는 힘든 법. 1회전 후 2회전 때의 상황은 훨씬 고될 수밖에 없었다. 11시부터 13시 사이에 달리게 되니 한층 더워진 기온을 감당해야 했다. 기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벚꽃 축제의 끝물을 만끽하려는 상춘객들이 주로를 막기 시작했고, 여느 때보다 늘어난 자전거의 위협도 이겨내어야 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주일 내내 병원을 오가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달리면서 불면의 밤을 지속해야 했다. 그나마 토요일 밤 너무 지쳐 짧게라도 숙면이라도 취한 게 다행이었다. 지난 주보다 살이 조금 더 빠진 것도 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면 부족, 감기, 배탈, 자세 불량 등으로 넋이 나간 채 달려야 했던 지난 주 경주벚꽃마라톤에 비하면 오늘 여건은 좋은 편에 속했다.

 

 풀코스, 하프코스, 10킬로미터 코스 남자 1위부터 100위까지, 여자 1위부터 10위까지 트로피를 준다고 했으니 트로피를 꼭 받아보고 싶었다. 이왕이면 쉽게 목표를 달성하자는 마음에 풀코스 주자가 100명만 출전해 주면 감사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명808국제마라톤, 예산벚꽃마라톤, 서산마라톤, 군산새만금마라톤이 같은 날 열리니 풀코스 주자가 실제로 적었다. 100명은 넘었지만.

 

  오늘도 출발 전에 로운리맨님이 에너지젤을 주셨다. 갖고 달리는 것은 싫으니 미리 먹었다. 당초 맨 앞에서 로운리맨님과 함께 출발하고 싶었으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 가까이 가지 못했다.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동시에 출발하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2017 동아마라톤 기념품을 입고 달리는 로운리맨님 몇 백 미터 뒤에서 따라가게 되었다. 파랑색과 주황색만 찾으며 달렸다. 동아마라톤 기념 민소매 티셔츠(파랑색), 아식스 마라톤화(주황색).

 

 구름이 끼었고, 바람이 조금씩 밀어주었다. 이런 날씨가 계속 되기를 바랬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10초가 걸렸지만 다음 1킬로미터는 4분 50초가 걸리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렀지만 4킬로미터 지점을 20분 초반에 지났다. 5킬로미터는 25분이 걸리지 않았다. 3시간 31분대 기록을 깨뜨리겠다고 한 로운리맨님은 200미터 전방에서 달리고 있었다. 잠시 스피드를 올려 따라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자제했다. 3시간 33분대로 골인하여 지난 주 세운 4월 최고 기록만 경신하면 된다. 그래도 햇빛이 나오고 기온이 올라가면 333의 기록마저도 포기해야지.

 

 내 마음은 착잡하였다. 요즘 삶의 어두운 면만 잔뜩 보며 연명하고 있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마당에 여유있게 마라톤이나 하고 있을 수 있나 하는 자책을 수시로 하였다. 대회장으로 오는 도중 스마트폰 진동이 울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로운리맨님의 응원 카톡이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잊어야지. 일단은 잊어야지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초반 오버 페이스를 경계했다. 결코 욕심을 내지 않았다. 더우면 스피드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후반에 너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힘을 아꼈다. 10킬로미터를 49분대에 통과하고 난 뒤 반환해서 오는 로운리맨님을 마주보고 43위인 것같다고 말했다. 로운리맨님은 표정이 밝았다. 트로피 받는 일이 무난하겠다고 했다. 나도 반환한 뒤 아세탈님으로부터 '파이팅, 47위입니다'라는 정보를 받았다. 후반에 갑자기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는 한 100위 밖으로 밀리지는 않겠구나. 트로피를 받아 가야지. 22킬로미터 지점 직전 2회전에 나서는 로운리맨님의 표정이 힘들어 보였다. 인사는 하시는데 몹시 인상을 찌푸리고 계셨다. 점점 더워지니 힘든 표정이 드러나는구나. 아세탈님과 다시 만났을 때 아세탈님은 내가 41위로 올라섰다고 알려주셨다. 순위가 떨어지지 않고 올라갔으니 오늘 트로피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내 우울하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아세탈님은 매우 꼼꼼하게도 현장 접수자, 사전 출발자를 모두 걸러내고 풀코스 주자들 순위를 세어 알려주었다.

 

 초반 오버페이스를 철저히 경계했다. 지난 주 무너진 자세를 고쳐 허리를 바로 세우고 전방을 보려 애썼다. 생애 첫 3시간 20분대 진입할 때 만났던 고수를 생각했다. 그 분이 알려주신대로 달렸다. 멀리 보면 눈 앞이 가물거리는데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것같았다. 눈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없어야 하는데 지난 해 9월 11일 국제관광마라톤의 장님같은 달리기가 재현될까봐 겁이 덜컥 났다.

 

 주로에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로운리맨님과 아세탈님 외에는 준한님, 태현님, 한구님, 은기님만 주로에서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10.5킬로미터 지점에서 1차 반환하여 돌아올 때 맞바람과 햇빛에 시달렸다. 스피드를 자제하면서도 5분 이내의 페이스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지난 주보다 5밀리 큰 신발을 신은 게 발가락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킬로미터마다 시계를 보는데 아슬아슬하게 3시간 29분대 골인 기록이 가능해 보였다. 하프를 달렸을 때 1시간 44분대 후반으로 SUB 330의 페이스가 유지되었다. 인절미 한 조각을 먹고 2회전을 시작하였다. 26킬로미터 지점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려고 스피드를 내지 않아도 SUB 330은 가능해 보였다. 뒤에서 바람이 밀어주니 킬로미터당 4분 40초 페이스도 나왔다. 스피드를 떨어뜨려 5분 페이스를 유지하였다. 32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악착같이 힘을 아꼈다. 이렇게 힘을 아끼는 데도 지쳐 버리면 어쩔 수 없었다. 물, 포카리스웨트, 콜라, 초코파이, 바나나를 수시로 섭취하며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붉은 노끈이 달린 고무줄을 팔목에 끼우며 반환하는 순간 등바람이 맞바람이 되고, 내 앞쪽으로 그림자를 만들어주던 햇빛이 눈이 부셔서 앞을 잘 볼 수 없게 하는 햇빛이 되었다. 반환하기 전 30.1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2시간 29분 초반이었다. 이제 남은 12.1킬로미터를 1시간에 달릴 수 있을까? 지난 주에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페이스인데 다시 되찾아올 수 있을까? 31킬로미터 지점에서 만난 로운리맨님은 이제는 힘들다고 했다. 33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속도를 늦춘 로운리맨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지금부터 5분 페이스로 가면 3시간 29분대 들어갈 수 있어요. 같이 가시죠. 힘들어요. 건달님 329하세요. 앞으로 치고 나갔다. 로운리맨님이 후반에 스피드를 올려 내 곁에 오기를 기다리면서. 돌아가는 레이스는 쉽지 않았지만 견디어 내었다. 눈에 땀이 흘러 들어가 한쪽 눈을 감은 채 달렸다. 한쪽 눈으로 건너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알아보고 미리 피해야 했다. 맞바람에 시달리면서도 앞의 주자들을 한명씩 제치고 있었다. 내 페이스가 빨라진 것은 아니었다. 맞바람 속에서도 5분 페이스를 넘기지 않았던 것을 빨라진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빨리 달리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내 페이스는 4분 55초에서 5분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 뿐이었다. 7킬로미터를 남기고 칠까 하다가, 6킬로미터 남았을 때 치기로 했고, 6킬로미터 남기고 칠까 하다가 5킬로미터 남기고 치기로 했다. 맞바람과 햇빛, 더위말고도 추가로 극복할 문제가 있었다.  쉴새없이 앞뒤에서 밀고 나오는 자전거도 잘 피해야 했다. 열심히 달리다가 자전거에 부딪쳐 병원에 실려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아! 병원! 잠시 잊고 있었는데.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상춘객들이 이쪽 저쪽에서 몰려나와 그들을 피해 달리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지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초반에 힘을 아낀 덕분일까? 지난 주에 비하면 오늘의 달리기는 엄청나게 편한 레이스였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서도 풀코스 주자들을 계속 제쳤다. 100미터 남기고 세 명의 주자가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냥 따라 들어갈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스퍼트했다. 50미터를 남기고 제쳤다. 20미터를 남기고 추월당했던 주자 한 분이 나를 제치고 나왔다. 그냥 내버려둘까 하다가 전력질주해서 제치고 골인하였다. 내 손에 전해진 순위 목걸이는 20위였다. 12킬로미터 남짓 달렸을 때 47위였던 내가 20위까지 치고 올라오다니..... 막판에 맞바람에 시달려 버프 모자챙이 제껴진 것도 모르고 역주했다. 

 

 몸이 좋지 않아 하프만 달리고 돌아가겠다고 하신 아세탈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기록증, 완주 메달, 간식을 받은 뒤 아세탈님과 함께 로운리맨님을 기다렸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로운리맨님이 33등으로 골인했다. 로운리맨님은 이 더운 날씨에 내가 20위의 성적으로 서브 330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쳐주셨다. 탈의실에서 옷갈아입을 때에도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후반에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면 이런 대회에 나와 하수들의 기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농담까지 하셨다. 초반에 1시간 45분에 근접하여 달리고, 후반에 1시간 43분에 달렸으니 특별히 후반에 빨라진 것 없이 나는 내내 일정한 페이스로 달렸다고 봐도 될 것인데.....

 

 3시간 28분 24초 99

 

 날씨가 더워지니 확실히 후반에 사정없이 치고 나간다는 게 어렵긴 했다.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8분대에 달렸으니 그저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중반을 넘은 후에도 킬로미터당 5분을 넘긴 적이 없다는 게 고무적이었다. 4월에도 3시간 20분대에 진입하리라곤 꿈도 꾸지 못하였는데.

 

 로운리맨님은 캐논 DSLR 카메라를 갖고 와 사진을 찍어주셨다. 시상대에 올라가 트로피를 받는 내 모습을 찍어주셨다. 로운리맨님은 31위로 순위가 당겨져 시상대에 올라갔는데 그 때는 내가 카메라를 받아 촬영해 드렸다.

 

 아세탈님은 또 한번의 선물 꾸러미를 안겨주셨다. 뒷풀이로 영등포역 초밥 부페에서 실컷 먹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밥값 내기 에피소드가 있었다.

 

 

 나는 새벽에 들르지 못한 병원에 서둘러 가야 했다.

 

 

 

 

여의나루역을 빠져나가자마자.....

 

 

 

 

 

 

 

 

 

 

 

 

 

 

아세탈님이 찍어준 사진....

 

 

내 바로 뒤에 들어오시는 분과 마지막 배틀을 펼쳤다.

 

 

 

맞바람 속에서 역주를 하다 보니 모자 챙이 제껴진 것도 몰랐다.

 

 

 

※시상식 사진은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