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3회 스포츠서울마라톤대회(2016/11/13)-HALF

HoonzK 2016. 11. 14. 14:57

 몸은 온통 고단함으로 버무려진다. 버스 유리창에 몸을 기대고 한사코 잠을 청한다. 창문으로부터 습기가 파고든다. 축축하게 젖은 도로를 뚫고 나가는 버스 안에서 아침을 맞는다. 늦가을의 아침이지만 포근한 날씨였다. 비는 그쳤다. 전날 밤 10시 반이 넘어 돈까스를 먹고 바로 잘 수가 없어 새벽까지 버티다 잠깐 눈을 붙이고 집을 나섰다. 밥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충분히 배가 불렀으니까. 하지만 대회장에 도착한 7시 40분쯤 되니 배가 고파졌다. 대회장을 앞에 두고 뒤로 돌아 편의점을 향하여 걸었다. 삼각김밥 하나를 먹고 되돌아 왔다.

 

 로운리맨님에게 연락을 해 봐야 하나? 배번을 구하지 못하면 주로에서 그냥 운동을 하기로 하셨고 짐을 내 짐과 함께 맡기기로 했으니.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연락을 기다리면서 운영본부쪽으로 갔다. 로운리맨님이 계셨다. 다행히 매니아 접수로 해서 배번호를 구했다. 아무리 현장 접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주최측에게 여분의 배번은 있기 마련이었다. 나중에 뵙기로 하고 돌아나오는데 로운리맨님이 두툼한 영어원서를 내밀었다. A Game of Thrones. 영어 원서를 자주 읽으니 선물해도 되겠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었는데 오늘 가지고 나오실 줄은 몰랐다. 달릴 준비를 하러 가다가 레이스패트롤을 맡으신 광화문페이싱팀의 안수길님을 보았다. 로만밀 식빵을 홍보하는 로마병정 복장의 직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기념촬영한 사진을 SNS에 바로 올리면 식빵까지 제공하는 행사에 참가하셨다.

 

 하프 종목이 가장 긴 레이스라 자주 만나는 풀코스 주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짐을 맡기고 스트레칭한 후 화장실에 다녀왔다. 대회장으로 다시 돌아와 로운리맨님을 찾는데 어느새 인파가 늘어나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 어떤 복장으로 뛰시는지 알 수가 없으니 더 찾기 힘들었다. 출발 불과 몇 분 전 또 한번 화장실에 다녀왔다. 덕분에 달리는 도중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평소보다 날씨가 포근하고 비내린 뒤라 습도가 높고 나중에는 해까지 쨍쨍 나니 땀을 많이 흘려서 화장실에 또 갈 필요는 없었다.

 

 출발 직전 앞사람 안마를 해 주는 시간에 안수길님 뒤로 가서 어깨를 잡았다. 접니다. 안수길님이 물었다. 오늘 얼마에 뛸 거예요? 1시간 40분? 작년에 1시간 40분대에 뛰긴 했는데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일단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 따라 달리고요. 만약 못 따라가면 그냥 달리고요.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김삼행님이 떠오르면서 1시간 44분대 완주는 꼭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9시가 조금 넘어 출발하였다. 시계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데 눌러지지 않았다. 아무리 세게 눌러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몇 일 전 본드로 스타트 버튼을 부착했는데 그 본드량이 넘쳐서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시계만 만지작거리다간 달리기를 제대로 못할 것같았다. 천상 현재 시간을 보면서 출발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계산하면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9시 3분은 넘었고 9시 4분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나아갔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의 빨간 유니폼과 빨간 풍선을 따라가는데 금새 멀어졌다. 100미터 전후의 거리로 벌어졌다. 지난 해에는 11킬로미터 지점에서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에게 따라붙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언제쯤 따라붙을 수 있을런지. 따라붙기나 할 수 있을런지.

 

 물이 고인 자리를 피해야 했고, 자전거도 피해야 했다. 여의도쪽에서 달릴 때보다 주로가 좁으니 조심해야 했다. 맞바람이 있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구름이 끼여 있어 달리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둔중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데 좀 버거웠다. 숨은 차지 않지만 몸이 무거웠다. 군인들 무리와 몇 번 경쟁을 했다. 도대체 몇 분 페이스로 나아가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출발할 때의 시간으로 계산해 보기는 하지만 어차피 정확한 게 아니라서 생각만 많아졌다. 그냥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동반주를 할 수 있다면 1시간 44분대 골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삼행님은 어떻게 달렸을까? 미국에서 11월 12일 오전 달렸다면 이미 달리기를 마쳤을텐데. 내가 달리는 11월 13일 오전은 이미 미국의 11월 12일 저녁일테니까. 김삼행님이 1시간 45분 보다 빠른 기록으로 골인해서 하프 최고 기록을 깨뜨렸길 바라면서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갔다. 김삼행님을 응원하는 마음에서라도 반드시 그 분의 기록 경신 시간대로 달려야 한다고 각오하였다. 페메 옆에서 달리며 따라가면 참 좋았겠지만 기를 쓰고 달려 보아도 100미터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초반에는 도대체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는 내 스타일 탓인가? 아니면 오늘은 1시간 49분대의 달리기가 어울리는 것인가? 양화대교와 당산철교를 지나 5킬로미터 지점에서 콜라 한 잔을 마셨다. 5킬로미터를 26분 정도에 달리고 있는 것같았다. 25분 전후로 달려야 1시간 44분대가 가능한 법인데. 따라붙으려고 애쓰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풀코스를 124번, 하프를 147번, 10킬로미터를 124번 달리고도 달리기는 감을 못 잡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맞바람. 돌아올 때는 뒤에서 밀어주겠지. 후반에 몸풀리면 좀 빨라지겠지. 그럼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겠지. 조금 빨리 따라잡고 몇 킬로미터 정도 함께 달리다 몇 킬로미터 남기지 않고 스퍼트하면 1시간 43분대도 가능하겠지.


 잘 달리는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입상권 주자들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로운리맨님을 볼 수 있었다. 미리 박수를 쳐서 응원을 보내었다. 로운리맨님도 파이팅으로 답해주셨다.  1시간 40분 페메가 바로 앞에 있다고 하시는 것같았다. 1시간 45분 페메를 1시간 40분 페메로 착각하신 듯. 조금 더 스퍼트하면 1시간 39분대 들어올 수 있다고 응원하신 것이다. 10킬로미터 기록이 얼추 50분을 넘지는 않은 것같으니 이제 뒤처지지만 않으면 1시간 44분대가 가능했다. 생애 첫 하프(2004년 5월 26일)가 1시간 44분 10초였으니 꼭 그 정도로는 달렸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오늘은 김삼행님의 기록 경신 시간대이니 그렇게 달리면서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반환. 칩이 인식되는 기계음을 선명하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5킬로미터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내 앞으로 치고 나오지 않았다. 이 패턴은 골인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1시간 45분 페메는 여전히 100미터 정도 차이. 13킬로미터쯤 달리고 50미터 차이까지 좁혀졌는데 한 명의 페메는 100미터 이상 멀어졌다. 뒤에서 달리는 페메부터 잡아야 해. 14킬로미터 정도에서 잡을 것같던 페메를 잡은 것은 18킬로미터 지점. 50미터 간격을 0미터 간격으로 줄이는 데 5킬로미터나 더 달려야 했던 것이다. 이 구간에서 구름은 완전히 걷히고 해가 주로를 비치면서 기온이 올라갔다. 달리기 조건은 나빠졌지만 스피드를 올렸다. 힘들지만 달리다가 죽지는 않겠지 뇌까리면서. 5킬로미터 남았을 때 계산해 보니 1시간 46분 정도로 골인하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출발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니 이 계산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더 스피드를 올려야 해. 스피드를 올리면서도 건너편에서 오는 안수길님에게는 파이팅을 외쳤다. 아는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달리기에만 매진했다. 땀은 비오듯이 떨어지고 입은 벌어지고 고개는 젖혀지고 발걸음은 요란해지고.... 자세를 교정하자. 고개를 젖히지 말고 발걸음을 가볍게 옮기고 양팔은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들자. 여러 명의 주자들이 내 뒤로, 내 뒤로. 검은 기름을 주유하고.(콜라를 마시고). 열심히 달리는데도 앞의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는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 한계인가? 골인까지는 2킬로미터도 남지 않았다. 홍제천으로 들어선 후 월드컵공원으로 감아도는 오르막이 짧지만 어찌나 힘든지 진저리를 쳤다. 지난 해에 비하면 오르막도 아니지만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는다고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골인점이 500미터쯤 남았을 때 앞에서 달리던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도 제쳤다. 응원을 보내주는 자원봉사 학생들에게는 손을 흔들어주고 스퍼트했다. 골인하면서 습관적으로 시계의 스톱버튼을 눌렀다. 쓸데없는 행동. 참! 작동 안 되지. 사회를 보고 계신 해병대 정의님과 악수를 하였다. 골인점에서 빠져나와 하프 시간 측정 계기를 보고는 놀랐다. 1시간 42분대. 그렇다면 1시간 41분대로 골인한 것인가? 이건 뭐지? 1시간 45분 페메를 제친 지 얼마나 되었다고 1시간 41분대. 오늘은 페메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을 뿐인데. 그럼 페메가 빨리 뛴 것이네. 시간을 정확히 체크하면서 달리지 못했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 만약 시간을 확인하고 달렸다면 이렇게 빨리 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달렸을 것이다. 혹은 1시간 39분대도 가능하겠구나 하면서 하고 죽자사자 애를 썼을까? 한계에 달하면 단 1초 줄이는 것도 힘드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생하신 페메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후반 표지판이 없어 달림이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었다며 미안해 하였다. 1시간 45분 페메가 1시간 42분대로 골인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듯했다.

 

 로운리맨님이 자리를 잡아주어 기록증을 빨리 받을 수 있었다.

 

01:41:09.34

 

 로운리맨님과는 2주 연속으로 식사를 하였다. 마포구청역에서 삼각지역까지는 동행하였다. 이동하면서 블로그를 들락날락하며 김삼행님의 하프 완주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알았다. 김삼행님이 개인 기록을 경신하셨다는 사실을. 최고다. 1시간 42분 12초 87.)

 

 

 

아래쪽 장식은 세면대 하수구로 빠져 버려서 위쪽은 다시 떼어내어 본드로 붙였는데 본드량이 과했나 보다.

버튼을 눌러서 작동 단추에 힘을 가할 수 없을 정도로......

 

 

 

 

 

 

 

안수길님과 함께.......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마포구청역 부근 식당에서 로운리맨님과 즐겁게 순대국을 먹다

 




 

 

로운리맨님이 주신 선물..... 열심히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