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2회 도봉구청장배 마라톤대회(2016/11/27)-HALF

HoonzK 2016. 11. 27. 17:44

 전날 첫눈이 내렸다.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니라서 쌓이지는 않고 바로 녹아내렸다. 비나 눈이 내릴 것같은 축축한 날씨는 이어졌다. 모처럼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니 평소보다는 조금 더 잘 수 있었지만 지난 주에 비하면 날씨가 눈에 띄게 추워져 거동하기가 불편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알 아인:전북)을 보고 자는 바람에 잠도 부족했다. 피로를 풀지 못하고 집을 나서다 보니 추울 때 어렵게 달렸던 마라톤 대회의 악몽이 되살아 나왔다. 기온이 낮은데다 찬바람이 쌀쌀하게 불고 있었다. 올 가을 들어 첫 보온 조치를 하고 달려야 했다. 긴팔 티셔츠를 입고, 목에는 버프를 둘렀으며, 장갑까지 꼈다. 아랫도리만은 반바지였다. 화장실 문제도 집에서 해결하고 나갔기 때문에 뭘해도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希洙 형님이 감기 몸살로 오지 못하게 되어 현장 배부하는 기념품을 따로 챙겨드려야 했다. 명단에 이름이 없어서 한참 찾아야 했다. 단체팀 사이에 이름이 끼이다 보니 개인 하프 명단을 따로 기록할 때 주최측이 빠뜨린 것이었다. 


 다리 스트레칭만 개인적으로 하고 다른 부위의 스트레칭은 주최측의 몸풀기를 따랐다. 칩이 없는 마라톤이라 그냥 편하게 조깅나온 듯이 달리기로 했다. 달림이들 이야기를 들으니 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 해도 200만원이나 든다고 했다. 어차피 기록증도 없을텐데 그저 운동 잘한다고 생각해야지. 단체 사진 찍는 행사에 참가하고 출발할 때 이례적으로 맨앞에 섰다. 날씨가 조금은 온화해진 듯싶었다.

 

 출발! 처음부터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 못되다 보니 맨앞에서 출발했어도 여러 명의 달림이들이 내 앞으로 나아갔다. 동요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앞서 가세요. 저는 경치를 보면서 여유를 즐길테니. 왼편으로 도봉산이 보였다. 구름이 넓게 펴져서 걸린 도봉산. 수묵화의 풍경처럼 은은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 가끔은 산을 올려보고 중랑천을 내려보고 산책 나온 사람을 살피며 뛰어야지. 1킬로미터 5분 20초의 페이스. 생각보다 빠르네. 다음 구간은 5분 15초.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아니요, 페이스메이커가 될만한 사람을 쫓아가는 것도 아닌데 속도는 잘 나왔다. 전날 결혼식장 부페에 가서 음식을 최대한 자제했고, 저녁도 거의 먹지 않은 덕분일까? 몸은 가볍게 느껴졌다. 곱하기 5 방식으로 킬로미터마다 계산했다. 3킬로미터 15분대, 4킬로미터 20분대. 이런 식으로. 정확히 5분 페이스면 좋겠지만 5분 10초에서 30초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10킬로미터 종목에 참가한 주자들은 나를 추월하기가 무섭게 되돌아왔다. 3등으로 달리는 분 중에 전**호님이 있었다. 용왕산 파이팅. 내 응원에 짧지만 굵게 답해주고 지나갔다. 중랑천을 따라 의정부에서 돌아오거나 반대로 가거나 할 때 자주 달렸던 코스라 낯설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도봉구에서 노원구쪽으로 들어서면서 잠시 후 의정부로 들어섰다. 5킬로미터 급수대. 달리는 반대편에 있어서 건너가서 컵을 갖고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발곡역이 보였고, 신동초등학교도 보였다. 페이스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서 은근히 1시간 44분대로 완주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8킬로미터 지점에서 부용천쪽을 따라갔다. 이때부터는 자전거도로가 아닌 산책로를 따라 달렸다. 쿠션감이 느껴지는데 신발의 탄력을 흡수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감도 들었다. 그래도 그냥 달렸다. 9킬로미터 새말역. 선두 그룹이 보였다. 나보다 3킬로미터나 앞서 있는 셈. 빠르다. 정말.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 이제는 의정부경전철역을 따라가는 레이스였다. 가끔 장난감같은 모노레일 경천절이 지나가면 정겨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10킬로미터 50분 언저리. 충분히 1시간 44분대를 노려볼 수 있겠다. 경기도청북부청사역을 지나면서 단골 블루클럽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반환하기 직전 운영요원이 팔목 링을 주었다. 반환점 확인 링. 이게 없으면 반환 확인이 되지 않아 후반에 아무리 잘 달려도 입상에서 제외된다. 입상권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는데 이런 것을 다 준담. 내 뒤의 주자에게까지 링을 준 운영요원은 말했다. 이제부터는 주지 않아도 되겠다.


 반환점을 돌 때 기록. 52분 30초.  올 때와 갈 때의 기록이 똑같다면 1시간 45분 00초. 골인하기 직전 살짝 스피드를 올리면 1시간 44분대는 무난해졌다. 급수대에서 물을 먹는데 초코파이가 없어서 아쉬웠다. 물 외에는 음료수도 없었다. 오로지 생수만 제공되는 단출한 대회. 노원구육상연맹, 성북육상연맹, 강북구육상연맹, 중랑구육상연맹, 동대문구육상연합회 등 단체 팀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대회 주최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각 단체는 유니폼을 입고 주로에서 시시각각 존재감을 드러냈다. 함께 모여 달리거나 엄청난 스피드를 보이며 달리거나 응원을 보내거나 하는 식으로. 그 사이에서 분전하는 독립군 강건달.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5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10킬로미터를 50분에만 달린다면 1시간 44분대 후반으로 골인하게 된다. 완주와 기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리라 마음먹으면서 다른 데 신경쓸 겨를도 없을 것같은데 또다른 고민 거리를 갖고 와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걱정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달리면 달리는 게 도무지 힘들지 않았다. 결국 지난 주 풀코스 기록을 경신한 것도 그래서일 수도 있다.  달릴 때만은 제발 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15킬로미터 지점부터 스퍼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가, 스퍼트하지 말까 하는 유혹에도 시달렸다. 5분 페이스가 서서히 4분 50초 페이스가 되고, 어느새 4분 40초 페이스, 마침내 4분 30초 페이스까지 되었다. 1시간 44분대가 아니라 1시간 42분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변의 마스터즈들이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내 뒤로 오고 있었다. 중랑천을 달리면서 도봉산쪽을 바라보는데 도봉산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도봉산을 감춰 버린 것이었다.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젖을 만큼은 못되어 달리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다. 내내 앞에 있었던 파랑 자켓 주자를 따라잡은 것이 15킬로미터 지점. 

 

 5킬로미터를 남기고 시계를 보니 1시간 18분이 막 지났다. 남은 5킬로미터를 25분에 달려도 1시간 43분대 초반이라는 뜻. 지금 스피드로 보아 25분이 걸릴리 없으니 1시간 42분대는 무난하고 어쩌다 보면 1시간 41분대 후반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럼 1시간 39분대는? 그건 무리지. 갑자기 2주 전 스포츠서울마라톤대회 생각이 났다. 로운리맨님이 아쉬워하셨던 부분. 거리가 길지 않았다면 내가 1시간 39분대도 가능했으리라 하셨지. 아닐 거예요. 한계에 달했을 때에는 단 몇 초 줄이는 것도 어려워요라고 나는 답했고. 이 사람 저 사람. 저 멀리 있던 사람이 어느새 내 앞에 있고, 곧 내 뒤에 있고. 노란색 거리 표지판은 나를 마중하기 위하여 앞으로 달려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가 4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 22분대 중반. 내가 4분 30초 페이스로 달린다면 골인 지점까지는 18분이 걸린다. 그럼 1시간 40분대 중반. 조금 애쓰면 1시간 39분대가 가능하겠다. 후반 역주로 1시간 39분대에 턱걸이했던 지난 해 양산마라톤이 떠올랐다. 맞바람이 있었지만 견딜만 하였다. 치열하게 달렸다. 팔놀림을 크게 했다.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오늘은 정말 편하게 달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네. 중랑천을 건너면서 3킬로미터 표지판. 1시간 26분대. 1시간 39분대가 가능한가? 계산이 잘 되지 않았다. 무작정 달려 보는 수밖에. 2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즉 19.0975킬로미터 지점 기록이 1시간 30분 45초. 가능해 보인다. 9분에 2킬로미터를 달리는 게 지금 상태로서는 어려울 게 없으니. 오랜만에 1시간 30분대 재진입이 가능해진다. 그래도 더 빨리 달리려 애쓴다.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에서 시계를 다시 본다. 1시간 34분 45초. 1킬로미터 구간을 정확히 4분만에 달렸다. 그리고 남은 거리에서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한다. 남은 1킬로미터는 4분 7초에 달렸다.

 

1:38:52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3분대로 달린 셈이다. 기록증이 없는 줄 알았는데 기록증이 있었다. 기록요원은 기록을 적어 내 배번에 붙여 주었다. 내가 잰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강북마라톤은 기록증도 완주메달도 없었는데 도봉구청장배 마라톤은 기록증은 있다.

 

 완주 후 떡국을 두 그릇 먹었다. 우울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면 우울증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젊은 친구가 절망에 빠져 있었다. 너무 기록이 나쁘게 나온 모양이었다. 친구는 그 정도면 잘 나온거야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10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내가 추월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후반에 페이스가 떨어져 꽤 고생하면서 완주한 것같았다.

 

 이제 수요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연을 보러 가서 希洙형님에게 모자를 전해드리면 되겠다. 

 

 

후반에 역주한 덕분에 1시간 38분대까지 들어갔네.

 

반환점에서 받은 링도 있다.

 

 

모자가 두 개인 이유는 希洙 형님 것도 받다 보니.....

 

 

 

내가 잰 기록과 기록 계시원이 잰 기록이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이 낯익은 장소......

 

 

 

 

 

 

 

 

 

 

 

 

 

 

 

 

 

 

 

 

빨간색 화살표. 바리케이드 바깥쪽에서 나름대로 몸을 풀고 있다.

 

 

가운데 파랑색 티셔츠. 단체 사진이 좀 흐린 게 아쉽다.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이례적으로 앞쪽에 서 있네.

 

 

시계를 조작하는 사이 다른 주자들이 치고 나간다.

 

5킬로미터 지점. 버프로 바람을 막고 있다. 오른손 장갑을 벗은 이유는 급수대가 바로 앞에 있기 때문......

 

아쉽게도 골인 지점의 사진은 없다. 운영요원들이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찍기는 하던데 사진 찍히는 것도 운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