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달은 어디 있을까? B그룹에 있을 것이다. 비교적 뒤쪽에서 출발하는 스타일이고 다른 주자들보다 큰 편인데다 버프를 쓰니 찾아 내기가 쉬우리라. 그렇게 로운리맨님은 강건달을 찾아내어 나를 부른다.
'건달님, 파이팅!'
나도 두 팔을 들어올려 파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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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앙서울마라톤에서 달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적어도 지난 9월말까지만 해도. 허수아비님이 주로에 돌아오신 걸 너무 늦게 알았다. 2016년 9월 26일 밤 허수아비님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저는 중앙서울마라톤을 신청할까 합니다. 그날 부산마라톤도 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달린 답글을 보니 부산마라톤을 나간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저도 속도는 나오지 않지만 거북이 속도로 처음으로 하프주까지 힘들게 뛰었습니다. 마침 경주동아마라톤이 마감을 연기하는 바람에 경주동아랑 부산마라를 털컥 신청해버렸는데 제한시간내 뛸 수 있을련지 걱정이 앞섭니다. 올해는 서서히 끌어올려 내년에 동반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결국 4년 터울로 달리고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는 중앙서울마라톤을 2년만에 달리게 되었다. 춘천마라톤을 대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태도로 대회를 준비했다. 몸을 방치한 느낌이었다. 일주일 간격이던 춘마와 중마가 2주 간격이 되면서 중간에 끼인 주에 하프라도 달려주면 좋았겠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으니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새벽 3시나 4시에 잠자리에 드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아침에는 비몽사몽 상태에서 일어났다. 춘마를 마치고 난 후 운동량도 현저하게 줄어 또 하나의 메이저 대회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불량했던 것이다.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일이 잦았다. 중마 앞에서 신경쓴 것이라고는 하루 전 날 활동량을 줄이고 쉬었다는 것, 그래도 자정 경에는 자려고 노력했다는 정도.
평소에 늦게 자던 사람이 갑자기 일찍 잘 수는 없는 일. 잠이 들었다 싶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꿈은 어찌나 요란한지 견디기 힘들었다. 춘마 때보다는 1시간 늦게 일어났지만 고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담배 냄새부터 잔뜩 들이마셨으니 하루를 불쾌감으로 시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잤어야 했는데 스마트폰을 어찌나 만지작거리는지 쉴 틈이 없었다. 견딜만 하니까 이러는 것이겠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잠실종합운동장역을 빠져나가자 마라톤 용품 판매상 단골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오늘 기록 세우셔야지요? 아니요, 오늘은 그냥 편안하게 달릴 겁니다. 무리하지 말아야죠...... 전국마라톤협회 부스에서는 양말과 스포츠테이프를 받았다. 지난 1년간 2회 이상 참가한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선물이었다.
재빨리 달릴 준비를 하고 짐을 맡겼다. 출발 1시간 전이었다. 추위를 좀 느껴야 하는데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으니 오늘 더위 때문에 조금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길게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나는 스트레칭을 마친 후 벤치에 잠깐 앉아만 있었다. 화장실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태현님과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7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 장소로 이동했다. 후미의 10킬로미터 주자부터 D, C, B, A그룹이 꽉 들어차 있었다. 10킬로미터 주자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앞으로 이동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소변을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마려웠다.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타사 재팬을 신어 얇은 양말을 신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지난번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피멍이 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주자들로 주로가 꽉 들어차다 보니 고개를 돌리기도 힘들었다. 스트레칭하는 아줌마에게 몇 대 얻어맞았다. 10년 전 중앙서울마라톤을 뛸 때와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별로 긴장감도 없었다. 출발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는 일도 없었다. SUB-4로 달리면 무난하겠지만 그래도 메이저대회이니 3시간 40분대는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만 있었다. 3시간 44분대면 좋겠고, 조금 힘들면 3시간 49분대로 목표를 수정한다. 그렇게 해도 3시간 50분대로 밀릴 수도 있겠지. 3시간 50분대라면 좀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중동이 나란히 3시간 30분대, 3시간 40분대, 3시간 50분대를 기록한 2014년의 재판을 만들고 싶은데....... 시무룩하게 있다가 로운리맨님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휠체어 마라톤,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하고 마스터즈 대부대가 출발했다. 내가 출발 아치를 지난 것은 8시 10분쯤이었다. 3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보다는 100미터 이상 뒤였고, 4시간 페이스메이커 보다는 수 미터 앞이었다. 출발하자마자 누군가 내 옆구리를 잡았다. 김영준씨였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였다. 보통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하시는 분인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첫 1킬로미터는 신천역 방향으로 나가면서 올림픽 조형물 보는 재미가 있었다. 5분 35초가 걸렸다. 3킬로미터 지점은 16분 초반에 통과하였으니 3시간 49분대로 달리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낯익은 주자 한 사람이 있었다. 덕소마라톤클럽 소속, 모자 챙을 뒤로 쓰는 남자. 지난 해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동반주했던 분. 그때 12킬로미터 이상을 대화하면서 달렸으니 거의 1년만에 만났지만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분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목표는요? 4시간 이내로만요. 그렇다면 함께 달리기는 힘들었다. 앞으로 나갔다. 5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누군가 따라붙으며 인사했다. 인천송도국제마라톤에서 함께 동반주했던 이한구님이었다. 이 분은 저 앞에 파란 풍선이 3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무섭게 스피드를 올렸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망쳐버린 춘천마라톤의 아쉬움을 지워내는 기세였다. 휘문 민소매 티셔츠 안에 받쳐 입는 반팔 티셔츠가 없는 것으로 보아 더울 것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3시간 39분대로 골인하셨다) 6킬로미터쯤 지날 때 양복 입고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구두까지 신은데다 슈트케이스까지 들고 있었다. 설마 저러고 뛰는 거야? 마라톤 주자가 맞는 것이 배번을 달고 있었다. 그냥 지날 수는 없었다. 코스프레 파이팅. 파이팅이라는 답을 받았다. 왜 그렇게 달리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스피드가 올라와 7킬로미터 정도 갔을 때에는 3시간 50분 페메 그룹을 제쳤다. 그렇게 제쳐도 무난한 3시간 40분대는 아니었다. 소변을 봐야 하니까. 마땅한 용변 장소가 없어서 참고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9킬로미터를 넘기 전, 올림픽 공원역 부근에서 또 한 분이 인사해 왔다. 동대문마라톤클럽의 두경님이었다. 몇 차례 내가 먼저 인사를 드렸더니 드디어 이 분이 먼저 알아보셨다. 함께 달리지는 못했지만 비슷하게 나아갔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달리는 분도 있었다. 10킬로미터 지점을 지나기 전에 도로변의 으슥한 자리를 찾았다. 근심을 해결하였다. 돌아나갈 무렵 보니 내 옆으로 줄줄이 서서 바지 앞춤을 내리고 있었다. 다들 참고 달린 거였어.
근심을 풀었으니 이제는 스피드가 더 나겠지 했다. 하지만 피로감이 배변욕에 가려져 있던 것뿐이다. 고단하고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이대로 달리다간 완주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려고 중앙서울마라톤을 신청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10킬로미터 지점부터 몸관리를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려고 욕심을 부린다면 후반에는 달릴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같았다. 구름이 햇빛을 일부분 가려 틴들 현상이 있는데다 바람도 이따금 차가운 기운을 실어보내니 달리기가 수월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이는 초반에 누린 혜택일 따름이었다. 기온은 자꾸 올라갔고, 구름은 걷히고 햇빛이 내리쪼였다. 10킬로미터부터 20킬로미터까지 가는 데 1시간이 넘었다. (달릴 때에는 몰랐다. 그렇게까지 늦게 달리는지) 덕소마라톤 주자가 파이팅을 외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오랜만에 뵙는 줄넘기 마라토너 이순길님도 나를 제치고 나갔다. 천천히 달리면 에너지가 충전되는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달린 만큼 후반에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최면을 걸면서 나아갔다. 18킬로미터쯤 달리니 엘리트 선두 주자들이 건너편에서 나타났다. 거의 전력질주의 수준이었다. 20킬로미터 지점에서 초코파이를 먹고 난 후 조금 스피드를 올렸다. 이 때부터 건너편에서 오는 주자들을 만나고 또 만나기를 계속했다. 돌아올 때는 새로 만들어진 오르막 도로를 달리게 되면서 3시간 10분대 주자와 마주할 수 없게 되었는데 만약 내가 아는 분들이 이 그룹에 있다면 응원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3시간 20분 전후의 주자들도 보지 못한다면 로운리맨님 뵙기도 힘들 것같았다.
특전사님에게는 파이팅을 외치고, 헬스지노님에게는 손을 흔들고. (이 분은 어찌나 집중해서 달리는지 중앙분리대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는 나를 보지 못했다.) 로운리맨님 찾기를 시작했다.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지나갔다. 바로 뒤쪽에서 로운리맨님을 찾았다. 앞만 보고 달리고 계셨다. 파이팅을 외쳤더니 표정이 환해졌다. 조금만 속도를 올리면 3시간 20분 페메를 잡겠다고 응원을 보내었다. 서로 응원을 주고 받다 보니 갑자기 기운이 났다. 26킬로미터 지점에서 화장실에 다시 한번 다녀 왔는데도 20-30킬로미터 구간을 10-20킬로미터 구간보다 10분 이상 빨리 달렸다. 돌아오면서 4시간 페메 그룹에서 달리는 希洙형님을 만났다. 또 한 분이 있었는데 아세탈님. 이 분을 만나게 될지 알 수는 없었다. 중도 포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택시비를 챙겨서 달리겠다고 하셨으니. 4시간 30분 페이스로 달리는 그룹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분이 아세탈님이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힘이 펄펄 났다. 배트맨 복장을 입은 분에게는 '와! 배트맨이다!'라고 하여 호응을 이끌어내었고, 임금님 복장으로 달리는 주자의 옆에 가 보기도 하였다. 양복입은 주자는 꾸준히 잘 달리고 있었다.
달리면서 끊임없이 드는 의문 한 가지. 원래 중앙서울마라톤에도 오르막이 이렇게 많았던가? 평탄한 길을 따라 달리다 가끔 짧은 오르막을 넘으면, 그것도 별로 부담없이 넘으면 되는 레이스가 아니었던가? 내 몸이 피곤한 탓이었을까? 오르막이 쉬지 않고 나오는 코스같았다. 30킬로미터 지점 탁자에 파워겔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몇 개 챙길까 하는 욕심도 생겼지만 단 한 개만 집어 바로 먹었다. 30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역대 중마 가운데 가장 늦어졌다. 3시간 44분대는 일찌감치 날아갔고 3시간 49분대가 가능한가? 30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2시간 43분을 넘지 않는다면 3시간 49분대로 골인할 수 있다. 물론 등속 주행이 기준이다. 아슬아슬하게 2시간 43분을 넘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조금씩 스피드를 올린다는 계산. 어려워 보였다. 아무리 졸려도 달리다 보면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도무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스피드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30킬로미터부터 35킬로미터까지 너무 길게 느껴졌다. 35킬로미터 지점을 만나기 전 만나는 오르막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35킬로미터 지점은 나오기 마련이다. 모든 부담을 35킬로미터 지점 이후로 밀어 놓는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에너지를 충전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거기 에너지 충전소라도 있는가? 물이 있다.
35킬로미터 지점 급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약속했던 지점이다. 스퍼트하기로. 이게 스퍼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퍼트했다. 초반에 앞으로 내 보냈던 주자들을 다시 만났고 그들을 제쳤다. 36킬로미터 지점. 6킬로미터밖에 안 남았네. 금방 37킬로미터 지점이 나왔다. 남은 5.195킬로미터를 27분으로 달려도 3시간 49분대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24분대로 달려서 3시간 47분 40초로 골인하였다. 40킬로미터 지점에서 후반에 스피드를 떨어뜨린 의계님을 추월했고, 3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는 41킬로미터 지점을 넘어서야 추월하였다. 41킬로미터 부근에서 무서운 스피드로 나를 제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잘 되었다. 따라가야지. 그런데 기세좋던 이 양반은 금세 지쳐 달리기를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만 있었다. 운동장쪽으로 들어서면서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고 그 안 쪽에서 우리가 달리고 있었다. 바깥쪽으로는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부르면서 응원을 보내는데 모두 내게 보내는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잠실 종합운동장 트랙으로 들어섰다. 잠시 주자들 틈바구니에 섞였다가 바깥쪽으로 빠져나가 큰 원을 돌며 질주했다. 이미 3시간 40분대 골인이 가능해졌으니 의미는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스피드를 늦추지 않았다. 스피드를 올리면서도 카메라맨을 찾아내고 일일이 V자를 날렸다.
아! 2011년 12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60개월 연속 풀코스를 완주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울러 90번째 SUB-4 완주를 달성했다.
탈의실에서 바깥술님과 만나 옷을 갈아입으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뛰지 말아야지. 옷갈아입던 달림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2주 동안만 뛰지 말아야지. 다다음주에 손기정 평화 풀코스 뛰어야지. 달림이들이 옷갈아입는 일에만 신경썼다.
완주 후 로운리맨님과 만나 떡국도 먹고 육쌈냉면도 먹었다. 중고서점에 가서 책도 샀다. 한해 조중동 완주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완주 후 식사하러 가는 길에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타사재팬을 신고 완주했는데 지난번 두꺼운 양말을 신고 달렸다 피멍이 들어 얇은 양말을 신었다.
양말이 얇아서 초반에 통증이 조금 느껴졌는데 15킬로미터를 넘기고 나니 문제없었다.
10km (5천명 선착순 모집 )
골인할 때 내 사진을 찍어주는 카메라맨을 요즘 못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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