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6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2016/11/20)-FULL 125

HoonzK 2016. 11. 21. 10:15

 골인 지점이 500미터 쯤 남았을까? 로운리맨님 앞으로 나아갔다. 사정없이 스퍼트하여 잠실종합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트랙을 돌지 않고 골인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골인 후 로운리맨님을 기다렸다. 두 손 높이 들어 박수치며 3시간 32분대로 골인하는 로운리맨님을 맞았다.

3시간 32분대? 내 최고 기록이 3시간 35분 01초였는데.

로운리맨님이 물었다.

-최고 기록 경신하셨죠?
-네. 맞아요.

로운리맨님이 환호성을 올렸다.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자신이 기록을 깨뜨린 것보다 더 좋아하시는 로운리맨님. 포텐 폭발이예요.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3:32:08.18

 

 30킬로미터 지점을 2시간 33분 35초 쯤에 지난 것은 3년 전 춘천마라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울 때와 같았다. 남은 12.195킬로미터를 1시간 이내에 달려내면서 기록 경신이 가능하였다.  그런데 이래도 되는가? 이것을 기록 경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메이저 대회도 아닌 손기정 평화마라톤인데. 동아 서울국제마라톤, 춘천마라톤, 중앙서울마라톤. 이 세 개 대회에서 기록을 경신하여야 진정한 기록 경신이 아닌가?  후반에 고민하긴 했다. 그냥 최고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는 달리지 말고 적당히 타협해서 3시간 36분대나 37분대로 달릴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어디 있나 일단 달리고 볼까 하고. 결국 골인할 때까지 내 능력이 닿는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스퍼트했다.

 

 출발할 때 개운하지 않고 마음이 무거웠지만 지난 중앙서울마라톤 때처럼 자고 싶다, 쉬고 싶다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은 가벼웠다. 첫 1킬로미터가 5분 20초밖에 걸리지 않았고, 바깥술님을 발견한 뒤에는 저 앞에 있는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가자고 권유까지 했다. 바깥술님은 먼저 가라고만 했다. 2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무리와 함께 달렸다. 킬로미터당 5분 10초 이상 걸리지 않는 레이스를 펼쳤다. 아직은 선선한 날씨라 달리기에 딱 좋았다. 구름이 없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워지리라는 것이 걱정되었다. 6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서는 급수대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앞으로 나아갔다. 9킬로미터 지점에서 만나는 암사대교 부근의 오르막은 별로 부담되지 않았다. 10킬로미터 지점을 51분대로 지났다. 건너편에서 오는 마스터즈들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파이팅을 보내었다. 특전사님, 헬스지노님.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로운리맨님을 찾기 위하여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로운리맨님인줄 알고 파이팅을 외치려다가 딴 사람이어서 맥이 풀리기도 하였다. 결국 찾지 못했다. 안 오신 것인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주로에 홀로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선후배들이 10킬로미터 종목에 참가한다고 했으니 코스를 바꾸어 10킬로미터만 달리고 만 것인가? 잠실대교를 건너갔다 오는 코스 때문에 풀코스보다 먼저 출발한 10킬로미터 종목. 그 주자들이 풀코스 주자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기나긴 시간일테니 풀코스를 포기하셨구나하고 판단했다.


 1차 반환해서 만나는 11킬로미터 지점부터는 하프 주자들이 워낙 많이 뒤섞여서 그들과 함께 달리다간 페이스를 잃어 버리기 딱 좋았다. 동대문마라톤클럽의 두경님과 보조를 맞추면서 달렸다. 건너편에서 아시는 분이 오면 반드시 소리를 질러 반겼다. 하프를 달리는 希洙형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춘마 직전 1시간 42분대로 달리신 분이지만 오늘은 전날 일정 때문에 페이스를 늦추고 계셨다. 속초까지 가서 축구시합에 참가하였고 술까지 드시고 돌아오느라 새벽 1시에 귀가하였다고 하셨으니..... 아세탈님을 찾기 위하여 애를 썼지만 뵙지 못하였다. 정말이지 좁은 주로에 하프 풀 주자가 뒤섞이니 아는 사람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거기에 자전거까지 앞 뒤로 위협하면서 지나가니 이건 정말 시장통이다. 아는 사람을 찾아 은식님, 효준님, 철의원님을 불러도 자기를 부르는 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17.5킬로미터 스폰지대를 지났다. 두경님이 뒤로 가시고는 외로운 달리기가 되었다. 나를 제치고 나가는 주자들은 대부분 하프 주자들이었다. 무조건 따라갔다가는 오버페이스가 되기 십상이었다. 주의하면서 가는데도 스피드가 올라 있어 하프 주자를 제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울증에 빠지다 보니 식탐이 떨어졌다. 밥을 거의 먹지 않았고, 먹더라도 평소의 반 내지 3분의 1 수준만 뜨고 말았다. 그러면서 2킬로그램 쯤 빠졌다. 그렇게 덜어낸 체중 덕분에 3시간 30분대로 나아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하프 주자들과 헤어진 후 풀코스 주자들 사이에서 달렸다. 갈림길에서 'FULL'이라고 적혀 있어야 할 이정표에 'HULL'이라고 적혀 있었다. '헐?' 진짜 '헐'이다.

 

 양재천으로 들어섰다. 소변을 어디서 보긴 보아야 할텐데. 양재천 화장실은 둔덕 위에 있어서 갔다 왔다가는 너무 시간을 잡아 먹으니 어딘가 으슥한 곳을 찾아야 했다. 도로를 왔다갔다 하다가 자전거에 치일 뻔 하기도 했는데 뒤에서 조심이라는 말을 들었다. 페메의 목소리였다. 3시간 40분 페메 그룹보다 많이 앞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23킬로미터 지점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리기가 무섭게 3시간 40분 페메가 파이팅을 외치며 나를 지나쳤다. 이럴 줄 알았다고 했더니 페메는 함께 달리자고 했다. 페이스가 크게 떨어진 것이 아니라서 동반주가 가능했다. 25킬로미터 지점까지 같이 달리다 소변을 보고 왔다. 100미터 이상 떨어졌다. 페메와 나 사이에 낯익은 분이 있었다. 바깥술님. 바로 따라 붙으니 돌아보지도 않고서 바깥술님은 나인지 알고 잘 비워냈느냐고 물었다. 3시간 40분 페메와 함께 가자고 두번째로 권유했다.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만 속도를 올려 26킬로미터 지점에서 3시간 40분 페메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5분 10초 페이스가 5분 페이스가 되면서 28킬로미터 지점부터는 3시간 40분 페메 앞으로 나섰다. 해를 마주 보고 달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볍게 달려 나갔다. 초미의 관심사는 30킬로미터 통과 기록이었다. 2시간 33분대가 예상되는데 실제로 2시간 33분대가 나왔다. 2:33:35. 3년 전 춘마와 같은 기록이었다. 급수대쪽으로 나아가는데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먼발치에서도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로운리맨님이었다. 1차 반환 지점에서 서로 놓쳤던 것이었다. 2016 춘마 기념품을 입고 계신 것을 미리 알았다면..... 2차 반환하고 급수대로 되돌아가니 31킬로미터 지점이었다. 그렇다면 로운리맨님과는 1킬로미터 차이가 나 있었다. 양재천에서의 1킬로미터는 엄청나게 긴 거리. 보고 따라간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


 3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한구님을 만났다. 오늘 나오신 줄 몰랐어요. 태현님, 용구님과도 인사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를 돕기 위하여 끈을 연결하고 달리는 은기님에게는 한없는 응원을 보내었다. 34킬로미터 쯤에서 다리를 건넜는데 그쪽은 그늘이 져 있었고 자전거도 별로 없어서 아주 선선한 느낌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 구간의 혜택이 기록 경신에 큰 도움을 준 것이었다. 35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나기 직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따라붙는 주자가 있었다. 제치고 나가려면 나가라는 식으로 속도를 늦추는데 그 주자는 35킬로미터 지점이 되기가 무섭게 발걸음을 멈추어 버렸다. 나를 기준으로 삼아 일단 스퍼트해 본 것같았다. 35킬로미터. 3시간이 넘지 않았다. 이렇게 빠른 적이 있었나? 남은 7.195킬로미터를 춘마에서는 33분 19초로 달렸지만 오늘은 35분에만 달려도 최고 기록 경신이 가능해졌다. 이런 메이저 대회도 아닌 대회에서 기록을 세우면 반칙 아닌가?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달릴까? 이미 올라붙은 스피드를 다시 떨어뜨린다고? 지금 힘든가? 힘들긴? 오히려 편한데. 토요일 너무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나가 있는 바람에 피곤했다. 잠은 잘 오지 않았지만 자정이 되기 전에 꿈을 꾸고 있었다. 5시간은 잤다. 초반에는 꿈이 요란했지만 중간에 깨었다 다시 잘 때는 깊이 잘 수 있었다. 피곤하지 않았다. 전혀.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더 올렸다. 5분 페이스였던 페이스가 4분 50초, 4분 40초까지 빨라졌다. 37킬로미터 지점. 남은 5.195킬로미터를 중마에서는 24분대로 달렸는데 이제는 27분대로 달려도 최고 기록 경신은 무난하다.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가는 거다. 그냥 가는 거다. 한 명 제치고 또 한 명 제치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급수대는 빠뜨리지 않았다. 검정색 아식스 티셔츠를 입으면 지지리 기록이 나오지 않는데 그런 징크스는 오늘 통하지 않았다. 잘 나가다 자전거와 부딪치면 낭패이니 주로를 바꿀 때는 뒤를 돌아보기도 잊지 않았다. 39킬로미터, 40킬로미터 표지판을 찾지 못해 페이스 조절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덕분에 더 빨리 달린 것같았다. 갑자기 41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왔다. 3시간 27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남은 1.195킬로미터를 8분 걸려 뛰어도 최고 기록 경신이다. 걷지 않는 이상 8분이나 걸릴리가 없지 않은가? 잠실종합운동장 토끼굴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대단히 낯익은 비주얼이었다. 로운리맨님. 후반에 속도를 늦추신 덕분에 내가 바짝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메이저 대회를 마친 이상 기록보다는 즐거운 달리기를 하겠다고 하셨으니....... 상가 건물 지대를 돌아나가다 보면 꺽이는 구간이 많아 로운리맨님의 소재를 알 수 없었다. 그늘진 구간을 빠져나가 오픈 구간을 나가기 직전 다시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같이 달렸으면 좋겠지만 내 스피드를 줄일 수가 없었다. 파이팅만 보내고 내달렸다. 이제 500미터도 남지 않았다. 달리는 내내 우울증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만은 오로지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希洙형님이 하프를 달린 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카톡 문자를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았다. 죄송하다고 전화드린 후 다음 주 우리 동네에서 뵙자고 하였다. 다음 주 도봉구청장배 마라톤을 신청하셨으니......

 

 오후 내내....... 생각...... 대회를 마친 후 누구에게도 풀코스 기록을 경신했다고 자랑하지 않았다. 
 하프 생애 최고 기록과 함께 풀코스 최고 기록도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갖게 되다니..... 풀코스 기록만은 메이저 대회에서 세우는 게 나으니 내년 조중동 가운데에서 3시간 32분 기록을 깨뜨려야 겠다는 생각,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기록을 깨뜨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기록을 경신해서 즐겁기 보다는 부담스럽다는 느낌. 이건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그래도 메이저 대회가 아닌 대회에서 오늘과 같은 경우가 발생해도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 보다는 빨리 달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오전 7시 25분. 출발 전까지는 1시간 이상 남아 있다. 풀코스는 10킬로미터 종목보다 늦게 출발하니 평소보다 여유가 생겼다.

2015년에는 9시 출발이었고, 그 이전에는 8시 출발이었다. 올해는 8시 반 출발이 되었다.

 

 

 

 

 

 

 

 

 

 

 

 

 

 

 

 

 

 

 

 

 

 

2012년, 2014년, 2015년, 2016년 이 대회에서 풀코스를 달렸다. 2013년에는 고창고인돌마라톤에 참가했다.

2010년, 2011년에는 하프에 참가하였다. 모두 1시간 30분대 기록.

2009년에는 하프를 신청하고 참가하지 못했다. 당일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다들 고생했다고 했다.

그 이전에도 몇 차례 손기정 대회에 참가했는데 10킬로미터 종목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10여년간 11월 세째 주에는 거의 다 손기정 대회에 참가했다는 뜻.......

 

 

 

 

 

생애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