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2016/09/18)-FULL

HoonzK 2016. 9. 18. 20:48

 추석 특선영화를 끝까지 보고 자정을 넘긴 후 책도 들추고 리모콘과 스마트폰도 만지작거리면서 마라톤 대회 전 필수적인 수면, 즉 휴식 시간을 자꾸만 줄이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 내 몸은 지독히 고단했다. 대회장까지 가는 동안 아주 잠깐만이라도 잤으면 좋겠지만 단 5분도 자지 못하였다. 잠시라도 자면 개운해질 것같은데.

 

 오전 6시 대회장 도착. 오늘 과연 마라톤을 해도 되는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거나 도림천변 벤치에 누워 자다가 달림이들 응원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여유가 되면 달리기 복장으로 갖추어 입고 잠시 달리면 되는 것이고...... 허기도 져서 그저 힘들기만 한데......

 

 출발 장소에는 매우 많은 참가자들이 모였다. 출발 지점이 북적대는 것은 공원사랑 마라톤에서 자주 없는 일인데...... 출발 직전에 로운리맨님을 만나 인사했다. 300회, 200회 완주하는 달림이가 계셔서 축하하는 인사말이 출발 지점을 가득 채웠다.

 

 훈련 계획에 따르면 오늘 38킬로미터 LSD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 홀로 38킬로미터를 달리라고? 그냥 마라톤 대회장에 와서 천천히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였다. 추석 연휴 5연풀을 마무리하는 분들을 응원하는 것도 의미있어 보였다. 지독히 고단하고 몸이 굼뜬데다 날씨까지 더우니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풀코스를 완주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전날 3시간 40분대로 달렸다는 영희님, 5연풀을 달리는 바깥술님을 따라 달렸다. 2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12분이 넘었다. 이래서야 되겠나? 하지만 6분 페이스로 완주하는 훈련도 괜찮겠지. 4시간 15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셈이니. 5킬로미터는 29분 30초가 넘어가는데 그 다음 5킬로미터는 그보다 더 늦게 달려 10킬로미터 지점을 출발한 지 1시간만에 통과했다. 건너편에서 상위권으로 달려서 돌아오는 로운리맨님에게는 응원을 보내며 오늘은 아주 천천히 가게 생겼다고 말했다. 영희님과 바깥술님을 놓치다 보니 100미터, 200미터 이상 거리가 벌어졌다.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10킬로미터를 지나서는 화장실까지 다녀와야 했으니......


 도림천 직선 구간에 들어서면 영희님과 바깥술님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15킬로미터 지점에서 보니 4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극복하기 힘든 거리. 지난번 무리해서 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일도 기억하면서 조심, 또 조심하였다. 오늘은 스피드를 올리는 날이 아니라 천천히 달리며 훈련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뙤약볕 구간에 들어서면서 2회전을 위해 달려오시는 로운리맨님을 보았다. 오늘 페이스가 매우 좋아 보였다. 응원, 또 응원. 나는 20킬로미터 지점에서 이미 2시간을 넘겨 버렸으니 어쩌겠는가? 1회전하고 나서 그만 달리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돼. 끝까지 가야 해.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쵸코파이와 콜라, 생수 섭취. 2시간 7분 소요. 2회전 하프를 1시간 53분으로 달리면 SUB-4가 되긴 하지만 가당키나 하겠는가? 첫 하프를 1시간 57분 쯤 달렸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2회전인데다 아는 사람이 많아 오늘처럼 인사를 많이 하고 파이팅을 자주 외친 대회는 없을 것이다. 풀코스에 틈틈이 나가면서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용구님, 준한님, Wan-sik님, 특전사님, 한구님......

 

 매우 다행스럽게도 2회전 때의 페이스가 한결 좋아졌다. 졸려서 힘들다는 생각은 사라졌고, 몸이 굼뜨다는 느낌도 달아났다. 24킬로미터 지점에서 영희님과 바깥술님을 제쳤다. 그 이후부터는 추월당하지는 않고 꾸준히 제쳤다. 누가 등을 떠밀어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2회전 하프만은 SUB-4 페이스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에 엄청 지쳐 버리면 안된다고 내 자신에게 미리 경고했다. 무한질주할 것같은 태도를 지양했다. 결국 마라톤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에.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3시간 12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남은 10킬로미터를 48분에 달리면 SUB-4가 가능하겠구나. 하지만 당일 여건과 페이스라는 게 있다. 1차 하프보다 2차 하프를 14분 빨리 달린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차분하게 스피드를 제어하고 있었지만 주자들을 자꾸만 제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22킬로미터 지점부터는 단 한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골인했다. 2킬로미터 쯤 남았을 때 만약 내가 제친 사람이 나를 재추월하려 한다면 전력질주해 버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 페이스를 크게 끌어올리지 않고 골인하였다.

 

 04:05:50

 

 지난 주 골인한 후 너무 힘들어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잘 움직였다. 다리 저린 데도 없고, 졸리지도 않았다. 아마 악착같이 SUB-4를 하려고 했다면 지옥을 맛보았으리라.

 

 첫 하프보다 두번째 하프를 9분 빨리 달린 데 만족하였다. 로운리맨님은 공원사랑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하시며, 나도 SUB-4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만족한다. 어차피 LSD 훈련하러 나온 것일 뿐 기록에 도전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물론, LSD 훈련을 하고 덤으로 SUB-4로 골인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내 생애 9월 풀코스에 오늘까지 여덟 차례 도전했다. 거기서 50%만 SUB-4 완주했다. 9월 공원사랑 마라톤 풀코스에서 SUB-4에 실패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니 오늘 기록이 공원사랑 마라톤 최악의 기록인 셈이다.

 

 300회 완주하시는 분이 회식을 연다는 말을 들었지만 기다릴만한 여력이 없어 로운리맨님과 함께 순대국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지난 7월 3일 풀코스 달리고 들렀던 그 곳에서......

 

 

완주한 후 옷을 갈아입고......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