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마라톤 달릴 때보다 날씨가 선선하고 비까지 내리는데다, 더 스피드를 올려서 달리고 있는데 구간 기록은 왜 더 나쁘게 나올까? 5분 30초쯤 걸릴 줄 알았던 1킬로미터 지점을 6분 10초에 통과했다. 바로 앞에 있던 4시간 페이스메이커는 1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나자마자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속도를 올렸다. 2킬로미터를 가기도 전에 100여 미터 차이를 내어놓았다. 2킬로미터 11분 20초, 3킬로미터 17분..... 이런 식으로 달려야 SUB-4가 가능하다고 동반주를 하게 된 정명진님에게 알려드렸지만 1분 이상씩 떨어지니 난감했다. 모처럼 날씨가 도와주는데 내 페이스는 따라가지 못한다. 좀더 스피드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5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29분 30초였다. 그래도 28분대 후반이라도 되어야 할텐데........ 6킬로미터 전후에서 오르막을 만났는데 돌아오는 36킬로미터 전후의 지점이 지옥의 오르막이 될테니 미리 조심하자고 했다. 10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는데 급수대에 스포츠겔이 있었다. 오늘 스포츠겔은 세 번이나 먹는다. 이런 대회는 2013년 군산새만금 마라톤 대회 이후 처음이다. 10킬로미터 지점을 57분 초반대로 통과했으니 초반의 페이스보다는 좋아졌다. 꾸준히 주변의 달림이들을 제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SUB-4는 힘들어 보였다. 초반에 늦추어 달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피드를 올리고 있으니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다는 우려감마저 들었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쯤 가볍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줄곧 하였다. 언제든지 먼저 치고 나가셔도 됩니다라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정명진님은 줄곧 내 옆에서 달렸다. 하프 이후가 걱정이라는 말을 하면서.....
금강을 좌측에 끼고 돌면서 낙석 깨지는 소리도 들었다. 가랑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무리 발걸음을 빨리 하여도 4시간 페이스메이커의 풍선은 200미터 이상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8월에 SUB-4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서 SUB-4에 집착하다니...... 나는 지속적으로 거리 표식을 의심하였다.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 15킬로미터 표지판과 27킬로미터 표지판이 겹쳐 있다는 사실. 15.2킬로미터로 표기한다면 27킬로미터 간판이 바로 옆에 있어도 된다. 우리가 달린 15킬로미터는 15.2킬로미터일 것이다. 그렇다면 SUB-4는 무난하리라.
내겐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4시간 페메를 따라잡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달려 25킬로미터 지점에서는 반드시 따라잡는다. 그리고 나선 37킬로미터 지점이 나오기까지 함께 달린다. 35킬로미터 지점부터 치고 나가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 코스가 바뀐 영동포도마라톤은 35킬로미터와 37킬로미터 사이에 심한 오르막이 있으니 잠시 스퍼트를 유예한다. 37킬로미터 지점부터는 페이스메이커를 떨구고 인정사정없이 치고 나간다. 그런데 이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 보지만 30킬로미터를 넘게 달려도, 또 35킬로미터를 넘게 달려도 4시간 페메는 항상 앞에 있었다. 31킬로미터 지점에서는 소변도 봐야 했으니 거리가 더 멀어졌다.
18킬로미터 표지판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선두주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몇 킬로미터 전진하니 3:30 페메, 그리고 3:40 페메가 오고 있었다. 그 바로 뒤에 로운리맨님이 역주하고 계셨다. 파이팅을 외치고 더 나아가 20킬로미터 지점에서 바나나를 집어들었다. 달리면서 먹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보였다. 제법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이들은 58분 40초 정도에 반환한 것이었다. 초반에 빨리 달려 놓자는 계산이었을까. 기를 쓰고 달렸지만 정명진님과 나는 2시간 20초를 넘긴 후에야 반환했다. 후반에 질주하면 충분히 SUB-4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감을 간직하고서.
동네 주민들이 나와서 박수를 쳐주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함께 달리던 정명진님이 22킬로미터 지점부터는 더 이상 내 옆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내 뒤에서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소변을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예 근심거리를 없애자는 계산하에 31킬로미터 지점에서 소변을 보았다. 정명진님이 지나갔다. 바로 따라가 합류했다.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 있는 급수대부터는 정명진님이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전력질주했다. 이유는 스프레이 냄새 때문이었다.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달리는 주자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담배 냄새를 피하듯이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린 것이었다. 덕분에 4시간 페메와의 거리가 50미터 이내로 줄었다. 그리고는 숨돌리고......
35킬로미터 중반 지점부터 36킬로미터를 넘어가는 지점까지 꾸준한 오르막이 있었다. 2011년에도, 2014년에도 경험한 오르막이었지만 내 기억보다 훨씬 길었다. 멀리 보지 않고 발 앞쪽만 내려다 보면서 꾸준히 달렸다. 4시간 페메 두 명과 정말 가까워졌다. 마침내 오르막이 끝났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4시간 페메는 내리막을 만나면서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 버렸다. 오르막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내리막에서 벌충하려나 보다. 38킬로미터를 통과하면서 설레임이 있었다. 8월 최고 기록을 경신할 뿐만 아니라 SUB-4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까불면 안 돼. 아직 4시간 페메를 못 잡았다고. 39.2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이제는 속도를 늦추어 편안하게 6분 페이스로 달려도 SUB-4가 가능해졌다. 진짜 SUB-4가 가능해졌다. 이번에야말로 분명히 SUB-4를 할 수 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로운리맨님이 생각이 났다. 지금쯤 골인해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겠지. 남은 3킬로미터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4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동반주를 하게 되었다. 권오준 페메와는 대화를 나누면서 41킬로미터 지점까지 달렸다. 남은 거리를 4분 후반대로 달렸다. 골인 지점이 보이면서 직선 주로가 시작되니 몹시 지겨웠지만 응원해 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면서 발걸음을 빨리 하였다. 지난 해 마지막 1킬로미터의 오르막이 없어진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3:57:12
8월의 SUB-4 달성. 올해 초 세웠던 목표 하나를 이루었다.
그리고 8월에 풀코스를 네 번이나 달렸다. 중순에 경주에 체류했던 기간 때문에 8월의 풀코스는 초순과 하순에만 달릴 수 있었는데 그걸 해 내었다.
8월 3일(수) 4시간 20분 35초
8월 7일(일) 4시간 16분 09초
8월 24일(수) 4시간 14분 09초
8월 28일(일) 3시간 57분 12초
8월에는 풀코스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뒤집는 역발상. 다소 미친 계획이었는데 그걸 다 해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 거리가 43킬로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1킬로미터를 더 달리고도 SUB-4를 하다니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골인한 후 생수 한 통을 더 얻어서 정명진님이 들어오길 기다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4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청년부 10위를 차지한 선수가 골인했다. 아! 정명진님이 끝까지 나와 동반주를 했다면 청년부 입상을 할 수도 있었겠구나. 추워졌다. 이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짐 찾는다고 5분 이상을 허비했다.
국수 2인분을 먹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새벽에 챙긴 콜라를 마시기까지 했다.
셔틀버스로 돌아와 오후 1시 30분 출발을 기다렸다. 새벽부터 참 바빴는데.
전날 10시가 넘어 눈을 감고 있었다.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잔 것같기는 하다. 꿈은 꾸었으니까. 새벽 1시에 알람으로 일어나려고 했으나 자정이 되기 전에 잠을 깨고 말았다. 1시 30분에 간단하게 요기하고 2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여자 지갑을 주웠다. 올해 스물이 된 아가씨의 지갑. 수유재래시장 버스정류장에서 차 시간을 확인하니 N15 심야버스는 25분 뒤에 온다고 했다. PC방에 잠깐 들렀다가 나왔다. 운좋게 앉았다. 눈을 감고만 있었다. 3시 10분 경 종로2가 도착. 광화문역까지 걸었다. 파출소에 들러 주인을 찾아 달라며 지갑을 내어놓았다.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 전화번호까지 적는데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냥 우체통이나 파출소 앞에 놓아둘 걸.
3시 40분 출발한 셔틀버스는 20분만에 잠실종합운동장역에 도착했다. 광화문마라톤클럽의 안수길님과 재회했다. 감았던 눈을 뜨니 로운리맨님이 내 앞에 앉아 계셨다. 45인승이 아니라 40인승 버스라 편했다. 만석이 아니라 여유도 있었고. (하지만 셔틀버스비가 2년 전에 비해 220% 오른 것은 좀 그랬다.) 뒷좌석은 안수길님과 내가 다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안수길님은 오늘 하프 2시간 15분 페메를 맡았다고 하셨다.
잠실에서 다시 출발하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이 때 화장실에라도 들러야 했는데..... 이후 소변을 참는다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중간에 휴게소라도 들를 줄 알았는데 이 차는 잠실에서 바로 영동으로 직행했다. 덕분에 수면을 방해받지 않고 잠잘 수 있었지만 소변은 몹시 마려웠다. 집결지에 도착할 무렵 바깥이 어둡고 축축해 보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도와주는가?
영동산업과학고등학교 앞에 내리자마자 한 일은 화장실을 찾는 일이었다. 스트레칭하고 물품보관부터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기다렸다. 출발선에서 아는 체 하는 분이 있었다. 정명진님이었다. 이 분과 보조를 맞추게 되었다. 울산태화강 울트라마라톤 기념 티셔츠를 입고 계셨다. 허수아비님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나도 이 기념 티셔츠를 챙기게 되었을 것이다.
완주 후 고마우신 분으로부터 포도를 덤으로 선물받았다. 비타민 드링크도 받았다. (이 글 읽으시는 분은 아시겠지요. Thank you so much.) 하프 완주를 마치시고 포도축제에 다녀오신 안수길님은 내게 와인 한 잔을 건네주셨다.
버스는 잘 달려 나갔다.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충주 휴게소 도착.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이후부터는 안수길님과 책에 대한 대화를 쭈욱 이어나갔다. Ayn Rand, 김연수, 조두진 작가의 책까지 소개해주시는 로운리맨님까지 대화에 참가....... 서울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양말에 손에 잔뜩 들린 짐. 불편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8월에 SUB-4를 하다니...... (84번째 SUB-4, 117번째 풀코스 완주)
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회를 열다니......
그래도 SUB-4를 했으니 넘어간다.
4년 전 하프를 24.195킬로미터 달리게 했던 대회보다는 낫다.
코스 거리 표지가 이상하다. 5킬로미터 지점이 37킬로미터 지점과 맞물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프 2시간 15분 페메에 '안수길'님이 계시네.
풀 4시간 페메에는 나와 대화한 '권오준'님이 계시고.....
아래는 로운리맨님이 소개한 작가 및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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