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6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2016/10/02)-FULL 121

HoonzK 2016. 10. 4. 13:26

 10월 초이지만 여전히 더운 날씨, 고층 건물 지대를 감아도는 단조롭고 지겨운 코스. SUB-4 페이스로 달리다 늘 4시간을 살짝 넘기고 마는 대회.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 나는 늘 그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 예보가 있었다. 그것도 폭우 예보가 있어서 SUB-4를 자신했다. 더운 것보다는 비를 맞는 게 나으니까. 폭우 예보라고 해도 2012년 11월 11일 같기야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4시간 가까이 장대비를 맞았던 스포츠서울마라톤. 수압이 강한 샤워기가 내 머리 위에 내내 달려 있는 것같은 느낌의 대회.


希洙 형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낼 비온다고 하니 준비 잘하세요 쉴라고 했는데 일단 참석은 할 생각....
 -네. 우중주 중에도 폭우중주가 되겠네요. 아직 상태가 좋지 않으신가 봐요.
 -일단 현장에서 결정해야죠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계양역까지 간 다음,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쭈욱 내려갔다.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26개의 정거장을 이동해야 하니 거의 1시간을 달렸다. 눈을 감고 있다가 뜰 때마다 대회 참가자들 수가 늘어났다. 아직 피곤한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인천대입구역. 우루루 내리고 있었다. 대회장까지 걸어가니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출발하기 전까지 1시간도 남지 않다니.

 

 짐부터 서둘러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센트럴파크역 방향으로 가니 화장실이 한산하였다. 스트레칭을 마친 후 인산인해가 되어버린 대회장으로 갔다. 希洙 형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휘문 72의 이한구님을 만나서 함께 동반주를 하게 되었다. 시계를 차고 나오지 않아 시간 체크를 해 드리기로 했다. 지난번 안산희망마라톤에서 무심코 4시간 페이스메이커만 믿고 따라갔다가 4시간 10여초로 골인하는 바람에 SUB-4를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엘리트 하프코스가 출발한 뒤 3분 여 지나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동시 출발하였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의 분홍색 풍선은 멀찌감치 달아나는데 우리는 인파에 밀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걸었고 출발점을 지난 후에야 종종걸음 모양새로 뛸 수 있었다. 빗방울은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산 쓰기 애매할 정도의 비였다. 이건 뭐 이슬비라고 하기도 어려운 비였다. 달리기 딱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는 비라고 할까? 그래서 그럴까? 주변의 달림이들 몸놀림이 매우 빨랐다.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일단 제치는데 거기에 希洙형님이 있었다.  눈에 띠게 다리를 절고 계셨다. 저래서야 어떻게 풀코스를 달린단 말인가? 일단 달려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아마 도중 포기할 듯이 보였다. 형님은 지난 해 11월 풀코스를 달리고 11개월만에 처음이니 그 부담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었다.


 첫 1킬로미터가 5분이 걸리지 않았으니 SUB-4에 대한 부담이 확 줄었다. 그저 달릴 뿐인데 킬로미터마다 SUB-4 기준에서 1분씩 여유가 남으니 한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리기를 즐겼다. 말을 많이 해도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어 달린 거리가 늘어날수록 힘들어진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래도 할 이야기는 해야 했다. 7.5킬로미터를 넘으면 1차 반환해서 오는 앞선 주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서 안면있는 주자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은기님, 특전사님, 태현님, 영희님, 바깥술님...... 바깥술님에게는 농담삼아 속도를 늦추면 따라갈 수 있다고 외치기까지 했다. 여유만만이었다. 지난 주 대청호마라톤대회 오르막 구간에서 너무 고생한 탓일까? 평탄한 코스가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1차 반환점을 돌아나와 10킬로미터 지점을 향하는데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4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가 순차적으로 나타났다. 4시간 15분 페메 뒤로 希洙형님이 계셨다. 4시간 30분 페메와 함께 달리다 속도를 올리신 것이었다.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쳤다. 이제는 오른편으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지루한 코스가 이어졌다. 왼편에 하프코스 엘리트주자들이 질주를 하고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도 나오지만 엘리트 주자들은 드문드문 나타날 뿐이고, 골프클럽은 둔덕으로 가려져 있어서 경치 보기는 글러서 단조로움을 극복하기가 용이치 않았다. 그저 한구님과 대화하면서 지겨움을 달랠 뿐이었다.

 

 -이한구님, 이름이 다 숫자네요. 219.
 -그래서 제 전화번호가 *219지요.  앞 번호는 219가 아니지만.
 -앞 번호도 219였으면 좋았을텐요.
 -219로 하고 싶었는데 번호를 누가 선점해서 못했지요.

 

 하프 주자들이 우선 반환하고 난 뒤 빗줄기가 굵어졌다. 한구님은 내내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썼다. 비닐도 들고 계신 것같은데 아직 저체온증을 걱정할 정도의 비는 아니니 사용하지 않으셨다. 무릎에 붙이고 있던 테이프는 비 때문인지 달리기 직전 바른 젤때문인지 덜렁거리기 시작하여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뜯어 내었다. 전날 무릎을 부딪치는 바람에 통증이 있어서 붙인 것인데 완주하는데 문제가 없을까? (다행히 완주할 때까지 무릎은 말짱했다.)

 

 연세대학교를 앞에 두고 좌회전했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는 그냥 직진하고 있었다. 뱀이 또아리를 틀 듯이 빙빙 돌아 거리를 채우는 코스였는데 더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단 한번의 오르막도 없는 코스인데 오르막이 나왔다. 송도4교를 지나갔다 오다 보니 두 차례의 오르막을 피할 수 없었다. 갈 때 한번 올 때 한번. 20킬로미터 지점. 1시간 50분에 지났다. 2차 반환하고 나면 하프를 달린 셈이 되는데 얼추 계산해 보니 1시간 56분대 초반이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3시간 52분대 골인이 예상되었다.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다음날 하프에 출전하니 오늘은 쉬엄쉬엄 뛰기로 하지 않았던가? 인천송도국제마라톤의 SUB-4 숙원만 풀면 되는 것 아닌가?

 

 건너편에서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오는데 제법 떨어져 있었다. 비가 앞쪽에서 들이치니 아주 성가셨다. 4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와 동반주를 하는 希洙형님이 다리 절림을 극복하고 역주하고 계셨다. 대단합니다. 손을 흔들며 지나쳤다. 아프지만 않으시면 나와 동반주를 하고도 남을 분인데......

 

 내가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허기짐과 소변이었다. 도대체 언제쯤 간식을 먹을 수 있는걸까? 20킬로미터 지점에는 간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생수만 있었다. 연세대학교를 만나 우회전. 25킬로미터 가기 전에 급수대에서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집어들어 먹었다. 이제 허기는 면했다. 에너지 충전 완료. 화장실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간식을 먹고 난 후 내 옆에 아무도 없었다. 함께 달리던 한구님이 속도를 조금 늦추신 것이었다. 이제는 나 홀로 달려야 했다. 보조를 맞출만한 사람도 없었다. 화장실, 화장실. 화장실 생각만 하고 달리는데 구간이 노출되어 있고 조경수로 막혀 있어 뛰어나갈 수가 없었다. 27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때 건너편에서 오던 바깥술님이 보였다. 건너편에 소변볼만한 자리가 있었다. 28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반환했다. 구불구불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코스가 개선되어 개운한 느낌이 있었다. 동심원 코스가 없어진 것이 이렇게 편안할 수가......

 

 반환해서 돌아오면서 근심을 풀었다. 그리고 4시간 15분 페메와 여전히 함께 달리는 希洙형님을 만났다. 훌륭합니다. 내 응원에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응답이 있었다. 안됩니다. 끝까지 달리셔야 해요. 그리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굵어졌다 가늘어졌다하는 비를 맞으며 30킬로미터를 넘었다. 2시간 45분 경과. SUB-4가 이렇게 여유 있을 수가? 3시간 40분대로 들어가볼까? 에이, 그건 아니다. 욕심을 부리면 다친다. 요즘 오금도 당기어 지난 봄 고생했던 일이 떠오르는데. 그냥 가자.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점점 굵어졌다. 비를 마중나가는 느낌이라 얼굴을 때리면 매우 아팠다. 200회 완주하시는 분과 동반주하는 바깥술님이 32.5킬로미터 지점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급수대의 물은 생수반 빗물반이 되었다. 찝찝하다고 마시지 않을 수는 없으니 꾸준히 마셨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33킬로미터부터 36킬로미터까지의 구간에서 태현님, 영희님을 차례로 제쳤다. 3년 전 너무나 힘들어 넋이 나간 채 달리고 있던 그 구간에서, 지난 해 아예 천천히 달려 어려움을 피해갔던 그 구간에서 역주하고 있었다. 앞의 주자들은 조금이라도 물을 피하려고 인도쪽으로 올라가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웅덩이 속을 철퍽거리며 달렸다. 37.1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왔다. 5.1킬로미터가 남았다. 30킬로미터 이후 보지 않았던 시계를 보았다. 3시간 23분 경과. 6분 페이스로 달려도 3시간 53분대에 골인한다. 이왕이면 3시간 49분대로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5킬로미터를 26분 30초 정도로 달리면 되겠네. 아니구나. 5킬로미터에 100미터가 더 있으니 조금 부담은 되겠다. 그래도 해 보자. 이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후반에 질주하면 3시간 49분 59초는 가능하겠지. 빗줄기가 좀 잦아들고 있으니 도움이 되리라. 39킬로미터쯤 지났나? 뒤에서 아주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추월을 시도하는 소리였다. 상암마라톤클럽 권ㄱㅇ님. 스피드가 매우 좋았다. 어떻게 저렇게 달릴 수 있지? 후반에는 그저 외롭게 달리고 있었는데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생겼다. 그를 따라갔다. 덕분에 스피드가 붙었다. 마지막 5.1킬로미터를 24분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3:47:20.35

 

 형광색 타사재팬을 신고 달린 것으로는 최고 기록이었다. 280밀리 마라톤화를 신지만 타사재팬만은 275밀리인데 그게 좀 작은 모양이었다. 양쪽 엄지발가락이 신발에 바로 닿아서 그런지 피멍이 들었다. 두꺼운 양말을 신다 보니 신발의 여유 공간이 더 없었나 보다. 달리는 동안에는 타사 재팬 한 켤레를 더 사야지 했는데 마음이 다시 바뀌었다. 앞으로 얇은 양말을 한번 더 신고 달려본 후 결정하기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希洙형님을 마중 나갔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들어오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한걸음 두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600미터 지점까지 나아갔다. 우산을 받치고 기다리다가 건물쪽으로 이동하여 비를 피했다. 눈길은 주로쪽으로 계속 주면서. 4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고 계셨으니 곧 오시겠지. 그러나 계시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바둑 사활 문제를 풀면서 기다렸다.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도 들어오는데도 계시지 않았다. 부상으로 포기하신걸까? 5시간이 넘어서 들어오더라도 기다려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데 몇 분 후 형님이 보였다. 주로 가까이 뛰어가 파이팅을 외쳤다. 정말 장하십니다. 몇 백 미터 남지 않았는데 형님은 잠시 걸으셨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 27킬로미터 이후부터 쥐가 나서 아주 힘들었다고 하였다. 워크 브레이크를 반복했다고 하셨다. 용왕산 멤버들은 다들 뛰고 가 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실 때까지 좀더 기다려 함께 전철을 탔다.

 

 121번째 풀코스, 87번째 SUB-4. 4주 연속 풀코스 완주. 59개월 연속 풀코스 완주.

 

 

 

 

 

 

 

 

 

 

 

 

 

 

 

 

 

 

 

 

 

 

폭우 속에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와 함께 초반 동반주를 하셨던 이한구님......

 

 

希洙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