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In Seoul 마라톤 대회와 겹친 대회. 주최측의 실수로 참가 신청이 완료되어 택배까지 받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대회 6일 전 전화가 왔다. 입금도 안 한 사람을 실수로 입금 처리해서 택배 발송까지 하게 되었다고. 나와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택배를 받지 못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겠느냐고 하소연하였다. 간단하게 해결하였다. 어차피 배번이든 칩이든 내 정보로 되어 있으니 그냥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참가비를 보냈다. 나와 이름이 비슷하여 불이익을 받은 사람에게는 별도의 배번과 기념품을 발송하였다고 하였다.
Run In Seoul 마라톤 풀코스가 하프 코스 2회전으로 바뀌는 일도 있고 너무 익숙한 코스라 새로운 코스를 달리고 싶어 청주행은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저 일요일 새벽 잠을 설치게 되어 어쩌지 하는 걱정, 3주 연속 풀코스를 달리고 있어서 피로감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걱정, 셔틀버스 안에서 얼마나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지난 월요일 누군가와 무릎을 세게 부딪쳐 통증이 일주일 내내 이어져서 달리다 기권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하는 걱정. 그런 걱정을 하느라 코스의 난이도는 따져보지도 않았다. 난이도 걱정할 시간에 혹시 일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참가권이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만 키우고 있었다.
대회 당일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났다. 전날 밤 11시 30분에 자고. 새벽 3시가 되기 전에 1킬로미터 남짓 걸어가 심야버스를 탔다.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종로에 도착하여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불고기 도시락이라 속이 묵직해졌다. 전날 저녁 한식 부페에 가서 제육볶음을 실컷 먹기도 했으니 단백질 섭취가 과했다. 새벽 5시 시청역을 출발한 버스는 잠실종합운동장에 들렀다가 쉬지 않고 달렸다. 나는 맨 뒷 좌석에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다리가 몹시 불편했고 토막잠을 거듭해야 했지만 잤다는 느낌은 분명히 들었다. 지난 주에는 너무 고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달리는 동안 수면욕에 시달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체육공원에 도착한 것이 7시 10분경. 풀코스 출발은 8시 40분이었지만 너무 여유를 부리다 화장실 이용에 문제가 생겼다. 장사진을 이룬 줄을 보니 출발 전에 볼 일 보기는 글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법 떨어진 주차장쪽으로 갔다. 분명히 화장실이 있으리라 믿고. 브라보. 야외 화장실이 있었다. 옛 시골이 떠오르는 화장실이었지만 근심은 확실히 풀었다. 짐을 맡기기 전에 충분히 화장지를 확보해 놓은 게 다행이었다.
첫 1킬로미터를 6분 10초에 통과했다.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이라 가벼운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 당연한 속도였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와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사이에 있었다. 제비한스님이 치고 나가기에 살짝 따라가며 말을 붙였다. 뛰어본 적이 있으나 코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워낙 많은 대회를 달리시니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슬슬 속도를 올리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앞으로 가셨다. 대전과 청주 쪽 마라톤클럽은 모두 모인 듯 각자의 유니폼을 뽐내며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고 있었다. 청주광마라톤클럽, 무심천마라톤클럽, 우암산마라톤클럽, 대전천마라톤클럽, 대전주주클럽, 청주느림보. 다른 지역도 적지 않았다. 구리마라톤클럽, 분당검푸, 의왕마라톤클럽, 안동제비원마라톤클럽, 수지마라톤클럽....... 이들 유니폼을 감상하는 것도 달리기의 단조로움을 잊을 수 있게 하는 요소였다.
2.5킬로미터 지점을 15분에 통과했다. 기억 속에서 원래 오늘이 42킬로미터 LSD 훈련임을 소환해 내었다. 혼자서 42킬로미터 훈련을 하기 힘드니 그냥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천천히 달리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니 꼭 SUB-4 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도 지난 주처럼 훈련을 하면 되는 것이다. 심심치 않게 오르막이 나왔다. 5킬로미터를 29분에 통과했다. 오르막이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선전했다. 7킬로미터 부근에서 아주 긴 오르막이 나왔다. 초반이라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다들 굼뜨게 움직였다. 오르막을 넘자 이번에는 내리막이 길게 이어졌다. 별로 반가운 일은 아니다. 1차 반환한 다음에 이 코스를 다시 밟아와야 할테니 그때는 내리막이 오르막이 된다. 어쨌거나 내리막에서 미친듯이 달려 보았다. 오르막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하여. 내게서 추월당한 주자가 동료에게 말했다. 하프 선두 주자 가는 모양이네. 나 하프 아닌데......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대청호를 따라 이어지는데 참으로 멋진 풍광이었다. 멋지지만 코스는 수시로 오르막을 내밀며 스피드에 제동을 걸었다. 몸이 풀린다고 해봐야 도무지 만회할 수 없는 난코스에서 나는 달리고 있었다. 가면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코스였다. 10킬로미터를 58분에 통과했으니 SUB-4 페이스에서 1분 20초가 넘어갔다. 1분 20초 정도야 후반에 만회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내리막이 많았던 만큼 돌아올 때의 오르막을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부담을 버리자. SUB-4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난코스에서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자. 헬스지노님이나 영희님은 이런 코스에서 참 잘도 달렸다. 제비한스님도 나와 수백 미터 차이를 내고 앞으로 나가 있었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지나가고 4시간 페이스메이커도 지나갔다. 손모철님처럼 아예 5시간 페이스메이커와 달리면 어땠을까?
청남대는 멋진 곳이었다. 대통령 별장이라고 할만 했다. 힘든 순간마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였다. 미리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는 관광지를 마라톤을 달린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큰 헤택 아닌가? 청남대 입구를 지나 본관 앞까지 갔다가 반환하여 돌아나왔다. 반송이 아름답게 주로를 감싸고 있었다. 이런, 돌아가는 길이 바로 오르막이었다. 누구는 오르막을 달리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평지다, 평지다. 그렇게 마인드컨트롤하여 힘들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오르막에 강하다, 강하다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르막만 나오면 앞에서 달리던 친구들과의 격차를 현저하게 줄였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하프 반환점으로 돌아오니 2시간을 넘겨 달리는 하프 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그들과 보조를 맞추기는 힘들었다. 하프를 달리는 고등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들은 걷다 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파도치듯 오르락내리락하는 코스를 따라 달리다 19킬로미터를 전후하여 기어이 길고 긴 오르막을 만났다. 힘차게 내달렸던 내리막이 기진맥진 용을 쓰고 달려도 이겨내기 힘든 오르막으로 바뀐 것이다. 그 오르막을 넘고 나니 20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왔다. 1시간 58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21킬로미터가 아닌 20킬로미터 기록이 1시간 58분이라니. 하프를 2시간 7분 정도에 지난 것같았다. 지난 주 평탄한 코스를 달릴 때 2시간 7분이었는데 이번에 난코스를 달리고도 2시간 7분 정도라면 오늘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그래봤자 SUB-4를 못한다는 것은 똑같은데...... 오른발 끈을 느슨하게 묶었는지 겉도는 느낌도 사람을 괴롭히는데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묶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다시 묶으면 이번에는 너무 세게 묶어서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하프 주자를 보내고 풀코스 주자들은 우회전했다. 노현삼거리부터는 풀코스 주자만 남은 것이었다. 시골길을 달려 풀코스를 채우는 것인데 남은 20여 킬로미터는 평탄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내 기대감은 곧바로 무너졌다. 첫 하프 때처럼 자주, 그리고 심하게 오르막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르막이 분명히 있었다. 후반에 나를 옥죄고도 남을 오르막. 다만 초반에 큰 오르막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오르막이 나와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 고마운 일도 있었다. 해가 구름에 가렸다. 덕분에 기온이 높이 오르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여성부 5위로 되돌아오는 달해아름다워님. 인사를 해도 달리기에만 집중하니 내게 반응하지 않는다. 헬스지노님과 류성룡님은 가볍게 인사를 해 왔다. 제비한스님과 영희님에게는 오늘 정말 달린다며 응원을 보내드렸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파워젤을 얻었다. 30킬로미터 지점에서 먹었다. 생수, 포카리스웨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셨고, 바나나와 쵸코파이도 부지런히 먹었다. 30.8킬로미터 지점에서 2차 반환했다. 30킬로미터에서 8백 미터를 더 갔을 뿐인데 너무 멀게 느껴졌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이렇게 떨어졌던가? 30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2시간 53분이었으니 SUB-4는 불가능해졌다.. 4시간 페메와는 700미터 쯤 떨어져 있었다. 특별히 처지는 것도 없고 특별히 빨라지는 것도 없이 달렸다. 어차피 오늘은 LSD니까. 2.5킬로미터마다 표지판이 나오니 페이스 조절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32.5킬로미터 3시간 10분 경과. 남은 9.7킬로미터를 49분에 달리면 SUB-4가 가능했다. 얼추 10킬로미터를 50분 페이스로 이어간다면 SUB-4가 가능하다는 뜻. 32킬로미터 지점을 3시간 4분 정도만 통과해도 악착같이 달려 SUB-4 가능하더라는 바깥술님의 말이 기억났지만 나는 그보다 꽤 늦었다. SUB-4 도전에 대한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초반 10킬로미터를 58분으로 달린 사람이 후반 10킬로미터를 50분으로 달린다고? 33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1분을 잃는다. 그냥 노상방뇨를 했다면 30초만 잃었을텐데. 결국 남은 9킬로미터를 45분 이내로 달리지 않으면 SUB-4는 요원해졌다. 5분 50초에서 6분 사이로 페이스를 유지하던 사람이 4분 50초에서 5분 사이로 페이스를 당겨야 했다. 오르막을 몇 차례 감당하다 35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3시간 24분을 넘기고 있었다. 35킬로미터를 3시간 18분에는 지나야 SUB-4가 가능한 법인데 부담이 커진다. 앞으로 35분대로 7.195킬로미터를 달려내어야 한다. 5분 페이스로도 SUB-4를 못한다. 나는 35킬로미터 지점에서 승부를 걸었다. 지난 주 풀코스를 달린 후 감당했던 훈련을 생각했다.
월요일: 10킬로미터 러닝
화요일: 13킬로미터 러닝(200미터 빠르게 달리기 20회, 중간 200미터 회복 조깅 포함)
수요일: 10킬로미터 러닝
목요일: 15킬로미터 러닝(중간 속도로 3분 달리기 10회, 중간 1분 회복 조깅 포함)
금요일: 4킬로미터 러닝
훈련한 만큼 내 몸이 후반 스피드를 감당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착각했다. 10킬로미터 단일 대회에 나와서 이제 7킬로미터만 남았을 뿐이라고. 그 착각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나는 10킬로미터 주자야. 앞에 달렸던 30킬로미터 이상은 뭐지? 그건 몸풀기. 스피드 올리기 전 웜업. 10킬로미터를 빨리 달리기 위하여 32킬로미터 달리기로 워밍업을 한 것이니 이제는 빨리 달려야 해. 치고 또 쳤다. 풀코스 후반을 이렇게 빨리 달려본 일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르막이 나와도 무조건 치달렸다. 수많은 주자들을 제칠 수밖에 없었다. 유니폼에 클럽명을 찍은 주자들을 제치기를 거듭하였다. 100미터를 29초에 달리기 시작한 사람이 34초에 달리는 사람을 제치는 것은 당연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정말 10킬로미터 대회에 나온 것처럼 달렸다. 무릎 쪽에서 툭툭 소리가 났다. 통증인가 싶어 내려보니 무릎 부상을 예방하기 위하여 붙인 테이프가 땀 때문에 떨어져 덜렁거리는 것이었다. 손으로 떼어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오른쪽 신발끈이 헐렁하여 다시 묶을까 고민하면서도 그냥 달리고 있는 마당에. 37.5킬로미터에서 시간 체크. 40킬로미터에서 시간 체크. 속도를 늦추어도 이제 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더 분발하지 않으면 SUB-4가 힘들어 보였다. 걷는 주자들도 적지 않고 걷듯이 달리는 주자들도 적지 않았다.
문의사거리. 이제 1킬로미터가 남았다. 3시간 54분. 아! SUB-4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스피드를 늦추지 않았다. 100미터를 남기고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제쳤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 20여초로 달렸다.
3:58:22.90
SUB-4에 성공했다. (86번째 SUB-4, 120번째 풀코스 완주) 말도 안되는 후반 레이스였지만 SUB-4를 이루고 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계산해 보니 마지막 10킬로미터를 48분대에 달린 것이었다.
미친 질주였다.
골인하자마자 장미꽃 한송이를 받았다. 완주자에게 장미꽃을 주는 대회는 처음이었다. 양말까지 타고 흘러내린 땀이 신발을 적셨다. 여름도 아닌데 또 신발을 빨게 생겼다.
골인하자마자 받은 장미꽃을 가방에 꽂고 다녔다.
골인한 후 구입하려던 농산물..... 다 팔렸다. 4년 전 안산에서도 그랬는데. 풀코스 주자가 골인 후 특산물을 사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최측이 제공한 국수와 떡. 딱 한 차례만 먹었다. 셔틀버스 타러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김밥을 사 먹었다. 캔콜라도 마시고......
새벽 4시에 먹은 미니스톱 3,900원 짜리 도시락.....
※ 대회 다음날 참가하지 않은 RUN IN SEOUL 마라톤 칩을 등기로 보냈다. 2,320원이나 들었다. 11그램 짜리 봉투인데..... 그냥 일회용칩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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