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4 추석맞이 마라톤(2014/09/08)-HALF

HoonzK 2014. 9. 10. 21:51

추석이라 주최측은 오후 3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오히려 노곤한 상태에서 나갔다. 새벽 3시가 다 되어 잤고 늦잠을 잘 수도 없었으니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오후 2시가 되기 전에 신도림교쪽으로 갔다.

추석에도 나와서 달리는 사람들은 누굴까 궁금하여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대회가 열리면 설치되기 마련인 대회 운영 본부가 아예 없었다.

전날 인터넷으로 대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 무슨 일이람?

허망했다. 이런 경우 스마트폰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책이나 읽다가 영화나 보러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었다. 담배 냄새에 쫓겨 도림천을 건너 신도림역 가까이 왔는데 주로에 누군가 달리고 있었다. 눈에 띠지도 않을 만큼 작은 배번이지만 옷에 달고 뛰는 주자들이 있었다. 일부러 일찍 나와 달리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공원사랑 마라톤에서는 한 시간쯤 빨리 와서 달리겠다고 양해를 구하면 그에 맞추어 기록증을 주니까)

 

-지금 대회 나오신 거죠?

-네.

-출발 지점이 어디예요?

-저쪽이요.

 

땀에 흠뻑 젖은 주자가 가리키는 방향은 도림교 아래였다.

이미 오후 2시 45분. 여유가 없어졌다. 도림교 아래로 갔더니 정말 조촐하게 꾸며진 대회장이 있었다.

SUB-3에 도전하시는 함찬일님이 먼저 인사하였다.

2만 5천원을 내밀고 배번을 받는데 원래 50번이었던 나는 49번이 되었다.

앞사람이 49번 배번을 들었다가 50번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번호를 가져갔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1시간 49분대 이내 골인을 목표로 하면 되니까.

손바닥만한 배번이라 티셔츠 아랫부분에 살짝 달아 주었다.

 

30도에 육박하는 날씨.

신도림역과 도림천역 사이의 자전거도로를 왕복하는 코스.

하프는 4번, 풀코스는 8번 왕복이었다.

 

1. 내 몸상태: 피곤함

2. 당일 날씨: 매우 더움

3. 코스: 매우 단조로움

 

신도림역에서 대림역 방향으로 달리는 코스라면 고가 아래를 달리기도 하기에 햇볕을 피할 수 있겠지만 이번 코스는 그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틀 전 하프보다 훨씬 힘든 상황을 극복하며 달려야 했다.

이렇게 코스를 정한 이유가 대회 운영 직원이 별로 없어서라고 했다. 급수대를 두 군데만 설치했는데 도림천을 징검다리로 가로지르면 대회 관계자가 왔다갔다 하기 편해 보였다.

 

15명 남짓한 주자들이 출발하였다. 하프는 거의 없었다. 이 대회는 원래 70% 이상이 풀코스 참가자이니까. 풀코스 완주 횟수를 채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이 대회 주최측이다. 마스터즈들은 풀코스 완주 횟수를 늘리기 위해 이 대회에 참가한다. 매주 대회를 열고, 명절 때에도 대회를 여니.....

 

누구와 함께 달려야 하는가?

보조를 맞출만한 사람이 도무지 없었다.

나 스스로 페이스를 조절해야 했다.

거리 표지판도 없어 그저 왔다 갔다 하며 출발지점과 반환점에서만 기록을 환산해야 했다.

킬로미터당 시간 소요를 계산하는 방식이 이 구간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번 왕복한 것으로 내 기록을 미리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두번 왕복하고 나니 내 기록이 55분대였다. 이틀 전과 비슷한 페이스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간대에 이틀 전과 비슷한 페이스라면 주의해야 했다.

세번째 왕복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살짝 구토도 났다.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왔다갔다 하는 이 단조로운 코스에서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몇 번 달리고 나면 코스가 익숙해져 페이스 조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네번째 왕복할 때 호리호리한 어르신이 냅다 달리는데 하프 주자처럼 보였다. 저렇게 스피드를 올린다면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그 분은 다섯번째 왕복을 시도하고 있었다. 풀코스 주자였던 것이다. 풀코스 주자가 중간에 그렇게 스피드를 올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골인하면서 하프 들어간다고 외쳤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이틀 전처럼 몇 초 손해 볼 수 있으니......

내 기록은 1시간 49분 36초였다.

 

1:49:36

 

이틀 전보다 기록이 나빠졌지만 여러가지 여건으로 볼 때 더 많이 빨리 달린 셈이었다.

먼저 골인한 다음 옷으로 갈아 입은 뒤 풀코스 달리려다 하프만 달렸다는 강릉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었다.

친척집에 왔다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후 저녁 늦게 돌아갈 거라고 했다.

 

함찬일님이 2시간 56분대로 골인하였다.

이 분은 물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찾았다. 대형 기록계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SUB-3로 골인했음을 증명하려는 듯.

 

-설렁설렁 뛰어도 SUB-3는 쉽게 하시네요.

 

그렇게 말하니 함찬일임은 손사래를 쳤다.

 

-무슨 그런 낭설을 퍼뜨리세요? 얼마나 힘들었는데.

 

함찬일님은 사흘 연속으로 SUB-3를 하셨다는데 내일(9월 9일)은 쉬겠다고 하였다.

그 다음날(9월 10일) 다시 SUB-3에 도전하겠다고 하였다.

 

나도 그 날 하프를 뛸까 고민했다. 미리 입금을 해 놓으면 어떻게든 대회장에 오지만 현장접수를 하는 경우 그냥 자 버렸는데 지금까지 100%였다. 짐까지 싸서 신발까지 신었다가 도로 들어가 잔 일도 많은데 과연 내가 내일 모레 나올까? 글쎄올시다.

 

추석 연휴 기간 세 차례 하프를 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뚱뚱한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