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 주상절리대, 2003년 3월에 처음 들렀다.
그 때는 관광안내소도 없었고 주차장도 없었다.
왜 나는 11년만에 주상절리대에 간 것일까?
이미 주차장으로 들어서 버렸으니 꼼짝없이 주차비를 내야 했다.
주차비까지 낸 마당에 주상절리대를 보고 가기로 했다. 입장료는 주차비의 두 배였다.
주차장에서 여자 지갑을 주웠다.
김연아 동갑내기 여성의 지갑.
명함은 없었지만 주민등록증과 각종 카드, 전날 타고 온 비행기 티켓을 통해 김ㅎㅎ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ㄱㅂ대학교 행정학과.
지갑을 잃어버린 경상도 젊은 처자의 사투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동전은 세지 않고 보니 5만원 지폐 2장, 만원 지폐 12장, 천원 지폐 네 장이 들어 있었다. 22만 4천원.
제주도에서 지출이 너무 많다 보니 욕심도 생겼지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니 꼭 찾아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주상절리대에 와 있는 관광객들 속에서 있을 수도 있었다.
사진을 꼼꼼하게 살펴서 인상을 파악한 뒤 관광객들 가운데 젊은 여성을 찾아 헤메었다.
중문 주상절리대의 비경보다는 여자 얼굴을 살피는 데 더 집중하다니....
실패했다.
주상절리대 매표원이나 관리인에게 갖다 줄까? 그러느니 보다는 경찰에게 전해주는 게 나을 듯.
차를 몰고 나와 대정쪽으로 이동하다가 일부러 중문쪽으로 들어가 파출소를 찾았다.
서귀포경찰서 중문파출소.
2014년 2월 25일 오후 3시 55분.
오후 5시 30분경.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xxx-xxxx-3336
남자였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의 남자친구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뻔한 이야기,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랬다.
-혹시 다음에 다른 사람 지갑 주우면 이번 일 기억하시고 꼭 주인 찾아주세요.
내가 주상절리대에 갑자기 가게 된 것은 모르는 사람의 지갑을 찾아주려고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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