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갑오년 새해맞이 마라톤(2014/01/01)-FULL

HoonzK 2014. 1. 2. 15:30

자정을 전후하여 쏟아져 들어오는 문자와 컬러메일.

제발 잠 좀 자자, 잠 좀.

모닝콜을 설정해 놓았으니 휴대전화를 꺼 버릴 수도 없고.

잠이 설핏 들면 신경을 자극하는 진동때문에 벌떡 일어나고 만다.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하는 나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문자를 보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대신 욕이라도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분들이야 선의를 갖고 보냈겠지만 자정을 전후하여 문자를 보내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례한 행위였다.

결국 잠을 설치고 수면이 한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회장에 가야 했다. 수면이 부족했으니 풀코스 후반부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 것이라고 각오해야 했다. 이동하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런 행위는 수면이 되지 못한다.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양말을 짝발로 신고 갔다. 오른발에 신어야 하는 양말을 왼발에까지 신고 나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반바지만 입고 뛰기 위하여 츄리닝을 벗은 순간이었다. 언밸런스한 양말을 신고 뛰어도 될지 심히 우려되었다.

 

일출이 시작될 무렵 출발하였다.

풀코스는 8시 정각 출발, 하프, 10킬로미터, 5킬로미터는 9시 출발이었다.

한강을 따라 달리다가 안양천, 도림천을 감아 돌다가 그대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페이스메이커가 없고 거리 표지판도 별로 없어서 페이스 조절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더욱이 나와 보조를 맞추어 달릴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용산고 동문 유니폼을 입은 은발의 마라토너를 따라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그 양반은 하프 이후 워낙 빠르게 달려서 피곤한 나에게 어울리는 페이스메이커가 아니었다. 그냥 나 홀로 마라톤을 달리는 게 현명하였다.

한강변에서 일출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다들 중무장이라 나는 거의 헐벗은 수준이었다.

반바지를 입어 처음에는 춥게 느껴졌으나 시간이 갈수록 견딜만 하였다.

반바지를 입고 달리기 잘했다는 생각을 20킬로미터가 지난 후에는 내내 했다.

 

도림천변에서 반환할 때 기록을 보니 다행히 2시간 이내였다.

문제는 성탄절 마라톤 이후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운동량이 부족할 경우 후반에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으니.

뚱뚱해졌을 것이다.

25일 달리고 쭉 쉬다가 30일 조금만 달리고 이틀 후 풀코스.

꾸준함..... 일부 구간은 지난 성탄절마라톤 때와 같은 코스.

25킬로미터쯤 달렸을 때 슬금슬금 힘들어졌다.

30킬로미터가 가까워졌을 때 체력이 급격하게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스포츠젤이라도 하나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양 섭취를 할 수 있는 곳은 하프 반환점의 급수대. 남은 거리가 10.5킬로미터인 지점이었다.

쵸코파이 4분의 1 조각, 귤 한 조각, 콜라 반 잔을 먹었다. 겨우 지친 몸을 추스렸다.

내 앞으로 치고 나왔던 여성 주자가 내 뒤로 다시 밀렸다. 1킬로미터 정도는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한데 모여 들렸는데 내가 그들의 페이스메이킹을 해 주고 있는 것같았다. 그 발걸음 소리도 이내 끊어졌다. 지쳐 있던 내가 슬슬 회복한 것이었다.

새벽에 문자를 보냈던 사람들 생각이 났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새해를 눈 앞에 두고 자고 있을리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

 

32.195킬로미터 지점부터는 1킬로미터마다 코스 표지판을 볼 수 있으니 페이스 조절하기가 수월해졌다.

32.195킬로미터 통과는 정확하게 3:00:00이었다.

이제부터는 킬로미터 당 6분 페이스로 달리면 되니 부담은 줄었다.

32.195킬로미터에서 33.195킬로미터까지의 기록이 얼마인지 확인해 보았다. 5분 35초. 그다지 힘들지 않게 넘어갔으니 이 페이스로만 밀고 나가기로 했다. 이후 1킬로미터의 구간 기록은 5분 30초일 때도 있고, 5분 40초일 때도 있었다.

5킬로미터 남았을 때 3시간 27분이라 SUB-4는 무난해 보였다.

역시 후반에 들어갈수록 부담이 커졌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넘겼다.

지난 11월 부산마라톤 보다는 빨리 달렸고, 12월 전마협 송년마라톤 보다는 늦게 달렸다.

2014년 첫 풀코스는 이렇게 끝났다.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2006년 춘천마라톤 아식스 기념티셔츠

속옷: ***** 민소매 티셔츠

신발: 아식스 젤 SP트레이너(하프마라톤 대회 전용)

장갑: 1천원짜리 검정색

바지: 아식스 러닝팬츠

양말: 아디다스 중목 짝발 착용

목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하늘색 버프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