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51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김숨이 선정되었다. 김숨의 소설을 자주 읽는 나로서는 매우 반가웠다. 그런데 그 당선작이 <떠도는 땅>이었다. 누구의 추천을 받은 바가 없이 그저 김숨의 소설이라서 선택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아 비대면으로 지하철 스마트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었다. 100일 전 읽은 책인데다 요즘 잘 쓰지 않는 독후감까지 간단하게나마 적은 작품이라 내 독서가 매우 값지게 느껴졌다. 좋은 책을 미리 알아보고 읽은 데 대한 격려를 받은 느낌이랄까? 지난 해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인 최수철의 <독의 꽃>을 이미 읽었을 때나 노벨문학상 수상자(2018년)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태고의 시간들>을 미리 읽었을 때 받았던 느낌과 똑 같았다.
1937년 극동 러시아 조선인 강제이주사를 40여 일간 이동한 열차 내부에서 그리면서, 단일 화자가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형상화했다. 잘 알려진 소재를 독창적 형식으로 다룬 것이 호평을 받았다. (조선일보 2020. 10. 19 A18면)
이제 영영 가는 곳은 먹을 것 입을 것 마련하는 일도 없고,
혼사나 상사의 절차도 없고, 손님을 맞고 편지를 왕래하는 예법도 없고,
염량세태나 시비의 소리도 없는 곳일게요. 다만 맑은 바람과 환한 달빛, 들꽃과 산새들만 있을 뿐....
(혜환 이용휴가 쓴 제문)
1937년 극동 아시아 신한촌 거주 한인들은 강제로 이주당한다. 소비에트 경찰이 갑자기 찾아와 위협적인 경고를 내린다.
너희는 떠나야 한다.
너희 조선인들에게 이주 명령이 내려졌다. (김숨, <떠도는 땅>, 은행나무 2020. 4.. 27 1판 1쇄. 44)
사흘 뒤 너희는 무조건 떠나야 한다. 46
조선에서 살 길이 없어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와 살았던 조선인들은 이제 중앙 아시아로 내몰린다. 강제로 기차에 실려 이동하는 이야기가 <떠도는 땅>에 실려 있다. 열차는 가을에 떠나 겨울에 닿는다. 사람들은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짐짝처럼 옮겨졌다. 기차에 갇혀 이동하면서 허기의 고통과 용변의 고충으로 시달리는 기록이 처절하다. 사산한 아이를 창밖으로 내던지고, 기차가 잠시 정차한 사이 소변을 보기 위해 기차 아래 들어갔다가 희생되는 사연이 있다. 27명의 운명을 일일이 들여다 보는 배려가 절절하다. 따냐와 요셉, 황노인과 그의 아들 일천, 금실과 시어머니 소덕, 들숙과 그의 아들 아나똘리, 안나의 혼혈아들 미치카, 오순과 허우재 등 여러 사람의 사연이 소설을 채운다. 이들은 조국을 잃고 조선인으로도, 러시아인으로도 살 수 없는 신세가 되어 천지에 떠도는 땅이 된다. 유대인들은 수천년 전부터 떠돌며 살았다는 반문이 위로가 될까?
어르신, 고향 떠나온 뒤로 내내 떠돌며 살지 않으셨어요?
그야 그랬지.... 땅이 떠도는 것인지, 내가 떠도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떠돌았지. 183
뿌리 잘린 나무처럼 수레에 실려(26) 열차에 태워진 황노인은 그 자신이 떠도는 땅이었다.
근석은 이런 말을 했었다.
솔직히 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조선인, 러시아인, 소비에트 인민. 100
근석의 아내 금실이 반문한다.
그 셋 다 아닌가요? 당신은 조선인이지만 러시아에서 태어났어요. 러시아는 소비에트가 되었고요.
그 셋 다일 수는 없어. 101
근석은 자신들의 아이라도 러시아에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뼛속까지 러시아인이어야 해. 99
하지만 러시아 사람의 용모를 하지 않는 한 러시아인이 될수 없음을 인설은 알고 있다.
황색인 우리의 피부색이 우유처럼 희어지지 않는 한 여전히 낯선 사람들일거요. 187
러시아 땅에서 마른 모래처럼 사라져 버릴(212) 운명으로 조선인들은 강제이주당하고 만다.
강제이주 당한 다음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떠도는 땅>에서 강제이주 당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그 다음 이야기를 김숨은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강제 이주당한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직은 다음 이야기를 꺼내어 놓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 고통스러운 시련이 닥쳐오리란 걸 암시하는 선에서 언급을 마친다.
자신이 버려진 땅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백 명이 죽은 땅이라는 걸, 콜호소(소비에트 시설 집단 농장 체제)에 반대하던 농부들이 자신이 키우던 가축들을 무자비하게 도살한 땅이라는 걸, 금실은 이듬해 봄이 돼서야 알았다. 275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김숨은 조선인들의 강제 이주와 거주에 대하여 조사를 했을 것이다. 강제 이주당한 동포들이 어떻게 이후의 삶을 이어나갔는지도, 그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도 이미 구상을 마쳤을지 모른다. (마지막 부분에 살짝 나오는 에피소드가 마치 그 예고편처럼 읽힌다.) 그 구상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려 본다. 이번 소재로 대하 소설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치 <혼불>과 같은......
동인문학상 수상작 선정 이유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사를 다루고 있는 김숨의 ‘떠도는 땅’은 요령부득이고 불가항력이며 속절없었던, 20세기 한국인의 가혹한 수난을 바투 뒤쫓는다. 거기엔 이유도 없고 진실도 없다. 오로지 명령과 기차만이 있을 뿐이다. 사고가 나지 않는 한 결코 멈추지 않을 일방성의 운명만이, 이 열차 속에선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생존 본능이 겨우 꼬무락거리는 약소민의 신음이 중구난방으로 새어나온다. 그들의 신음은 함께 내뱉는 웅절거림이자 제각각의 할딱거림이다. 작가의 치밀한 묘사는 집단적 운명과 개인적 대응들의 어긋남 쪽으로 비극을 이동시키며, 이 비극의 이행이야말로 작품을 동뜨게 하는 요인이다. 죽음과 탈진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은 그것을 치러내는 자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로부터 부당한 운명을 부인하며 분발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태어난다. 이데올로기의 언어에 대항해 삶의 노래가 숨결을 고른다. 옛 시인을 빌리자면, “어둔 밤 말 없는 돌을 안고서 피울음을 울어도 설움은 풀릴 것”(이상화)이라. 독자의 눈길은 작품을 넘어 생존의 드라마를 상상한다. 까닭 모를 벌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죄의 성채를 만들어 깨뜨리는 것이다. 작가가 전하는 통찰이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
[출처: 조선일보]
제51회 동인문학상에 김숨 ‘떠도는 땅’
입력 2020.10.19 03:00
소설가 김숨(46)이 장편소설 ‘떠도는 땅’으로 2020년 제51회 동인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수상작은 1937년 러시아 극동 지역에 거주한 조선인 17여만명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비극을 세밀하고 생생한 묘사력으로 다뤘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0만원이 주어진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선정이유서를 통해 “김숨의 ‘떠도는 땅’은 20세기 한국인의 가혹한 수난을 바투 뒤쫓는다”며 “이데올로기에 대항해 삶의 노래가 숨결을 고른다”고 평가했다. 김숨은 “제가 습작 시절에 모범으로 삼았던 선배 작가들이 거쳐 간 상을 받게 돼 큰 격려를 받는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11월 말에 열린다.
[출처: 조선일보]
연해주 韓人 강제이주… 뿌리째 뽑힌 ‘이름 없는 목소리’ 살리고 싶었다
2020 동인문학상 수상 ‘떠도는 땅’ 김숨
입력 2020.10.19 03:00
2020년 제51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김숨(46)은 “소설이 뭔지도 모르던 소녀 시절에 읽은 김동인 소설이 제게 강렬한 인상을 줬는데, 그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제 소설을 읽어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 ‘떠도는 땅’(은행나무)은 1937년 극동 러시아의 조선인 강제이주사를 40여 일간 이동한 열차 내부에서 그리면서, 단일 화자가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對話)를 통해 형상화했다. 잘 알려진 소재를 독창적 형식으로 다룬 것이 호평을 받았다. 심사위원(김화영·김인환·오정희·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 중 소설가 오정희는 “연해주 한인들이 갇힌 화물열차의 3.5평 어둡고 더러운 공간은 낯선 세계의 설화적 공간으로 살아난다”며 “맥락 없이 툭툭 끊어지는 대화들은 때로 날카로운 통찰과 폐부를 찌르는 아포리즘으로 소설이라기보다는 길고 무거운 탄식의 서사시 같다는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2020년 동인문학상 수상가 김숨은“김동인 소설 중 '광염 소나타' 같은 강렬한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오종찬 기자
1997년 등단한 김숨은 지금껏 장편 소설 10여 권, 단편소설집 6권을 낸 왕성한 필력으로 이미 현대문학상을 비롯해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오른 끝에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뿌리 이야기’를 쓰고 난 뒤 ‘뿌리 뽑힌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면서 ‘떠도는 땅’의 집필 동기를 밝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짧은 장편 시리즈(4권)도 낸 그는 “역사에 대한 특별한 의무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로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강제 이주 열차가 준 강렬한 인상 때문에 그 열차에 실린 인간들의 공포와 고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열차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죽자, 아비가 어미 품의 아기를 빼앗아 광목천으로 감싼 뒤 눈보라 날리는 열차 밖으로 던지는 장면을 비롯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애절한 역사가 절제되고 간결한 문장으로 그려졌다.
수상작은 ‘성냥을 긋고 긋는 소리, 양철 그릇과 냄비들이 허공에서 자지러지는 소리, 게딱지 같은 빵껍질을 뜯어 먹는 소리’ 등등 폐쇄 열차 내부의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시조창(時調唱)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촛불 이미지를 되풀이하면서, 어둠을 지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제시했다. 작가는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열차 내부에서 인간이 가장 민감하게 포착하는 것은 ‘소리’라고 생각했다”며 “소설 공간이 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형식을 저절로 낳았고, 역사에서 ‘이름 없는 목소리’를 살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은 임신부 ‘금실’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생로병사를 들려주고, 공식적으로 500여 명이 이동하던 중 사망한 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지역에 도착한 ‘금실’이 출산하는 것을 통해 민족의 생명력을 형상화했다. 작가는 “고향을 떠나서 낯선 땅에 정착하려고 할 때 ‘아이’가 뿌리가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자 원고지 800장 분량에 대해 작가는 “소설을 쓴 지 20년이 넘으면서 깨달은 것은 시를 쓰듯이, 소설도 문장을 다 끌어안으려 하지 말고 잘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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