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국제평화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추석 연휴 등과 같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늘 같은 날. 이 대회에는 하프로만 참가했다. 2012년, 2016년, 2017년, 그리고 2019년.
대부분의 지인들이 풀코스 참가자이기 때문에 내가 하프 참가자라고 하자 다들 어이없다고 했다. 부상이 완치된 것이 아니라 이해는 하지만 하프는 엄연히 마라톤이 아닌 그저 워밍업 수준의 달리기라는 입장의 바깥술님, 나를 배신자라고까지 지칭한 로운리맨님, 하프 배번을 달고 있지만 정말 풀코스를 달리지 않을 것이냐고 묻는 달물영희님, 추월을 하자 당연히 내가 풀코스 주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늦게 출발한 모양이라고 판단한 제비한스님, 하프 배번을 달고 반환해 오자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헬스지노님.
하프 코스에는 아는 분들이 거의 없었다. 2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맡은 달해아름다워님이 내가 알고 인사를 나눈 유일한 하프 주자였다.
풀코스 주자들이 모인 데 가서 고운인선님과는 인사를 나누었다. 풀코스가 출발하고 5분 뒤 하프코스가 출발했다. 올해도 사회자가 배씨이기는 한데 배동성씨가 아니었다. 탤런트 배도환씨였다. 영동대로에서 출발한 후 양재천에 들어섰을 때는 아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2시간 전후로 달리는 하프 주자들이 비좁은 주로를 앞뒤로 꽉 메우고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초반 오버페이스를 막아주는 고마운 일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습도가 무척 높아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첫 1킬로미터는 6분 5초가 걸렸다. 내심 2시간 이내 완주를 꿈꾸는데 너무 늦는 것 아닌가? 달해아름다워님의 2시간 페메 풍선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2킬로미터 11분 23초. 1시간 59분대 후반 속도로 환산했을 때 2킬로미터 11분 20초의 기준 기록에서 별로 밀린 게 없었다. 3킬로미터 17분, 6킬로미터 34분, 9킬로미터 51분. 이 페이스에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지난 172번의 하프에서 그랬듯이 2시간을 넘지 않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3킬로미터는 16분 50초였다.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면서 달렸는데도 달해아름다워님 옆에 설 수 있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그 유명한 달해아름다워님 아니십니까? 그동안 보기 힘들었어요.
달해아름다워님이 재미있게 답했다.
지난 해까지 입상을 많이 해서 집을 샀기 때문에 올해는 쉬어갑니다.
1킬로미터 남짓 대화하면서 달리는데 자연스럽게 내 속도가 빨라져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풀코스 후미 주자들을 따라잡았다. 달리면서 양재천 주로를 훈련 코스로 삼은 로운리맨님이 자꾸만 떠올랐다. 탄천2교 아래를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영동6교부터 내림차순으로 다리가 나왔다. 영동1교를 지난 후 양재천을 다시 감아돌아 건너편 주로를 달리면서 거리를 채우게 되는 대회였다. 2.5킬로미터마다 급수대를 설치해 놓아 수분 부족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속도를 올려 7킬로미터 남짓 달리고 나면 뜨겁게 올라오는 햄스트링 통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2월 1일 이후 다리 통증을 느끼지 않고 달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 사이에서 역주했다. 가끔 4분 10초 페이스도 나왔다. 영동 3교를 지나 만난 10킬로미터 표지판에서 시계를 보고 잠깐 놀랐다. 나흘 전 10킬로미터 단일 대회에서 52분 30초대를 기록했는데 그때와 똑같았다. 달리는 도중 기록인데다 힘도 덜 들었다. 햇살을 받아 도로에 뭉쳐져 있던 물기가 일제히 올라왔다. 바닥에서 올라온 습기와 몸에서 빠져 나오는 땀 때문에 완전히 물주머니가 되어 달리고 있었는데도 잘 버티고 있었다. 달리기 바쁜데도 샛별홍진님, 홍순진고문님, 제비한스님, 건국에이스병준님 등을 만나면 어김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 배낭을 메고 달리는 주자들을 보고 달리다 배낭을 메지 않은 나 자신이 너무 놀랍기도 했다. 평소 운동할 때면 늘 배낭을 메고 달리다 보니 대회에 나와서도 배낭을 멘 주자의 자세를 흉내내고 있었다. 배낭을 메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달린담, 밟으라고. 자세 바꾸고. 달리면서 옆구리를 만져보니 옆구리살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두툼하게 잡히던 살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3킬로그램 이상 더 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느새 풀코스 4시간 50분, 풀코스 4시간 20분 페메를 제쳤다. 12킬로미터 쯤 달리자 4시간 페메 풍선도 가까워졌다. 오버페이스가 아닐까 싶었으나 하프는 오버페이스를 몇 번쯤 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기억했다. 그 오버페이스 덕분에 다음 레이스에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들 했으니.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는 바깥술님, 달물영희님을 따라잡았다. 3킬로미터 가까이 함께 달렸다. 하프코스 반환 직전 몇 백 미터를 남기고 치고 나갔다. 15킬로미터를 조금 넘게 달린 후 광평교에서 반환했다. 풀코스 주자들은 광평교를 지나 숯내교, 대곡교, 대왕교, 둔전교, 여수대교, 탄천교, 야탑교, 하탑교까지 지났다 돌아오겠지만 나는 이미 끝이 보였다. 햄스트링이 왜 아프지 않은 거야? 어제 밤, 오늘 새벽에도 아팠는데 무슨 일이지? 근육테이프를 너무 잘 붙여서 그런 것인가? 63토끼 마라톤 동반 주자들을 보면서 꾸준하게 나아갔다. 표지판은 37, 38, 39....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풀코스 거리 표지판으로 달린 거리를 파악해야 했다. 38킬로미터면 4.2킬로미터가 남았군. 39킬로미터면 17.9킬로미터를 뛰었군. 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언제 비가 내렸나 할 정도로 뙤약볕이 작렬하는 날씨가 되었지만 이미 다 왔기 때문에 주저없이 달려나갔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1시간 49분대로는 들어가고 싶었다. 40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날 때 1시간 38분이 넘고 있었다. 2.2킬로미터를 11분대로 뛰는 데 무리는 없겠지. 갑자기 햄스트링 통증이 생긴다면? 조심해야 했다. 속도를 올리면서도 속도를 자제하는 특이한 달리기를 했다. 만족과 불만족이 뒤섞이는 달리기가 이런 것일까? 그리 애를 쓰지 않아도 앞의 주자들이 제쳐졌다. 도로로 진입하려면 비좁고 가파른 오르막을 타야했다. 국제평화마라톤대회의 최고 난코스. 몇 십 미터밖에 되지 않는 그 오르막을 만나면 많은 주자들이 걸었다. 굼뜨지만 걷지는 않았다. 그래도 거기서 몇 초를 날렸다.
내 기록은 1시간 49분 02초.
1시간 48분대까지 갈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오르막을 버겁게 타면서 했다. 올해 기록은 2년 전보다 12분 늦었다. 그래도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10킬로미터 참가를 위해 대회장에 오다가 사정이 생겨 돌아간 아세탈님이 Liverun 모바일 완주증을 보내주며 완주를 축하해 주었다. 영동대로는 먹거리 때문에 부스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지만 일체 돌아보지 않고 귀가했다. 하프 완주 후에도 아는 체 할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가 컸다.
아이에게 주려고 일부러 작은 사이즈로....
태풍 미탁 때문에 열리지 않을 수도 있었던 대회였는데.....
현재 참가자로부터 태풍으로 인한 대회 취소가 되는지 확인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계획은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오늘 오후 10시에 최종 회의를 거쳐 진행 여부를 결정합니다.
대회 진행에 변동이 생기면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10/02 17:56
[강남국제평화마라톤] 10월 3일 예정대로 대회진행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10/02 21:24
출발 전에 우영님, 은식님과도 인사했다.
우영님에게는 하프를 달린다고 밝혔고, 은식님에게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배번을 단 후와 달기 전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광배님과는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고.... 물품 보관이 늦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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