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장은 뚝섬수변무대였지만 10킬로미터를 제외하고 나머지 종목(5킬로미터, 하프, 32.195킬로미터, 풀코스)은 구리 방향이 아닌 중랑천 방향으로 달리게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이 방향으로 달리는 대회는 처음이었다. 풀코스도 2회전이 아닌 1회전만 하게 되었고, 16킬로미터 지점부터 하프 지점 사이는 내가 가끔 달리는 중랑천 훈련 코스이기도 했다. 비좁은 중랑천 주로 때문에 자전거와의 접촉 사고가 우려되었는데 태풍 타파 덕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자전거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흐린데다 바람이 불어 근래 보기 드문 서늘한 날씨의 혜택을 받으며 달릴 수 있게 되었다. 4시간 싱글(4시간 00분 00초~4시간 9분 59초 사이의 기록)을 목표로 한 나로서는 큰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새벽에는 좀더 자고 싶어 발버둥을 치다가 집을 나섰다. 풀코스 오전 8시 30분 출발은 너무 일렀다. 뚝섬유원지역 계단을 내려가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을 뻔 하기도 했다. 미끄러지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는데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은 덕분에 창피한 꼴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렀다 가니 대회장에는 출발 15분 전에야 도착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재빨리 배번을 달고 칩을 신발끈 사이에 끼웠다. 신발에 끼우는 칩은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네라고 중얼대며. 물품보관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봉투를 두 겹으로 쌌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신발끈을 조이기가 무섭게 풀코스 주자 출발이 있었다. 배동성씨의 출발 전 늘 하는 레퍼토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바로 출발하게 되었다. 슬금슬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몹시 고단했다. 달리는 동안 샛별홍진님, 은수님, 고운인선님, 바깥술님, 횡성사랑님, 동대문두경님 등을 뵈었다. 횡성사랑님은 1년 여만에 풀코스를 달린다고 했다. 첫 1킬로미터는 6분이 넘었다. 다음 구간에서는 조금 빨라져 5분 55초에서 6분 사이를 꾸준히 유지하게 되었다. 3킬로미터 쯤 가면서 다리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었다. 그리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몸 가운데 가장 약해진 곳으로 통증이 찾아오는 것일까? 나의 경우는 오른쪽 다리의 햄스트링이겠다. 대회장에서 오랜만에 뵌 은수님과 동반주하면서 밀린 대화를 나누며 달렸다. 오늘 목표는 4시간 싱글인데 현재로서는 4시간 10분이 넘어갈 것 같네요. 서울숲, 한양대학교..... 지난 주 일요일 제가 달린 코스를 지나가게 되네요. 청계천에서 옥수역 사이를 3시간 2분 동안 달렸으니 매우 친근한 느낌이 들어요. 살곶이 다리를 지나기 전 은식님을 만났다. 대회에 나오면 늘 만나던 분이 지난 몇 년 간 뵙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앞으로 대회장에 부지런히 나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일이 너무 바빠 대회 참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10킬로미터는 59분대였다. 4시간 싱글을 살짝 넘을 페이스였다. 날씨도 선선하겠다 그동안 옆구리살도 많이 덜어내었겠다..... 속도가 올라가야 하는 게 맞는데 햄스트링이 아팠다. 앞으로 달려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 두려웠다. 끝까지 완주하려면 속도를 줄이는 식으로 타협하는 게 현명했다. 12킬로미터 정도까지는 함께 갈 수 있었던 은수님과 은식님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낯익은 동대문마라톤 출발지가 나오고, 장평교를 지나기가 무섭게 하프 반환점이 나왔다. 너무나 익숙한 다리들이 연달아 나왔다. 장안교, 중랑교, 이화교. 이 와중에 여러 주자들에게 추월당했다. 떨어진 내 스피드 때문이기도 했지만 32.195킬로미터 주자들이 반환이 가까워지자 힘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15킬로미터 지점에 급수대가 없었다. 우이천 합수지점인 16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잠시 우이천을 곁눈질하고 수분을 보충한 뒤 32.195킬로미터 반환점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월릉교. 훈련할 때 늘 산책로를 뛰던 내가 자전거도로를 뛰고 있으니 느낌이 남달랐다. 자주 훈련하던 구간, 불과 사흘 전에도 인터벌 훈련을 했던 구간이라 한결 수월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몹시 힘들었다. 견딘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풀코스 선두 그룹이 오고 있었다. 서브 3 주자들, 3시간 싱글 주자들. 놀라운 것은 3시간 20분 안쪽의 페이스로 근규형님이 질주해 오고 있었다. 자켓을 허리에 동여매고도 가공할 스피드로 내달리고 있었다. 특전사님도 오고 있었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그룹에는 Wan-sik님이 함께 하고 있었다. 헬스지노님이 레이스패트롤을 맡아 바로 따라붙고 있었다. 오랜만이라 반가웠던지 헬스지노님이 먼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연이어 고운인선님, 고운장영님이 나타나고, 남수님과 함께 달리는 달물영희님과 바깥술님. 안동제비원의 범연님, 바로 뒤로 인천연형님, 노원희규님. 4시간 페메보다 1킬로미터 뒤쳐진 나로서는 그분들이 너무 빠르게 느껴졌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 그룹에서는 덕소병민님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곤지암마라톤클럽의 운기님과는 하이파이브도 했다. 이러는 사이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반환해 오면서 인사드렸던 분들을 요즘엔 반환하기 전 만난다는 것. 상황 역전. 요즘 내 모습이다. 녹천교와 창동교를 연달아 지난 후 반환했다. 2시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선전한 것이었다. 통증이 심상치 않았는데 달려온 만큼의 속도로 돌아간다면 4시간 9분대로 달려낼 수 있었다.
반환하기가 무섭게 동대문두경님을 제치고 나가며 파이팅을 외쳤다. 훈련 구간을 빠져나가기 전에 동갑내기 운기님 앞으로 나가며 곤지암마라톤을 응원했다. 운기님은 내게 여전하다고 했다. 후반에 스퍼트하는 스타일이 여전하다는 뜻인가? 반환한 후 만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천고의 춘효님과 길석님, 횡성사랑님 정도였다.
은식님은 은수님보다 앞으로 나아갔고, 은수님은 나보다 400미터 이상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거리 표지판을 통하여 내 페이스를 산출했다. 1킬로미터가 얼마나 나올까 했는데 5분 23초까지도 나왔다. 계속 그렇게 달릴 수는 없었다. 이 속도를 꾸준히 유지하면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였지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늘 서브4를 하고 춘천마라톤을 아예 뛰지 못하게 된다면 견딜 수 없었다. 아픈 다리가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만의 속도가 필요했다. 적절한 조절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3년 전 청원생명쌀 대청호마라톤대회의 후반 질주를 재현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적어도 다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전반 하프가 2시간 7분이었지만 후반 질주로 서브 4를 달성. 기록 경신의 돌풍을 예고한 대회)
비가 가끔 흩뿌리기도 했고, 버프창이 재껴질 만큼 돌풍도 이따금 불었지만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욕심을 비우는 과정을 거쳤다. 서브4는 아니다. 4시간 싱글이다. 꽤나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닌데 제치는 주자들이 속속 늘어났다. 은수님도 제쳤다. 혹시나 서브4가 가능할까? 30.2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체크했다. 이 페이스라면 몇 분이 모자랐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보니 53분대 정도로 뛰어야 가능했다. 못할 것도 없어 보였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이따금 걷는 사람도 보였다. 35킬로미터 이후 이제 승부를 걸자 했다가도 욕심을 버렸다. 오늘도 운동하면서 살빼는 것으로 하자. 37.2킬로미터. 23분대로 질주할 수 있으면 서브4가 가능했지만 통증에 통증을 더할 수는 없었다. 앞의 주자들을 지속적으로 제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했다. 서울숲을 감아돌아 한강을 만났다. 거기서 4시간 페메 그룹에서 뒤떨어진 덕소병민님을 제쳤다. 그리고 영화 '벌새'를 떠올리게 하는 성수대교. 25년 전 끊어져 있던 성수대교를 직접 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3킬로미터 남았을 때 보니 남은 세 번의 1킬로미터 구간을 4분 10초씩으로 달리면 서브 4가 가능했다. 불가능한 일이니 4시간 싱글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전반 하프는 2시간 5분이 걸렸지만 후반 하프는 2시간 이내로 달렸다는 이력을 남기고 싶었다. 21.0975킬로미터를 넘은 후에는 하프 단일 대회에 나왔을 뿐이니 2시간 이내로는 달리자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1킬로미터 남았을 때 3시간 58분대. 거기서 은식님을 제쳤다.
4:03:33.655
골인한 후 기다렸다 나보다 1분 늦게 골인하는 은식님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쪽 코스로 달린 것은 처음이다.
내가 자주 달리는 훈련 코스라 너무 반가웠다.
다음번에는 서브4에 들어가려나?
바람이 불어서 아치가 넘어가려고 한다.
이 기념품은 마음에 든다.
입어 보았다.
운동하기 딱 좋은 옷이다.
성수대교를 배경으로 골인을 앞두고 있다.
라스트 스퍼트를 하면서 옆의 주자보다 앞으로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살이 빠진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몸이 무겁다.
이번 마라톤의 경우 햄스트링 통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도전! 마라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7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2019/10/03)-HALF 173 (0) | 2019.10.03 |
---|---|
제9회 아산이순신마라톤대회(2019/09/29)-10KM (0) | 2019.10.03 |
공원사랑마라톤(2019/09/13)-FULL 210 (0) | 2019.09.19 |
공원사랑마라톤(2019/08/04)-FULL 209 (0) | 2019.08.06 |
공원사랑마라톤(2019/07/20)-FULL 208 (0) | 2019.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