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청년부와 장년부로 나누어 50위까지 트로피를 주는 대회였다. 5위까지는 이봉주 마라톤화가 상품으로 걸려 있었다. 청년부의 경우 참가자가 거의 없어 광배님은 무난하게 마라톤화를 받았다. 여자 장년부에서 설아님과 달물영희님이 나란히 1위, 2위를 차지하여 역시 마라톤화를 받았다. 마라톤화를 정말 받고 싶었던 바깥술님은 고수들 대부분이 같은 날 열리는 제15회 아!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바깥술님이 마라톤화를 받지 못한다면 나라도 맹렬하게 달려 신발을 받은 뒤 바깥술님에게 드리고 싶었지만 70일이 넘게 이어지는 햄스트링 부상을 안고는 언감생심이었다. 운동 부족으로 살까지 쪄서 더 느려질 수도 있었다. 장년부 5위의 기록은 3시간 10분대였다. 아픈 데 없이 컨디션이 좋다고 해도 마라톤화를 받기는 애시당초 어려웠다.
맑았지만 영하 5도에 바람이 쌀쌀한 날씨. 지난 겨울부터 늘 그랬던 대로 츄리닝 바지에 긴팔 티셔츠 두 장을 걸치고 주로에 나섰다. 하프에 참가하는 로운리맨님이 몸풀다가 햄스트링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하프 기록 경신을 위하여 전의를 불태우던 이 분에게 왜 이런 시련이? 그래도 로운리맨님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광배님, 바깥술님과 3킬로미터까지 함께 달렸다. 15분 2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킬로미터당 5분 10초 이내의 페이스. 믿어지지 않는 스피드였다. 햄스트링이 다 나았나? 절대 그럴리 없었다. 자세를 바꿀 때 생기는 통증은 그대로였다. 달리기 전 스트레칭을 할 때도 아팠다. 그런데 5킬로미터를 25분대에 달리다니 믿기지 않았다. 5킬로미터를 넘긴 뒤에야 숨어 있던 통증이 올라오면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구리시에 들어선 6킬로미터 지점, 3시간 40분 윤도경 페이스메이커가 나를 제치고 나가며 응원을 보내주었다. 맞바람 속을 뚫고 나아갔다. 한강의 얼음은 거의 보이지 않아 그렇게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맞바람이니 반환한 이후에는 뒷바람이겠구나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소 길게 느껴지는 구리암사대교와 강동대교 사이. 10킬로미터에서 시간 체크. 52분 10초. 이게 무슨 일이지? 몇 달 동안 기를 쓰고 달려도 55분을 넘겼었는데...... 나아지고 있는 것인가? 풀코스 청년부, 장년부, 31킬로미터 참가자와 미리 출발한 칠마회 소속 주자들이 섞여 있어서 내 순위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지만 대략 40위 전후였다. 꾸준히 달리면 50위까지 주어지는 트로피를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43으로 시작하는 장년부 배번만 세는 것도 몹시 정신이 사나운 일이었다. 청년부를 나타내는 40으로 시작하는 배번은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광배님에게 순위를 알려주기 위하여 청년부 배번도 세고 있었다.
반환해서 오는 로운리맨님은 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1시간 40분 초반의 페이스는 지키고 있었다. 나도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은 부조리한 거다. 열과 성을 다해도 그 꿈이 좌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 마음은 무거웠다. 오늘 대회는 출전하지 말고 집에서 비상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출전했더라도 휴대폰을 들고 뛰다가 집에서 연락이 오면 달리기를 멈추고 바로 돌아가야 했다. 출발 직전 연락을 받았으면 기념품만 받은 뒤 귀가할 생각이었는데 짐을 맡길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뛰지 않기로 한 이상 제발 연락이 없기를......
시계는 거의 보지 않았다. 그냥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 젊은 여성이 힘차게 앞 주자를 제치고 나갔다. 주로에 뿌려지는 밝고 건강한 기운을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덕분에 몇 명을 제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갈 때도 올 때도 맞바람이 있는 것을 보면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 날인데 바람을 피하는 구간에 들어오면 더워서 츄리닝 바지와 장갑이 성가실 때도 있었다. 3주 만에 풀코스는 너무 오랜만이라는 느낌. 후반에 에너지 고갈로 매우 고생할 것같다는 느낌. 조심해야 한다. 멋모르고 달리다 부상이 악화되어 아예 못 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200번 가까이 뛰어도 여전히 풀코스는 후반을 장담하기 어려운 달리기였다. 1회전을 1시간 50분과 55분 사이에 했다. 어쩌면 오랜만에 3시간 40분대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었다. 지난 해 12월 9일부터 지난 1월 27일까지 네 번의 풀코스에서 3시간 55분, 3시간 53분, 3시간 57분, 3시간 57분이었으니 3시간 40분대는 매우 빨라지는 것이었다. 미친 척하고 속도를 더 올려 3시간 39분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 욕심도 생겼지만 옆구리쪽으로 불어오른 살집과 오른쪽 다리에 남아 있는 통증을 떠올리며 참았다. 23킬로미터 지점 화장실에 들렀다 나와 직진했는데 울타리가 처져 있어 울타리를 넘어야 했다.
바깥술님은 30등 이내인 것같았다. 나는 40등 전후인데 후반에 추월만 당하지 말았으면 했다. 그래도 트로피는 받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후반에 갑자기 체력이 떨어져 4시간을 훌쩍 넘긴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운동 부족을 의지만으로 이겨내기는 어려운 게 풀코스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내 앞으로 나간 주자들을 따라잡고 31킬로미터 종목 2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갔다. 26.1킬로미터 지점에서 반환해 가는 페메 그룹과 멀어진 뒤에는 나 홀로 달렸다. 3시간 20분, 3시간 40분, 4시간, 4시간 20분, 4시간 40분 페메가 있었지만 내가 보조를 맞출 페메는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3시간 50분 페메가 되고 있었다. 암사대교 부근을 지나는데 충배님이 걸어서 돌아오고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디 아파요? 관절이 아파서요. 서브 3를 기록한 일도 있고 최근에는 3시간 10분대 기록은 무난한 이 분이 오른쪽 무릎 관절이 아픈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완주한 후 충배님과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보다 1년 일찍 데뷔한 분이었고, 내 이름을 듣더니 자주 봤다고 했다. 전마협 기록 페이지에 가나다 순이라 늘 앞에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외웠다고....)
1위 주자인 방재현님에게 1등 파이팅했더니 '힘!'하고 받았다. 1등 주자에게 답을 받는 일은 거의 없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건너편에서 오는 광배님에게 청년부 3위가 무난하다고 했더니 답이 없었다. 바로 앞에서 달리는 3시간 20분 페메를 따라잡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어 반응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여자부 1위 설아님과 2위 달물영희님은 내 응원에 밝게 답해주었다.
30.1킬로미터 지점을 2시간 38분대로 통과했다.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무리해서는 안된다는 것. 바깥술님은 퍼졌다고 말하며 내게 빨리 오라고 했다. 아무리 퍼졌다고 해도 2킬로미터 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바짝 따라갈 수는 없었다. 간격을 줄이기만 했다. 31.6킬로미터 반환점에서 칩 인식이 되는 소리를 들었다. 급수대에서 타우린 에너지팩을 받아 챙긴 뒤 초코파이와 콜라를 마셨다. 타우린은 32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먹었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2시간 50분이 살짝 넘어가 있었다. 6분 페이스로 가면 3시간 50분이 예상되었다. 그것도 잘 달린 것이겠지만 조금만 애를 써서 3시간 40분대에 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 이때부터 부담이 생겼다. 킬로미터마다 시간을 체크했다. 현재 달리는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할 때 어느 정도의 기록이 나오는지 확인했다. 5분 45초 전후였다. 그보다 빨라지면 빨라졌지 늦어지지는 않았다. 오직 달리는 일에 집중해야 했지만 집안 일이 걱정되었다. 급한 일이 생겨 내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나는 받지 못할텐데..... 무슨 일이 생기면 생기는 것이고 지금 현재로서는 달리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풀코스를 달리는 장재연 어르신에게는 꼭 인사를 드리고 지나갔다. 70대에도 4시간 페이스메이커로 수고하시는 남수님과 마주하면 반드시 응원했다. 마라톤 대회에 나오면 절대 낯을 가리지 않는 주자로 달리고 있었다.
에너지 고갈, 훈련 부족, 체중 증가, 다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35킬로미터 이후 조금씩 속도가 오르고 있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주자들을 제치고 있었고, 3시간 40분대 골인에 여유가 생겼다. 서울에 들어섰을 때 충배님을 제쳤다. 아직도 아프신가 보네요. 끝까지 힘내세요. 37.2킬로미터 지점 급수대에서 에너지젤을 받았다. 짐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하여 39킬로미터 지점에서 먹었다. 예상 기록은 꾸준히 조정되었다. 3시간 49분, 3시간 48분, 3시간 47분, 3시간 46분. 이왕이면 서브 345를 하면 좋겠다 싶었다. 1킬로미터를 남기고 3시간 41분 20초가 되려고 했다. 4분 40초로 달리면 3시간 44분이 되겠다 싶었다. 착각이었다. 3분 40초로 달려야 했다. 이미 3시간 45분이 되었는데 골인 아치는 멀찌감치 있었다. 마지막 1킬로미터는 이번 대회 구간 기록 가운데 가장 빠른 4분 40초로 달리긴 했다. 이 스퍼트로 부상이 도지지는 말기를......
3:45:57.82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되어 바닥을 치고 오르기 시작했을까? 3시간 20분대로 달릴 때보다 3킬로그램 이상 쪄서 서브 4만 간신히 해도 성공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물품보관소에서 짐을 찾은 뒤 휴대폰부터 살폈다. 부재중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옷을 갈아입기 전에 기념품인 에너지 음료부터 받으러 갔다. 그 사이 순위 발표 방송이 있었다. 24등까지 발표했다. 21등이 바깥술님이었고, 24등이 나였다. 본부석에서 가까이 있어서 바로 트로피를 받았다. 풀코스 입상 트로피 수령만은 내가 1등이었다.
청년부 입상 3위로 빈집털이를 했다고 말하는 광배님은 3시간 19분대를 아깝게 놓쳤다고 했다. 1위와 2위는 서브 3로 골인했고, 4등은 3시간 47분대여서 혼자서 외롭게 달렸다고 했다. 만날 때마다 응원해주어 감사하다는 설아님은 3시간 28분으로 여자 장년부 1등을 차지했는데 오늘 너무 빨리 달려 다음 주 정읍 대회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냥 기량이 올라 있어 그렇게 기록이 나온 것이라고 마음편하게 생각하라고 격려해 드렸다. 달물영희님은 2위 입상으로 받은 이봉주 마라톤화를 바깥술님에게 선물했다. 포도당 10개는 내게 선물했다.
왼쪽 다리의 움직임이 많아서 땀이 많이 났다. 소금기가 그 움직임을 증명해준다.
오른쪽 다리쪽 츄리닝에는 소금기가 거의 없다. 햄스트링 부상이 완치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3시간 45분대 얼마만인가?
장년부 24위. 초반 40위 전후에서 많이 치고 올라왔다.
시상품으로 월드런마라톤화 뿐만 아니라 천호에너지 음료도 있었다.
자원봉사 나온 학생들이 지친 듯 잠을 청하고 있었다. 바람도 불고 추웠는데.....
롯데리아에서 불고기버거세트를 먹으려 했는데 L 포인트 적립이 잘 되지 않아 길을 건너 서브웨이로 갔다.
서브웨이에서는 어떻게 주문하는지 몰라 직원이 추천하는 메뉴인 터키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용물을 골라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
터키 15센티미터 샌드위치가 5100원인데 2월 28일까지 3900원 할인 중이었다.
행사중이라서 인기 메뉴였고, 그래서 직원이 추천했나 보다.
천호에너지음료를 기념품으로 택했다. 매니아는 3만원이고 기념품을 선택하면 4만원인데 만원을 추가해서 기념품을 받는 게 나았다.
전마협 공식지정음료다.
달물영희님으로부터 포도당 10팩을 선물받았다.
지난 1월 27일 전마협에서 제공한 타우린 팩을 먹어보고 이 기념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술로 근육과 정신적인 통증을 이겨내고 있다는 로운리맨님, 매우 우울하다고 했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훈련 성과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동아마라톤에서 기록을 세우려고 했던 꿈이 좌절되어 허탈하다고 했다. 석달 넘게 정말 열심히 해왔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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