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9 모이자! 달리자! 월드런마라톤(2019/01/27)-FULL 195

HoonzK 2019. 1. 30. 22:41

건달프 안녕. 건달의 프로같은 질주를 보여주면 좋겠는데......


 풀코스. 하프를 두 번 왕복하는 코스. 틀림없이 한번만 왕복하고 하프로 타협하는 주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코스. 부담스러운 암사대교 오르막을 두 배로 경험해야 하는 코스. 부상이 다 나은 것도 아니고 훈련도 부족하니 출전하지 말까 하는 유혹에 시달렸다. 매니아로 신청해서 출전하지 않으면 참가비만 날리는 것인데. 롱 코트 기념품도 확보하지 못한 마당에. 늘 새벽 3시가 다 되어 자는 사람이 마라톤 대회 전날이라고 그날만 일찍 자기도 힘들었다. 결국 부족한 잠을 설치며 일어나 밥까지 먹고 움직였다.


 전국마라톤협회(전마협)가 주최하는 풀코스 2회전 대회라면 1회전을 마치고 2회전에 나설 때 꿀물을 마실 수 있는데 이번엔 마실 수 없었다. 꿀물을 담아둔 통이 텅텅 비어 있었다. 참가 인원이 적지 않은데다 빨리 달릴 수 없어 내게 돌아올 몫이 없었던 것이다. 꿀 물통을 기울여 보았지만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시간만 버렸다. 풀코스에 출전한 希洙형님이 하프만 달리고 바로 골인하는 모습을 코 앞에서 보고도, 두 달이 되도록 낫지 않는 햄스트링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부상중인 만큼 운동량이 현저하게 줄어 불어난 체중으로 버거워하면서도 끝까지 풀코스를 달리겠다는 의지로 2회전에 나섰는데..... 기운이 빠지고 마음도 상해서 남은 21킬로미터를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  나를 따라오는 하프 완주자가 있었다. 오늘 왜 이렇게 늦게 뛰어요? 효준님이었다. 햄스트링 부상이라서요. 햄스트링 부상이라면 뛰지 말았어야죠. 그냥 부상 전보다 30분 쯤 늦추어 뛰고 있어요. 서브 4는 했으면 좋겠어요. 이 분의 차가 주차된 곳까지 6백 미터 이상 함께 달렸다. 1시간 47분대로 골인하여 혹시나 하프 입상을 기대했는데 100위 기록이 1시간 36분대라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100위까지 트로피를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프는 빠른 주자들이 많았다 치고, 풀코스는 서브 4만 해도 100위 이내 입상이 무난하겠구나 싶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파도 입상했다는 기록을 남기며.... 흐흐흐. 그런데 이건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서브 3 주자 26명을 포함하여 3시간 30분 이내 완주자가 무려 88명이 나왔다. 100위의 기록은 3시간 36분 56초였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간식이 놓인 급수대를 기대하며 달렸지만 다음 급수대에는 물밖에 없었다. 집어든 컵이 비어 있기까지 했다. 두번째 만나는 급수대인데도 어느 지점에 간식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결국 건너편 급수대까지 가서 간식을 챙겼다. 늦게 에너지를 충전하는 만큼 25킬로미터 이후에는 수시로 쵸코파이와 바나나를 먹었다. 31.6킬로미터 지점에서 타우린 팩, 37킬로미터 지점에서 파워젤을 받았다. 파워젤은 먹지 않고 들고 골인했다.


 27.1킬로미터부터 28.1킬로미터까지의 페이스는 5분 40초였다. 3시간 59분대에 딱 들어맞는 페이스. 28.1킬로미터에서 29.1킬로미터까지는 6분이 넘게 걸렸다. 지난 1월 1일 이후 인터벌을 포함한 장거리 훈련을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힘들어졌다. 훈련이 부족하면 풀코스 후반은 지옥고(地獄苦)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더욱이 이 대회는 암사대교 3단 오르막이 버티고 있었다. (아이유의 3단 고음처럼 3단 오르막이 있다고 하여 마스터즈들 사이에서 아이유 3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32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최남수, 김범연 4시간 페이스메이커 두 분이 나를 제치고 나섰다. 내 옆에서 제한시간 30시간의 홍콩 울트라 산악마라톤 출전 경험담을 내내 들려주던 한구님도 내 앞으로 나갔다. 10킬로미터 남았을 때 이제부터 6분 페이스로 가면 정확히 4시간 00분 10초 정도에 골인할 수 있었다. 아무 구간에서나 조금만 속도를 올리면 3시간 59분대 골인은 무난해졌다. 35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4시간 페메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최남수 페메님이 왜 이렇게 늦게 달리느냐고 물었다. 부상회복중이라 조심하고 있다고 답했다. 통증이 올라올 것같으면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견디고 있다고.....


 35킬로미터 이후에는 누구의 추월도 허용하지 않는 레이스를 펼쳤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명홍진 수원샛별마라톤클럽 회장이 파이팅을 외치며 치고 나갔다. 여자 10위 주자도 내 앞으로 나갔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점점 골인 지점이 가까워진다는 안도감 보다는 훈련 부족이 안겨줄 시련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후반에 내게 추월당하던 고운인선님은 보통 때보다 10분 이상 빠른 속도로 달려갔고, 인천고 춘효님은 단 한 차례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천고 길석님은 오르막만 나오면 걸었는데도 서브 4에 부합되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종아리 햄스트링으로 후반에 속도가 떨어졌던 연형님 역시 근래 보기 드문 페이스로 달려나갔다.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다 후반에 질주하는 제비한스님은 3시간 50분까지 기록을 당겼다.


 나만의 맞춤 레이스가 필요했다. 체력을 안배하고 조절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4시간을 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200번 가까이 달린 풀코스의 경험이 나 자신을 4시간 이내의 주자로 이끌어주었다. 3시간 57분 53초 09로 골인했다. 첫 1킬로미터를 6분 5초로 달렸던 것과 비교하면 선전한 것인데.....  25킬로미터까지 잡담 동반주를 했던 모철님은 후반에 잠시 걸어서 4시간 5분에 골인했다고 했다. 어떤 주자는 화장실에 잠깐 들르는 바람에 4시간 1초로 골인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 화장실에 두 차례 들르고도 서브 4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 지난 해 똑같은 코스에서 3시간 34분 36초로 달렸던 사람이 내가 맞을까? 햄스트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다고 해도 최근 몇 년 간 보인 기량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16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2년 동안 반짝 빛났던 25개월간의 질주는 죽을 때까지 추억으로만 남지 않을까? 햄스트링 부상을 안고도 서브 4로 골인하는 것이 놀랍다는 평가를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이러다 내 수준에는 간섭포(간신히 서브4 완주)가 딱 어울리겠다는 결론이 나겠지 싶었다.




 오전 8시경 우연히 잠실종합운동장역에서 로운리맨님, 원희님과 만나 대회장인 한강시민공원 잠실지구 청소년광장까지 동행했다. 두 사람 다 하프 참가라고 했다. 로운리맨님은 지난 1월 13일 풀코스 최고 기록을 세우더니 이번에는 하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코스가 쉽지 않은 곳인데도....


 짐을 맡긴 후 화장실에 다녀왔다. 출발선으로 오니 풀코스, 하프코스 주자가 동시 출발이라 집결지가 매우 혼잡했다. 너무 늦게 출발하여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보다 뒤에서 달렸다. 조금씩 속도가 올라왔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 바로 뒤에 붙어 달리게 되면서 옆의 모철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모철님은 풀코스 1천회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전날도 부산에서 풀코스를 달리고 왔다고 했다. 서브 3로 달린 것은 추억으로 삼고 있고 요즘은 횟수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1년에 180번 넘게 풀코스를 달린 일도 있고, 한 주라도 풀코스를 거르면 체중이 3킬로그램쯤 찐다고 했다. 내가 지난 1월 1일 이후 첫 대회라고 하니 어쩐지 몸이 무거워 보인다고 했다. 후반에 기온이 오르면 츄리닝 바지가 성가실텐데 그 때는 벗고 달리라고 했다. 980번 쯤 풀코스를 달린 분이라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나라 풀코스 1천회 9번째 완주자가 될 것이었다.


 일부 얼어 있는 한강을 보면서 깊은 겨울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다행이었지만 추웠다. 암사대교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기온도 낮고 맞바람도 불어서 입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입이 돌아갈까봐 버프를 끌어올려 입을 막았다. 그래도 덮어쓰고 있던 비닐은 4킬로미터를 지나 벗었다. 다리 통증이 잠시 느껴지지 않을 때면 혹시 후반에 미친 척하고 질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통증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번엔 두 달 동안 꾸준히 불어난 체중 때문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자제하는 레이스를 펼쳤다. 잘 달린 적이 있었다는 기억을 지웠고, 잘 달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버렸다.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면 버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몇 차례 마주치는 바깥술님은 늘 내가 먼저 알아 보고 인사했다. 그럴 때면 빨리 오라는 답만 들었다. 오늘 달리기로 2월 17일에는 지금보다는 나아졌으면 했다. 연중행사처럼 이어온 설날 연휴 풀코스를 올해는 거를 수밖에 없을테고, 3주를 기다려야 풀코스를 뛸 수 있었다. 격주 간격 출전이 딱 좋은데..... 햄스트링 부상에서 회복된다면 오전이고 오후고 시도때도 없이 달려서 일단 체중을 빼고 인터벌 훈련도 하리라 각오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만약 내 몸이 4시간 이내의 달리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것도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4시간을 넘기지는 않았다. 간신히 서브 4에 성공하기 4회 연속인데 그 기록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을 경우 다음 회차는 그 기록이 뻔하다.  그동안 잠잠했던 발바닥 통증까지 도졌는데 발바닥 통증 대신 햄스트링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차라리 발바닥이 아픈 게 낫겠다.


건달프 안녕. 건달의 프로같은 질주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젠 정말.




대회장에 도착하여.... (로운리맨님이 찍어주심)





 로운리맨님과 함께 (원희님이 찍어주심)



 로운리맨님, 원희님과 함께......




 출발 직전 중무장한 상태에서.....(希洙형님이 찍어주심)




 완주한 후..... 춘효님, 한구님과 함께....


 고개숙이고......






전마협 메달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네......



 등에 통증이 있어서 테이핑을 하려다 그냥 포기함.....


대회를 마치고 돌아봄.....



100위 기록이 3시간 36분 56초.... 101위는 100위와 4초 이내의 차이로 바깥술님이 차지함.... 아까워라. 후반에 여남은 명에게 추월당한 게 문제였음.




기록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에너지젤을 먹지 않고 그냥 들고 골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