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6회 동계마라톤대회(2019/03/02)-FULL 198

HoonzK 2019. 3. 5. 12:24

  아황산가스, 석영, 납.... 유해물질이 가득합니다. 미세 먼지가 매우 심합니다. 하지만 대회 출전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조깅하는 것처럼 달릴 생각도 없습니다. 나태하고 느슨한 타협으로 달리기를 마무리지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일부러 천천히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서 느끼는 어설픈 만족감 따위는 필요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KF94 황사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유일한 주자가 나였다. 6일 전 풀코스를 달리고 난 후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피로감 때문인지 햄스트링 통증이 다시 도진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대회 명칭이 동계풀코스에서 동계마라톤으로 바뀌었는데 이 대회는 4년 내리 출전한 것이었고, 달릴 때마다 오금 통증이니 대회 전 과식이니 하면서 출발하기 전부터 낙담하고 달린 대회였다. 올해라고 달라질 게 있을까? 올해는 대회가 2월이 아니라 3월에 열렸다. 배낭 기념품 때문에 3월 1일 100주년 전마협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참가자가 많지 않은 대회였다. 간밤엔 네 번이나 깨었다 잠들기를 반복한 끝에 어렵게 일어나 집을 나섰다. 늦게 출발한 데다 환승까지 잘못하여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는 여유가 없었다. 아직 3월 초인데 8시 풀코스 출발은 너무 일렀다. 스트레칭 시간을 평소보다 줄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간단하게 몸을 푼 나머지 달리고 나서 무릎에 통증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이런 경험은 더러 있었다. 이번에는 초반에 천천히 달려 몸이 풀릴 때까지 조심하기로 했다.)


 조심한 탓일까? 몸이 나쁜 탓일까? 직전 마라톤 대회 때보다 느려졌다. 1킬로미터는 5분 35초가 걸렸다.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4시간 15분 페이스메이커,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순차적으로 따라잡았다. 2킬로미터까지는 바깥술님이 함께 하였는데 바깥술님은 전날 풀코스를 달렸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면서 보조를 맞추겠다고 했다. 아무리 연이틀 풀코스라고 하지만 전날 3시간 20분으로 달린 분이 서브 4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요라고 잡아 끌어도 속도를 늦추었다. (371번째 풀코스를 달리는 분이 알아서 할텐데.....) 안동제비원마라톤틀럽의 범연님이 앞질러 가며 내게 인사를 해왔다. 용왕산마라톤클럽의 홍순진 고문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지난 해 동아마라톤 이후 첫 풀코스 출전이라고 하는 이 분은 52세에 마라톤에 데뷔하여 56세에 서브 3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希洙형님에게서 내 이야기를 자주 들어 나를 잘 안다고 했다. 60대 후반이라도 기운이 넘쳤다.


 지난 주에 비하여 내 복장은 가벼워졌다. 반바지에 긴팔 티셔츠 한 장만 걸쳤고, 장갑을 끼지 않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점점 기온이 오를테니 반팔을 입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다. 출발 시간이 8시로 빨라서 정오가 되기 전에 레이스를 마칠테니 지난 주처럼 덥지는 않으리라. 5킬로미터까지는 26분 30초가 걸렸다. 일주일 전보다 1분이 늦었다.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가 꽤 앞에 있으니 속도가 떨어진 것인데 내가 스스로 속도를 늦추었다고 믿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달렸지만 이내 벗어서 허리춤에 끼었다. 마스크는 끝까지 허리춤에 걸려 있었다. 한강에 내려 앉기 전 마치 정지된 듯한 동작을 보여주는 민물가마우지를 보며 몇일 전 본 엘리트 선수들의 동영상을 떠올렸다. 공중에 일시 정지된 느낌일 때 발을 바꾸는 주법을 선택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터덕거리는 행동은 금했다. 덕분에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까지는 구간 기록이 30초 정도 빨라져 26분이 걸렸다. 살이 많은 주자가 선택할 주법은 아니었다. 불어난 체중이 가하는 힘 때문에 완주 후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이 찢어져 있었다. 아킬레스건도 아팠다. 마곡대교 1차 반환점까지는 55분 37초가 걸렸다. 반환하기 전 보니 3시간 페메, 3시간 30분 페메가 있었는데 다들 꽤 많은 주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박연익님은 3시간 30분 페메를 담당하고 있어 인사를 주고 받았다. 특전사님은 이틀 연속 풀코스인데도 박연익님 바로 뒤에 있었다. 반환한 후 보니 바깥술님과 달물영희님은 4시간 페메보다 앞에서 달리며 소리쳤다.  빨리 가. 따라잡힐 수도 있어. 잡혀도 상관없어요.


 아주 가끔 기록을 체크했다. 5분 11초 페이스. 한동안 일정했다. 3시간 45분 페메 두 분과는 400미터 쯤 떨어졌다가 점점 거리가 줄어들어 안양천에 들어선 15킬로미터 지점에서는 200미터까지 거리를 좁혔다. 서브 345는 5분 19초 페이스이니 달리면 달릴수록 그 거리는 줄어 들었다. 페메 두 분 말고도 레이스패트롤 한 분도 볼 수 있었는데 헬스지노님이었다. 3시간 45분 페메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난 주에는 하프 이후 따라잡혔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100명도 되지 않는 풀코스 주자가 주로 곳곳에 흩어져 달리고 있는데 32킬로미터 주자들이 빠져나가고 나자 훨씬 한산해졌다. 산책하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미세먼지가 주로를 풍성하게(?) 채운 덕분이었다.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대회 출전을 포기할 수는 없고...... 건강을 악화시키기 위해 달리는 게 마스터즈들인가 반신반의하면서 달렸다. 그러다가 미세먼지를 잊었다. 미세먼지까지 신경쓰면서 풀코스를 달릴 여유는 없었다. 22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는 3시간 45분 페메와의 거리가 50미터 이내로 줄어들어 곧 페메를 따라잡을 것같았다. 그러나 23킬로미터를 넘어가면서 피로감이 느껴졌다. 오른쪽 햄스트링에 숨어 있던 통증도 올라왔다. 부상에서 많이 회복했지만 다 낫지는 않았다는 것.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계속 스피드를 유지하다가는 아예 못 뛰게 될 수도 있었다. 광명대교를 지나 25킬로미터를 넘어야 반환인데 3시간 45분 페메와는 다시 거리가 벌어졌다. 나만 힘들어진 게 아니었다. 3시간 30분 페메와 함께 가던 특전사님은 3시간 45분 페메보다 늦어졌다. 헬스지노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맞은 편에서 오던 헬스지노님이 내게 손을 흔들어 파이팅을 보내었다. 아세탈님 예언이 맞았다. 이 시점이 고척스카이돔 부근이었다. 고척스카이돔이 보이자 넥센 히어로즈 야구팀이 떠올랐고, 넥센 경기를 보러 간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는 아세탈님이 또 한번 떠올랐다. 풀코스를 달리는 아세탈님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2차 반환할 때 칩 인식음을 들었다. 통제 요원은 내 번호도 기록했다. 26킬로미터를 넘겼을 때 건너편에서 오던 바깥술님이 외쳤다. 특전사님. 따라잡아. 바로 앞에 있어.  바깥술님은 연배가 비슷한 특전사님을 자주 의식했다. 마음처럼 쉽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4시간 페메보다 백여 미터 뒤쪽에서 달려오는 希洙형님은 여유가 없을텐데도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주셨다. 이 일로 서브 4에 실패하지는 않으시길..... 홍순진님, 삼척만섭님, 윤동님, 두경님, 은수님, 용각님, 맹순여사님 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3시간 45분 페메 풍선을 볼 수는 없었지만 헬스지노님은 볼 수 있었다. 헬스지노님이 화장실에 가면 나도 화장실에 갔기에 바로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야금야금 거리를 좁혔다. 급수대가 나올 때마다 헬스지노님이 잠시 달리기를 멈춘 덕분에 30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는 매우 가까워졌다. 30.2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정확히 2시간 40분이었다. 6일 전 챌린지 레이스 30킬로미터 기록이 2시간 40분이었으니 조금 빨라진 것이었다. 화장실에 들렀는데도...... 남은 12킬로미터를 1시간 4분대에 달릴 수 있다면 서브 345를 달성할 수 있었다. 올해 최고 기록으로.


 32.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헬스지노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안양천변에 거대한 토끼가 나타났다. 너무 신기하여 헬스지노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헬스지노님은 말이 없었다. 토끼를 못 본 것인지, 보고도 말이 없는 것인지...... 마라톤할 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본인의 입장을 무언으로 표현했다. 서브 345가 가능하려나 하고 큰 소리로 중얼거려도 일체 답이 없었다.


 헬스지노님은 직전 마라톤 대회와는 달리 내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 옆에서 보조를 맞추거나 내 앞에서 달리거나 했다. 가끔 돌아보았는데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마디 말도 없었다. 주로의 떠벌이 강건달과는 비교되는 묵언수행 마라토너였다. 이 말없는 달림이는 안양천을 빠져나가기 직전 자신의 어깨 높이 구조물에 손을 올려 포도당 팩을 잡았다. 아마도 안양천으로 진입하기 직전 일부러 올려 놓았던 것같았다. 36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 한강변을 달리게 되었다. 세상에! 말을 잊은 듯 보였던 주자가 입을 열었다. 포도당 팩을 불쑥 내밀면서. 입에 다 짜 넣어요!  포도당이 아니었나? 손으로 누르니 진액이 흘러나왔다. 맛을 보니 꿀이었다. 빈 포도당 팩에 꿀을 담아온 것이었다. 먹고 난 후 감사의 표현을 내 방식대로 했다. 와. 힘이 난다. 힘이 나.


 37.2킬로미터 지점 급수대. 바로 앞에 있던 헬스지노님이 드디어 내 달리기에 관여했다. 치고 나가요. 네? 그래도 물은 마셔야죠. 물을 마시기가 무섭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속도를 올리는 일이 자의가 아니라 강요에 의해서라면 더 견디기 힘들겠지만 이번의 강요는 내가 바라던 바였다. 이 속도 내기는 내 자의에 의한 것이라고 믿으며 킬로미터당 20초 정도씩 빨리 달렸다. 남은 5킬로미터를 24분대로는 못 뛰어도 25분대로는 뛰자고 결심했다. 5킬로미터 남았을 때 3시간 18분 후반대였으니 골인 지점까지 26분 이내로 달리면 서브 345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다리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이 피로감 때문이기를 바랬다. 인상을 쓰면서 속으로 말했다. 평소에 못하던 인터벌 훈련을 이제서야 하는구나. 마라토너가 편하고 즐겁게 달릴 수만은 없는 것이지.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고통을 가할 줄 알아야 해. 이 고통 덕분에 다음 고통이 견딜만해질 것이고, 그 고통은 나아진 기록으로 보상받을 거다. 그 때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었구나 하며 만족할 수 있겠다.  헬스지노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뒤에서 바짝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더 속도를 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독려하는 사람이 없어지니 나태한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킬로미터당 5분 이내로는 결코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라도 4분 58초로 달리지 못하면 3시간 20분대 페이스로의 회귀는 불가능한 법인데........ 그래도 꽤 속도가 올라붙어 전혀 보이지 않던 3시간 45분 페메가 보였다. 이분들은 3시간 43분대로 골인하기 때문에 내가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이분들보다 먼저 들어간 주자가 특전사님이었다. 3시간 45분 페메보다 뒤에 있다가 후반 역주를 하여 3시간 40분대까지 기록을 끌어올려 14등을 했다고 했다. 나는 15등이었다. 골인 직전 카메라맨을 찾아 V자를 날리면서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3시간 43분대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3:44:03.73


 헬스지노님은 나보다 3분 17초 늦게 골인했다. 골인한 후 생수, 간식, 메달, 기록증을 챙기고 물품을 찾은 뒤 스마트폰부터 꺼내어 골인 지점으로 갔는데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전에 바깥술님과 달물영희님이 골인하고 있었다. 달물영희님은 여자부 1위였다. 달리는 물개들 팀은 달물영희님이 결승 테이프를 끊는 장면을 찍기 위하여 달물영희님에게 골인 아치를 몇 번 왔다갔다 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신발에 부착된 칩은 떼어내고 사진을 찍으라는 주최측의 요청을 받았다. 달물영희님은 일주일 전 대회와 헤깔렸는지 배번에서 칩을 뜯어내려고 하였다. 여자부 2위는 영희님과 같은 동호회에서 차지하였고, 여자부 3위는 생애 처음으로 풀코스를 달린 주자가 차지하였다. 希洙형님은 여자부 3위보다는 빠른 기록으로 골인했다. 3시간 57분 55초. 동아마라톤 때 서브 4를 목표로 했는데 훈련주에서 이미 달성하여 기분이 좋아보였다. 지난 주 쥐가 나서 4시간 16분으로 골인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希洙형님, 홍순진 고문님과 엄니식당에서 뒷풀이를 하였다.



골인하기 직전 카메라를 보며 V자를 날리는 여유를 보인다.




3시간 44분대.... 기록은 조금씩 좋아진다.

몸관리를 잘하면 3월 17일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39분으로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마 첫 3시간 30분대!








매년 똑같은 코스를 달리는 대회이다.




늦게 도착하여 급했지만 사진은 찍었다.





 希洙형님.... 골인 장면을 찍어드렸다.






 배낭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이름을 크게 새긴 덕분에 다른 주자들 이름을 많이 외웠다.



몇 달 동안 잘 신었던 풀코스 전용 양말을 버리게 되었다. 어떤 양말을 구해야 하나? 너무 얇아도 안 되고, 너무 두꺼워도 안 되고, 중목 흰색이어야 하고.....




출발 전 希洙형님이 찍어준 사진.... 황사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마라톤 후반..... 만난 希洙형님이 찍어주었다. 내 그림자가 살짝 무섭다.


완주를 마치고......


이 사진도 希洙형님이 찍어주었다.



특전사님, 달물영희님, 맹순여사님, 은수님 등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배번도 달지 못했다.


엄니식당 제육볶음 3인분..... 홍순진 고문님, 希洙형님과 함께....


부추비빔밥까지 해서 잘 먹었다.

 


홍순진 고문님이 다녀왔다는 금강산마라톤 일화가 흥미진진했다. 주로 전체를 감시 요원으로 둘러싼 것부터 아름답기 짝이 없는 봉우리까지.....

내게 서브 3를 하라는 말까지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