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만에 풀코스 기록이 13분 늦어진 데 대하여 허수아비님과 법규님은 그동안 강도높은 훈련으로 피로가 쌓여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내 생각에는 몸을 제멋대로 방치한 때문인 것같았다. 전날 저녁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 난 뒤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짬뽕을 먹었다. 다음날 새벽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뚱땡이가 있었다. 도대체 너 누구니? 일주일만에 그렇게 변할 수 있니? 지난 추석 당일 기록이 잘 나왔다고 몸은 잘 만들어졌다고 속단했던 것 아니냐?
첫 1킬로미터는 5분 25초가 걸렸다. 최근 페이스보다 10초 빨랐다. 다음 구간은 5분 5초였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잠실대로를 지나 잠실대교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가까스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늘한 날씨의 혜택을 받고도 몹시 굼뜨게 나아가고 있었다. 잠실대교를 건너갔다 돌아오는 초입에 5킬로미터 표지판이 있었다. 26분이나 걸렸다. 로운리맨님은 벌써 2분 전에 이 지점을 지나갔다. 오늘 로운리맨님과 배틀하는 것 맞는가? 늦게 출발했다는 법규님은 포항에서 밤차 타고 올라와 뒤에서 따라붙으며 오늘의 목표 기록은 특별히 없고 두 사람의 배틀을 가까이서 지켜 보는 것이라고 했다. 법규님도 이미 앞으로 치고 나간 상태에서 88서울 올림픽 30주년 기념이라는 이유로 잠실대교를 건너갔다 오는 코스를 다 달리는구나 하는 감회에만 젖었다. 강선생 파이팅. 이 목소리는 바깥술님이었다. 몇 백 미터 쯤 떨어져 오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애쓰기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5분 이내의 페이스는 나오지 않았다. 최근 하프 기록으로 볼 때 3시간 17분대 기록이 예상되는 로운리맨님보다 앞서 골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다만 3시간 20분대로는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5분 이내의 페이스가 결코 나오지 않으니 가망이 없었다. 풀코스 1천 회 완주에 도전하는 용구님을 찾아 인사드리고 난 뒤에는 10킬로미터 주자 가운데 아세탈님을 찾기 위하여 애썼다. 주로를 가득 메운 인파 가운데에서 아세탈님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 그나마 찾기가 쉬웠을텐데 미리 만나지도 못했으니 눈에 번쩍 들어오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했다. 10킬로미터에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많아서 주로가 한결 밝아진 느낌이었다. 도로 중앙에 바짝 붙어 달리며 아세탈님을 찾았다. 잠실대교 남단삼거리쪽에서 막 오르막을 타기 시작한 아세탈님을 찾을 수 있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서울하프마라톤 대회 기념품을 입고 있어서 그 파란색이 다른 주자와 차별성이 있었다.
더 이상 눈길을 반대편으로 보낼 일은 없어져서 전방을 주시하며 달렸다.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바깥술님이었다. 오늘 배틀에 대한 예상부터 내어놓으셨다. 후반에 치면 빨리 들어갈텐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몸이 나아가질 않네요. 8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41분 30초가 넘어갔으니 1분 30초 이상 늦어지고 있네요. 1분 30초야 후반에 치면 바로 줄어들텐데 걱정할 것은 없지. 바깥술님이 그렇게 받아주었으나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시간을 더 까먹으니 가망이 없어 보였다.
9킬로미터를 넘어서 한강변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이때부터는 자전거를 조심해 달려야 하는 구간이 이어졌다. 한동안 대로에서 달렸는데 이제는 예년처럼 좁은 도로를 따라 이것저것 신경써 가면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짠!'하는 목소리와 함께 법규님이 뒤에서 나타났다. 먼저 가신 분이 왜 뒤에서 오시나? 화장실에 갔다 왔다고 했다. 도저히 참고 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늦은 만큼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이 모습은 지난 해 옥천포도마라톤의 내 모습과 같았다.
악전고투하는 느낌으로 나아갔다. 바깥술님과 보조를 맞추기를 거듭했다. 12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조금 속도가 난 것같더니만 이내 떨어져 14킬로미터를 지나기 전에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무리들에게 추월당하였다. 로운리맨님과의 배틀은 완전히 접었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배틀을 시작했다. 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달래가며 달리고 있었다. 올해 두 번째로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애먹고 있었다. 간밤에는 추위에 떨며 잠을 설치다 시간마다 깨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것도 문제였다.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돌아오는 로운리맨님을 만났다. 흰 피부의 케냐 선수같은 동작으로 노원희규님까지 제친 상태였다. 로운리맨님은 내게 빨리 뛰라고 종용했지만 의지만으로는 속도를 올릴 수 없었다. 암사대교 3단 오르막을 넘지 않아도 되었는데 초반에 잠실대교 방향으로 갔다 오면서 올해는 오르막을 피하게 된 것이었다. 2차 반환한 후에는 뒤에서 오시는 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希洙형님, 인천고 기옥님, 춘효님, 은수님.... 希洙형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어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11개월만에 허수아비님을 만났다. 울산에서 밤차 타고 올라오셔서 힘드실텐데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하이파이브를 했다. 1천회 완주에 나선 용구님에게는 팔을 높이 들어 박수를 쳐드렸다. 남수님, 태현님, 철선님 등이 스피드를 늦추어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아이언맨 복장으로 달리는 기민님을 추월하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언맨 복장을 하면 아이언맨처럼 힘이 날까요 물으며.
화장실에 들러 시간을 좀 썼다. 그 바람에 바깥술님을 따라잡는다고 애를 먹었다. 따라잡을 때면 5미터, 4미터, 3미터 이러면서 예고를 했다. 20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1시간 45분이었다. 직전 풀코스에서 21.1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1시간 44분이었는데 꽤나 늦어졌다. 어림잡아 하프를 1시간 50분을 살짝 넘겨 통과했다. 지금부터 1시간 30분대 후반으로 달리면 3시간 29분대로 골인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후반 하프를 1시간 30분대로 달릴 수 있다면 애당초 초반 하프를 1시간 50분을 넘겨 달릴 일은 없었다. 길가의 코스모스도 보고, 전방의 잠실롯데타워도 보면서 전의를 불태워야 하는데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일단 달리기 시작했으니 꿋꿋이 달려내어야지. 바깥술님에게는 목표를 다시 하향 조정했다고 했다. 3시간 44분대로. 그것도 안 되면 3시간 49분이고요, 그마저도 어려우면 서브 4로 하지요. 점점 멀어져 가는 3시간 40분 페메의 풍선이 이제는 자극도 되지 않았다. 토끼굴이 보이는 강변에 은기님이 나와서 물을 건네주셨다. 몸에 이상이 있어 뛰지 않고 응원만 나왔다고 했다.
25킬로미터가 넘으면서 양재천 방향으로 꺽었다. 이제는 나 혼자 달리고 있었다. 바깥술님은 초반에 나와 동반주한다고 힘을 너무 써서 근육이 파열될 지경이라며 속도를 늦추었다. 양재천에 들어서면서 조금은 나아진 것같았다. 몹시 허기진 배를 초코파이와 바나나로 채운 것이 에너지 충전이 되어 힘이 나긴 했다. 고운인선님 등 몇 분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달물영희님은 30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제쳤는데 달물영희님은 왜 뒤에서 오느냐고 물으며 의아해 하였다. 34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반환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나아가는데 이 구간이 몹시 지겨웠다.
앞선 주자들은 양재천 건너편 주로를 달리는데 그쪽은 그늘이었다. 싱글을 목표로 하는 광배님은 3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앞인지 뒤인지 모르겠지만 로운리맨님을 찾아 내었다. 스피드가 남달라 보였다. 나보다 4킬로미터 이상 앞서 있었다. 오늘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울 것같았다. 혹시나 하천 건너편에서 달리는 나를 볼까 했는데..... 로운리맨님은 그야말로 앞만 보고 폭풍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10월에 도전하는 네 차례 풀코스를 모두 서브 330으로 달려내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영동 1교에서 반환한 뒤 곧 34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났다. 양재천을 건너 그늘을 따라 달렸다. 35킬로미터 지점을 넘어서면서 속도는 올랐다. 의계님을 추월했다. 특전사님도 추월했다. 특전사님에게는 서브 3 주자가 왜 이렇게 늦게 달려요라고 물었다. 초반에 맹렬한 스피드로 치고 나갔던 헬스지노님은 걷고 있었다. 왜 걷느냐고 물으니 오늘은 하프만 달리고 마는 날이라고 했다.
37킬로미터 지점에서 3시간 15분이 넘지 않았으니 킬로미터당 5분 페이스로 달리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질주해 버리면 3시간 39분대는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앞에서 달리는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잡을 수 있든 잡을 수 없든 상관없이. 0.195킬로미터를 산입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미터는 1분 정도 여유를 벌어 놓아야 하는데..... 야금야금 시간을 줄여서 앞에 달리던 미정님도 추월했다. 4킬로미터쯤 남기고부터는 질주했다. 초반에는 아무리 끌어내려고 해도 나오지 않던 힘이 나왔다. 앞에 달리는 분들을 한 명씩 제치며 나아갔다. 고장났던 악셀레이터가 갑자기 고쳐진 자가용처럼 속도를 내었다. 35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면서 어느 정도 체중을 감량한 덕분이라고 믿었다.
2년 전 3시간 32분대, 지난 해 3시간 28분대에 비한다면 퇴보한 기록이지만 그래도 3시간 30분대로는 들어가려고 애썼다. 잠실종합운동장 남직문을 들어서기 전에 시계를 보니 이미 3시간 39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만약 운동장을 한바퀴 돌린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3시간 39분대는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골인점이 바로 있어서 3시간 39분대는 지켰다. 올림픽주경기장의 트랙을 돌면서 88서울올림픽 마라톤 주자같은 환상에 젖어볼 일도 없을 정도로 트랙에서 달리는 거리는 짧았다.
03:39:30.63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맡았던 진식님이 바로 앞에 골인하면서 나를 보며 악수를 청했다. 바로 직전 내가 추월했던 분도 악수를 청했는데 연형님이었다. 연형님인줄도 모르고 추월한 것이었다.
로운리맨님과 법규님이 옷을 갈아입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응원을 보내주었다. 로운리맨님은 3시간 10분대로 들어온 것같은데 끝내 기록을 알려주지 않았다.
법규님과 함께 허수아비님을 기다렸다. 법규님의 포항행 버스는 15시 30분이라 아직 여유가 있었다. 허수아비님은 4시간 50분을 살짝 넘겨 골인했는데 이런저런 애로 사항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두 분 다 그동안 풀코스를 달리면서 자전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일은 없었는데 한강시민공원과 양재천에서는 지나치게 자전거의 위협을 자주 받았다고 했다. 허수아비님은 자전거 바퀴가 발등을 지나가는 사고도 당했다고 했다. 지난 해 동아마라톤을 마치고 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양평해장국을 먹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두 분의 참가가 내게는 큰 격려 선물이 되었다. 올해 못 뵙고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새벽잠 반납하는 배려 덕분에 힘든 레이스를 펼치고도 기분은 좋아졌다.
달리는 도중 만난 希洙형님이 찍어주셨다. 그 무거운 노트9 스마트폰을 들고 뛰시니 놀라울 뿐이다.
올림픽 30주년 기념이라는 모토를 걸고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빨리 열렸다.
매년 10월 3일 개최되는 강남국제평화마라톤이 날짜를 10월 7일로 옮겼다.
지난 해에는 100위까지 시상을 했는데 올해는 30위까지로 시상 범위가 축소되었다.
지난 해 3시간 28분대로 입상했지만 올해는 엄두도 못내었다.
잠실대교를 건너갔다는 새로운 코스였다.
풀코스 초반이 10킬로미터 구간과 겹친 덕분에 아세탈님을 만날 수 있었다.
경품은 인연이 없었다.
대회 전날 저녁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상하이 버거세트를 먹었다.
얼굴이 붓고 옆구리가 부푸는 느낌이 들었다.
맥도날드에서는 콜라를 리필해 주지 않기 때문에 콜라 과다 섭취는 하지 않았다.
햄버거와 콜라를 먹은 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짬뽕을 먹었다.
클로렐라 짬뽕.... 식단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건 풀코스 마라톤을 앞두고 정신상태가 해이해졌다는 것이다.
30년 전의 서울 올림픽,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양평해장국에서 허수아비님, 법규님과 함께 양평해장국을 먹었다. 지난 해 동아마라톤을 마치고 먹었을 때보다 천 원씩 오른 가격이었다.
바나나가 많아진 것은 간식 지급대에서 로운리맨님이 챙겨준 덕분이다.
모든 게 길이었고, 모든 곳을 달렸다. 오로지 달릴 뿐이었다.-손기정의 말이 메달 띠에 새겨져 있었다.
대회 책자에 실린 대회장 배치도와 실제 배치도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수정된 내용을 담은 새 전단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풀코스 여자부 30위 안에 든 달물영희님이 부상으로 받은 에너지젤의 일부로 주셨다.
하이브리드 에너지젤 꿀홍삼.... 이런 것도 있었구나.
허수아비님이 주신 선물
수면용 에어쿠션과 안대, 귀마개다. 수면 장애로 시달리는 내게는 정말 고마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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