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09/24)-FULL ***

HoonzK 2018. 9. 29. 20:13

  목이 아팠다. 기분도 좋지 않았다. 눈이 아팠다. 풀코스 주자를 괴롭히는 일은 끊이지는 않는구나 중얼거리며 달려야 했다.


 과거의 기록을 찾아보니 2015년을 제외하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추석 때는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 참가했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하프 코스를, 2016년부터는 풀코스를 달렸다. 올해 추석에도 변함없이 도림천으로 갔다.


 새벽이 아닌 정오 출발이라 새벽잠을 설치고 나와야 한다는 부담은 덜었지만 늦은 출발이라는 이유로 새벽 3시가 넘어서 잤다는 게 문제였다. 아침에 일어나 대회 참가 준비를 하는데 이건 마치 새벽에 잠을 설치고 나온 것처럼 고단했다. 바깥술님이 서브 4 할 수 있게 페이스메이커나 하며 달리면 되니 괜찮다고 마음을 달래었지만 8일 전 3시간 32분대로 달렸던 때보다 몸이 훨씬 무거웠다. 그래도 꾸준히 훈련해 왔고 연습 차원에서 출전한 대회이니 견디어낼 수는 있으리라 믿었다.


 추석에 풀코스를 달리러 온 사람은 별로 없었다. 베를린 마라톤 기념품을 입고 나타난 홍진님, 전날 풀코스를 달리면서 4일 연속 풀코스에 도전하는 바깥술님과 보조를 맞추었다. 지난 두 차례의 마라톤과 똑같이 첫 1킬로미터가 5분 35초가 나왔다. 아무리 LSD 연습주로 풀코스를 소화하기로 했고, 기록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달리기로 했다지만 그동안 해 온 훈련량이 얼마인데 이렇게 굼뜨게 나아가는가? 반바지 위로 불룩하게 삐져나와 있던 옆구리살을 거의 없앤 보람도 없이..... 바깥술님은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해 줄 필요없으니 먼저 가라고 했다. 두 분 앞으로 치고 나가 선두로 달렸다. 베를린 마라톤 다녀온 사연과 전날 풀코스 달린 소감을 들어볼 기회도 없이 나 혼자만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믿기 힘들지만 다음 1킬로미터는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누가 미는 것같았다. 5킬로미터를 25분 30초 정도에 통과했다. 인원이 적은 만큼 오늘은 4회전이라 네 차례의 왕복 달리기를 잘 조절해서 끝내야 했다. 4회전이라 늘어난 노천 구간이라도 악착같이 기둥 옆의 그늘을 따라 가며 햇빛을 피하려고 애썼다. 양지에서 뛰는 분이 있으면 음지로 오라고 권하기도 했다. 1회전은 53분에 마쳤다. 돌아올 때 뙤약볕에 맞바람이 있어 속도가 제어된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이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직전 풀코스처럼 3시간 32분대로 골인할 수 있었다. 더 빨라질 수는 없을까? 조금만 더 애를 써서 3시간 20분대로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지난 6월 16일 3시간 27분대로 달리고 나서 아홉번의 풀코스를 달리는 동안 3시간 20분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정확히 100일이 되었다. 100일만에 서브 330 주자가 된다면 좋겠는데. 9월 최고 기록을 경신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 기록을 경신하고 9월에도 3시간 20분대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9월 하순치고는 더운 날씨였다. 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서 마지막으로 뛰었던 것이 지난 8월 5일. 폭염특보 속에서 달렸던 그 때에 비하면 감격스러울 만큼 시원한 날씨였다. 사람은 비교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힘을 내기도 한다. 그때보다는 훨씬 낫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뙤약볕이 견딜만 해졌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눈물나게 시원했다. 폭염특보 속에서 다섯 차례나 풀코스를 달렸던 덕분에 가을의 달리기가 너무 편해서 이러면 반칙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늘 구간에 들어오면 속도를 내지 말라고 해도 속도가 났다. 그러니 2회전을 마치는 시점, 즉 하프를 달렸을 때 기록이 1시간 44분이 나왔다. 건너편에서 오는 바깥술님에게 지금 3시간 29분대 페이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바깥술님은 따라잡힐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했다. 홍진님보다는 꽤 처져 있다가 바짝 따라붙은 것으로 보아 다음에 만나면 2위로 올라설 것같았다.


 천천히 달리는 것같아도 킬로미터당 페이스는 5분을 넘지 않았다. 4분 45초에서 55초 사이 기록이 자주 나왔다. 4회전을 할 경우 3회전할 때 속도를 늦추는 습성이 있으니 5분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 5분에 근접해도 5분을 넘지는 않았다. 3회전이 끝나기 직전, 30킬로미터를 넘게 달렸을 때 몹시 몸이 굼뜨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서브 330 능력이 되지 않는데 된다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었다.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직 내 능력으로는 3시간 20분대 재진입은 어려운 것이었구나. 좀더 살을 빼어야겠구나. 지옥같은 네번째이자 마지막 달리기를 시작해야겠군 싶었다. 콜라와 초코파이를 먹고 4회전에 나섰다. 37.2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3시간 5분이 넘지 않기를 기대하며 달려나갔다.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남은 5킬로미터를 킬로미터당 5분 정도로 달려도 3시간 29분대로 골인할 수 있도록.  2위 주자인 홍진님, 3위 주자인 바깥술님과는 꽤 거리를 벌려 놓고 있었다. 추월당하지는 않겠지만 피곤함이 몰려왔다. 풀코스는 편한 게 한번도 없군. 풀코스 3백회를 훌쩍 넘긴 바깥술님도 풀코스 가운데 어렵지 않은 풀코스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여유있는 연습주, 감량주를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내 한계에 도전하는 인생주(人生走)가 될 수밖에 없었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나 홀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꾸준히 달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고가 아래를 지날 때 갑자기 입 안으로 날아들어온 벌레는 목에 걸려 빠져나가지 않았다. 잡초 옆을 지날 때 눈으로 날아들어온 벌레는 각막에 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목이 아팠다. 기분도 좋지 않았다. 눈이 아팠다. 풀코스 주자를 괴롭히는 일은 끊이지는 않는구나 중얼거리며 달려야 했다.


 이번엔 춘마 에디션 마라톤화를 신지 않고 있었다. 낡은 연두색 타사재팬을 다시 신고 있었다. 찌릿찌릿 올라오는 발바닥 통증이 여지없이 찾아왔다. 이를 악물었다. 초반의 표정과 후반의 표정은 극과 극이었으리라. 아무래도 상관없어라는 희희락락한 태도가 반드시, 기필코 해내어야 한다는 자세로 바뀌었으니. 로운리맨님이 창안한 시보리 주법, 펜듈럼 주법을 모조리 끌어온 뒤 이것은 내 생애 마지막 마라톤, 또 한번의 메이저 대회라고 되뇌이며 틈을 주지 않고 도전했다. (시보리 주법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고, 펜듈럼 주법은 그 방법도 아직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는데.....) 마지막 반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5킬로미터 표지판, 그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3시간 3분이었다. 한숨돌렸다. 남은 5킬로미터를 27분 이내로만 달릴 수 있다면 100일만에 3시간 20분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페이스를 5분 25초로 늦추어도 3시간 20분대가 가능한 마당에 내가 선택한 것은? 킬로미터당 4분 45초의 페이스였다. 마지막 5킬로미터를 25분대가 아닌, 24분대도 아닌, 23분대로 내달렸다.


 3시간 26분 39초 93


 9월 최고 기록은 물론이고 지난 해 추석(2017/10/04)에 세운 4회전 3시간 26분 51초 기록까지 깨뜨렸다. 9월에 서브 330으로 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땀을 흘린 만큼 보상받는 것이었다. 최근 3주간 특별훈련을 실시한 덕분에 초반에 오버페이스했음에도 그 오버페이스를 이겨내었다. 8일 전 킬로미터당 5분 2초로 달렸던 페이스를 4분 53초로 끌어올린 것이다. 트럭 백미러로 눈을 보니 벌레가 눈동자 아래쪽에 붙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떼어 내었다. 어쩔 수 없이 먹어버린 벌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내 뱃 속으로 들어갔을까?


한달동안 킬로미터당 페이스는 업그레이되었다.


2018/08/26 영동포도마라톤 5분 26초
2018/09/09 국제관광마라톤 5분 19초
2018/09/16 황영조서울마라톤 5분 02초
2018/09/24 공원사랑마라톤 4분 53초





내 방에 걸려 있는 공원사랑마라톤대회 홍보 전단지


마라톤 힐링카페 입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꽃길 따라 내려가는 기분.....


낡은 마라톤화를 다시 꺼내어 신었다. 비싼 마라톤화를 신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연습주를 계획한 것이었다.


로운리맨님처럼 셀카를 찍어보았음.... 완주를 마치고....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에 달렸다. 햇볕이 강했다.



배번에 땀 자국이 그대로 배였다.


100일만에 3시간 20분대로 돌아왔다.


바깥술님, 근규형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신도림역 주변에 열린 식당이 없어서 차를 타고 역곡역까지 갔다.




나는 황태해장국을 먹었다.




두 분은 양선지해장국을 드셨다.


 바깥술님 양선지해장국.....


바깥술님이 주신 사과.... 맛은 없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