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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황영조 서울마라톤대회(2018/09/16)-FULL 182

HoonzK 2018. 9. 17. 22:35

 전마협 뚝섬 2회전 코스. 3시간 32분 25초 55. 풀코스 18위 입상.


 지난 몇 달 동안 다시는 이렇게 뛸 수 없을 줄 알았다. 9월의 시작과 함께 강훈련을 시작했지만 3개월 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2주간 지옥훈련을 이수한 끝에 맞이한 풀코스 마라톤. 당일 빗방울 떨어지는 서늘한 날씨였다. 옆구리 살이 어느 정도 빠져 스피드를 올리기가 편해졌다. 자주 깨었고 꿈도 잔뜩 꾸었지만 새벽에 일어났을 때에는 수면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식스 타사재팬 춘마 에디션, 내 생애 가장 비싼 마라톤화를 신었다.


 바깥술님과 보조를 맞춘 첫 1킬로미터. 일주일 전과 똑같은 5분 35초였다. 슬슬 워밍업하는 마음으로 달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주보다는 빨라질 줄 알았는데 역시 속수무책인가, 그동안 과도한 훈련으로 피로가 잔뜩 쌓여서 아직 기량을 회복하기는 어려운가. 옆구리살이 흔들리는 느낌이 사라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판단했다.


 좀더 여유를 갖고 달리기로 했다. 3시간 27분대로 달렸던 지난 6월 16일의 몸으로 돌아가려면 10월 초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오르막을 만나면서 발동이 걸렸다. 훈련 코스에 자주 들어 있는 오르막을 만나니 다른 주자들보다 빨라졌다. 1킬로미터에서 2킬로미터까지는 5분 20초가 걸렸다. 그리고 다음 구간은 4분 55초까지 나왔다. 그 페이스가 한동안 유지되었다. 달리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풀코스 초반에 5분 이내의 페이스로 달릴 수 있다니..... 날씨 덕분인가? 그런 것같기도 했다. 습도가 높아 땀이 많이 났지만 바람이 불어주니 달리기는 수월했다. 5킬로미터는 25분 55초가 걸렸는데 55초는 초반 2킬로미터에서 보탠 기록이었다.


 구리시에 들어선 후 암사대교까지 2킬로미터, 강동대교까지 다시 2킬로미터 남짓. 다소 지겨웠다. 분홍색 하프 배번을 제외하고 초록색 풀코스 배번을 세면서 지겨움을 이겼다. 현장접수자를 제외하고 나는 45위에서 50위 사이로 달리고 있었다. 찬일님이 조금 쳐진 선두권에서 분전하고 있어 응원을 보내어 드렸다. 그 외에 아는 분 가운데 나보다 앞에서 달리는 분은 연형님 뿐이었다. 달물영희님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 바깥술님이 내 등수가 47위라고 말해 주었다. 후반에도 페이스가 처지지 않는다면 트로피를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늦게 출발했으니 앞의 주자보다 조금 늦게 들어가도 순위를 당길 수 있어 보였다. (사실 이번 순위 결정은 넷타임이 아니라 건타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암사대교, 올림픽대교를 거쳐 뚝섬지구 수변무대로 들어갔다가 다시 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늘 꺼려지는 코스를 달리고 있었다. 같은 코스를 2회 달리게 되면 1회만 달리고 말까 하는 유혹에 너무 시달려 출발점에 오면 다시 출발하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하프를 달린 적이 없다는 암시를 거듭하면서 또 한번의 구리행에 나서야 했다.  몇 백 미터 앞에 있던 연형님이 가까워진 것이 11킬로미터를 넘었을 때였다. 1회전이 끝날 때까지는 페이스메이커 삼아 따라가야지 했는데 연형님의 페이스가 떨어지니 13킬로미터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제치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그때마다 풀코스 주자인지 아닌지 힐끔거리며 배번을 살펴보곤 했다. 입상에 은근히 집착하고 있었다. 1회전을 1시간 47분에 마치고 3시간 29분대로 달리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아직 그럴 몸은 아니었다. 2회전에 나서면서 5분을 조금씩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4분 40초에서 50초까지의 페이스가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어차피 불가능한 서브 330인데.....


 4시간 언저리의 페이스로 달물영희님과 동반주를 계속하는 바깥술님이 내게 26위라고 말해주었다. 많이 제쳤네.


 9월 최고 기록인 3시간 39분 04초를 깨뜨리는 데 집중했다. 이대로 달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록 경신이 가능한데 아직 내 몸을 알 수 없었다. 8월 26일의 영동, 9월 9일의 여의도 때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몸이지만 풀코스 후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승부를 걸 수 없었다. 조심스러워지니 자연스럽게 속도가 늦추어졌다. 칠마회 어르신을 만나면 '수퍼 시니어 칠마회 파이팅'을 외치며 말도 걸었고, 고운인선님, 태현님, 인천고 춘효님, 남수 페메님, 인천 윤동님, 상현님과는 손을 흔들며 응원의 메시지도 남겼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구간을 혈혈단신으로 달렸다. 하프 후미주자들로부터 응원을 많이 받았다. 외국인 David Plaskett님도 두 손을 들어 파이팅을 보내어 주었다. 젊은이들이나 여성분들도 힘들게 하프 후반을 견디면서도 분전하는 풀코스 주자를 응원해주니 너무 고마웠다. 그동안 이런 일은 거의 없었는데.....


 초코파이와 바나나를 먹고, 콜라 몇 번 챙겨 마시고, 물병을 들고 달리고, 주최측이 제공한 파워젤을 먹기도 하면서 32.2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시계를 보니 앞으로 남은 10킬로미터를 47분 30초에 달리면 3시간 29분대가 가능했다. 그 보다 빠른 페이스로 후반을 달려낸 풀코스가 더러 있긴 하지만 오늘 대회에서 내 몸이 그렇게까지 스피드를 올릴 수는 없어 보였다. 25위 이내의 주자로 한 등수를 줄인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2킬로미터에서 3킬로미터쯤 달려야 한 사람을 제칠까 말까였다.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을 자주 만나는 게 이 코스의 특징이기도 했는데 오르막이 나오면 더 속도를 올려 앞선 주자를 제쳤다. 북한산 가까이 살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트레일 러닝을 해 주는 게 여기서 도움이 되었다.


 5킬로미터 남았을 때 완주 기록을 미리 계산했다. 3시간 08분이니 킬로미터당 5분 페이스를 지킨다면 3시간 33분으로 골인할 것같았다. 9월 최고 기록 경신이 넉넉하니 돌연 승부욕이 사라졌을까, 아니면 제칠 주자들이 잘 보이지 않아 전의를 상실했을까.... 킬로미터당 페이스가 조금씩 늦어졌다. 5분 12초 정도. 40.195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3시간 23분 35초였다. 이제부터라도 5분 페이스 언저리로 달리면 3시간 33분 33초라는 재미있는 기록으로 골인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인정사정없이 내달렸다. 앞의 있던 주자들을 속속 제쳤다. 지난 2주 동안 수행했던 인터벌 훈련 덕을 꽤나 보았다. 평균 14킬로미터 내외를 달리면서 400미터 빨리 달리기 16회, 10분 빨리 달리기 3회, 3킬로미터 빨리 달리기 3회, 5킬로미터 스피드 훈련, 어떻게든 시간내어 달리기, 달리기 싫어도 악착같이 달리기 등. 1킬로미터를 4분 29초로 내달린 끝에 도달한 41.195킬로미터 지점에서 골인 지점까지 4분 19초로 속도를 더 올렸다. 덕분에 3시간 32분 25초로 골인했다.


 골인하면서 입상 목걸이를 받았는데 18위였다. 입상 목걸이를 바로 준다고? 그렇다면 오늘 대회는 넷타임 시상이 아니라 건타임 시상이었구나. 출발할 때 20초 이상 늦게 출발해서 손해를 보았는데 바로 앞 주자와 1분 정도 차이가 나서 건타임 때문에 순위가 바뀌지는 않았다.
 
 천막 아래 의자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과 대화했다. 낯선 분인데 나를 아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 보니 레이스 운용을 잘하더라고 칭찬하면서 자신은 지난 주 철원에서 아주 힘들게 달려서 오늘은 중도 포기했다고 했다. 또 한 분은 11위 입상자인데 한 끝 차이로 무대에 올라가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1분 거리에 10위 주자가 보이는데 아무리 애써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상위권일수록 한 명 제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쳐드렸다. 11위 입상 기록이 3시간 14분이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3시간 24분을 잘못 들은 것이었다. 이 분은 다른 분이 11위 트로피를 가져가 버려서 자신의 트로피를 받지 못하는 불상사도 당했다. 지난 6월 10일 로운리맨님과 배틀할 때 같은 코스에서 3시간 32분대로 골인하고 6위였는데 이번에는 18위이니 잘 뛰는 분들이 그 때보다는 많이 나온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여자부 2위로 골인하는 달물영희님(아쉽게 4시간을 살짝 넘겼네. 여자 1위도 4시간을 넘겼으니)과 남자부 41위로 골인하는 태현님, 43위로 골인하는 바깥술님을 응원했다. 바깥술님의 트로피는 대회본부에서 내가 받아 드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14시 20분경 상봉역에서 로운리맨님과 만나 식사했다. 가평에서 마라톤을 마치고 돌아오다 보면 상봉역을 지나게 되고, 나 역시 7호선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보면 상봉역을 지나게 되니 회합의 장소로 상봉역이 딱 맞았다. 옛골토성에서 뚝불고기를 먹었다. 로운리맨님은 체온계와 USB 선풍기를 선물했다. 만나기만 하면 뭔가 주시려고 하니 나는 선물을 모조리 흡수하는 불가사리인가.




18위 목걸이... .




아식스 타사재팬 춘마 에디션을 드디어 신었다. 지난 해 구입하고 10개월만에......


주중 3회 신어 적응을 마쳤다. 발바닥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2천 킬로미터 이상 달린 신발보다는 나았다.


  春川이라는 한자가 수놓아져 있다.




 





 이 코스...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이니 지겨워진다. 2회전만 아니더라도 견딜만 할텐데.....


18위 입상 트로피.


이제 커피를 블랙이 아닌 카라멜 라테로 주니 좋았다.





3시간 39분 04초의 9월 최고 기록을 제법 당겼다.


정말 이런 속도로 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킬로미터당 5분 2초의 페이스로 달린 것인데 이제 3시간 20분대 재진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건타임 기록 순위. 건타임과 넷타임이 25초 차이가 나니 내가 25초 늦게 출발했다는 뜻이다.





로운리맨님과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오늘 세운 기록을 한없이 칭찬해 주는 로운리맨님. 코스의 난이도나 지방원정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서로의 기록을 상대 비교를 해야 하는데 절대 비교를 해서 내가 참 잘 달렸다며 입이 마르도록 축하를 거듭했다. 밥먹는 시간이 나보다 3배 지연될 만큼 오래도록....




체온계와 USB 선풍기를 선물로 받았다. 무엇이든지 주시려고 하는 로운리맨님이다.





바깥술님은 집에 기념 수건이 있었다며 가져다 주었다. 그동안 남는 수건이 있으면 달라고 노래를 불렀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