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공원사랑 마라톤대회(2018/06/16)-FULL 173

HoonzK 2018. 6. 19. 22:05

Terra Incognita.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안 해 봤다고 해서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나는 6월 최고 기록인 3시간 29분 32초를 깨뜨릴 거야. 지난 해 서늘한 현충일 날씨 덕분에 운좋게 SUB 330에 들어갔지만 올해는 그냥 더운 날 기록을 깰 수밖에 없다. 공원사랑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가운데 비가 내리거나 기온이 낮은 날을 기다려 기록에 도전하면 매우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되어 밤잠을 설치며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컨디션은 바닥을 칠텐데 달리기 좋은 날을 운좋게 만난다고 하더라도 3시간 20분대는 어려울 거였다.


 3시간 32분대로 골인했던 전마협 이노쉐이브 마라톤대회에서 기록을 깨뜨렸다면 이런 부담은 없을텐데. 일견 6월 최고 기록을 경신하지 못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해 보지만 그래도 이번 달까지는 기록을 경신하고 싶었다. 19개월 연속보다는 20개월 연속 월별 최고 기록 경신이 나아보이니까. 선거일이었던 6월 13일 6월 기록 경신을 위하여 대회장에 갔지만 몸이 아파 참가신청서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참가를 접고 말았다. 그리고 사흘 후.....


 6월 16일 토요일. 새벽 3시 포르투갈과 스페인 월드컵 예선전을 시청하며 밥을 먹었다. 후반전 시청은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으로 갔다. 6시에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대체 잠을 자기라도 했는가, 수면부족에 허덕이고, 발바닥과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마음먹고 참가신청서에 이름을 적었다. 먼저 나온 용석 어르신이 몸 아픈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도 사흘 전보다는 낫다고 답했다. Wan-sik님도 지난 수요일 컨디션 난조로 하프도 못 달리고 레이스를 접었다고 하시며, 오늘 내가 목표로 하는 서브 330은 무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브 3로 달릴 때와 비교하면 수월한 것 아니냐고 했다. 내가 서브 3로 달린 적이 있다고? 금시초문. Wan-sik님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6시 정각, 여남은 명이 출발하는데 벌써 뙤약볕이 느껴졌다. 구름이 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도림천 코스는 고가 아래의 그늘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잠시 버티기로 했다. 도림천 상류 방향으로 달렸다가 콘을 감아돌아 안양천 방향으로 꺽었는데 누군가 왜 그쪽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이렇게 가는 것이 틀릴리가 없는데 누가 그러는 것일까? 만약 내가 선도를 잘못 했다면 자주 나오는 분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닌데 나 홀로 선두였다. 옆에서 동반주를 하고자 다가서는 사람도 없었다. 신정교 아래를 지나면서 곁눈질하니 100회 마라톤클럽 유니폼을 입은 주자 한 명이 30여 미터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5초가 나왔다.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서는 1킬로미터 평균 속도가 5분을 넘어서는 절대 안되는데..... 5분을 넘는 횟수만큼 상쇄하는 4분대의 페이스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다음 구간은 5분만에 달렸다. 4킬로미터는 20분 이내. 어느새 3시간 29분대의 페이스를 이끌고 있었다. 그렇지만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전반보다는 후반을 빨리 달려야 했다. 초반 하프를 1시간 46분 내지 47분으로 달리고 후반에는 그보다 빨리 달려 3시간 29분 31초로 골인해야 했다. 아무리 도림천 코스가 70%의 그늘을 통과하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이 1회전과 2회전에서 차이가 난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1회전 때의 온도와 2회전 때의 온도, 1회전 때의 피로감과 2회전 때의 피로감은 현저하게 다를 것이었다. 1회전을 조금이라도 늦추어 달리면 2회전이 편해질 것이라고 수도 없이 되뇌였지만 과연 후반을 빨리 달릴 수 있느냐 하는 우려감은 잦아들지 않았다.


 10킬로미터 49분 55초. 내가 희망하는 기록에서 조금 부족했다. 급수대에서 콜라를 마시고 반환했다. 반환점 급수요원이 매우 밝게 응원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30미터 쯤 뒤에 2위 주자가 있었다. 마치 나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따라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 분은 민소매 티셔츠까지 성가셨던지 벗어서 허리춤에 끼고 달리고 있었다.  배번호의 맨 뒷번호 9만 보였다. 그렇다면 7299 주자. 손을 흔들어 드렸더니 반환점이 여기인가요라고 물었다. 매우 잘 달릴 비주얼을 소유하고 있는데 공원사랑마라톤에는 별로 참가하지 않은 분같았다. 13킬로미터를 지나면서 이 분은 내 앞으로 나왔다. 내가 30미터쯤 떨어져 따라갔다. 그런데 이 분, 징검다리 데크를 건너지 않고 그냥 직진하는 것 아닌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우회전이예요. 우회전. 7299 주자는 급히 되돌아와 데크를 건넜다. 방향 표시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옛날에는 이쪽에 급수대가 있었는데요. 급수대가 이쪽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반대 방향으로 출발했던 몇 년 전, 적어도 3년은 넘은 옛날 코스에서 달리고 오랜만에 대회에 나온 것같았다. 출발할 때 왜 방향을 꺽느냐고 물어본 사람이 이 분이었구나. 이 분은 줄기차게 앞에서 달렸다. 내 앞 50미터에서 100미터 사이로. 길을 잘못 든 전례가 있으니 이 분이 또 어디로 잘못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전방에서 시야를 떼지 않았다. 16.1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1시간 20분이 조금 넘었다. 1시간 45분 정도에 맞추어 1회전을 끝낼 듯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급수대에 빈 컵만 가득해 급수하느라 조금 더 시간을 썼다.


 살짝 위기감이 들었다. 과연 내가 2회전을 1시간 44분에 할 수 있는가 하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다. 대개의 경우 내 레이스는 후반이 빠른 편이지만 더울 때는 유연하게 대응하여 스피드를 늦추어 왔다. 만약 오늘 6월 기록을 깨뜨리지 못하면 또 언제 대회에 나설 것인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지난 주 이노쉐이브 대회 때에도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오겠느냐며 각오를 다졌다가 끝내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오늘도 그럴 수 있었다.


 몇 가지 긍정적인 요소를 끌어왔다. 도중에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시간을 절약해 줄 것이다. 새벽에 잘 먹고 나와 허기지지 않는다는 것, 초코파이나 방울토마토 등을 먹으면서 보내는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심하게 목이 타지 않아 무인 급수대는 들를 필요가 없다. 이 시간만 절약해도 몇 십 초는 빠진다. 아울러 지난 해 3시간 29분 32초로 달린 나 자신을 환영으로 상상했다. 이 환영은 내 앞에서 달리고 있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거나 잠시 뒤로 물러나 있거나 했다. 1년 전의 나 자신과 동반주하는 느낌을 내내 가지고 발을 놀렸다. 자세를 어떻게 바꾸면 수월할까 싶었다. 이런 자세, 저런 자세를 궁리해 보지만 결국 자연스럽게 달리는 게 최고의 주법이었다.


 만나는 주자들에게는 꼭 인사를 드렸다. 먼저 손을 들지 않거나 파이팅을 외치지 않으면 기록이 나오지 않을 것같은 태도로 임했다. 늘 뵙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Wan-sik님, 근규님, 윤동님, 무언님, 의계님, 남수님, 태현님..... 모르는 분을 뵈어도 환하게 웃었다.  징검다리 데크를 건너 달리는 동안 4분 45초 페이스도 몇 차례 나왔다. 30.1 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2시간 28분대였다. 남은 12.1킬로미터를 1시간 1분에 달리면 6월 기록 경신이 가능해졌다. 32.2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2시간 38분 40초였다. 남은 10킬로미터를 51분 20초 이내로 뛰면 3시간 20분대에 들어가네. 나는 3시간 29분 59초에 뛰는 게 아니라 3시간 29분 31초에는 뛰어야 하니 남은 10킬로미터를 50분 51초에 주파해야 했다. 5분을 살짝 넘는 페이스로 달려도 되는 것이니 별 것 아니구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마지막 남은 뙤약볕 4킬로미터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미세한 바람도 겨울 바람이라 상상하며 겨울 이미지를 끌어내었다. 착각의 힘을 믿었다. 더운 바람은 냉풍이 되었고, 햇볕은 추운 겨울의 온화한 복사열이 되었다. 담배 냄새를 자주 맡았는데 그 냄새를 피하려고 질주하면서 밸런스가 무너졌지만 그 덕분에 기록 단축면에서는 이득을 보았다. 옆구리 살집 때문에 힘들다는 자책을 자주 하지만 5킬로미터 남았을 때 앞에 달리던 분을 제쳤다. 3시간 3분이었다. 킬로미터마다 페이스를 체크하는데 5분이 넘지 않으니 3시간 27분대도 가능해졌다. 3시간 29분 31초로 달려도 되는데 굳이 빨리 달릴 필요 있는가? 몇 달 간 잊고 있었던 되새김이 돌아왔다. 이것은 내 인생의 마지막 마라톤이니 최선을 다해야 해. 초반과는 극명하게 달라진 햇빛과 고온의 압박으로 1킬로미터가 2킬로미터만큼 길게 느껴졌다. 오늘은 잠시도 구름이 끼어주는 법이 없었다.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기어이 40킬로미터가 넘었다. 도림천 건너편에 골인 지점이 보였다. 그때 7299 주자가 다시 내 앞으로 나왔다. 아까 지쳐서 내게 추월당한 게 아니었던가? 일부러 힘을 남겼던 것인가? 원래 훨씬 좋은 기량의 소유자였던가?


 1킬로미터 남았을 때 3시간 22분 30초를 넘었다. 7분 페이스로 가도 기록을 경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스퍼트했다. 도무지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것같은데 악착같이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마음같아서는 바로 직진해서 골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골인점을 지나쳐 더 진행한 다음 콘을 감아돌아 골인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이런 주로 운영 방식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 27분 03초


  10킬로미터만 달린 근규님이 나보다 빨리 골인한 주자가 자신과 종씨이며 2시간 40분대 주자라고 소개했다. 철원에서 온 익현님이었다. 이름은 알고 있는 분이었다. 최근 몇 차례 추월하고 먼저 골인한 적이 있어 나와 비슷한 페이스의 주자인 줄 알고 있었지 2시간 40분의 기록을 보유한 주자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오늘 매우 늦추어 달린 것이었다.


 골인한 후 게시원이 하프 주자 아니냐고 묻는 해프닝이 있었다. 풀코스 주자가 벌써 골인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의아해 했다. 6월의 풀코스에서는 자주 없는 일인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는데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달리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꽤 오래 앉아 있었다. 맨소래담을 바르며 견디었다. 6월 기록 경신에 대한 부담을 이겨내면서 마음은 가벼워졌다. 20개월 연속 월별 최고 기록 경신. 2016년 11월부터 시작된 기록 경신 행진이 2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연속 월별 기록 경신은 이번 달까지만이다. 7월부터는 그 기록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리라. 7월의 334나 8월의 324는 깨뜨릴 수 있는 수준의 기록이 아니니까.


 올해 9번째 서브 330. 생애 25번째 서브 330이었다. 올해 안에 서브 330을 통산 30회 채우는 일이 가능하려나?




초반 하프는 1시간 45분, 후반 하프는 1시간 42분,

첫 10킬로미터는 49분 55초이었지만, 마지막 10킬로미터는 48분 23초로 달린 덕분에 얻은 기록이다.





홈플러스 신도림점에서 파스를 구입했다. 아픈 허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