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서 42.195킬로미터를 잘 달려내는 방법이 있나요? 글쎄요. 그런 날씨에는 아예 뛰지 않는 게 좋겠는데요. 굳이 뛰어야 한다면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달려야겠지요. 그렇다고 힘들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여름에 풀코스라? 아무래도 미친 짓이지요.
이런 말을 듣긴 했다. 새벽강변마라톤. 2년만에 돌아왔다. 4시간 13분대로 달렸던 2년 전 아세탈님이 나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따라 달렸던 대회였다. (그때는 인사를 나누기 전이었고 그 사실을 미처 몰랐다. ) 오전 7시 출발. 점점 더워지겠지만 아직 새벽이니 더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달려 놓자는 계산을 하기 마련인데 나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어 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속도를 낼 수 없어 늦춘 것이 맞겠다.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나와 151번, 261번 버스를 연달아 타고 여의도 이벤트광장으로 갔는데 몹시 고단했다. 집안 일을 하느라 자정을 훌쩍 넘긴 후에야 겨우 누울 수 있었다. 수면 부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체중 증가였다. 꾸준히 몸을 불리고 있어서 전날 저녁만은 가볍게 먹으려고 했다. 그래서 귀가하기 전에 김밥만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김밥을 먹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자장면을 먹었다. 잠자리에 들 때 배가 꺼지지 않아 배를 둘러싼 묵직한 느낌 때문에 고생했다.
새벽 6시에 대회장에 도착했으나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아주 애를 먹었다. 일부러 대회장에서 멀리 떨어진 화장실까지 갔는데도 거기도 대회 참가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결국 되돌아와 짐부터 맡기고 난 뒤 출발 몇 분 전에야 겨우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바깥술님과 보조를 맞추었다. 잡담 러닝으로 슬금슬금 발을 옮기는데 뒤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1등을 자주 하는 찬일님이었다. 민소매 유니폼 등판까지 도려내어 복장을 최소화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거의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달리는 느낌이라 처음에는 그 비주얼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입상권 주자가 왜 이렇게 늦게 출발했을까? 처음부터 스퍼트해야 하니 더운 날씨에 오버페이스는 걸리지 말아야 할텐데. 첫 1킬로미터까지 제법 빠르게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5분 20초가 걸렸다. 무겁고 고단한 몸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주 로운리맨님과 배틀을 한다면 이번 주 속도를 늦추어 3시간 39분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바깥술님이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오늘은 339만 생각하고 달리기로 했다. 5킬로미터 26분, 10킬로미터 51분 40초. 일주일 전과 페이스가 일치했다. 이 페이스를 보고 바깥술님은 일주일 전처럼 3시간 33분 33초로 달려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오늘은 그냥 339로 가겠다고 못을 박았다.
뒤에서 스피드를 내어 치고 나가는 주자들은 하프코스 참가자들이었다. 상기님이 우리를 추월했다. 아니, 풀을 뛰지 않고 또 하프 뛰시네요. 그리고 키큰 주자. 아는 사람이 맞는 것같은데 나를 그냥 지나쳐 갔다. 1시간 35분 전후의 스피드이지만 재빠르게 쫓아가 말을 걸었다. 맞네. 이로운씨. 아! 형님. 안녕하세요. 아주 짧은 인사만 나누었다. 속도를 늦추어 바깥술님 옆으로 돌아왔다. 계속 스퍼트하지 왜 늦춰요. 천만의 말씀. 오늘은 339를 해야지요. 2리터 물병을 들고 달리는 광배님이 앞으로 나왔다. 싱글 주자(3시간~3시간 09분 59초 사이 골인 주자)가 왜 이렇게 늦게 뛰어요? 그동안 운동을 못했어요. 광배님은 스피드를 올려 멀리 사라졌다.
찬일님이 선두권에 있었다. 늦게 출발하고도 어느새 선두권까지. 서브 3 주자들이 지나갔다. 서브 3 주자들 가운데 로운리맨님이 혹시 있을까 유심히 살폈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보다 훨씬 앞에서 햇빛 차단용 긴팔 티셔츠를 입은 로운리맨님이 오고 있었다. 오늘도 빨랐다. 바깥술님이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빠른데 다음 주 배틀에서 어떻게 이기겠어요? 힘들겠지요. 이기려면 기온이 30도가 넘고,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포기해야지요. 조금 더워진 9시 출발이라 잠을 좀더 자고 나올 수 있고, 오르막이 있는 것이 메리트가 될 수는 있겠지만요.
1차 반환한 후 햇빛을 마주 보고 되돌아가는데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바깥술님은 나보다 두 배 이상 자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제비한스님을 비롯하여 인천고 기옥님, 달물영희님, 동대문 두경님, 태현님, 남수어르신 등과 인사하느라 바빴다. 의외인 것은 특전사님이 뒤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전날 풀코스를 달려서 힘들지만 이 대회 참가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뒤에서 여러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나를 불렀다. 건달님. 파이팅. 하프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맡고 있는 광화문마라톤클럽의 병혁님이었다. 손을 흔들어 응원했다. 잠시 후 1시간 40분 페메 그룹은 내 앞에서 달렸다. 하프에 출전하는 希洙형님도 만났다. 더우니 페이스를 늦춘 듯했다.
함께 달리던 바깥술님이 조금 속도를 올렸다.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가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아 조금만 힘을 내면 3시간 29분대가 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동요하지 않았다. 다음 주를 위해서라도 오늘은 3시간 39분대를 목표로 삼았다. 만약 그것도 힘들면 3시간 44분대로 목표를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가끔 페이스를 체크해 보지만 5분 10초에서 20초 사이로 달리고 있었다. 그 페이스가 그대로 유지되어 좀처럼 시계를 보지 않았다. 바깥술님이 50미터, 100미터 차이를 내도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15킬로미터를 달려 안양천에 들어서면서 잠시 그늘의 혜택을 받았다. 좀 빨라졌나 싶어 시계를 보니 그대로 5분 20초 언저리였다.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달렸다. 더울 때 초반에 빨리 달렸다가 후반에 호된 댓가를 치른 경험 때문이었다. 자제하고 또 자제했다. 바깥술님과는 벌어진 거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풀코스 500회에 도전하는 의계님과 바깥술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 앞쪽으로 레이스패트롤을 맡은 헬스지노님이 풍선을 펄럭이고 있었다. 의계님이 조금 처졌고 내가 앞으로 나아갔다. 20킬로미터를 넘어 바깥술님 옆에 갈 수 있었다. 이제 치는 거요? 아니요. 오늘은 339요. 힘들면 344고요. 화장실에 들렀다 온 헬스지노님이 우리 뒤에 따라붙었다. 고수들 뒤에서 따라가야겠어요. 고수? 우리가 무슨 고수예요? 급수대는 자주 있어서 좋았는데 물을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급수대에서 컵만 낚아채고 지나가는 스타일과는 달리 이번에는 급수 요원에게 콜라 좀 더 따라주세요 하면서 잠시 머무르는 일이 잦았다.
건너편에서 오는 선두권 주자들을 확인하면서 2차 반환점을 향하여 꾸준히 나아가는데 이 무슨 일인가? 찬일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오버페이스를 했다고 했다. (이 분은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추어 3시간 19분대로 골인하게 된다.) 잠시 후 만난 로운리맨님은 손으로 X자 표시를 해 보였다. 아직도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앞에 있는데 X자 표시를 하는 이유는? 아! 3시간 10분대는 어려워 3시간 20분대를 목표로 하겠다는 뜻인 것같았다.
3시간 30분 페메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광배님에게는 서브 330하라고 외쳤다. 25.6킬로미터에서 2차 반환. 돌아가는 길은 페이스를 체크하는 것보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데 더 신경을 썼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보내지 않았다. 무조건 한마디라도 했다. 지난 주 만났던 연형님, 오랜만에 만난 수원샛별 홍진님, 남원 모철님..... 시각 장애우와 동반주하는 은기님에게는 생로병사의 비밀 방송 잘봤다고 소리도 쳤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급수대에 500밀리 생수만 있다면 받아서 들고 달리고 싶었지만 죄다 2리터 생수였다. 음료수든 생수든 무조건 두 컵을 마셨다. 물을 마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목이 말랐다.
신정교 부근에서는 공원사랑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주자 한 분을 만나기도 했다. 잠시 후 오늘은 달리지 않고 응원을 하고 계시는 근규님을 뵙기도 했다. 아주 격렬하게 팔을 흔들며 인사를 드렸다.
30.2킬로미터 거리 표지판 통과. 2시간 35분이 넘었다. 남은 12킬로미터를 1시간 4분대로 달릴 수 있어야 하는데. 바깥술님은 내내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점점 힘들어졌다.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걸을 수는 없었다. 걷기의 유혹을 끊임없이 떨쳐내는 게 여름 풀코스인 듯. 누구나 똑같은 마음일 거였다.
32.2킬로미터. 이제 10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2시간 48분이 되기 직전이었다. 남은 10킬로미터를 52분에 달리면 3시간 39분대가 가능했다. 5분 20초로 달려서는 안되었다. 5분 10초대로는 달려야 했다. 시간을 체크하면 어떤 때는 5분 20초, 또 어떤 때는 5분 30초가 나왔다. 3시간 39분대가 어렵다면 3시간 44분대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지. 어차피 배틀은 다음 주니까 오늘은 그냥 이대로. 36.2킬로미터를 달려 한강을 만나면 그때 스퍼트해서 혹시 339? 그 때 힘이 남아 있으려나? 한강을 만나면 햇빛을 마주보고 달려야 하니 쉽지는 않겠구나.
끝이 보이지 않을 것같았던 레이스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드디어 한강을 만났다. 36.2킬로미터 표지판을 지나기가 무섭게 바깥술님 바로 옆으로 갔다. 바깥술님이 물었다. 이제부터 밟을 거요? 그래야지요. 339하려면. 바깥술님은 더워서 안되겠다고 했다. 에너지 고갈이요. 더운 날이라 초반에 빨리 달려 벌어 놓으려고 했는데..... 레이스 가운데 가장 더운 시간대에 가장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나아갔다. 5분 5초에서 10초 사이의 스피드로. 36킬로미터를 넘게 달렸으니 그래도 살이 조금 빠졌을 것이라 몸은 가벼워져 있으리라. 그럼 속도를 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동안 속도를 신경쓰지 않았고, 신경쓰더라도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급해졌다. 37.2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하니 앞으로 5분 페이스를 지켜야 3시간 39분대로 골인할 수 있었다.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니 주자들을 한명씩 제치게 되었다. 로운리맨님은 어디쯤 있을까? 나와 동반주를 허락할까? 그럴리 없었다. 3시간 39분을 목표로 달리면서 2주 전 3시간 18분대로 골인한 주자와 함께 달릴 수 있기를 기대하다니......
나 자신을 달래고 달래어 마침내...... 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시간은? 3시간 34분 25초. 3시간 39분대가 가능하다. 마지막이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스퍼트했다. 눈에 땀이 들어가 한쪽 눈을 감고 달려야 했다. 서강대교, 마포대교를 지났다. 한쪽 눈만으로도 대회장의 천막이 똑똑히 보였다. 다 왔다. 100미터쯤 남았다. 저 앞에 있는 분, 낯익은데 설마 로운리맨님인가? 그럴리가? 아니겠지. 마지막 1킬로미터를 4분 50초에 주파하여 골인했다. 바로 앞에 로운리맨님이 있었다. 나는 로운리맨님 바로 다음 순위인 56등이었다.
3:39:14.26
새벽강변 마라톤에서 4시간 이내로 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운리맨님보다 7초 늦었다. 바깥술님은 70대의 용석님과 동반주하여 3시간 42분대로 골인했다.
오른쪽 발바닥이 화끈거리는데 신발을 벗어보니 양말이 헤어져 구멍이 나 있었다. 발바닥에 붙인 테이프와 신발 사이에서 양말이 마찰되어 찢어진 것이었다. 발가락이나 뒷축 쪽에 구멍이 난 적은 있지만 이제는 발바닥까지 뚫리다니....
3시간 39분 목표를 이루었다.
오른발에 신었던 양말 바닥이 뚫렸다. 풀코스를 달린 후 버린 양말이 몇 켤레인가?
로운리맨님과 함께 한 점심 식사
늘 먹던 그것으로.....
로운리맨님이 사 주신 포상콜라
로운리맨님 바로 다음 주자로 골인하게 될 줄은 정녕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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