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이란 없다. 특히 풀코스를 달리는 주자에게는.
월드컵 중계 시간표에 맞추어진 몸이 되어 있었다. 새벽에는 축구 시청을 하고 휴식은 오전이나 초저녁에 해야 하는 것으로. 휴식할 오전에 러닝을 한다는 것. 애당초 안될 일이었다. 3주 동안 대회 출전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더욱 달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 대회 참가만큼 좋은 훈련이 없는 것인데..... 지난 6월까지 20개월 연속 월별 최고 기록을 경신한 후 이제 더 이상 월별 최고 기록 경신은 없다고 긴장을 풀어버린 것도 몸을 망친 이유가 되었을 수 있다. 몸 만들기는 힘들어도 몸 망치기는 참 쉬웠다.
스웨덴과 잉글랜드, 러시아와 크로아티아의 경기는 하늘이 두쪽 나도 보지 않을 것이며 중계 방송이 되는 시간에 잠을 잘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두 경기 모두 시청하고 말았다.
풀코스와 하프코스가 함께 8시 정각에 출발한 대회였다. 몇 백 미터를 달리기도 전에 바깥술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첫 1킬로미터가 5분 35초이니 3시간 59분대의 러닝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달리는 것은 2년만이었다. 하프 출전하는 효준님을 만났다. 오늘도 풀코스예요? 네. 그런데 도저히 안되겠어요. 벌써 힘든데 레이스를 접을까 해요. 한달 가까이 월드컵을 다 보고 있는데다 오늘 새벽에도 축구를 보았으니 영 아니네요. 그럼 그냥 10킬로미터만 뛰어요. 그럴까 하는데 그래도 구리 경계까지는 갔다 와야죠. 12킬로미터만 뛰는 것으로.... 그러세요. 다음에 도전하면 되지요.
효준님이 2시간 이내로는 달려야 겠다며 먼저 앞으로 갔다. 하프 2시간 페이스메이커와 풀코스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앞으로 나아갔다. 전혀 자극받지 않고 슬로우모션으로 뛰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이마저도 몹시 힘들다는 듯이 터덜거리고 있었다. 이 코스를 3시간 28분대로 달린 적이 있었고, 그 때보다 달리기 여건이 좋았는데.... 컨디션 난조로 좋은 기록으로 달릴 기회를 놓쳤다.
6킬로미터를 달려 구리에 들어왔다.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았다. 암사대교, 강동대교 방향으로 더 나아갔다. 다만 풀코스를 달린 다음날 회복조깅하는 것처럼 매우 천천히 달렸다. 오늘 풀코스를 달리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7월 풀코스는 다른 대회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망가진 몸을 다음에 슬슬 회복시키기로 해야지.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시점을 대회 당일로 잡았다. 26.1킬로미터만 달리기로 했다. 일단 하프 1회전하고 2회전 때는 2.5킬로미터 급수대에서 돌아가는 것으로.
덕분에 앞서 달리는 주자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하프 선두 주자가 먼저 돌아오고 있었다. 곧 풀코스 선두 주자들도 따라붙고 있었다. 10킬로미터를 58분에 지났다. 56분 40초로 달려야 4시간 이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어려운 몸이 된 것이다. 특전사님, 풀코스 100회를 달성하는 연형님, 노원희규님, 바깥술님, 로운리맨님을 만났다. 로운리맨님은 내게 왜 그렇게 느리게 달리느냐고 물었다. 그냥 조깅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래도 반환한 이후에는 몇 사람을 추월하기도 했다. 하프 2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고, 풀코스 4시간 페이스메이커에게도 바짝 붙었다. 먼저 반환해서 오는 분들에게는 오늘은 그만 달리고 말 것이라고 예고했다.
2회전에 나서기 직전 꿀물 두 잔을 마셨다. 2.5킬로미터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기가 무섭게 돌아오도록 하자. 아니, 5킬로미터 급수대까지 가서 26.1킬로미터를 채우고 5킬로미터를 걸어서 오는 것도 괜찮겠다. 걸어오는 동안 지인들을 하나둘씩 만나면 되는 것이니. 하지만 22킬로미터를 넘어섰을 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화장실 앞이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가 서 있었다. 동반주하던 주자가 두경님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두경님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경님은 나를 보기가 무섭게 천군만마를 만난 듯이 얼굴이 환해졌다. 동생이 좀 도와줘. 함께 달리는 분이 화장실 간다고 하니까. 화장실 가는 분은 곧 돌아올테고, 그 분이 돌아왔을 때 끈을 넘겨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몇 킬로미터 달리기 전에 따라붙을테니 부담은 없었다. 10킬로미터 반환점까지 가서 그때부터 걸어와도 상관없으니까. 26.1킬로미터만 채우면 되는 거였다. 페이스메이커가 지쳐서 달고 달리던 풍선을 넘겨 받는 상상,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끈을 잡아주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날지는 몰랐다. 오늘은 아주 잠깐이지만 색다른 경험도 해보는구나 싶었다.
希洙형님과 동갑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는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키는 나와 비슷했다. 이 분은 내게 이름을 물었다. 강훈식. '강력한 훈련 방식'으로 외우시면 됩니다. 그는 끈을 너무 길게 늘여 잡지 말고 감아잡으라고 했다. 첫번째 급수대에 들렀다. 달려가면서 물이 담긴 종이컵을 잡아채어 마시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일단 멈추어야 했다. 물이 담긴 종이컵을 들어 손에 쥐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그 과정을 말로 미리 알려야 했다. 전방 50미터에 급수대 있어요. 물 드실래요? 게토레이 드실래요? 자 출발하시죠.
잠깐 함께 달리는 것이지만 인연이네요. 그런데 도우미 분은 언제 오세요? 아마 안 올 거예요. 원래 경찰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늦게라도 온다고 했는데 올 것같지 않아요. (이러면 안되는데.) 그럼 아까 도우미 하시던 분은요? 그 분은 임시로 맡아준 거고요. 그 분 화장실 가시던데 곧 오지 않을까요? 퍼졌어요. 따라올 수가 없을 거예요. (정말 이러면 안되는데!) 26.1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결정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이라면 끝까지, 즉 42.195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는 것,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20킬로미터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고단하다 못해 머리까지 지끈거리는데 이를 어쩐다? 앞을 못보시는 분에게 월드컵을 보느라 잠을 못 잤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축구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할 분에게 '보았다'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내가 장애인의 끈을 잡았을 때 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 운명을 받아들인 것은 오로지 내 선택이었다. 피하려고 했던 풀코스를 달릴 수밖에 없는 날이었나? 동반주자와 급수대를 여덟 차례 들르게 되는데 그때마다 1분씩은 소요되었다. 이따금 파워젤 입구도 뜯어드려야 했고, 콜라도 찾아드려야 했다. 평소 달릴 때보다 급수대에서만 8분은 더 쓰게 되는 것이니 서브 4 완주는 어렵게 되었다. 배번에 붙어 있는 기록 인식칩을 뜯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어렵게 달린 풀코스의 기록이 없다면 그것은 더 견디지 못할 일이었다.
24.1킬로미터입니다. 25.1킬로미터입니다. 지금부터 오르막입니다. 이제는 내리막입니다. 쉴새없이 떠들면서 안내했다. 26.1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달리기로 했던 거리를 넘어서니 몹시 피로해졌다. 더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힘들 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내가 못하겠다고 하면 이분은 어떻게 하지. 아니야. 끈을 잡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자고, 이 일을 하기 위해 고달픈 몸으로 늦게 달릴 수밖에 없었고, 정확히 그 순간 내가 이 분을 돕도록 모든 여건이 조성되었던 거야. 그렇게 도우미를 내 할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에 내 지지부진한 스피드에 놀랐던 지인들이 이번에는 시각장애인 도우미 역할에 놀라고 있었다. 레이스에 집중하느라 별 반응이 없던 분들까지 한마디씩 응원을 보내주었다. 1위를 유지하느라 여유가 없어 보였던 석근님도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바깥술님은 강선생 대단해라고 했고, 로운리맨님은 아름답다고 평해주었다. 또 한 분의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를 돕고 있는 은기님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주었다. 해피레그 파이팅이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나 혼자 달리면 들을 수 없었던 말을 듣고 또 들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는데 누군가를 위하여 애쓴다는 것은 잠시나마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42.195킬로미터를 끝까지 달려내어 80개월 연속 풀코스 완주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갈수록 오른쪽 팔과 어깨가 아파왔다. 고정한 상태로 왼팔만 흔들며 가니 점점 경직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달리는 분이 그렇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팔을 흔들라고 했다. 그러니 조금 나아졌다. 팔을 흔들다가 서로의 팔이 부딪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왼쪽으로 갈 경우 당기고 오른쪽으로 갈 경우 살짝 밀었는데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옆구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말로 해달라고 했다. 이분에게는 오르막 내리막보다 왼쪽 오른쪽의 방향이 더 중요하였다. 발 아래 돌멩이나 병뚜껑은 차 버리거나 내가 밟아서 이분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신경썼다. 그러면서 마이크를 잡은 장내 아나운서처럼 떠들었다. 왼쪽으로 오세요. 앞에 자전거들이 너무 빨리 옵니다. 곡선주로입니다. 일단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지금부터 3백 미터는 직진이예요.
점점 우리 두 사람은 한 사람인 것처럼 움직였다. 이것은 특이한 형태의 2인 3각이었다. 끈을 잡아주는 동반주자는 시각 장애인보다는 달리기 기량이 뛰어나야 했다. 처음에 도우미를 하셨던 분을 마주 보긴 했는데 그 분은 우리를 보지 못했다. 우리보다 4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버려서 자신의 레이스만 돌아보는 데에도 몹시 힘들어 보였다. 어느덧 35킬로미터를 넘었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풍선을 뜯어버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쌓인 피로에 도우미를 하면서 더 피로가 쌓여 아주 초죽음 상태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나는 회복되고 있었다. 몇몇 주자를 제치기도 했다.
아쉬움은 있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나 대신 이 끈을 잡아준다면 스퍼트하여 4시간 이내로 들어가고 싶었다. 충분히 3시간 59분대 완주가 가능해 보였다. 그러면 50위까지 주어지는 입상 트로피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이 되어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37킬로미터를 넘고 나자 이제 누가 와서 칼을 들이대고 끈을 내어 놓으라고 해도 내어 놓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2.5킬로미터 남았을 때 만난 급수대에서 챙긴 생수병 뚜껑을 딸 수 없었다. 뚜껑을 열 수 있는 팔이 끈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물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2016년 9월 4시간을 넘겨 달린 이후 54회 연속 SUB-4의 기록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4시간을 넘기고 4시간 10분을 넘기더라도 흥의님과 함께 골인 지점을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흥의님은 후반에 오르막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며 나오면 말해달라고 했다. 이 분의 코스 파악은 나보다 정확했다. 이제 오르막은 끝났다고 했을 때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오르막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오르막이었지만 틀림없는 오르막이었다. 오르막이 나오면 스퍼트했다. 나와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1.5킬로미터 남았을 때 시각장애인 빛나눔 회원이 마중나왔다. 자신을 소개하면서 옆에서 동반주를 시작했다. 이 분은 내게 속도를 잘 맞추어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킬로미터 남았을 때 흥의님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스퍼트하셔도 되요. 맞추어 드릴게요. 이 말을 듣고 흥의님은 힘차게 내달렸다. 이제 500미터만 가면 됩니다. 이제 300미터. 100미터밖에 남지 않았어요. 마침내 우리 두 사람은 골인했다.
4:07:02.47 (흥의님은 4:06:58.76)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한동안 부둥켜 안고 있었다.
이 장면을 로운리맨님이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주었다. 로운리맨님은 내가 50위 입상을 놓친 것을 매우 아쉬워 했다. 뚝섬유원지역 아래 마당에서 강원도 특산품을 팔고 있었는데 콩물을 두 병 사서 내게 하나를 주었다. 7월 최고 기록을 세운 로운리맨님과는 순대국을 함께 먹었다. 인천고마라톤 동호회에서도 같은 식당으로 와서 기옥님, 춘효님과 다시 만났다. 밥을 먹는데 오른팔이 너무 아팠다. 시각장애인마라토너와 이어진 끈을 잡고 자연스럽게 흔들지 못하고 경직된 상태로 움직였기 때문에 생긴 통증인데 그 통증이 싫지는 않았다. 값진 일을 하고 받은 훈장같은 것이니까.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골인하기 직전. 오른쪽 팔에는 끈이 연결되어 있고 왼쪽 손에는 물병을 들고 있다.
V자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는 흥의님
(로운리맨님이 찍어준 사진) 끈을 풀고 손으로 잡아드렸다.
감격의 포옹
기록증을 받고 있다.
22개월만에 4시간을 넘기는 기록으로 골인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자주 있을 듯.... 요즘 너무 몸이 무겁다. 훈련도 별로 하고 싶지 않고.....
다시 한번 주혼(走魂)을 불러일으켜야겠는데.....
80개월 연속 풀코스 완주 기록을 세웠다.
참가비를 조금 더 내어 선글라스를 확보했다.
로운리맨님과 순대국을 먹다.
로운리맨님이 사 준 콩물
저녁에 소면을 삶아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 내가 아는 분 두 분이 여자부 1, 2위를 차지하였다. 달해아름다워님과 달물영희님.
2회전에 나섰을 때 얼음물을 건네주신 은수님이 고마웠다. 이 분은 나처럼 우이천변이 훈련주로인데 요즘은 부상 때문에 고작 5킬로미터씩밖에 달리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에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하셨던 분은 4시간 30분이 넘었다. 태현님은 30킬로미터를 넘기 전에, 춘효님은 40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 추월했다. 익현님과는 출발하기 직전 잠깐 얼굴을 봤다. No운기님은 5시간만 넘기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천천히 달리는 것같았다. 운기님은 출발 전 바깥술님에게 오늘 얼마에 달릴 것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내가 먼저 이 분은 서브 330이요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진식님은 하프를 달리는 데 만족했고, 상기님은 처음부터 하프에 참가해서 1시간 34분대로 질주했다. 효준님은 1시간 58분대로 골인하여 2시간 이내로 달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골인은 노원희규님이 먼저 했지만 넷타임으로 순위가 결정되면서 1초 빠른 바깥술님이 22위, 노원희규님이 23위 트로피를 받았다. 로운리맨님은 24위를 했다. 특전사님은 3시간 34분 56초로 18위, 연형님은 3시간 35분 24초로 19위를 했다. 50위의 기록은 4시간 04분 56초였다. 나는 22일 전보다 40분이 더 걸리는 레이스를 했다. 어깨 통증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발바닥 통증은 심해졌다. 저녁부터 비몽사몽을 헤매면서 요리를 해야 했고 이내 쓰러져 한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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