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송병선 옮김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주)문학과 지성사 2014. 1. 17
문학성과 실험성이 뛰어난 작품에게 수여하는 상인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장작이다.
이 상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이 받았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제목이 특이했다. 그 덕분에 도서관 서가에서 자주 눈에 띄었지만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소설이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조선일보 책 코너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소개한 책에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신판이 나와 있었다. 강북청소년문화정보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경주에 가는 바람에 160여쪽을 남기고 반납해야 했다.(2015년 8월) 두 달만에 책을 빌렸다. 이번에는 솔샘문화정보도서관에서였다. 완독하는 데에는 두 달이 걸렸지만 책을 읽은 날만 뽑아 보면 닷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단 책을 잡으면 집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빅토르 프란세스는 대본 작가이자 대필작가이다. 33세의 마르타 테예스는 두 살 배기 아이인 에우헤니오의 어머니이자 데안 바예스테로스의 아내다. 데안이 영국으로 출장간 틈을 이용해, 마르타는 빅토르를 집에 초대한다. 마르타는 빅토르와 불륜 관계를 맺기 직전 숨을 거두고 만다.
빅토르는 자신이 불륜의 현장에 있었다는 흔적을 지워야 했다. 두 살 배기 아이가 잠을 자고 있는 집에서 그는 현실적인 문제와 실존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마르타의 남편에게 알려야 할까? 아이를 깨워야 할까? 경찰을 불러야 할까? 이웃이나 그녀의 친척에게 전화를 걸까? 빅토르는 아이의 식사를 준비해 놓고 데안의 연락처가 적힌 포스트잇과 자동응답기 테이프를 가지고 그 곳을 떠난다.
한달 뒤 그는 또다른 대필 작가인 친구를 통해 죽은 마르타의 가족에게 접근한다. 그 후 마르타의 아버지인 후안 테예스 오라티와 함께 국왕을 만나고, 국왕의 연설문을 대필하게 된다. 빅토르는 마르타의 동생 루이사, 남편 데안도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내전의 상처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마드리드를 떠올리며, 자신의 전 아내라고 생각되는 창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일을 회상한다.
마르타의 가족과 점심 식사 후 빅토르는 마르타의 아들 에우헤니오를 만난다. 에우헤니오가 빅토르를 기억하면서 아이의 이모인 루이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루이사는 이 사실을 마르타의 남편에게 알려준다. (스토리는 여기까지만....이 이후 급반전 스토리가 있다. 스포일링은 그만)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고 너의 무딘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전쟁터에서 내가 살아 있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너의 녹슨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내가 네 영혼을 무겁게 짓누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 나오는 대사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문장은 수시로 나와 메아리친다.
철학적인 사변과 심리적인 성찰이 수놓은 이 작품은 언뜻 책읽기가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탐정 소설처럼 사건을 따라가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미스터리처럼 소설을 전개시키기 때문에 독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삶과 죽음, 사랑과 배신, 기억과 망각 등을 다루다 보면 소설 읽기는 느려질 수밖에 없지만 그 느림이 싫지는 않다. 그저 재미만 추구하는 소설이 안기는 가벼움보다는 삶을 진지하게 되짚어 보는 철학 에세이같은 느낌을 주면서 전개되는 소설이라 읽고 나면 묵직한 성취감도 안겨준다.
비밀과 미스터리로 풀어내는 이야기, 남을 속고 속이는 시류 속에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이다.
※ 가상이지만 현실과 같으면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실재, 시뮬라크르의 주제만 따라가도 이 소설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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