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소아암환우돕기 제14회 서울시민마라톤대회(2017/05/14)-FULL 139

HoonzK 2017. 5. 16. 22:44

 올해 의령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허수아비님, 정명진님과 다시 만나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서울에 갇혀 있었다. 2년만에 소아암환우돕기 서울시민마라톤대회에 나섰다. 참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추스려 여의도 이벤트광장에 기어코 섰다. 希洙형님은 지인분만 뵙고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전날 축구하다 다쳐서 하프는 달리기에 너무 긴 거리라고 했다. 로운리맨님은 앞줄에 있다가 내게 와서 인사했다. 헬스지노님의 눈길이 로운리맨님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4분 50초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고 이미 못을 박았다고 했다.

 

 8시 정각 출발했다. 소아암 대회는 여러 차례 참가했지만 풀코스는 세번째였다. 이년 터울이었다. 2013년, 2015년, 2017년. 도무지 활력이라곤 없는 발걸음을 옮기는데 왼쪽 무릎이 아팠다. 스트레칭에 좀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가슴펴고 뒷꿈치부터 내려놓으며 자세를 바로잡아 통증을 추스렸다. 앞쪽에 바깥술님이 있어서 동반주했다. 이제 마라톤하지 말까 봐요. 왜요? 요즘 날아가면서? 그냥 그렇네요. 뭐하러 뛰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라톤 대회를 500번 넘게 출전한 사람이.... 어이없지요? 1킬로미터 페이스 5분 30초. 서브4는 하겠네요. 다음 구간은 5분 10초. 좀 빨라졌네요. 어째 내가 숨이 찼어. 빨리 가요. 어차피 330 할 거잖아요? 요즘 좋지 않아요. 소아암 최고 기록은 356이고 5월 최고 기록은 351이예요. 제가 5월부터 9월까지는 3시간 40분대로 뛰어본 일도 없어요.


 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치고 나갔다. 다음 구간은 4분 50초로 달렸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갈 수 있을까? 지난 해 5월 데이타가 말한다. 4시간 18분, 4시간 13분. 잘 달리다가도 날씨가 더워지면 전투 의지를 급격히 상실하고 갈지자로 왔다갔다 느릿느릿 달리다 겨우 골인해서는 날씨 탓만 줄창 해대지 않았던가? 초반에 바람이 불어주고 있긴 했지만 어느 때보다 무기력했다. 무엇보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힘을 내어 달물영희님을 비롯한 여러 주자를 제쳤다. 5킬로미터를 25분 초반에 지났다. 그 이후 레이스 운용이 느슨해졌다. 10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50분을 넉넉하게 넘겼다. 한참 앞에서 달리는 로운리맨님이 반환해 오며 서브 330을 하라고 외치는데 네!라고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1차 반환하여 돌아오면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보다 3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특전사님에게 늦게 출발했느냐고 물었더니 대전한밭벌 울트라마라톤을 새벽까지 달리고 왔다고 했다. 100킬로미터를 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42.195킬로미터를 또 달린다고? 혀를 내둘렀다.


  2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하시는 안수길님이 무척 반갑게 인사하셨다. 하프 주자 한 분은 스마트폰으로 나를 찍었다. 집에 가신 줄 알았던 希洙형님이었다. 무척 반갑고 감사했다. 안양천으로 꺽이는 지점 15킬로미터까지 갈등했다. 그만 달릴까? 쭉 직진해서 하프만 달리고 말까?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우회전했다. 안양천변은 서늘했다. 하프 주자가 빠지면서 주로는 한산해졌다. 내 스피드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3시간 36분 전후가 될 수 있었다. 5분 이내의 페이스로 들어가지 못하니 3시간 20분대는 힘들어 보였다. 살이 쪄서일까? 훈련이 부족해서일까? 더워서일까? 날씨가 춥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자꾸 들었다. 나같은 체격은 더위 앞에서 버거울 수밖에 없으니...... 구름 한점 끼지 않은 날씨라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뜨거운 햇빛을 상쇄해 내지는 못했다.


 찬일님이 1등으로 역주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 응원했다. 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답해주셨다.


 몸보다는 마음 때문에 힘들었다. 속이 빠작빠작 타는 느낌 때문에 몹시 고되었지만 내 나름대로 달렸다. 안양천으로 들어선 이상 풀코스를 끝까지 달리겠다고 각오한 것이니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영어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리면서. How trivial! How trivial! 누가 나를 제치든 말든, 내가 누군가를 제치든 말든.... 물이 있으면 물을 마시고, 음료수가 있으면 음료수를 마시고, 초코파이, 방울토마토, 바나나가 있으면 그것도 빼어놓지 않고 먹었다. 급수대는 자주 있어서 좋았다. 하프를 1시간 48분 전후로 지났다. 그리고 꾸준히 달렸다. 25킬로미터 지점은 돌아올 때 26.2킬로미터 지점이었다. 거기서 로운리맨님을 만났다. 로운리맨님은 내게 330을 하라고 했다. 나는 지질컹이처럼 낯살이 구겨져서는 손사래를 쳤다. 오늘 좋지 않아요. 내가 속으로 다짐한 것은 끝까지 완주할 것이며 달리는 동안 결코 걷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지난 해 5킬로미터를 남기고 거의 레이스를 포기하듯이 내팽개쳤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것.

 

 반환해서 돌아와 26.2킬로미터를 지날 때 바깥술님과 달물영희님이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저 맛이 갔으니 조금만 스피드를 올리면 저 제칠 수 있어요. (달물영희님은 바깥술님이 동반주해주신 덕분에 여자부 3위에 입상했다. 3시간 46분) 한구님, 의계님도 응원했다. 특전사님은 부인 맹순여사와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어제 울트라 4등 했어. 대단하십니다. 마음껏 자랑해도 될만 하다. 은기님은 오늘도 시각장애인과 동반주를 하고 있었다. 은수님, 두경님과도 인사나누고, 횡성사랑님과는 인사를 나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일흔이 넘은 ㅇ석님은 30킬로미터 이후 나를 제치고 나갔다. 이분은 스피드를 더 올려 나중에 3시간 32분대로 골인, 연대별 입상하셨다. (70대 연대별은 없으니 60대 이상에서)


 30.2킬로미터. 2시간 33분대로 지났다. 32.2킬로미터는 2시간 44분대 후반으로 지났다. 아무리 계산을 해 보아도 킬로미터당 5분이 넘고 있었다. 5분 5초에서 5분 20초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남은 10킬로미터를 50분으로 달릴 수는 없어 보였다. 화장실에 한번 들렀다. 화장실에 몇 번 더 간다고 하더라도 5월 최고 기록 경신은 가능해 보였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걷고 있는 헬스지노님을 지났다. 그렇게 빨리 달리던 분이었는데 더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남은 구간을 킬로미터당 6분 페이스로 가도 3시간 42분대로 골인할 수 있었다. 어차피 5월 최고 기록은 경신되고, 한번도 3시간 40분대에 진입한 적이 없는 5월의 과거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런데 5분 10초에서 20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3시간 30분대 골인이 가능했다. 로운리맨님의 행보는 어떨까? 공원사랑마라톤에서 335를 했고, 다른 대회에서는 3분 정도 밀릴 것이라고 하였으니 잘하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알 수 없는 것.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다면 5월 최고 기록을 세우고 나아가 3시간 20분대에 진입할 수도 있다. 내 예상 기록은 3시간 36분대였다. 하지만 후반에 조금이나마 스퍼트를 한 결과 3시간 35분대에 들어섰다. 3:35:56


 1분만 빨랐다면 최근 15번의 기록이 모두 상위 15개의 기록으로 랭크되었을텐데. 역시 후반에는 천천히 달리고 싶은 유혹이 만만치 않았다. 유혹을 악착같이 이겨내었다.


 골인한 후 강변 물품보관소를 보니 로운리맨님이 물품을 찾아 탈의실 천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원 봉사 학생이 나에게 달려와 물품 보관 스티커를 확인한 후 짐을 갖다 주었다. 달해아름다워님이 물품보관소에 자원봉사중이었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 뜨거워진 아에드를 마시고 생수도 마시면서 마냥 시간을 보내었다. 로운리맨님이 옷을 모두 갈아 입고 나올 무렵 탈의실로 들어갔다. 로운리맨님은 일부러 스피드를 늦추어 다음에 경신할 여지를 남겼다고 했다. 삼삼하게 333. 기다려준 로운리맨님과 엄니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나누었다. 5월 최고 기록 경신을 축하한다고 해주셨지만 나는 몹시 늘어져 있었다. 에너지 보충이 절실했는지 밥은 몹시 빨리 먹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반대편으로 가는 로운리맨님을 배웅한 뒤 의자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지하철 몇 대를 그냥 보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 벤치만 아니었다면 길게 드러눕고 싶었다.

 

 66개월 연속 풀코스 완주.
 지난 해 9월 25일 대청호마라톤부터 소아암까지 20회 연속 SUB-4로 기존 기록을 깨뜨렸다. (기존 기록 19회 연속)

 

 

아직 20킬로미터 지점일 것이다. 안양천에 들어선 이상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얼굴에 근심가득한 표정이 그냥 드러나네.

 

139번째 풀코스를 완주하고.....

 

나는 왜 드링크제가 똑같은 것 두 개일까? 매니아로 신청했기 때문에 기념품은 없다.

 

 

 

특별히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기념품이었다.

 

 

 

 

 

 

 

엄니식당에서 우렁된장과 부추비빔밥을.....

 

앞에 로운리맨님.....

 

 

제육볶음, 맛있었다. 늘 그랬듯이.

폭풍 흡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