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5km: 28분 34초
[2] 5-10km: 26분 44초
[3] 10-15km: 29분 02초
[4] 15-20km: 27분 45초
[5] 20-25km: 28분 08초
[6] 25-30km: 29분 43초
[7] 30-35km: 29분 25초
[8] 35-40km: 26분 18초
[9] 40-FULL: 10분 32초
3시간 57분 12초
2년 전의 대회 기록을 10분 30초 가량 단축하였고, 4개월만에 SUB-4 주자로 돌아왔다.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출전 포기와 도중 하차의 유혹을 이겨내고 이루어낸 결과였다.
밤 12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는 3시 40분에 도착하였다. 낮에 산악 러닝을 6킬로미터 가량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골아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저 눈만 감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덩치가 너무 컸고 자주 움직였다는 이유로 신경만 날카로워졌을 뿐이다. 잤다는 느낌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경주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돼지국밥을 먹었다. 6개월만에 다시 찾은 식당의 돼지국밥 가격은 1천원 인상된 상태였다. 2년 사이에 2천원이 올랐다. PC방에 가서 컴퓨터만 켜놓고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실패했다. 아직도 PC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 보니 주인은 출입문을 열어 놓았다. 몇일 사이에 추워진 날씨라 찬 바람 때문에 잠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찬 바람을 타고 담배 냄새는 재빠르게 나를 덥쳤다. 문 닫아라. 담배 때문에 안 된다. PC방에서는 담배 못 피우는 것 아닌가. 새벽이라 어쩔 수 없다. 서울같으면 벌금 맞을텐데 경주는 아직도 이런가. 카운터의 직원과 실갱이를 벌이다가 내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셔틀버스를 타려면 아직도 1시간 반 이상이 남아 있었는데 그냥 나와서 경주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버티고 있었다.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잘 수는 없었다. 잠들었다간 마라톤 풀코스 출발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할 것같았다. 경주에서 서울로 새벽 6시 차를 타고 도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잠 한숨 자지 않고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던 이력이 있으니 일단 출발 선상에 서기로 했다. 어느새 새벽 6시 30분 셔틀버스에 앉아 있었다. 6시 40분 대회장에 도착하였다. 횡단보도 건너 대회장까지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6시 50분. 8시 출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쌀쌀한 날씨였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아직 속은 더부룩하였다. 새벽에 먹은 돼지국밥이 소화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같았다. 7시 20분에는 물품을 맡겼다. 탈의실과 물품 보관소를 왔다갔다하며 허수아비님을 찾았다. 허수아비님을 뵌 것은 출발 몇 십 분 전 주로에서였다. 어디에서 뵐 수 있을까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허수아비님은 출발하기가 무섭게 먼저 가실 줄 알았는데 내 곁에 계셨다. 첫 1킬로미터는 6분 20초나 걸렸다. 하지만 조금씩 페이스가 빨라졌다. SUB-4 기준으로 5킬로미터 구간 기록은 28분 20초여야 했다. 첫 5킬로미터 구간은 14초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 5킬로미터 구간은 페이스가 빨라지면서 26분 44초만에 통과할 수 있었다. 10킬로미터까지 55분 18초가 걸렸으니 SUB-4의 56분 40초에는 여유가 있었다. 오릉을 감아돌며 1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화장실을 물색했다. 고단하고 피곤하면 소변이 자주 마려우니 어쩔 수 없었다. 화장실 생각만 하다 보니 현저하게 스피드가 떨어지고 있어 허수아비님께 먼저 가시라 하고 간이 화장실에 들렀다. 허수아비님과의 동반주는 거기까지였다. 2차 반환(16.4킬로미터)할 때나 3차 반환(26.3킬로미터)할 때나 4차 반환(36.3킬로미터)할 때도 허수아비님은 내 앞에 계셨다.
바람은 꾸준히 불어서 뙤약볕 아래 달려도 덥지 않은 느낌이었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면 좋은 기록이 예상되었던 대회였다. 하지만 지난 97번 풀코스 완주하는 이 핑계 저 핑계 없었던가? 97번이면 97번, 98번이면 98번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풀코스 달리는 동안 '와! 신난다!'라고 소리치며 달리는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몸풀렸다고 속도 올리며 까불다가 후반에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다. 갑자기 쓰러져 죽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27킬로미터 지점에서 화장실에 한번 더 들렀다. 3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속도에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울러 암시했다. 지금 속도로 달려도 SUB-4는 충분하다. SUB-4 못하면 어떤가? 지난 대회 기록(4시간 7분 41초)을 깨뜨리는 데 문제가 없으니. 기록 좀 못 깨면 어떤가? 마라톤은 당일 컨디션에 따라 기록이 좌우되는 종목인데. 마라톤을 그냥 내 삶의 이벤트요 활력소로 생각하는 것도 좋으리라. 30킬로미터 지점을 2시간 50분이 되기 전에 통과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페이스대로 밀고 나간다면 SUB-4 달성은 무난했다. 어느 정도 힘을 아꼈기 때문에 지치지는 않았다. 쵸코파이를 한번밖에 먹지 못한 게 아쉽긴 했으나 바나나로 대체했다. 스포츠겔이 없이도 완주하는 데 무리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앞으로 스포츠겔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32킬로미터 통과. 이제 10.195킬로미터를 57분대로 달리면 SUB-4는 무난했다.
대회 기념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허수아비님을 찾는다는 것은 '월리를 찾아라'보다 더 힘들었다. '월리'는 사람들과 구분되는 옷을 입고 있기나 하지. 같은 기념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풀코스 베테랑들은 좀처럼 대회 기념 티셔츠를 입지 않는데 경주국제마라톤 대회에는 기념 티셔츠를 입은 풀코스 주자가 유독 많았다. 허긴 풀코스 주자가 1천 명이 넘게 달리니. 완주자(남자996명 여자 88명)는 1084명의 인원이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기념 티셔츠 착용 부대이다. 26킬로미터쯤에서 허수아비님을 마주한 뒤 36킬로미터를 넘어서기 전에 허수아비님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빨리 달리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조금 늦게 달리는 페메 사이에서 달리시던 허수아비님이 조금 뒤로 떨어져 달리시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SUB-4는 가능해 보였다. 4차 반환한 이후 스퍼트하였다. Km당 5분 53초대에 달리던 페이스를 5분 15초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38킬로미터 지점에서 허수아비님을 지나쳤다. 처음에는 허수아비님이 아니신 줄 알았다. 허수아비님이 뒤에서 불러 준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 뒷모습이나 옆모습은 허수아비님이 아닌 것처럼 보였을까? 38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살이 빠져서 변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허수아비님이 뒤에서 속도를 내어 달려오시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빨리 하였다. 38킬로미터를 넘고 나면 늘 그랬던 것처럼 '에라 모르겠다' 레이스였다. 40킬로미터까지만 가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니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지난 8월 12일 알천구장에서 경주시민운동장까지 자가용을 타고 이동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차로 이동한 코스를 내 발로 달려낸다는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몹시 갈증을 느꼈다. 경주교, 첨성대, 형산강, 오릉, 경주국립박물관, 황룡사지, 분황사, 알천교. 천년 고도의 유적과 내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곳을 하나씩 챙기며 골인 지점을 내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주에서 달리면 늘 잠이 부족한 상태로 달리게 되지만 사무치게 다가서는 깊은 느낌이 있었다. 피니시라인으로 들어서러면 우회전해야 했다. 우회전하기 직전 첫번째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다. 따라잡지 않아도 SUB-4는 가능했지만 피니시라인에 들어선 후 더 열심히 스퍼트하여 앞에서 달리던 페메를 추월하였다.
3:57:12
4개월만에 SUB-4 주자로 돌아왔고, 경주국제마라톤 기록을 10분 29초 단축하였다.
완주메달부터 챙긴 뒤 골인 아치에서 주로쪽으로 더 나아가 허수아비님을 기다렸다. 4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허수아비님은 4시간을 살짝 넘긴 후 들어오셨다. 옆구리 통증에 시달리면서 Km당 페이스가 7분대까지 나빠졌다는 허수아비님은 헤어질 때까지도 내내 아쉬워하셨다. 대회 기록을 경신하기는 했지만 SUB-4를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쉬우신 듯. 이 다음 부산마라톤에서 가을의 전설을 노리시겠지만 그때 같이 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제주 서귀포에서 100회 도전하는 나로서는 부산마라톤에 참가할 경우 제주감귤국제마라톤 참가비 결제, 왕복 항공요금 결제, 렌트카 예약 문제까지 모조리 되돌려야 하니까 현실적으로 바꾸기가 힘들다. 2년 전 부산마라톤이 풀코스 50회였으니 100회를 부산마라톤에서 하는 것도 좋을텐데.
내내 가고 싶었던 화장실은 골인한 후 갔다. 허수아비님 덕분에 곰탕도 잘 먹었고, 신경주역까지 편히 올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열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창문에 머리를 대고 한 시간 동안 골아 떨어져 있었다. 극도로 피곤해서 잠이 들 경우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드는데 다행히 살아나 마라톤 후기를 이렇게 쓰고 있다.
출발할 때 내 왼편에는 허수아비님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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