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4 YTN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2014/11/23)-FULL

HoonzK 2014. 11. 26. 17:23

어이없게도 풀코스 최고 기록을 세울 뻔 했다.

충분한 휴식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달렸는데도.

대회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하니 아예 금요일밤을 넘겨 토요일 새벽 3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짧게 잤다. 그랬더니 토요일 밤이 깊어지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꿈은 들입다 꾸고 새벽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으나 그래도 자기는 잤다.


영하가 아닌 날씨이니 지난 여름과 똑같은 복장으로 마라톤 출발 선상에 섰다.

준비운동은 다리 스트레칭 한번 한 것밖에 없다. 1킬로미터를 달리고 덮어썼던 비닐을 벗어 던졌다.

첫 1킬로미터는 5분 45초. 이대로 가다간 SUB-4는커녕 4시간을 넘기고 만다. 야금야금 스피드가 올라갔다.

2킬로미터 지점에서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렸다.

이 와중에 500회 완주하시는 용산고 출신의 김용구님에게 축하를 드리러 다가갔다.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셨다. 자주 봤단다. 늘 같은 복장에 버프를 뒤집어쓰고 달리니 몇몇 분이 심심찮게 알아보신다.

어쨌거나 대단하시다며 박수를 쳐드렸다.


잘못된 4킬로미터 표지판.

옆에서 달리던 주자 한 분이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4킬로미터 표지판이 늦게 나타났다고 알려주었다.

5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26분 10초.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아직도 함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3시간 40분대의 페이스로 치달리고 있으니.

암사대교쪽의 오르막을 미리 조심하는 것인가?

안개도 많이 끼고, 구름도 짙은 서늘한 늦가을의 날씨.

2년 전 이 대회를 달릴 때에는 얼음이 꽁꽁 얼은데다 바람까지 불어 몹시 힘들었다. 그래도 반바지를 입고 후반에 스퍼트하여 3시간 43분대로 골인하였다.

장갑과 버프에 긴팔은 필수였고. 그런데 오늘은 반팔에 버프와 장갑은 없다.

4시간 페메가 빨리 달린 우연 덕분에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5킬로미터 지점에서 한번 따라가봐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

6킬로미터 지점에서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게 되었다. 중앙서울마라톤에서는 따라가려고 그렇게 애써도 따라잡지 못했던 그 페메였다.

이번에 개통된 암사대교 직전 9킬로미터 지점에서 오르막이 나왔다. 한강 주로 가운데 가장 힘든 구간. 벌써 걷는 사람도 나왔다.

오르막에서 3시간 45분 페메는 속도를 현저하게 늦추었다. 이 느린 속도가 답답해서 나는 세차게 치고 나갔다.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하려고 객기를 부리는지.

그것이 3시간 45분 페메와의 결별이었다. 양재천에서 2차 반환할 때 마주친 것말고는 다시 만날 일이 없게 되었다.

14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화장실에 들렀다 나왔을 때에도 나는 페메 앞에 있었다.

11킬로미터를 넘었을 때 건너편에서 오는 희수형님을 보았다. 꽤 빠른 페이스였다. 하프를 달리시다니. 풀인 줄 알았는데.


양재천으로 진입하면서 만난 하프 지점에서 시간을 체크하였다. 1시간 49분이었다.

한강 구간에서는 하프 주자와 뒤섞여 시장통처럼 북적거렸지만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남은 하프 구간에는 오르막도 없고 화장실에 들를 일도 없으니 1시간 49분보다는 좀 빠르게 통과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힘은 남아 있는가? 글쎄. 의령에서 3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린 경험이 있어 두려운 감이 있었다.

하프 이후에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페메를 보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서 내가 빨리 달리는지 늦게 달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여럿이 모여 달리는 발걸음이 들리지 않으니 아직 3시간 45분 페메의 추격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급수대와 간식은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양말이었다. 발바닥에 구멍이 난데다 탄력이 없어져 흘러내려왔다. 엄지 발가락이 짓눌린 것처럼 아팠는데 수시로 발과 이격되어 마찰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피멍이 들었다. (양말 고르는 것도 쉽지는 않다. 너무 얇으면 발이 피곤하고, 너무 두터우면 신발이 꽉 끼어 달리는 내내 신경이 쓰인다. 너무 얇지도 두텁지도 않은 양말을 구하기가 용이치 않다.) 내 피멍을 들게 한 양말은 완주한 후 버렸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달렸다.

이따금 아는 분이 앞에서 나타나면 손을 흔들어 드렸는데 응대해 주는 분이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빨리 달리다 보니 여유가 없어진 듯.


30킬로미터 지점에서 시계를 보았다. 2시간 35분 23초.

이 기록은 지난 춘마 때와 거의 비슷하다. (2014 춘마 30킬로미터: 2시간 35분 18초/ 2006 춘마 30킬로미터: 2시간 35분 24초)

그때 3시간 36분대였으니 비슷하게 골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과감하게 치고 나갈 경우 어쩌면 춘마의 기록을 깨뜨리거나 풀코스 기록까지 경신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살짝 흥분되었다.

그렇게 되면 손기정 마라톤에서 하프와 풀 최고 기록을 갖게 되는군.

30킬로미터를 조금 지나자 2차 반환점이 나왔다. 반환했다.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맞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바람을 신경써 본 적이 없었는데. 이 맞바람을 뚫고 스피드를 올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메이저 대회에서처럼 넓은 주로를 따라 달리며 스퍼트할 수 있었던 때와도 달랐다. 산책 나온 사람과 자전거 부대를 일일이 피해 가면서 좁은 주로를 달려야 하니 수시로 스피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35킬로미터가 지나서 힘차게 달려 볼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다만 영영 따라잡지 못해 보였던 돌곶이 마라톤의 한 주자나, 누군가의 100회 완주 축하 문구를 등에 달고 달리는 58개띠 마라톤 클럽의 한 주자를 39킬로미터 지점에서 제칠 수 있었고, 내가 제치는 동안 나를 제치는 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잘 달리고는 있었다. 달리면서 나는 적당히 타협하였다. 36킬로미터 지점에서 잔여 6.195킬로미터를 30분 가량에 달릴 수 있다면 3시간 37분대이고, 32분에만 달려도 3시간 39분대가 가능하다는 것.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내가 참가한 대회가 메이저 대회도 아니잖아. 만약 내가 39킬로미터를 달린 후 시계를 보았다면 2014 춘마 기록에 도전했을까? 미지수이다.

40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서 시계를 보고난 뒤 올해 최고 기록은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2.195킬로미터를 10분 10초로 뛴 게 가장 빠른 기록이었으니 그 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춘마 기록을 깨뜨리기 힘들었다. (이번 춘마에서는 같은 구간을 10분 18초로 달렸고, 최고 기록을 세울 때에는 10분 36초에 달렸다.) 골인 아치 1킬로미터를 남기고 주로가 구불구불해지기 때문에 스퍼트하는 데 어려움도 있으니 스피드를 수시로 조절해야 했다.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하프 주자로 넘치던 골인 지점은 한산했다.

골인한 후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완주메달과 간식을 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지하철역을 향하여 걸어가는 동안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2014 YTN 손기정평화마라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강훈식님 기록은 03:36:29.15입니다.

11/23 11:55 am


2014 춘마 때보다 9초가 늦었다. 최고 기록에는 1분 28초가 늦었고.

(춘마 때에는 내가 이 날을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던가? 고된 훈련을 견디어 내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던가? 이러면서 자기 자신을 채찍질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그럴 일이 없으니 아무래도 승부욕을 끌어올리기 힘들었다.)

어쨌든 메이저 대회나 국제 대회가 아닌 대회에서도 3시간 30분대를 다 기록하네.

4개월 전 무려 4시간 59분에 완주했던 코스에서 이렇게 달릴 수 있었다니......

 

 

 

 

 

 

 


모자: 바이저 버프

겉옷: 곤색 필라 티셔츠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젤 SP트레어너(하프마라톤 대회 전용)

장갑: 미착용

바지: 팀스포츠 반바지

양말: 디아도라 중목

목도리: 없음

테이핑: 왼쪽 종아리 두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