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님!
지금쯤 출발하셨겠네요. 컨디션 좋으신가요? 올해도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시나요?
저는 10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습니다. 춘마보다는 47초 가량 늦었지만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울 때보다는 10여 초가 빠르네요.
전철역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잠실종합운동장역, 신천역, 잠실역, 몽촌토성역, 강동구청역(5킬로미터 지점), 천호역, 강동역, 둔촌동역, 올림픽공원역, 방이역(10킬로미터 지점), 송파역, 수서역(15킬로미터 지점)..... 이렇게 전철역 확인하면서 이동 거리를 계산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네요. 여느 마라톤 대회와 달리 대로를 달리는 경우가 많아서 한눈에 달림이들 수천 명이 들어옵니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보다 1분 이상 늦게 출발하다 보니 따라가기 쉽지 않습니다.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잘 달릴 수 없는 부정적인 요소가 몇 가지 있었으니까요.
잠을 별로 자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식사를 포기하고 단 몇 십분이라도 잠을 더 청했어야 하는데 미련하게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하루 종일 서 있었는데다 갑자기 남의 차 운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정체된 내부순환도로 위에서 밤이 깊도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먹기는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네요. 불고기버거 먹자마자 바로 라면에 김밥을 먹고, 양푼이비빔밥 먹고, 거기에 사발면에 삼각김밥 2개...... 몸을 망가뜨리고 달리려니 쉽지 않습니다. 춘천에서 보여주었던 도전의식을 중마까지 끌어오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주에 하프를 빨리 달린 것도 부담스럽고요.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11월치고는 덥다는 느낌이 드네요. 4년 전 중마 달릴 때 누렸던 서늘한 늦가을의 정취를 되새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때는 달리고 난 후에도 힘이 남아 바로 다음날 8킬로미터를 더 달릴 정도였는데 오늘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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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놈의 새끼야!"
15킬로미터 가기 전에 들려온 욕설이었다.
그 욕을 들은 사람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극구 사죄하기만 하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왜 그랬을까? 달리다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상상만 하게 되었다.
소변을 참고 달리다 14킬로미터 지점을 넘어서면서 노상방뇨를 하려고 급히 주로를 이탈하였다. 뒤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이렇게 미안할 수가. 급히 사과했지만 내 자신의 태도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나야 말로 '상놈의 새끼'라는 욕을 들어먹을 짓을 했다. 300번이 넘게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도 주자들을 배려하는 매너 하나 지키지 못하다니. 이 다음부터는 주로를 변경할 때 좀더 신경썼다. 뒤에서 누가 달려오는지 확인하고 주로를 바꿨고, 물을 마시는 급수대에서는 손을 흔들어 물마시러 가까이 갈 것임을 주변의 달림이들에게 알렸다. 웬만하면 사람들과 붙어서 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성했다. 이기적인 달리기로 다른 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물컵을 던질 때에도, 바나나 껍질을 버릴 때에도 주변의 달림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와는 300미터 정도 차이가 난 것같았다. 하프 지점을 통과할 때의 기록을 보니 1시간 51분 35초. 후반 하프를 좀 빨리 달려준다면 3시간 39분대가 가능하겠지만 페이스가 올라오지도 떨어지지도 않고 이븐 페이스로 나아가고 있었다. 허수아비님의 지난해 부산마라톤 기록과 비슷해질 것같기도 했다. 30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2시간 39분 03초. 2시간 40분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12.195킬로미터에서 춘마 때와 똑같은 페이스의 역주를 한다면 3시간 39분대가 가능했다. 그러나 춘마 때와 같은 후반 스피드를 보이지 않는 한 근접하기 힘든 기록. 34-35킬로미터, 38-40킬로미터 지점에서 나타나는 오르막은 스피드를 제어했다. 36개월 연속 매달 풀코스를 달리는 나 자신. 기를 쓰고 달릴 필요가 있을까? 좀더 즐기면서 달리는 것은 어떤가? 풀코스 완주 도전에 나선 1만 5천명의 마스터즈와 서울과 성남 일대 나들이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도심까지 내려온 단풍을 만끽하고, 도로를 막고 달리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을 되새기는 것은 어떤가? 이내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5분 10초에서 20초를 왔다갔다 하는 페이스. 4분 50초대에 달릴 수 없는 게 오히려 편안했다. 몸에 무리도 없고. 35킬로미터 이후 세 명의 주자가 나를 제쳤다. 그 중 한 사람은 따라잡았고, 두 사람은 나보다 몇 십 미터 앞에서 골인하였다.
3시간 39분을 버리고 나니 편안한 마라톤 여행이 되었다.
골인한 이후 몸을 가누기 힘들어 제자리에 서서 상체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리가 저려 어색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도 없었다. 골인하기가 무섭게 풀코스를 언제 달리기라도 했느냐는 식으로 가볍게 걸어다니고 폴짝폴짝 뜀걸음까지 한다. 그게 2014 중앙서울마라톤을 완주한 직후의 내 모습이었다. 몸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여야 했는데 그게 오히려 몸에 걸리는 과부하를 없애주었다. 칩반납을 하지 않아도 되는 마라톤이니 새벽에는 그냥 뛰지 말고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달리고 나니 드는 생각. 그래도 일요일 오전 방에 누워 늦잠을 자는 것보다는 풀코스를 달리는 게 훨씬 낫다.
3시간 43분 22초.
2014 서울중앙마라톤의 내 기록이다.
2014년에는 우리나라 3대 메이저 대회인 춘마, 중마, 동마를 모두 달렸다.
올해 21번 달린 풀코스 가운데 개인 1, 2, 3위의 기록이 모두 조중동이다.
3시간 30분대, 3시간 40분대, 3시간 50분대.
메이저리그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기에 빨라지는가?
1만명이 넘는 주자들과 함께 달리다 보니 덜 힘든 것인가?
1주일 뒤 하프를 달리고 2주일 뒤 다시 풀코스에 도전한다. 3주일 뒤 하프를 달리고 4주일 뒤 다시 풀코스에 도전한다.
상기 코스는 대회 사정상 변경될 수 있습니다.
참가비 | 4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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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시간 | 5시간(출발기준) |
참가자격 | 만 18세(96년 11월 8일) 이상 신체건강한 남녀 |
제공물품 | 배번호, 프로그램 책자, 기록칩(일회용), 완주메달 및 기록증 (완주시) |
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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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부분이 너무 넓어서 가슴이 보일 정도다. 목 부분만 좁혔다면 좋았을 기념품인데.....
골인할 때 일부러 주자들 틈에서 빠져나와 V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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