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부터 잠실종합운동장 1번 출구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된다고 했다. 화장실 이용을 위해서라도 일찍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새벽에 잠을 설치는 바람에 이동할 때는 비몽사몽 상태가 되어 지하철 환승 타이밍을 놓치면서 당초 예상보다 늦게 셔틀버스를 탔다. 그래도 대회장에 도착하니 7시 32분. 2킬로미터를 걸어 화장실에 갔다. 그렇게 떨어져 있으니 아무도 없었다. 다시 2킬로미터를 걸어와 뜀박질 복장으로 갈아 입은 후 가방을 맡겼다. 물품 보관 확인용 팔목밴드를 주었다. 배번이 없이 모두 뉴발란스 기념품을 입어야 했다.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라곤 왼쪽 허리춤에 찍힌 번호였다. 나는 6003번. 평소보다 딱딱한 일회용 칩을 신발에 달았다. 스트레칭은 개인적으로 하였다. 너무 많이 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천천히 달려 몸을 푸는 게 더 효율적이고 부상도 없으니......
하프 단일 종목만 참가 신청을 받은 대회이다 보니 출발선의 플래카드는 한 장이면 되었다. 페이스메이커는 1시간 50분, 2시간 00분, 2시간 10분이 있었다. 모두 젊은 친구들로 체육학과 학생들로 보였다. 달리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나처럼 나이든 사람이 거의 없었다. 100명에 한 명 꼴 정도로 중년이 눈에 띠었다. 죄다 20대 청년들이었다. 5천명의 주자들에 뒤섞여 달리면서 내가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많이 달리는 대회에서 뛰어본 적이 있던가 되짚어 보았다. 없었던 것같다. 브랜드를 걸고 하는 대회는 거의 나가 본 적이 없으니.....
2킬로미터 지점에서 1시간 50분 페메는 50미터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13킬로미터 지점에서도 50미터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이븐 페이스로만 달렸다. 5킬로미터 지나, 또는 10킬로미터 지나 스퍼트하는 젊은이들이 있었지만 동요하지 않고 내 페이스를 지켰다. 아직 피곤한 상태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주로가 좁아 막 달렸다간 부딪힐 수도 있었다. 10킬로미터 통과 기록이 51분 30초 전후이니 괜찮은 편이었다.
상의 복장이 천편일률적이라 기준이 될만한 사람이 없었다. 날씨가 쌀쌀하여 밀리터리룩 조끼를 입고 달리는 젊은이가 3킬로미터 지나 내 앞으로 치고 나가고, 4킬로미터 지나 다시 내가 치고 나가고, 6킬로미터 지나 다시 그가 치고 나갔다. 그는 1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와 보조를 맞추며 달렸다. 10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페메보다 몇 십 미터 앞에서 달렸다. 12킬로미터 넘게 달린 후 반환하였다. 갈 때는 몰랐는데 돌아올 때 보니 흙먼지가 자꾸 눈으로 날아들어왔다.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주자들을 피하여 달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15킬로미터 이후 스피드를 올려 보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경정장에 들어서는 18킬로미터 지점부터 박차를 가해도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14킬로미터 지점에서 내 페이스가 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디선가 플라스틱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딱!
뭘까? 두리번거리며 십여 미터를 달렸는데 내 발등에 있어야 할 칩이 없었다. 내 칩이 끊어져 달아나간 것이었다. 그 소리가 내 칩이 끊어진 소리였던 것이다. 소중한 내 기록! 되돌아 뛰었다. 1시간 50분 페메와 20미터 정도로 간격이 좁혀졌는데 이런 낭패가 있나? 다행히 되돌아가 칩을 찾았다. 빨간색 칩이다 보니 눈에 잘 띠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끊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칩 하나가 보였다.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지나쳤다가 10여 미터를 되돌아가 칩을 들었다. 3312번 칩.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찾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왼손에는 내 칩을 들고 오른손에는 3312번 주자의 칩을 들고 달리는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다른 사람의 칩은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 넣었다. 이때부터 내 달리는 모습은 이상해졌다. 앞을 달리는 게 아니라 옆을 보면서 달리고, 누군가를 제치면 그 사람의 허리춤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며 고개를 저으며 달렸다. 칩을 전해주려면 늦게 달려서는 안되니 자연히 스피드를 올리게 되었다. 15킬로미터 지점을 지나기가 무섭게 1시간 50분 페메 무리를 제쳤고, 16킬로미터 가기 전에 밀리터리룩 조끼 청년도 제쳤다. 옆구리 보면서 달리는 게 힘들어 신발을 보면서 달렸다. 신발에 칩이 없는 사람은 칩을 잃어버린 사람이니 그제서야 배번을 확인하였다. 3킬로미터 이상 달리는 동안 백 여 명을 제쳤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없었다. 17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경정장 코스로 들어섰을 때에도 사람 찾기 임무는 계속하였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가 자꾸만 떠올랐다. 마라톤 대회에서 바닥에 떨어진 배번을 찾아주려고 한 사람 한 사람 제치던 기봉이가 꼭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사람들을 확인하면서 달리다 보니 반가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키가 훤칠하게 큰 30대 중반의 사나이. 내가 아는 사람 아닌가 하여 뒤를 자꾸 돌아보는데 그는 왜 그러는가 하였다.
-혹시 제가 아는 분 아닌가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장신은 왜 자신을 자꾸만 쳐다 보느냐며 기분이 나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로운님 아닌가요?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이로운님이 맞았다. 2012년 춘천마라톤을 뛰고 난 뒤 춘천역을 묻기에 안내자가 되어주면서 알게 되었던 대전 출신의 달림이.
골인 후 만나기로 하고 나는 스피드를 올리며 칩 주인 찾기를 계속하였다.
시간측정 패드가 나오면 손에 들고 있던 칩을 인식시키느라 바닥까지 손을 내리기도 하였다.
18킬로미터를 넘어섰을 떄였다.
마침내, 마침내 찾았다. 칩 주인을.
-정말 찾는다고 힘들었어요. 여기 잃어버린 칩이요.
매우 고마워하는 칩의 주인. 20대 젊은이였다.
홀가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진 나 자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밀물처럼 내 뒤로 빠지는 주변의 달림이들.
19킬로미터 지점. 시계를 보았다. 1시간 35분 중반대.
1시간 45분 이내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프가 21킬로미터라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21킬로미터 뒤에 붙은 0.975킬로미터가 부담이었다. 20킬로미터 지점에서는 일부러 시계를 보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아깝게 1시간 45분을 넘기지 않겠는가 하는 계산을 하였다. 1킬로미터를 남기고도 수십 명을 제쳤다. 나에게 추월당한 젊은이가 다시 나를 추월했는데 10미터 정도만 앞서갔을 뿐이다. 그의 몸놀림을 보니 너무 지쳐 있었다. 스피드를 올려 추월한 뒤 골인하면서 손에 든 칩을 인식기에 대었다.
여대생들이 아주 큰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대형타월도 몸에 덮어주었다.
팔목밴드를 끊어 반납하고 되찾은 짐, 휴대폰에 문자가 와 있었다.
1:44:29
이런, 올해 13번의 하프 가운데 최고 기록이었다.
이로운님과는 다시 만나 사진도 찍었다.
대형 타월 마음에 든다.
메달이 크기 때문에 다른 대회 메달과 비교해서 찍어 보았다.
6003번 배번의 티셔츠
배번을 늘 보관하는데 이 대회는 배번이 없으니 칩을 보관하여 달린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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