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마라톤, 흔히 동마라고 지칭하는 동아마라톤 대회. 여섯번째 완주였다.
내 생애 최초의 풀코스였던 2006년 3월 동아마라톤. 출발하면서 숭례문을 바라보고 달린 게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동안 숭례문을 보지 못했다. 2008년 방화로 국보 1호가 소실된 이후 지난 해 5월에야 복구되었으니 무려 8년만에 숭례문을 보고 달리게 되었다. 그동안 칸막이로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B그룹에 3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는데 올해에는 3시간 40분 페메가 가장 느린 페메라 나 스스로 알아서 달려야 했다. 두툼한 살집이 옆구리에 달라붙은 몸매로 3시간 40분 페메를 따라뛴다는 것은 무리였다. 페이스메이커가 없다는 것. 달리는 내내 사람을 괴롭혔다. 나 자신이 알아서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달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간밤에는 긴장한 탓인지 잠을 자도 잔 것같지 않았다. 가면(假眠) 상태로 몇 시간 누워 있었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누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중얼거려도 벌떡 일어날 수 있을 것같은 기분으로 누워 있었다. 몇 번이나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다녀왔다. 나중에 잠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대회장으로 가면서 내내 하품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뚱뚱하지, 피곤하지, 미세먼지도 많지. 내 짐을 실을 택배 차량은 91번 차량이었다. 마지막 차량을 찾아 광화문광장 끝까지 걸어야 했다. 풀코스 참가자가 2만 1천명이니 소변을 보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B그룹 앞쪽에서 출발하였다. 단상에 있는 정몽준씨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나가는 마라토너가 꽤 많았다.
뒤로 밀리거나 앞으로 치고 나가거나 하는 일 없이 그저 이븐 페이스로 달렸다. 주위에 달림이들이 많아서 눈을 감고 달린다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0~5km 27분 16초
5~10km 27분 19초
10~15km 27분 05초
15~20km 27분 12초
20~25km 27분 57초
25~30km 28분 14초
30~35km 28분 58초
35~40km 26분 40초
20킬로미터 지점까지는 5킬로미터 랩타임이 거의 일정하였다. 급수대는 절대 빠뜨리지 않았다. 급수대가 나올 때는 미리 도로의 오른편으로 이동하여 주변 주자들의 동선을 파악한 뒤 물컵을 찾아갔기 때문에 충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스폰지는 후반부를 제외하면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하프 이후 속도를 늦추었다. 지친 이유도 있지만 후반을 위하여 에너지를 비축해 두자는 심산도 있었다. 권대현님은 앞에 계실까 뒤에 계실까? 26킬로미터 지점에서 앞에서 달리시는 권대현님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말을 붙였는데 매우 지치셨는지 반응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리액션이 없으시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가 아니면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가 궁금하였다. 내내 궁금증을 안고 달렸다.
28킬로미터 지점을 넘어서기 전에 지쳐 버린 줄넘기 마라토너를 제쳤고 그때 내내 손에 들고 뛰느라 성가셨던 스포츠젤을 먹었다. 정말 힘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분히 심리적인 이유일 듯도 싶다. 스포츠젤을 먹었으니 힘이 날 거야 라는 동기 부여. 힘이 될 요소는 뭐든지 끌어와야 해. 포카리스웨트도 마시고, 쵸코파이와 바나나도 빠뜨리지 말고......
서울 도심을 왔다갔다 하면서 35킬로미터를 채우고 마침내 한강을 건너는 대회.
광화문에서 맡긴 짐을 잠실주경기장에서 찾기 위하여 꾸준히 달려야 하는 대회.
언제나 기준은 잠실대교였다. 35킬로미터 지점의 잠실대교.
잠실대교를 건너면 방전되었던 체력이 급격히 재충전되면서 새로운 마라톤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늘 있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하프 이후 35킬로미터까지는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22킬로미터 지점 신답초등학교를 지나며 축구부원들이 연습하는가 살펴보기도 하고, 신답지하차도의 오르막은 너무 힘드네 투덜거리기도 하고, 23킬로미터 지점에서는 김규환 선수의 아버지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출근하셨을까 중얼거려보기도 하고. 군자교를 건너며 중랑천을 내려다보고 어린이대공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지겨웠던 20킬로미터 후반대를 지나고 서울숲을 코 앞에 두고 30킬로미터 지점에 진입한다. 멍하니 30킬로미터를 달리고 남은 12.195킬로미터는 제대로 달리는 대회가 풀코스라고 누군가 그랬다. 속도를 떨어뜨리는 과정,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 중후반부에 내내 이어진다. 이제는 킬로미터당 6분 페이스로 달려도 SUB-4는 가능했다.
33킬로미터 지점에서 뚝섬유원지에서 출발한 10킬로미터 주자들과 합류하였다. 풀코스 표지판말고도 10킬로미터 표지판도 나오는데 페이스 조절에는 도움이 되었다. 4킬로미터 표지판이 나오면 정확히 6킬로미터 남았구나 하는 식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지극히 길었던 풀코스 중후반대.
마침내 잠실대교가 나왔다. 에너지는 충전될 것인가? 정말 충전되었다. 힘이 나기 시작했다. RUN119의 음두호씨는 오늘도 깃발을 들고 달리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실대교를 건너갔다. 발놀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날씨는 더워져 긴팔을 입은 것을 몹시 후회했지만 소매를 걷어붙이는 식으로 참았다.
35킬로미터 지점부터 40킬로미터 지점까지의 5킬로미터 랩타임 기록이 다른 일곱 차례의 5킬로미터 랩타임 기록보다 좋았다. km당 5분 47초 페이스로까지 떨어졌던 속도가 5분 20초 페이스로 올라갔다. 내 뒤로 밀려나가는 숱한 마스터즈들. 4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면서 오히려 속도를 늦추었다. 옆구리에 살은 많이 빠졌나 만져보기도 하고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 둘러보기도 하면서.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트랙을 들어서기 직전 바리케이드에 기대고 서서 주자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부, 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악물었다. 트랙에서는 바깥쪽으로 크게 돌아 몇 사람을 제쳤다. 카메라맨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골인하였다.
2014서울국제 강훈식님 기록은
03:52:30/ 기록검색은 www.liverun.co.kr
3/16 12:27pm
지난 해보다 8분 가량 늦었다. 1킬로그램 살이 찔 때마다 10분 늦어진다고 보았을 때 그나마 선전한 것이다. 초반 하프보다 후반 하프가 2분 32초 늦었다. 지난 해에는 후반에 2분 가량 빨랐는데, 올해는 20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 지점까지 달릴 때 꽤나 속도를 늦추었으니 35킬로미터 이후 분전했어도 만회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뚱뚱해졌으니 대가를 치뤄야지. 밤늦게 먹지 좀 말고 운동량 좀 늘려서-뛰는 것뿐만 아니라 등산도 좀 해야겠다-4월에는 날씬한 몸이 되어야지.
권대현님을 기다렸다. 물품보관소와 탈의실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골인 지점 아치가 잘 보이는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오후 1시가 넘어 재회할 수 있었다. 풀코스는 운이나 요행으로 뛰어낼 수 없는 종목이라는 것을 절감하였다고 하셨다. 지난 해에 비해 훈련이 부족했음을 인정하셨다. 지난 해에는 대회를 앞두고 32.195킬로미터 대회에도 참가하시고 했는데, 올해는 하프 정도의 훈련으로만 준비를 했더니 후반에 눈에 띠게 몸이 둔해졌다고 하셨다. 그래도 대단하신 건 한번도 걷지 않고 달리셨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달리다가 걷는 사람을 보면 투덜거리곤 했다.
'나도 걷고 싶게 왜 걷고 그래?'
하지만 요즘에는 좀 달라졌다.
"거의 다 왔는데 함께 뛰시죠?"
"파이팅하시고요."
이렇게 격려한다.
초반에는 낡은 양말을 신어 달리다 밀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사타구니가 쓸린 데도 없고, 물집도 없다. 무릎이 아프지도 않고, 다리도 저리지 않는다. 다음 주 장흥에서 풀코스 달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겠구나. 다행이다. 4주 연속 이어지는 풀코스. 다음 주부터는 모두 지방이구나. 전남 장흥, 제주도, 합천.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2006년 춘천마라톤 아식스 기념 티셔츠
속옷: 민소매
신발: 아식스 젤 SP트레어너(하프마라톤 대회 전용)
장갑: 미착용
바지: 월드런 반바지
양말: 디아도라 중목
목도리: 버프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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