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4 진주남강 마라톤(2014/03/02)-FULL

HoonzK 2014. 3. 7. 12:36

-어찌 지내고 계신지요? 마라톤은 늘 하시겠죠? 엊그제도 하셨겠네요. 3/3 10:20am

 

-네 토요일 하프 어제 풀 뛰었지요. 3/3 10:21am

 

-아주 휘발유를 끼얹고 불구덩이로 들어가시는군요.

 

죽기전에님이 이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56번째 완주를 마쳤지만 달리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달리기를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객지 생활의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하프를 달리고, 바로 그 다음 날 풀코스를 달리기로 했다는 게 무리수였다. 풀코스마저 심야고속버스 타고 내려와 객지에서 달리는 대회를 선택하다니. 서울에서 진주는 너무 가까웠다. 새벽이라 더 빨리 달려 차 안에서 쉴 시간이 거의 없었다. 더욱이 한 승객이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 코를 골아 승객들을 모두 깨웠다. 비몽사몽간을 헤매는 느낌으로 새벽 3시 반도 되지 않아 진주에 도착했다. 늘 가던 PC방으로 갔는데 손님들이 거의 꽉 차 있었다. 담배까지 피웠다. 담배를 피워도 되는 PC방이니 손님이 그렇게 많았겠지. 다른 PC방으로 갔다. 인터넷 좀 하다가 의자에 앉아 잠시 졸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세 시간 넘게 피로만 쌓은 뒤 나왔다.

 

 대회장으로 바로 가는 게 나았는데 용우동에서 새우튀김우동을 먹었다. 자정경 자장면을 먹었고, 전날 저녁으로는 돼지고기 무침을 먹었으니 아주 몸을 무겁게만 만들고 있었다. 250번 버스를 20분쯤 기다렸다. 존 바스의 <연초도매상>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으니 지겹지는 않았다. 버스에 오른 뒤 진주성이 보이기가 무섭게 긴장하고 테마건강랜드 정류장에서 내렸다. 대회장까지 가려면 500미터 이상 걸어야 했다. 점점 피곤해지고 있었다. 대회장 도착해서는 화장실이 부족해서 또다시 500미터 이상 걸어나와 주유소 화장실로 갔다. 피곤함의 절정으로 치닺고 있었다.

 

탈의실에서 손모철님을 만났다.

-지난 해 100번 넘게 뛰셨죠?

-114번이요.

-그럼 기네스 기록 아닌가요? 축하드려요.

-임채호 선배님이 작년에 129번 뛰셨으니 기록 아닙니다.

 

Oh, my goodness!

129번 뛸 수 있는 대회도 대회거니와 개인적으로 129번 풀코스 뛸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손모철님은 전날도 풀코스를 달렸다고 했다. 건너편에서 전투복(?)으로 갈아입는 장헌우님. 내일 모레가 환갑인데 100미터를 12초로 달린다고 하셨다. 소림권법을 비롯한 온갖 무예를 익혔고, 차력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자기 팔뚝을 만져보라고 하는데 돌보다 단단했다. 거제에 사신다는 이 분은 경남 지역에서 열리는 마라톤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 적도 있다고 했다. 아홉 시간 걸려서 페달을 밟기도 하신다니...... 탈의실을 나와서는 발차기와 몸을 던져서 바로 손바닥으로 몸을 튕겨 올리는 기술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신발이 아식스 GT2150이다. 아니, 그것 무거울텐데. 일부러 무거운 걸 신었어요. 오늘은 4시간 잡고 천천히 뛸 거라서.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8분 기록을 깨뜨리고 싶어 오늘은 훈련삼아 뛴답니다. 그럼 달리다가 저를 만나시겠네요. 제가 4시간 전후로 달릴테니까요. 과연 그럴까? 잠 거의 못 자고 4시간 이내로 달린 것은 두 살 더 어릴 때 이야기 아닌가? 그 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은데......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보다 늦게 출발.

 1킬로미터 기록이 5분 30초가 나온다. 이상하다. 어제는 6분 30초가 나왔는데. 고수들이 그런다. 1킬로미터 표지판이 잘못되었다고. 2킬로미터를 달리니 12분이 소요된다. 맞다. 이 페이스. 차츰 빨라지면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으리라. 하지만 3킬로미터를 달려도, 4킬로미터를 달려도 페이스는 회복되지 않는다. 앞에서 달리는 4시간 20분 페메 그룹은 마치 슬로우비디오처럼 움직이는데 도무지 따라잡을 길이 없다. 내가 저들보다 느리게 달린다는 말인데 몸이 나가지 않는다는 게 이런 말인가 보다. 가끔 머리가 아프니 죽음의 공포가 엄습한다. 5킬로미터를 가기도 전에 오르막이다. 진양호공원으로 가려면 오르막을 피할 수 없다. 5킬로미터 기록. 경악한다. 30분이 넘는다. 아예 뛰지도 말았어야 할 컨디션이었다. 제수문을 지나고 남강댐 위를 달리며 진양호의 풍광에 감탄하는데 도무지 몸이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될리 있는가? 달리면 달릴수록 체력은 더 떨어질텐데. 제주도에서의 열흘. 풀코스 직전 피로 회복은커녕 수면 부족까지. 죽을 수도 있다고! 어차피 한 번 죽는 것. 좋아하는 일 하다가 죽는 것이 나쁠 것도 없지. 그런 생각도 언뜻 드는데 좀더 살아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죽으면 안 돼. 아직은 아니지.  급수대에서 개념없는 달림이가 마시다 만 물컵을 던져 오른발이 뒷축부터 촘촘하게 젖었다.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지만 그는 들은 체 만 체였다. 극심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8킬로미터 지점에서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그룹을 제치고 나갔다. 분전하지만 10킬로미터 기록이 1시간을 넘겼다. 혹시나 기대했던 SUB-4는 물건너 갔다. 오늘은 완주만 해도 기적이다. 11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한적한 곳에서 근심을 해결하고 나니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그룹이 따라붙었다. 페메 뒤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서정락님 따라 뛰어야지.

 

서정락 페메님이 반갑게 맞았다. 이 분은 전날 울산 대회에서 4시간 페메를 했다고 했다. 지난 해 광주에서 동반주했던 일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춘천에 못가셨던 분 여기서 대리만족하세요. 춘천에 버금가는 풍경이지요.

 

내가 끼어든다.

 

-춘천에 없는 게 하나 있네요. 대나무가 있어요.

 

 바람이 거셌다. 앞에서 불어대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날씨가 고약했다. 바람을 등지면 더워져 장갑을 벗고 소매를 끌어올려야 했고, 맞바람이 되면 원상복귀. 진수대교를 건너면서 양쪽으로 진양호밖에 보이지 않으니 열광했다.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가니 편안했다. 견딜 수 있었다. 계속 코스가 순탄했다면 편안한 러닝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수변을 달리는 대회가 다 그렇듯이 오르막 내리막을 경험하여야 했다. 15킬로미터 이후 제법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 나왔다. 16킬로미터 급수대를 지나면서 페메 그룹과 간격이 벌어졌다. 조금씩 그 간격이 넓어졌다. 함께 달리던 영천마라톤클럽의 여성 주자도 쳐졌다. 그 분보다는 1미터 정도 앞에 있었는데 그 분은 나를 페메 삼아 따라오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3시간 40분 페메 그룹이 다가오고 잠시 뒤 장헌우님이 질주해서 오고 계셨다. 손을 흔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4시간 20분만 따라가면 되니까. 반환했다. 반환점이 언제 나올까 했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자주 교차하다 보니, 또 찬 바람이 들이치다 보니 다른 대회보다 더 힘들었다. 25킬로미터를 넘어서면서 걷는 주자들이 속출하였다. 지나칠 때마다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파이팅 소리에 반응하여 다시 달리는 분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체력의 한계에 달했는지 그대로 걷고 있었다.

 

29킬로미터에 닿기 직전 손에 내내 쥐고 달리던 스포츠 젤을 먹었다. 초반에 주로에 떨어져 있던 것을 주운 것이었다. 막 달려 나가다가 한 주자가 떨어뜨린 것이었다. 피곤한 나를 위하여 좋은 선물을 준 것이다. 28킬로미터가 넘도록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에 쥐었다 젤을 이동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후반에 오니 큰 도움이 되었다. 29킬로미터 지점의 진수대교를 건너고 나면 30킬로미터 지점으로 진입한다. 머리는 아프지만 뒷골만 당기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 거야. 나 자신을 달래본다. 문제는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앞으로 사라진 뒤 풍선조차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참 많이도 쳐졌구나. 달림이들을 꽤 제쳤는데 스피드는 지지부진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죽을 순 없지 않은가?

 

 10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새롭게 10킬로미터 대회에 출전했다고 체면을 걸어본다.

 주변에 온통 벚나무이다. 와! 대회가 4월에 열렸다면 벚꽃을 맞아가며 달릴 수 있었는데. 상상력을 발휘하여 벚꽃을 피웠다.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며 달림이의 귀환을 축하한다. 진양호의 물결은 파동을 일으키며 물새를 하늘로 날려 마라토너에게 보낸다 . 상상이 만드는 러너스하이의 순간이다. 5킬로미터 남기고 남강댐을 건넌다. 올 때 무심코 보았던 댐을 유심히 살피며 달린다. 3킬로미터 남기고 손모철님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본다.

 

-손모철님은 아주 여유있게 걸어가시네요.

 

웃음이 답으로 온다.

남강변으로 들어서면서 40킬로미터를 넘어선다. 구불구불하던 코스가 펼쳐진 코스로 바뀌니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두 분이 보였다. 300미터 앞에서. 단 한 분만이 뒤따르고 있었다. 남은 2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페메 그룹에 바짝 따라붙은 뒤 골인 지점 10미터를 남기고 추월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덕분에 잘 달렸습니다.

 

다행히 나는 죽지 않았다.

 

대회장에서 진주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어온 것은 다소 무리수였다.

진주성을 돌아 진주교를 건너 걷고 또 걸어도 터미널이 나오지 않아 긴장했다. 4킬로미터가 훨씬넘는 거리를 풀코스를 달린 몸으로 걷는 것은 웜다운의 차원을 넘어선 자학(自虐)이었다. 버스 시간이 촉박하여 먹을 것도 못 챙겼다.  이렇게 진주남강마라톤대회 출전이 끝났다.

 

 


 

땀이 말라서 소금기 허옇게......

 

 

 

 

 

 

 

 

 

 

 

 

모자: Blackyak 바이저 버프

겉옷: 2006년 춘천마라톤 아식스 기념티셔츠

속옷: ***** 민소매 티셔츠

신발: 아식스 젤 SP트레이너(하프마라톤 대회 전용)

장갑: 1천원짜리 검정색

바지: **** 러닝팬츠

양말: 프로스펙스 중목-풀코스에 얇은 양말은 처음. 그래도 견딜만 했다. 

목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하늘색 버프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오른쪽 무릎 두 줄

 

 

 

 

 

 

 

 

 

41101 배번이 서정락 페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