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전날 눈을 맞으며 1시간 반쯤 달렸고, 축구까지 하였다.
마라톤대회를 코 앞에 두고 이 무슨 무리수인가?
대회 당일 천천히 달리겠다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낮에 운동을 했으니 피곤해서 잘 잘 수 있겠지 했는데 수면장애라도 생겼는지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소치올림픽 5000미터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에 마지막 출전한 이승훈의 부진을 보고 자정 무렵 누웠다가 <심슨네 가족들> 본다고 새벽 1시까지 TV 앞에 버티고 앉아 있기도 했고, 베른하르트 슈링크의 <귀향> 읽는다고 벽에 등을 기대고 있기도 했다.
자긴 잤으나 꿈을 진탕 꾸었다.
새벽에 너무 일찍 깨어 도로 자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결국 실패했다.
지하철 빈 자리에 앉아 모자란 잠을 채워 보려고 했지만 이동 시간이 너무 짧았다.
화장실 문제때문에 여의도공원에 들렀다 여의도이벤트광장으로 갔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주로는 최악이었다.
쌓인 눈이 녹다가 얼다가 만신창이였다. 대회 집결 장소는 눈을 치운 게 아니라 염화칼슘만 뿌려 놓아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달림이들은 달리기도 전에 발이 젖을까봐 아주 곡예를 하고 있었다.
박연익씨는 뵈었지만 希洙 형님은 보이지 않았다.
스트레칭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찔렀다.
양효준씨였다. 압록강국제마라톤 대회 때 함께 풀코스를 달렸던.
그 분은 내 얼굴과 더울 때 매우 잘 달렸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워낙 해외마라톤에 자주 다니는 분이라 나를 어떤 대회에서 만났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이럴 때 내 기억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양효준씨는 내 말을 듣고 기억을 재구성하였다.
마라톤 출발한 이후 몇 백미터를 달리기도 전에 양효준씨는 내 옆에서 함께 달렸다.
-왜 이렇게 천천히 뛰세요?
-오늘은 1시간 59분대에 뛰려고요.
그 분은 보통 1시간 51분 정도에 달리기 때문에 킬로미터당 5분 40초 페이스로 달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빨리 가셔도 된다고 해도 그 분은 스피드를 올리지 않았다.
하프 반환할 때까지 함께 달렸다.
시모노세키 마라톤 대회 때 4시간 30분 동안 비맞고 달린 일화를 들었다.
북경마라톤이나 동경마라톤의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올해에도 해외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 역시 지난 해 22번이나 풀코스를 달렸으니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야기 보따리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풀어내다 보니 하프를 반환하게 되었다.
반환하기 직전 풀코스 주자들을 많이 만났다.
전상배님, 김정의님, 希洙 형님, 줄넘기 마라토너 이순길님.....
일일이 소리지르고 응원해 드렸다.
눈밭과 얼음물 피해 가며 이쪽저쪽 누볐어도 발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발가락과 발바닥이 아팠다. 신발이 작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새벽에 양말을 신을 때 뻑뻑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때문일까?
나중에 알았지만 엄지발가락에 피물집이 생겼고, 발바닥에는 주름이 잡혔다.
반환하기까지는 북서풍을 맞이하며 달렸기 때문에 춥다는 느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59분을 살짝 넘겨서 반환한 이후에는 동반주를 하지 않았다.
나 홀로 달리기였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한 명씩 주자들을 따라잡게 되었다.
12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2시간 페이스메이커 음두호씨를 따라잡았다.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깃발을 들고 뛰세요?
-늘 깃발을 들고 달리니까 요즘은 깃발을 들지 않으면 허전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스피드를 올렸다.
아무리 스피드를 올려도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물이 흐르는 주로를 밟는 소리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려왔다.
달릴 때에는 결코 뒤를 돌아다 보지 않으니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20킬로미터를 넘어서까지 발걸음 소리는 들렸다.
그 발걸음 소리가 양효준씨의 발걸음 소리였다는 사실은 골인한 후에야 알았다.
따라 붙으려고 무지 애를 썼다고 했다. 넘사벽이었지만.
남자부 하프 참가자 중에서 2시간 이내로 골인한 사람은 163명이었다.
그 중 나는 117등이었고, 양효준씨는 118등이었다.
풀코스 달리시는 希洙 형님을 끝까지 기다렸다.
발이 흠뻑 젖어 춥고 허기도 졌지만......
希洙 형님의 용클마라톤수첩에 기록된 내 이름.....
여의도 동계풀코스대회
여의도에서 방화대교쪽 주로는 엉망이다
반은 얼어있고 녹은곳은 질펀하고
안양천구간은 평소와같이 주로가 깨끗하다
제설 누가 다해놓았는지
35키로에서 쥐를 관록으로 이겨내고 골인
하프뛰고 추운데도 남아서 골인지점에서 응원해주고
기록증까지 대신 받아준 강훈식님 감사드리고ᆢ
65회 완주성공하니 뿌듯하다
다음주는 고구려대회 용클단체대회이니 묻어서 재미나게
달려야겠다
3:45:18
다음 주에는 希洙 형님과 동반주할 수 있겠네.
장흥 대회가 취소되어 고구려마라톤 대회에 나가게 되었으니......
4시간 페메와 함께 달리기로 했지만 형님은 돌연 빨라지기도 하니까 각오하고 있어야겠다.
초반에 오버페이스했다가 지난 1월 19일 일요마라톤 꼴이 나지 말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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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념품은 받지 않았음. 매니아로 참가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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