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를 자주 달리다 보면 중간에 끼어 있는 하프마라톤은 부담스럽지 않게 된다.
풀코스에 비하여 짧으니 스피드도 한껏 올리는 구간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원주에서 동서울가는 버스 속에서 받은 내 하프 기록은 아래와 같았다.
원주치악대회 강훈식(하프 1428)님의 기록은 01:39:38.06입니다. 11/24 1:24pm
날씨가 한 주가 다르게 쌀쌀해지고 있기 때문에 70% 이상은 긴팔 티셔츠를 착용하고 있었고, 긴바지를 입은 주자들도 눈에 띠었다.
하지만 나는 반팔이었다. 9월 15일 대전마라톤 하프 달릴 때와 같은 복장이었다. 출발할 때야 한기를 느꼈지만 달리고 나면 몇 킬로미터 가지 않아 추위같은 것은 모르게 된다. 10킬로미터를 넘으면 반팔이 더 현명했음을 깨닫게 된다. 긴팔 입은 주자들에게 덥지 않느냐고 묻고 싶기까지 했다.
원주치악마라톤은 사실 지난 해 참가 신청했다가 달리지 못했던 대회였다.
4주 연속 풀코스를 달려야 하는 바람에 원주보다 먼 고흥 녹동으로 가야 했다.
오전 7시 정각 동서울에서 출발하여 8시 30분에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원주종합운동장까지는 걸어서 갔다.
스트레칭은 개인적으로 마치고 운동장 실내에서 보온에 신경쓰다가 출발 5분 전에야 아치 앞에 섰다.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인 윤성태, 이명우씨와 처음부터 함께 달렸다. 페이스메이킹의 정석 광화문마라톤클럽 소속.
페이스메이커는 5킬로미터를 24분 초반에 달렸다. 따라 달리는 마스터즈들이 빠르다고 불평하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후반에 오르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벌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페메가 답한 것이 아니라 유경험자가 말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빨리 뛰어 놓는 게 좋지.
주최측에서는 도로 2차선만 달릴 수 있게 콘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비좁기 짝이 없었다. 주로가 좁다면 나 스스로 넓히는 수밖에.
6킬로미터부터는 페메로부터 치고 나가 여유공간을 만들어 달렸다.
다닥다닥 붙어 달리지 않다 보니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하니 건장한 30대를 따라가기로 했다.
키가 나보다 커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띠니 기준으로 삼아 페이스 조절하기가 용이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도 10킬로미터 가지 않아 제치게 되었다.
10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48분이었다.
조금씩 스피드를 올리고 있었는데
만약 6킬로미터부터 14킬로미터까지 오르막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초반 스피드를 유지했을까?
원주천을 왼편으로 끼고 달릴 때 꾸준히 오르막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계속 스피드를 올릴 수 있었을까?
전후 사정을 모르면 용감할 수 있다?
그래도 오르막에서 강한 편이니까......
처음에는 어디까지 달리면 몇 킬로미터 지점이라는 사실을 일일이 외우면서 달렸다.
미리 지형지물을 파악한 상태에서 거리 표지판을 보았다면 기억이 오래 갔겠지만 생소한 거리까지 함께 기억해야 하니 나중에는 달리기에만 집중하였다.
미세 먼지가 심할 거라는 사실은 잊은 채, 후반에 지칠까 두렵다는 사실만 기억하였다.
15킬로미터 이후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15킬로미터까지 오는 데 많은 힘을 썼기 때문에 현상 유지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이었다. 북원마라톤클럽, 미래를 달리는 사람들 단체 참가자들도 참 많구나 하면서 꾸준히 스피드를 유지하기 위하여 애썼다. 슬금슬금 달리는 안이한 러닝이 아니라서 이따금 숨을 헉헉거리기도 했다.
매트가 깔린 지점에 왔다. 반대쪽으로 달려온 10킬로미터 주자들의 반환점이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프 입장에서는 16.35킬로미터 지점이라고 했다. 달릴 때는 정확히 5킬로미터 남았다고 생각하고 달렸다. 그 지점을 1시간 18분 39초에 지났다. 1시간 39분대로 골인한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총 여덟 명이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일곱명의 중간 통과 기록은 모두 1시간 17분대였다. 1시간 18분대 기록으로 통과한 뒤 1시간 39분대에 골인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단 두 사람이었다. (한 분은 1시간 18분 1초에 통과) 그렇다면 나는 후반에 얼마나 악착같이 힘을 썼다는 말인가? 19킬로미터 지점과 20킬로미터 지점 사이에는 언덕 하나가 대뜸 올라 붙었는데 벌을 받은 셈이었다. 오르막이 나오면 더 많은 사람을 제칠 수 있을텐데라고 마음을 먹자마자 나타난 오르막이라 제대로 벌을 받았다. 오르막이 나왔으니 주변의 달림이들을 조금 더 제치기는 했다.
20킬로미터 지점에서 여성 주자 도우미를 자처했던 1122번 주자가 나에게 추월당하자 그럴 순 없다는 듯이 내 앞으로 다시 치고 나왔다. 20킬로미터 급수대. 그냥 통과하였다. 그 분은 거기서 내게 지금 현재 소요 시간을 물었다. 1시간 35분입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1킬로미터면 몰라도 1.1킬로미터이니 1시간 40분 초반은 가능해도 1시간 39분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시계를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내달릴 뿐이었다. 급수대에서 머물렀던 1122번 주자는 다시 내 뒤로 밀렸다. 어느새 원주치악마라톤대회의 애드벌룬이 코 앞에 있었다. 트랙에 들어섰다. 이제 200미터쯤. 뒤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50미터를 남기고 나를 추월하는 사람이 있었다. 1122번 주자였다. 바람처럼 내달리는데 주로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면 지금까지 뭘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인하자마자 그 분과 악수를 나누었다.
-원래 훨씬 기록이 좋으시죠? 오늘 천천히 뛰신 거고요.
그 분은 웃으며 몇 분 기록이 나올 것 같느냐고 물었다.
-1시간 39분대는 들어오신 것같은데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출발을 늦게 하기는 했지만요.
치악마라톤대회는 50등까지 상품을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슬며시 기대를 해 보기는 했지만 나중에 보니 50등의 기록이 1시간 30분 16초였다. 냉수 마시고 오뎅 먹고 차츰 대회장에서 멀어졌다.
모자: 아식스 마라톤 Cap
겉옷: 미즈노 군산새만큼 마라톤 기념티셔츠
속옷: 미착용
신발: 아식스 젤라이튼 마라톤화(훈련용 경량화)
장갑: 미착용
바지: 아식스 러닝팬츠
양말: 디아도라 중목
목도리: 미착용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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