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50번째 풀코스.
2013년 올해 20번째 풀코스.
2013년 6대 광역시 풀코스 도전의 완결.
부산마라톤대회였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대회 당일 0시 25분 심야우등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빗길을 뚫고 내려가는데 잘만 하면 잠이 깨었다.
앞 좌석에서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보고 있던 승객이 수시로 등받이를 조정하면서 내 무릎을 때려 사람을 깨웠다.
죽으란 소리다.
김이 서린 차창에 '集中'이니, '最善'이니 적었던 내가 급기야 'S.O.B'라고 내갈겼다.
선산휴게소에 잠깐 들러 화장실에 다녀왔다.
주차장은 갑작스럽게 흡연장소로 변했다. 가스지대를 통과하는 것처럼 숨을 멈추고 번개처럼 나갔다 와야 했다.
모든 게 사람을 괴롭힌다.
뜬눈으로 밤을 샌 느낌으로 새벽 4시 40분쯤 부산 노포동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뒷꿈치 통증이 심해졌다.
노포역에서 5시 10분 첫 도시철도를 타고 33개의 정류장을 이동하여 신평역으로 갔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끝에서 끝으로.....
끝까지 가는 것이니 무장해제하고 잠을 청하면 1시간 정도는 잘 수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읽거나 두리번거리거나 그저 눈을 감고 있거나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었다.
허수아비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6시 17분.
-저는 신평역에 와 있습니다. 오시면 연락주세요.
신평역 만남의 장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가 7시가 조금 넘어 허수아비님의 픽업으로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갔다.
생전 처음으로 온 것이니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코스에 대한 공부가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부담스럽기만 했다.
밤새고 10킬로미터나 하프는 뛰어 보았어도 풀코스는 처음인데 이를 어쩌나?
주로가 평탄하다고 귀띰해주시는 허수아비님. 다행이네요.
다만 가도 가도 끝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주로는 조심해야 한다고. 경치 구경한다고 생각해야지.
솔직히 어디 구석에 쳐박혀 단 몇 십분만이라도 잤으면 했다.
어디서 자겠는가? 신경은 마냥 날카로워지기만 하는데.....
소변은 어찌나 자주 마려운지 출발 직전에도 화장실만 찾아 다녔다.
피곤하고 고단하고....
서울에서 온 강**씨. 부산에서 풀코스 완주하고 유명을 달리하다.....
이런 기사도 떠올리고.....
늦게 출발선으로 가다 보니 10킬로미터 주자, 하프 주자들 틈새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고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지나갈게요'라는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했던가?
출발이 8분쯤 늦어졌는데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허수아비님과 나란히 서서 출발하였다.
슬로우 스타터인 내가 허수아비님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
허수아비님은 일단 앞으로 나가셨다.
처음에는 하품을 하고 눈을 감기도 하면서 천천히 달리기는 했지만 허수아비님의 SUB-4는 꼭 도와드리고 싶었다.
후반에 힘을 발휘하여 SUB-4에는 진입할테니 허수아비님이 만약 후반에 페이스를 늦추신다면 동반주를 하고 싶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 화장실에 자주 가는 스타일.
화장실에 무려 세 차례나 갔다 왔다.
4킬로미터 지점의 간이 화장실에 들렀고, 10킬로미터 지점과 25킬로미터 지점에서 노상방뇨를 하였다.
거기서 까 먹은 시간이 적지 않았는데도 14킬로미터 지점부터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 앞에서 달렸다. 10킬로미터에서 14킬로미터 사이에서 맞바람이 너무 쳐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마스터즈 틈바구니에서 바람을 피해 보려고 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본 것같지는 않았다. 나보다 덩치가 큰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별로 없으니.....ㅠㅜ
버프가 날아갈까봐 손으로 잡고 누르고 별 짓을 다했다. 캡이 날아가 되돌아가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엇다.
을숙도대교에서 버프가 날아갔다간 낙동강으로 떨어지고 말테니 긴장했다.
급수대가 5킬로미터 지점마다 놓이지 않아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애먹기도 했다.
갈증을 이미 느껴 버리면 안 되는 법인데 10킬로미터를 넘어서기 전에 두 차례나 갈증을 느꼈으니.....
유턴할 때마다 허수아비님을 찾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찾지 못했다. 3시간 50분에서 4시간 사이의 페이스로 달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3킬로미터 지점에서 건너편을 보다가 찾았는데 3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고 계셨다. 상당히 빠르신데 여유가 있어 보였다. 오늘 틀림없이 SUB-4 하시겠군....
언뜻 오버페이스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시간을 벌어 놓으면 후반에 덕을 보실 것이다.
경주 동아의 뼈아픈 실패 때문에 일부러 경주 동아 공식 기념품까지 착용하고 전의를 불태우고 계셨고, 지난 해 달렸던 경험도 있으시니 잘 달리시리라 믿었다. 날씨까지 선선하여 더위가 주는 고통이 이번 마라톤에는 없으니. 그저 후반에 지쳐서 페이스가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랬다.
나! 나! 나!
문제는 나였다. 소변은 너무 자주 마렵고 잠은 쏟아지고...... 배탈 기미까지 있어 제대로 된 화장실만 만나면 뛰어들 마음을 내내 갖고 있었다.
다시는 신지 않으리라 생각하던 마라톤화를 다시 신고 달리는데 도대체 탄력이 없어서 힘들기만 했다. 마치 접착제가 발라진 바닥을 밟았다가 발을 떼는 것처럼 힘들기만 했다. 이건 아니다. 다시는 신지 말아야지.
내내 피곤하면서도 SUB-4에 대한 집착은 놓지 않았다.
30킬로미터쯤 달리고 나서야 약효가 지독하게 강한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잠이 깨었다.
간간이 찾아오던 뒷꿈치 통증도 이제는 견딜 수 있었다.
28킬로미터 지점에서 만난 신호대교와 34킬로미터 지점의 낙동강 하구언 다리는 춘천의 소양2교보다 규모도 크고 멋졌다. 낙동강과 부산 앞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으니 그 의미도 남달랐다. 아쉬운 것은 단 하나. 신호대교도 소양2교처럼 39킬로미터와 40킬로미터 사이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호대교를 만나고도 아직도 한참 가야 한다는 것.
30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2주 전보다 15분 늦었다. 6대 광역시 인천에서의 행보와 비슷하였다. 35킬로미터 이후 페이스를 회복하지 못했던 그 대회를 닮으면 안 되는데.....
32킬로미터 지점 통과할 때 보니 정확히 3시간이 경과하고 있었다.
잔여 10.195킬로미터를 1시간 이내에 통과하여야 SUB-4가 가능한 법.
그래도 생애 50번째 풀코스이고 부산에서의 첫 풀코스인데 힘을 내어 보려고 애썼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잠을 못 자서 힘들다기 보다는 어차피 100킬로미터 울트라 달릴 때에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달린 적도 있지 않는가?
인천에서는 더웠지만 부산에서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지 않은가? 더구나 돌아갈 때는 뒤에서 바람이 불어지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는가?
주로가 단조로워 지겹다고? 바다를 봐라. 얼마나 멋진가? 저 멀리 몰운대도 보이는데.
35킬로미터 지점. 승부를 띄웠다.
처음에는 여기쯤 오면 사정없이 페이스를 잃어버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라토너들이 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태종대달리는사람들, 63토끼마라톤, 을숙도마라톤, 화명칸마라톤, 울산현대자동차마라톤, 부산달려라 40계단 마라톤......
그들이 내 뒤로 사라지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24킬로미터를 지난 이후에는 아무도 나를 추월해서 나오지 않았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소변을 보고 왔을 때에도 뒷사람이 내 앞으로 오지 않았다. 꾸준히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제치고 있었던 것이다.
36킬로미터 지점. 6킬로미터 남았으니 6곱하기6은 36. 계산했다. 36분으로 달리면 부담없겠지. 지금 시간은 3시간 23분. 오케이.
6분 페이스로 달려도 3시간 59분에 들어가리라.
아니지. 0.195킬로미터를 계산하지 않았네.
37킬로미터 지점. 5곱하기 6은 30. 시간을 보니 3시간 28분 소요. SUB-4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데......
그런데 허수아비님은 어디 계시는 거지?
오늘 역주하시는건가? 설마 경주동아의 전례를 따르신 건 아니겠지.
최고 기록을 세우고 계실거야.
40킬로미터 통과. 3시간 44분대.
다른 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레이스만 하기로 했다.
2.195킬로미터 신의 영역. 10분에 달렸다. 3시간 54분 50초.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우신 허수아비님이 골인 지점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3시간 46분에 들어오셨다고 했다.
같이 다니는 데마다 강렬한 포스가 느껴졌다.
먹거리 부스 앞에서 기다리기로 하셨던 허수아비님. 나만 물품보관소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강한 열기가 밀려왔다.
허수아비님이 오고 계셨다. 맞다. 무언가 이룬 분의 기운은 이렇게 강한 것이다. 뒤돌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50번 풀코스를 도전하여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50번 모두 완주하여 좋았다.
6대 광역시 풀코스의 완결도 의미깊었다.
모자: 바이저 버프
겉옷: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 아식스 기념 티셔츠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미착용
바지: 아식스 러닝팬츠
양말: 아디다스 중목
목도리: 미착용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선물받은 것)
신평역 근처에서 시락국밥을 먹다. 새벽 6시 반이 되기 전에.
허수아비님에게 드리는 선물. 선물을 들고 있는 님을 찍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허수아비님과 함께 뒤통수가 찍혔네.....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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