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 주 일요일은 왜 추운 법이 없을까?
10월 넷째 주 일요일은 왜 비가 내리는 일이 없을까?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내리 춘천마라톤에 참가했던 나로서는 더위때문에 늘 애먹었다.
하지만 올해는 추웠다.
마라톤복 위에 겉옷을 걸치고 있다가 출발 직전 벗어 버리거나 조금 달리다가 벗어 던지거나 하는 달림이들이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이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2013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은 11월 중순의 손기정평화마라톤 때와 같은 날씨였다.
그러면 뭐하는가?
내 몸상태가 엉망인데.....
10도 이하의 최적의 조건.
춘천마라톤 직전이면 호리호리해졌던 몸이 올해는 무거웠다.
수면이 부족하여 몹시 고단했다. 발뒷꿈치 주변 통증은 무려 이십 일 이상 사람을 괴롭혔다.
이틀 전에는 걷는 것도 고통스러워 케토파인겔까지 바르고 다녀야 했다.
과감하게 춘천마라톤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10월 넷째 주는 무조건 춘천이다라는 공식을 깨뜨릴 생각까지 한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춘천행 ITX 열차를 탔다. 내 자리에 아가씨가 앉아 있어 다른 데로 쫓아 내었다. 아무리 예뻐도 안 된다. 1시간이라도 더 자야 하니까.
춘천역에서 내리면 41킬로미터 표지판이 보인다. 공지천에서 출발하여 의암호를 한 바퀴 돌고 오면 만나게 되는 지점.
공지천 인조잔디구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남들보다 빨리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몸을 풀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였다.
하늘색 배번을 다는 C그룹에는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세 명이 있었다.
유연호, 최남수, 진명선.
진명선 페메는 구면이었다. 지난 5월 4일 한중일금융보험인마라톤에서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해 주신 분.
이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
출발 장소가 공지천으로 바뀐 2010년 이후 3년 연속 3시간 30분대로 골인한 전력을 올해도 이어나갈 수 있을까?
(2010년-3:38:11/ 2011년-3:39:56/ 2012년-3:39:29)
후반부에 피곤해지고 발목 통증이 재발하면 SUB-4조차 불가능할텐데.
일단 따라가 보기는 하겠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교차하는 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25분 44초에 달렸다. 페이스메이커 뒤에 있었다.
초반 5킬로미터는 26분대에 달리겠다고 공언한 진명선 페메만이 내 뒤에 있었다.
5킬로에서 신연교를 지나 삼악산을 끼고 도는 10킬로미터 지점까지의 랩타입은 24분 48초였다.
즉 10킬로미터 기록이 50분 32초였던 것이다. 지난 8년간의 최고 기록은 아니다. 2007년에 50분 03초에 달린 적이 있으니까.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페이스메이커는 내 뒤로 밀려났다. 3시간 40분 페메는 10킬로미터를 51분 초반에 달려야 하는 것이 맞으니.....
10킬로미터를 지나고 나니 내 앞에서 宋希洙 형님이 보였다.
지난 해 중앙서울마라톤에서 3시간 20분대로 달려 B그룹 배정을 받았기에 먼저 출발하셔서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다.
철원마라톤에서 제대로 못한 동반주를 춘천에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부러 속도를 줄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춘천마라톤에 내 모든 기록을 거니까.
10킬로미터~15킬로미터: 25분 12초
15킬로미터~20킬로미터: 25분 42초
초반에 10초를 빨리 달리면 후반에 10분이 늦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늦추고 싶지는 않았다. 내 뒤에서 빨리 뛰시네요 하면서 나를 제치고 나가시는 분이 계셨다.
박연익씨였다. 잘 뛴다. 페이스메이커 전력도 화려하시니.....
내 20킬로미터 통과 기록은 1시간 41분 26초였다.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던 중앙서울마라톤의 20킬로미터 기록보다 1분 가까이 빠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초코파이를 반만 먹고 나머지는 신매대교 위에 버렸다. 허기만 살짝 때운 셈이다.
하프 통과 기록은 1시간 47분 14초.
산술적으로는 3시간 34분대가 나온다. 춘천마라톤의 개인 최고 기록인 3시간 38분 11초보다 훨씬 빠르게 된다.
25킬로미터 지점까지의 5킬로미터 랩타임이 25분 39초가 된다. 다행히 페이스가 유지된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스포츠겔을 먹고 나면 주의해야 한다. 27킬로미터 지점부터 29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은근한 오르막이기 때문에 평탄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 페이스가 올라왔다고 무작정 치고 올라갔다가 춘천댐을 건너기가 무섭게 지쳐 버린 일이 한 두번이었던가? 무조건 속도를 늦추어야 하는 구간. 그 구간에서 내게 파이팅을 외치는 분이 있었다. 김영준씨였다. 싱글의 기록을 갖고 계신 분인데 왜 내 뒤에서 나타나는 거지?
-아니 왜 뒤에서 오세요?
-늦게 출발했어요.
비호처럼 나를 제치고 나가는데 100회 마라톤클럽의 연보라색 유니폼이 아이언맨 슈트처럼 보였다.
25킬로미터 지점에서 30킬로미터 지점까지 속도를 늦추었으니 26분 30초의 랩타입이 나왔다. 아직 여유는 있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30킬로미터에 닿기 전에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는 나를 추월했다. 한번도 예외가 없었다.
3시간 40분 이내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35킬로미터 이후 악착같이 쫓아가 페메를 내 뒤로 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춘천댐을 건너면서 돌아보니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의 파란 풍선이 몇 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30킬로미터를 지난 후에도 페메는 내 뒤에 멀리 있었다.
달리면서 느끼는 것은 다행히 아직 발뒷꿈치 통증이 도지지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한 풀코스마라톤 전용 마라톤화가 탄력을 잃었다는 게 문제였다.
1200킬로미터를 넘게 소화한 신발이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신발은 오늘이 마지막이야. 새 신발을 사야 해.
30킬로미터 지점 통과 기록이 2시간 33분 35초.
이건 생애 최고 기록이다. 30킬로미터만 달렸을 때의 기록보다 빠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면 춘천마라톤 기록뿐만 아니라 생애 최고 기록까지 깨뜨릴 수 있을 것같았다.
하지만 지칠 것이다.
너무 빨리 달려 왔다.
30킬로미터까지 달리고 아직 힘이 남았다는 생각까지 해 본다.
그저 12킬로미터만 더 달리면 완주하는 것 아닌가?
원래 타고난 달림이인데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암시해 보고 최면도 걸어 보지만
30킬로미터나 달린 몸이 지치지 않았을리 없다.
싸늘했던 날씨, 안개 끼었던 날씨는 어느새 햇볕 쨍쨍 내리쬐는 더운 날씨가 되고 있었다.
35킬로미터 지점까지 가서 스퍼트를 할 수 있을까?
34킬로미터 지점의 자유발언대가 있었지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냥 지나쳤다.
마이크를 붙들고 골인지점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생방송으로 안부를 전하는 이벤트였다.
36킬로미터 지점의 샤워 터널은 영화 <말아톤>을 떠올리면서 통과하였다.
39킬로미터 지점인 줄 알고 거리 표지판을 보았더니 38킬로미터 지점이어서 좌절하였다. 무려 4킬로미터나 남았는데 어떻게 감당할까?
소양2교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가? 39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야 소양2교가 나오는데 아득히 멀다.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40킬로미터 지점까지 악착같이 내달렸다. 달리면서 느끼는 것인데 전반적으로 주변의 달림이들이 빠른 것같았다.
크게 쳐지는 달림이들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람들을 제치고 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35킬로미터 지점에서 40킬로미터 지점까지의 랩타임이 25분 17초였다. 30킬로미터에서 35킬로미터까지의 랩타임보다 16초쯤 빨리 달렸다.
40킬로미터 지점부터 춘천역을 지나는 41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마지막 1.195킬로미터. 인정사정없이 달렸다. 사정없이 달리면 생애 최고 기록까지 갈아치울 수 있을 것같았다.
조금만 더 빨리 달렸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3년 전 나는 중앙서울마라톤에서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우고 난 후 힘이 남아돌아 다음날 새벽에 다시 8킬로미터를 달렸다.
죽기전에님은 그 사실을 알고 내게 말했다.
-그렇게 힘이 남았다면 풀코스 기록을 좀더 줄일 수 있지 않았겠어요!
최후의 1킬로미터를 달리면서 그 생각을 떠올렸다.
100미터 대회에 나온 것처럼 달렸다.
고3 체력장 1000미터 달리기에서 마지막 100미터를 남기고 운동선수들을 포함하여 다섯 명을 한꺼번에 제치고 1등으로 들어왔던 일이 새삼 떠올랐다.
마지막 1킬로미터를 남기고 스퍼트한 결과 개인 기록을 깨뜨렸다. 24초 빨랐다.
생애 최고 기록을 어떻게 춘천마라톤에서 세운단 말인가?
초반 하프를 1시간 47분 14초에 달렸고, 후반 하프는 1시간 47분 47초에 달려서 크게 쳐지지 않았다.
춘천댐 오를 때 일부러 속도를 늦춘 것을 감안한다면 내내 이븐페이스를 지켜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것도 컨디션도 좋지 않았는데..... 내내 오버페이스를 걱정하면서.....
결국 가을의 전설은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3시간 35분 01초.
다시는 못 깨뜨릴 춘천마라톤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3년 전 춘마에서 처음으로 3시간 30분대에 들며 생애 최고 기록을 세웠을 때에는 희희락락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어떻게 기록 경신이 되었군. 고개를 주억거렸을 뿐.
골인 지점에서 춘천역까지 걸어오는데 아득하게 멀었다.
도대체 이 거리를 어떻게 뛰었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걷다가 지쳐 가게에 들어가 콜라도 사 마시고 쵸콜릿, 소시지도 사 먹었다.
경주동아마라톤 이후 휴식에 집중하면서 가끔 스피드 훈련을 해 준 게 주효한 듯했다.
경주에서 천천히 달린 게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는 내내 메모하고 있었다.
이제 50번째 풀코스인 부산마라톤이 기다린다.
빨리 달릴 생각은 없다. 즐길 것이다.
발뒷꿈치 통증을 다스리기 위하여 열심히 발랐던 겔이다
모자: 바이저 버프
겉옷: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 아식스 기념 티셔츠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미착용
바지: 아식스 러닝팬츠
양말: 아디다스 중목
목도리: 미착용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선물받은 것)
여성 주자 뒤에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40킬로미터 지점으로 3년 전 춘마에서 최고 기록을 경신할 때 입었던 복장을 하고 있다.
골인하고 나니 오른편 가슴 쪽에 피가 묻어 있었다.
39~40킬로미터 지점. 신의 영역에 들어서기 직전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소양2교인가?
소양2교를 건너며 V자.
출발할 때는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2시간쯤 달리니 뙤약볕이 되었다.
피니시라인을 앞두고 급피치를 올린다.
사진 작가 앞에서 여유 부리는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지친 상태에서 스퍼트하니 입은 벌어지고.....
'도전! 마라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5회 부산마라톤대회(2013/11/10)-FULL (0) | 2013.11.12 |
---|---|
제15회 충주사과마라톤(2013/11/02)-26KM (0) | 2013.11.06 |
2013 서울 달리기대회(2013/10/20)-HALF (0) | 2013.10.21 |
동아일보 2013 경주국제마라톤(2013/10/13)-FULL (0) | 2013.10.14 |
제12회 LOVE米 농촌사랑 마라톤대회(2013/10/12)-10KM (0) | 2013.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