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동아일보 2013 경주국제마라톤(2013/10/13)-FULL

HoonzK 2013. 10. 14. 22:39

정말 가 보고 싶던 마라톤.

이유 중의 하나가 신라의 천년 고도를 누비며 달린다는 것과 아름다운 보문호를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대회이기에.

비록 2012년부터 보문호를 끼고 달리는 난코스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가 보고 싶던 대회.

매년 10월 넷째 주에 열리는 춘천마라톤에 올인하는 나로서는 10월 셋째 주로 한 주 차이가 나는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만 했었다.

그런데 올해 그 공식이 깨어졌다. 동아일보가 개최하는 대회가 10월 셋째 주에 들어오면서 경주 동아가 10월 둘째 주로 바뀐 것이다.

토요일 내려가 하룻밤 숙박할 것인가? 김제 새만금 마라톤의 경험이 숙박 후 뜀박질하려는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심야 고속버스 타고 내려가는 것이나 하루 전 내려가 여관에서 자는 것이나 피로 회복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10월 12일 23시 55분 경주행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10월 13일 새벽 2시에 선산휴게소에 들렀다가 다시 출발한 버스는 새벽 3시 30분에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마라톤 참가차 경주까지 심야고속을 타고 온 사람은 나까지 세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어딘가로 부지런히 움직였고, 다른 한 사람은 CU편의점에서 음료수와 간식을 산 뒤 편의점 한 쪽에 자리잡고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경주에 올 때마다 들르던 PC방으로 직행했다. 그 PC방이 중국 발맛사지 센터로 바뀌어 있었다. 되돌아 오다가 경주국밥집에 들어가 돼지국밥을 시켰다.

 

 

 

 

 

 

 

새벽 4시에 식사. 이건 아침 식사다.

일단 먹고 터미널에서 가까운 PC방으로 가서 앉았다. 인터넷 접속해서 서핑하다가 30여 분 정도 의자에 앉은 채로 졸았다. 조금이라도 자면 달릴 때 큰 도움이 되리라 믿고.... 새벽 6시 20분에 나왔다. 새벽에 밤이슬 피하여 2시간 휴식한 비용으로 2천 2백원을 내었는데 괜찮은 가격이었다.

 

셔틀버스 승차장을 제대로 못 찾아 잠시 헤매긴 했으나 마라톤 대회에 온 사람을 만나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셔틀버스 승차장을 찾을  수 있었다. 경주축구공원 4구장과 5구장 사이의 대로가 마라톤 집결지 및 출발 장소가 되었다. 마라톤 대회를 위하여 온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아식스 기념티셔츠부터 교환하였다. 110에서 105로.(아식스는 조금 크게 나오네) 달릴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물품을 보관한 뒤 화장실에 다녀왔다. 허수아비님을 뵙고 싶었으나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었다. 풀코스 참가자만 해도 1천 2백 명이 넘으니 찾는다는 게 무리였다.

 

 

 

 

 

 엘리트 선수들이 조용히 출발하고 난 후 8시 4분경 사회자 배동성의 우렁찬 멘트와 함께 풀코스 마스터즈 부문 참가자가 출발하였다.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내 앞쪽에 있었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는 내 바로 뒤에 있었다. 오늘은 그러기로 했으니까. 뒷꿈치 통증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달려야 했다. 새벽에 먹은 돼지국밥 때문에 배탈 기미까지 있었다. 경주교를 건너 첨성대를 지나가는 첫 5킬로미터는 29분 21초에 달렸고, 중앙시장에 접어드는 다음 5킬로미터는 29분 02초에 달렸다. 10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까지는 28분 50초에 달렸다. 15킬로미터부터 20킬로미터까지는 배변욕에 시달리다가 화장실까지 들르다 보니 30분 16초에 달렸다. 이렇게 달리면서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앞에 서게 되었지만 4시간 페이스메이커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유턴하는 지점 두 군데에서 허수아비님을 봤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보다 훨씬 빨리 달리고 있었다. 감기에 걸려 고생하셨는데 의외였다. 오늘 개인 기록을 경신하고 SUB-4까지 하실 수 있을 것같았다. 미처 아는 체 하지는 못했다.

 20킬로미터 지점부터 25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최악의 소요 시간이 나왔다. 30분 55초. 뒷꿈치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스피드를 더 늦추었으니. 하프 지점은 2시간 5분에 통과하였다. 4시간 10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맞다. 줄곧 4시간 페메와 4시간 20분 페메 사이에 있었기에. 26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 출발했던 지점 가까이 돌아오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포기하는 주자들이 속출하였다. 거기에서 15킬로미터 이상을 더 달린다는 것이 힘들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25킬로미터 지점부터 30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어느 정도 페이스를 회복하였다. 29분 01초에 달렸다.

3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에서 주저앉아 있는 달림이들이 많아 무슨 일인가 하였다. 쉬고 있는 것이었다. 기억이 났다. 그동안 마라톤 뛸 때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한계점에 다달아 걷거나 앉아서 쉬고 있는 주자들을 볼 때가 달릴 때보다 더 힘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볼 때 걷기와 휴식의 유혹은 얼마나 컸던가?

 

35킬로미터에 닿았을 때 지난 주와 내 몸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전반에 천천히 달린 덕분에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40킬로미터 지점까지 달리는 동안 알천4구장이 보였기 때문에 좀더 힘이 났다. 지난 여름 온 힘을 다하여 열심히 시합하던 축구 꿈나무들을 떠올리니 힘이 났다. 늘 차로 다니던 곳을 내 발로 뛰어내다 보니 가슴 뭉클한 데가 있었다. 경주시민운동장, 축구공원, 경주교, 첨성대, 오릉, 황성대교, 천마총, 안압지, 경주국립박물관, 황룡사지, 분황사, 알천축구장. 차로 10년이 넘게 누비고 다니던 추억의 고도(古都)를 내가 직접 밟으며 탐방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등에 첫 풀 도전한다고 붙이고 선배님들의 응원을 부탁하며 달리는 양산 웅상마라톤클럽 회원들에게는 일일이 말을 붙이고 격려를 해 주는 여유까지 부렸다. 35킬로미터 지점부터 40킬로미터 지점까지의 랩타임이 다른 7번의 5킬로미터 랩타임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달린다고 해서 SUB-4가 다시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만족감은 느낄 수 있었다. 39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피치를 올리고 있을 때 뒤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90킬로그램쯤 되어보이는 부산 지역 마라톤클럽 달림이가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바람막이까지 입은 거구는 나까지 제쳤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내가 지금 늦게 달리는 것도 아닌데..... 4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 그는 40킬로미터까지였다. 페이스가 현격하게 떨어져 내 뒤로 밀려났다. 40킬로미터 신의 영역. 인간이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좀 도와주시죠. 그렇게 외치며 피치를 올렸다. 마지막 2.195킬로미터는 춘천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던 때와 비슷한 속도로 달렸다.

 

골인한 후 먼저 들어와 계신 허수아비님과 만났다.

허수아비님은 볶음밥도 사 주시고 신경주역까지 태워주시기까지 하셨다.

이제 한 달 뒤에는 부산에서 뵙겠구나.

그 때가 내 생애 50번째 풀코스. 등 뒤에 '오늘, 풀코스 50번째 도전중'이라고 붙이고 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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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2013년 대구국제마라톤 발렌키 기념 티셔츠

속옷: 착용하지 않음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착용하지 않음

바지: 아식스 러닝 팬츠

양말: 아디다스 중목

목도리: 착용하지 않음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선물받은 것) 

 

 

 

 

 

 

2013년 10월 20일? 그렇지. 원래 대회 날짜가 10월 20일이었다. 10월 셋째 주. 어느 날 바뀌었다. 그 때 작성해 놓은 글을 날짜를 바꾸지 않고 올렸네.  주최측의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