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2013 인천송도마라톤대회(2013/10/06)-FULL

HoonzK 2013. 10. 7. 23:20

풀코스를 완주하고 대회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센트럴파크 쪽 벤치에 앉아 있었다. 짐을 줄이기 위하여 완주메달과 간식 등을 바닥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 간식은 먹어 버렸다. 짐이 줄었다. 5시간 전후하여 골인하는 주자들이 보였다. 눕고 싶어졌다. 배낭을 베고 누웠다.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잤다. 최소한의 피로를 풀 만큼만 잤다. 그래도 1시간 30분 이상 흘러 있었다. 센트럴파크역에서 인천1호선 열차를 탔을 때는 풀코스가 출발한 지 무려 7시간 이상 흘러 있어서 한 량이 텅텅 비었다.

 

새벽 5시에 나갔는데도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에 도착하고 나니 이른 시각이 아니었다.

얼마나 잠을 설쳤던가?

밤 12시가 다 되어 울린 휴대폰 진동. 뜬금없이 전화한 사람. 받지 않았다.

받지 않았지만 겨우 잠들었던 내가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잠이 오지 않아 애먹었다.

한번도 밤늦게 전화하지 않은 분이 왜 그 시각에 전화를 했을까? 아마 술이 거나하게 취한 다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하필 이럴 때....ㅠㅠ

 

센트럴파크에서 출발하여 송도 일대를 돌고 도는 코스였다.

뛰면 뛸 수록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0월 1일 가장 힘든 인터벌 훈련을 소화하였고, 10월 3일 김제에 내려가 100번째 하프를 용을 쓰며 완주하였고, 10월 5일인 바로 전 날 10킬로미터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냥 개인 훈련하기가 귀찮아 나간 대회이지만 나가다 보니 스피드를 올리게 되어 다음날 풀코스를 달리는 내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피로 누적만 한 것이었다. 게다가 전날 새벽이 되도록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으니)

풀코스 전에는 에너지를 축적해야 하는데 오히려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6킬로미터 지점에서 4시간 페메를 따라잡았을 때에는 그래도 피로감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7.5킬로미터 지점에서 피로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자꾸 쳐져서 뛰는 거리가 늘어나면 날수록 4시간 페메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1차 반환해서 오는 길에 2시간 정도 시간을 잡고 달리는 하프 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피곤했지만 눈에 불을 켜고 希洙 형님을 찾아냈다. 평소 입던 용왕산 마라톤클럽의 티셔츠를 입지 않고 있어 놓칠 뻔 했지만 주로 가운데에서 뛰고 계셔서 파이팅을 외쳐 드릴 수 있었다.

10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4시간 페메와의 격차는 100미터로 벌어졌다. 12킬로미터쯤 달렸을 때에는 3백 미터 이상 벌어졌다. 오늘도 그저 LSD로 마무리해야 하는가?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코스가 평탄하다.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분다. 풀코스 참가자가 많지 않으니 주로는 트인 느낌이다.

바닷가쪽으로 나오면서 주법을 바꾸었다. 바닥을 스치듯 발을 가볍게 밀고 나가는 식으로 움직였다. 좀 가벼워졌다. 이 주법을 하면 체력 소비가 줄지만 허벅지 안쪽이 옷에 쓸려 상처를 입는다. 허벅지는 쓰렸지만 속도는 붙었다. 17킬로미터를 달리고 나니 눈에 띠게 4시간 페메에 따라붙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선이 코 앞에 있었다. 20킬로미터 급수대에서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다. 골인할 때까지 페메는 내 뒤에서 달렸다. 25킬로미터를 넘어 2차 반환할 때 보니 4시간 페메는 나와 200미터 이상 차이가 나 있었다. 갑자기 앞에서 파이팅하는 소리를 들었다. 希洙 형님이었다. 하프 참가자께서 풀코스를 뛰시다니 너무 놀랐다.

-아니, 하프 신청하시고 어떻게 풀코스를 뛰세요?

-갈 때까지 가 보는 거예요.

혀를 내둘렀다. 希洙 형님은 생애 50번째 풀코스를 이렇게 달성하는 것이었다.

 

25킬로미터를 지나면서 많은 주자들이 내 뒤로 밀려왔다. 이렇게 컨디션이 회복되는가?

나와 동반주를 시도한 달림이가 있었다. 철인3종 경인클럽의 이ㅅㄷ님(1157). 내가 기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27킬로미터 지점부터 30킬로미터 지점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었다. 내가 물었다.

-오늘 목표하는 시간이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달리는 거예요.

3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 물 좀 마시고 가야겠네요. 그가 그렇게 말한 게 마지막이었다. 골인할 때까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 분은 나보다 29분쯤 늦게 골인하였다. 악수를 하며 서로 완주를 축하하였다. 그동안 하프만 달리다 모처럼 풀코스를 달리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하프에서 좀 더 뛰는 27~8킬로미터는 견딜만 하지만 3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그야 말로 지옥이 된다고 했다.

내가 말을 받았다.

-죽도록 고생해 보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요. 한번 고생하고 나면 다음에 제대로 준비하니까요.

 

32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을 때 3시간 1분이었다. SUB-4는 넉넉하였다. 10.2킬로미터야 59분에 충분히 달릴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35킬로미터 지점부터는 또 달라질테니.....

주로에 물은 넘쳐 흘렀다. 어떤 때에는 2.5킬로미터마다, 어떤 때에는 1킬로미터마다..... 왜 이러는 걸까?

골인한 후 탈의실에서 만난 달림들에게 들으니 지난 해에 물이 없어서 고생하였다는 말이 많아서 올해는 최대한 충분히 준비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해 이 대회에서 풀코스를 달린 希洙 형님만 해도 물을 너무 적게 주어 올해는 하프를 신청한 것이라고 말했으니까.

너무 자주 물을 주다 보니 페이스가 끊어졌다며 불평을 터뜨리는 달림이도 있었다. 물을 적게 주어도 문제이고, 물을 많이 주어도 문제이다.

35킬로미터 지점 도착.

아하. 알았다. 지난 9월 초의 철원이나 7월 말의 옥천보다 더 체력이 고갈되었다는 사실을.

남은 힘이 없었다. 35킬로미터 지점에서 가공할 스퍼트를 한 것은 모두 옛날 이야기였다.

-저는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4시간 이내로 완주하지요.

압록강국제마라톤 때 감히 그렇게 떠들었지.

그건 벌써 옛날 일.

 

내게 남은 지상 최대의 과제.

어떻게 남은 거리를 달리나? 절대 걷지 않고.

이제 다시 7킬로미터를 달리는 대회에 나왔다. 그런 암시? 이제 효과가 없다. 힘이 없는 것은 없는 거다.

파워젤이 있었으면 힘이 날까? 그것도 핑계거리.

 

힘차게 치고 나오는 달림이들의 등장.

남은 거리를 달리면서 이후 일주일간의 훈련과 경주동아마라톤의 페이스를 결정했다.

 

10월 7일 8~10킬로미터 가볍게 달리기로 한 것은 휴식으로 바꾼다.

10월 8일 400미터 12회 속주는 6회에서 8회로 줄인다.

10월 9일 대회는 취소해도 좋다. 어차피 현장접수하려고 했으니. 나가더라도 10킬로미터 조깅하듯이.

10월 10일 중간 3킬로미터 스피드 훈련하면서 13킬로미터 달리려고 한 훈련은 중간 3킬로미터 조금 빠르게만 달리고 10킬로미터 이내로 달리기로.

10월 11일은 계획대로 완전 휴식.

10월 12일 10킬로미터 대회 출전은 컨디션 점검 차원에서만 나가고 다른 이와 경쟁하지 말 것.

10월 13일 경주동아마라톤은 4시간 20분이나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기.

 

이런 생각하면서 37킬로미터까지 버티었다.

6대 광역시 풀코스 도전 완주.

광주를 시작으로 울산, 대구, 대전에서 이제 인천까지. 11월 10일 부산만 남는데.....

 

여성 주자가 힘차게 치고 나간다. 그동안 힘을 아껴둔 게 억울하다는 듯이.

나는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이다. 그동안의 피로 누적으로 볼 때 풀코스는 무리였다.

32~35킬로미터 LSD 대신 풀코스를 달리는 것인데 그랬다면 힘을 아끼면서 달려야 했다.

2년 전 여주세종대왕마라톤 대회 달릴 때처럼 처음에는 4시간 20분 페메와 함께 달리다 후반에 스퍼트하여 4시간 페메 제쳤던 방식을 선택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인천대교가 보였다. 2009년 10월. 인천대교 개통기념 마라톤.

그때도 후반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인천에서 마라톤 대회만 하면 아주 죽는구나. 죽어.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왜 뛰어야 되는가? 그것도 풀코스를.

4시간 페이스메이커가 뒤에서 치고 나온다고 해도 욕심부리지 않고 달리기로 했다. 갈 사람은 가라고. 나는 못 따라간다고.

스피드를 올려 나를 배경으로 만들어 버리는 달림이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들 지쳐 있었다. 햇볕 뜨거운 늦더위에 진을 빼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단 한 차례도 걷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달리는데도 내 뒤로 밀리는 주자들이 있다. 7분 페이스로까지 떨어진다. 기가 막혀서.....

 

1킬로미터 남았을 때 4시간 이내 완주는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2킬로미터 남았을 때 스퍼트를 시작만 했어도 3시간 59분에 골인할 수 있었는데.....

4시간을 살짝 넘길 거라는 것은 자명해졌다. 이제는 윌슨 킵상이 오면 모를까? SUB-4는 틀렸다.

LAST 1KM라는 간판 등장.

봉사대의 응원과 달림이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끝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응원의 힘을 빌어 마지막 1킬로미터는 4분에 뛰었다.

 

4시간 페이스메이커 중 한 분은 4시간 1분 40초에 골인했고, 다른 한 분은 완전히 페이스를 잃어버려 4시간 49분만에 골인하였다.

나는 262명의 남자 풀코스 참가자 가운데 102등을 했다. 4시간을 살짝 넘긴 사람 가운데 1등이었다. 101등은 3시간 59분대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불과 몇 십 초 때문에 SUB-4를 못했고, 4시간 페이스메이커보다 분명히 빨리 들어왔는데도 SUB-4를 못해서 두고두고 아쉬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밤에 전화만 오지 않았어도 충분히 4시간 이내 완주는 했을텐데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렇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패를 통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니까. 이번에 마라톤 뛰고 다시는 뛰지 않을 것도 아니고.

 

 

 

 

 

 

 

 

 

 

 

 

 

 

 

 보도에 있는 돌은 일부러 갖다 놓은 것같지는 않고, 원래 있던 것을 조경하듯이 그대로 두고 보도를 깐 것같다.

 

 

 

 

 

 

 

 

 

 

 

 

 

 여기에 누워 1시간 30분쯤 잤다.

 

 

 

 

 

 

 

 

 한숨 자고 전철을 탔더니 한 량 전체가 텅텅 비었다.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LIG 마라톤 뉴발란스 기념 티셔츠 ※오랜만에 입었네. 조금 추울까봐 두께가 있는 것으로 했는데 더웠으니 실패다.

속옷: 없음

신발: 아식스 타사게일 와이드2 마라톤화(풀코스 전용)

장갑: 없음

바지: 아식스 반바지

양말: 아디다스 중목

시계: Casio 전자시계

목도리: 없음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오른쪽 무릎 두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