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생애 100번째 하프마라톤을 완주하였다.
풀코스가 없는, 하프코스가 가장 길기에 가장 주목받는 대회를 선택하다 보니
같은 날 서울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원천리하고 김제까지 내려갔다.
서울에서 김제로 가는 버스편은 낮에만 있기 때문에 심야버스를 타고 전주로 내려간 뒤 전주에서 아침 일찍 김제로 이동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김제로 바로 내려갔다. 하루 전 날.
생애 100번째 하프이기 때문에 내게 고단한 아침을 선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10월 2일 오후 5시 반이 되기 전에 김제에 도착한 후 저렴한 숙소를 잡았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한 뒤 PC방 들러 숙소로 돌아왔다.
오후 9시쯤 되었을까?
일찍 자야지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점이 불편한 베개였다. 쉴새없이 뒤척였고 눈을 감았다 떠도 도무지 잔 것같지 않았다. 이럴 거라면 그냥 심야 고속버스타고 내려오는 게 나았을 것이다. 마라톤 대회 전 네 시간도 채 못 자고 나가는 일이야 많지만 오늘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김제시민운동장까지 걸어가면서 김밥을 먹는데 고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디 가서 잠시 눈이라도 붙였으면 했다.
배탈 기미까지 있었다.
100번째 하프는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이기를 바랬는데 올해 들어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달려야지. 99번의 경험으로 100번째를 맞아야지.
2004년 5월 26일 첫 하프 기록이 1시간 44분 10초였다. 그래서 100번째도 그 기록에 맞춰야지 했는데 어려워 보였다
일단은 2시간 페이스메이커와 1킬로미터 정도를 함께 달렸다.
박연익 페메가 도움을 주었다.
그 후에는 조금 스피드를 올렸다. 조금만 애쓰자. 그래도 100번째인데.....
연분홍, 진보라 코스모스가 도로변에서 만개했다. 슬쩍 코스모스를 만지며 여유를 가져 보곤 했다. 아름다운 풍광이지만 거름 냄새도 진하게 풍겨왔다. 미추의 조화라고나 할까?
평탄한 코스는 기대였을 뿐이다. 서해고속도로를 위에서 넘어가야 하니 오르막이 있었고, 골인 지점이 가까워질 때 몇 차례 나타나는 오르막도 있었다. 반환하기 전에는 햇빛을 등지고 쌀쌀한 바람도 맞았지만, 돌아올 때는 햇빛을 마주하고 바람까지 잦아드니 덥기까지 했다. 이렇게 달리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풍선을 달지 않은 페메라 주로에서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반환할 때 비로소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는데 나와는 20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15킬로미터 이후 폭풍 질주를 꿈꾸었지만 오늘 몸상태로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노력하였다. still achieving, still pursuing, learn to labor and to wait.
노력이 통한 것일까? 20킬로미터를 달렸을 때 시계를 보니 1시간 40분이었다. 기를 쓰고 달리면 생애 첫 하프 기록에 맞출 수는 없어도 1시간 44분대에 골인할 수 있을 것같았다. 바람처럼 달렸다. 아흔 아홉번의 하프 완주 경험을 살려서 이를 악물고 달렸다. 끝내 1시간 45분 페이스메이커는 잡지 못하였다.
골인하면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릴까 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현장에서 바로 기록증을 발급하니 기록증 받는 줄을 찾느라 신경썼다. 몇 분 정도 기다려 기록증을 받았다. 내 기록은 1시간 43분 51초였다.
쌀 10킬로그램을 수령한 후 김제역까지 걸었다.
쌀 10킬로그램을 이고 지고 들고 메고 안고 업고 50분 가까이 걷는 게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것보다 힘들었다.
모자: Salewa 바이저 버프 겉옷: 미즈노 군산새만큼 마라톤 기념티셔츠 속옷: 미착용 신발: 아식스 젤라이튼 마라톤화(훈련용 경량화) 장갑: 미착용 바지: 아식스 러닝팬츠 양말: 아식스 중목 목도리: 미착용 테이핑: 왼쪽 종아리 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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