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년 조선 효종 4년 제주 대정 해안.
스페르베르호의 난파.
64명의 선원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33명.
13년 20일 동안 제주, 한양, 강진, 여수를 떠도는 삶.
조선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단 8명.
그 동안의 기록을 남긴 자는 서기인 헨드릭 하멜.
그 이야기를 김영희씨가 소설에 담았다.
우연히 동대문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발견하고 대출한 뒤 2013년 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읽었다.
한 사람이 낯선 곳에 표류하여 겪은 모험담을 담은 작품이 아니다.
이국적인 풍광과 만나 새로운 발견을 하고 감동하여 변화하는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폐쇄적인 나라에 불시착하여 억류된 채 살다 13년만에 탈출에 성공하는 드라마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억압과 자유가 있다.
동서양의 교류? 그런 것은 없다. 상이한 문화가 충돌하여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변화? 그런 것도 없다.
어색한 한복을 걸치고 조선 여인과 혼인까지 하지만 결국 벗어 던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네덜란드인의 이야기이다.
헨드릭 하멜은 조선에서 겪은 일을 꼼꼼하게 기록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조선에 대하여 곱지 않은 시각으로 일관했을 <하멜 표류기>는 결국 조선의 파멸을 예견한 전도서처럼 되어 버렸다.
하멜 일행의 제주도 불시착은 조선을 위한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엇다. 그러나 조선은 어리석었다.
그대들이 제주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조선의 풍속을 살피고 우리에게도 서양 문물을 많이 전수해 주길 바란다.
(김영희 <소설 하멜> 100-중앙북스 2012)
제주 목사 이원진의 말대로만 되었어도 이후 조선은 달라졌을 것이다.
조선(造船) 기술, 소총과 대표 제작, 축성, 천문 역술, 근대 의술.... 받아들이면 큰 도움이 될 유용한 기술의 집합체가 하멜 일행이었지만 폐쇄적인 시야를 갖고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었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개인적인 모욕감에 치를 떨며 북벌을 꿈꾸는 동생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있었던 하멜이 '조선같은 소국이 청국을 공격한다는 건 자살 행위밖에 안 되는데 북벌이라니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153)라고 벨테브레에게 문든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선은 어제에 매어 살고, 왜국은 내일을 보고 산다. (300)
조선은 시인과 학자들이 구름 위에서 지상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나라라 할까요. 지배층 따로 백성 따로의 나라지요.(445)
아란타인(네덜란드인)은 조선을 그렇게 평가했다. 합매아(合梅兒: 하멜)의 이야기를 판타지나 모험담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년 전 산방산 용머리 해안을 따라 걸을 때 나는 하멜 기념비를 찾으려 애썼다. 전날 오후 4시부터 제주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밤을 새어 걸었던 나는 애월, 한림, 한경, 대정을 지나온 나였다.
몹시 지쳤지만 하멜 기념비를 꼭 보고 싶었다.
산방산 주차장에서 용머리 해안쪽으로 살짝만 걸어 내려갔어도 하멜 기념비를 찾았을텐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번 이상 제주를 찾은 다음에야 하멜 기념비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들의 시각에 비추어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음을.......
1652년 암스테르담
1653년 제주
1654년 한양
1656년 강진
1663년 여수
1666년 나가사키
하멜은 조선 여인과 결혼하여 가정까지 꾸렸지만 결국 버리고 떠났다.
조선에 끝까지 남은 얀스 클레스같은 사람은 예외일 뿐이다.
2008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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