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6일 새벽 더위에 허덕이며 잠시 눈을 붙였다가 오전 2시에 일어났다.
1시간 반도 자지 못했다. 전날 23시부터 잠 안 자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수면 부족을 따질 게 아니었다.
2시 35분부터 달렸다.
새벽 3시 전후의 우이천에는 더위를 피해 집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넋이 나간 좀비처럼 야외 벤치에 늘어져 있었다. 시체놀이가 따로 없었다. 열대야의 풍경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아주 힘차게 달려 나갔다. 6분대 페이스라니 이 무슨 일인가? 최근 이렇게 달린 일이 없는데..... 고단함이 온몸에 찐득하게 배어 있었지만 6킬로미터 지점까지는 킬로미터당 페이스가 7분대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1킬로미터: 6분 55초
~2킬로미터: 6분 29초
~3킬로미터: 6분 47초
~4킬로미터: 6분 29초
~5킬로미터: 6분 55초
~6킬로미터: 6분 45초
야심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우이천, 중랑천, 청계천을 거쳐 살곶이 체육공원으로 가고 있었다. 지난해 새벽 달릴 때는 프로미스나인의 'Stay This Way'가 귀에서 맴돌았지만 올해는 있지의 'Bet on Me'가 배턴을 받았다.
하프 정도의 거리는 안 될 것 같아 일찍 도착하면 공원 주변을 맴돌며 21.0975킬로미터를 채울 요량이었다. (이건 초반에만 갖고 있었던 욕심이었다. 점점 힘들어지면서 뛴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먼저 도착하여 제8회 해피레그 울트라 50킬로미터 마라톤에 참가한 은수형님의 골인 장면을 보는 것과 현장 접수해서 달릴 수도 있다는 로운리맨님을 만나는 것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졌다. 9분대, 10분대로 페이스가 바닥을 치면서 도착 예정 시간은 자꾸만 뒤로 미루어졌다. 결국 출발한 지 2시간 쯤 되었을 때 은수형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3.5킬로미터 남았는데 거의 걷는 수준입니다.
벌써 골인하신 건 아니겠지요?
15분 뒤 답장이 왔다. 5시간 36분이 걸려 골인했다고 했다. 급해졌다. 걷는 수준이었던 발놀림을 조금 빠르게 놀렸다. 그래봤자 9분대가 8분대로 바뀐 것 뿐이었다. 중랑천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보행 전용 교량에서 건너편을 내려다 보니 환하게 밝혀진 곳이 있었다. 마라톤대회장인 살곶이 체육공원이었다. 직선 거리로는 코 앞이었지만 청계천쪽으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래도 달리게 되는 거리가 18킬로미터를 넘지 않았다. 살곶이 체육공원에 들어서자 흙바닥 위에 붉은색 양탄자가 골인 지점까지 이어져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내가 참가자인 줄 알고 주로로 인도하였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달리면서 참가자 신분이 아님을 명확히 밝혔다.
은수형님과는 통화해서 만났다. 만나기 전 운동장 안쪽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18.18킬로미터를 채웠다. 적어도 6월 말 수준의 체력이었으면 한 시간 이상 빨리 도착했을테고, 주로로 나가 어떻게든 하프 정도를 채웠겠지만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다. 열대야 러닝은 거기까지였다.
대회장에는 파이팅이 넘쳤다. 열대야의 무기력이 발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집 떠난 지 3시간만에 한양대 정문 앞에서 121번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37개의 정거장을 이동했지만 새벽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웃도리만 갈아 입었고, 아랫도리는 흠뻑 젖은 채로 버텨야 했다. 버스 의자를 적실 수는 없으니 대회장에서 구한 비닐 봉투를 방석으로 이용했다. 내리는 곳이 종점이라 잠을 자도 되었지만 내내 깨어 있었다. 숏츠 동영상 보면서. 미리 챙겨간 보조배터리와 이어폰 덕을 보았다. 갖고 나간 500밀리 생수 두 병은 거의 다 마시고 100ml 정도만 남아 있었다. 은박지에 싸간 볶음밥 간식은 10킬로미터 쯤 달렸을 때 다 먹었다.
한 달이 넘도록 10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적이 없고, 킬로미터당 페이스도 5분대로 끌어올린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8킬로미터 정도를 뛰려고 하다니......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만큼 벌을 톡톡히 받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달린 덕분에 내 몸 상태를 제대로 체크하고 운동 계획을 다시 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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