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제15회 여명808 국제마라톤(2023/04/15)-FULL 231

HoonzK 2023. 4. 18. 16:20

풀코스 도전이 아직 무리인 이유
1. 16개월이 넘도록 30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일이 없음. 풀코스는 30킬로미터를 달리고 다시 12킬로미터를 달리는 대회임. 끝의 12킬로미터는 앞의 30킬로미터보다 훨씬 힘들다는 사실.
2. 풀코스를 자주 달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체중이 5킬로그램 이상 불어나 있음. 쌀푸대 5킬로그램을 허리에 두르고 뛴다고 하면.....
3. 제대로 된 러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 최대 소화량이 하프 정도. 거리상 풀코스는 하프의 2배이지만 그 어려움은 갑절.

2023년 4월 15일 풀코스를 달리면 안 되는 이유
상기 세 개의 이유에 더하여, 간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함. 햄스트링 통증이 여전히 남아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코스를 달리기로 마음먹은 이유(발상의 전환)
훈련이 부족하다고? 풀코스를 달려서 훈련하는 것으로.
체중감량이 우선이라고? 풀코스를 달려서 체중을 감량하는 것으로.

 6일 전 하프 기록을 피터 리겔 공식에 대입하면 풀코스는 3시간 44분대라고 나오는데 실제로 그렇게 달릴 수는 없었다. 사실 60일간 풀코스 대비 특별훈련을 하긴 했지만 평소 꾸준히 해오다가 특별 훈련을 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운동을 아주 끊었다가 훈련을 시작한 것이라 예전과는 달랐다. 트랙에서 400미터 인터벌 12번을 하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다. 빨리 달린다고 애써봐야 속도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어차피 입에 단내나는 인터벌은 불가능했다. 뚱보는 인터벌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셈이었다. 그래도 조금 달렸다고 햄스트링 부상까지 입게 되었다. 

  그런데 대회장에서 희규형님을 만나 드디어 풀코스를 달린다고 했다. 드디어 풀코스? 기어이 풀코스라는 말이 맞겠다. 
 4년만에 돌아온 여명808 국제마라톤. 2019년에 완주하고 아세탈님과 점심 먹으러 갔던 대회. 그때는 공짜로 달렸다. 2018년 연대별 입상으로 무료 참가 기회를 얻은 덕분에. 당시 3시간 20분대였던 내가 오늘은 4시간 20분대를 목표로 했다. 내가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 뒤에 가서 서자 서브4를 노리는 희수형님은 왜 그러느냐고 했다. 나중에 나 추월할 거면서.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너무 오랜만의 풀코스이고 하프와는 엄연이 다른 종목이니까요. 몇 마디 말은 속으로 했다. 30킬로미터 이후가 너무 걱정이예요. 하프 코스를 2회전 하는 이 대회. 1회전 하고 하프 완주로 타협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절대 걷지는 말았으면 해요. 1회전보다 2회전 때 빨라지는 레이스를 펼쳤으면 합니다. 멋진 복귀전을 치렀으면 좋겠지만 다시는 풀코스를 뛰지 않을거라고 마음 먹은 적도 있었으니.....

 곧 비가 내릴 것처럼 구름이 내려 앉아 있었다. 구름이 잠실롯데타워 상층부를 수염처럼 감고 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봄비를 꽤나 맞게 되리라는 것을 몰랐다. 마스크를 벗어 팔뚝에 끼우면서 미친 척하고 SUB-4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다음 풀코스를 위한 LSD 수준의 달리기가 되어야 했다. 첫 1킬로미터를 달리고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를 떠나 보내었다. 고단함을 쭉 안고 가겠구나, 하는 부담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4시간 20분 페메는 킬로미터당 6분 페이스를 지키고 있었다. 킬로미터당 30여초 쯤 떨어지는 페이스로 따라가다가 잠깐 속도를 올리면 동반주할 수도 있겠다는 욕심을 내었다가도 자제했다. 풀코스는 길어. 이 돌아온 탕자야. 

 2.5킬로미터, 5킬로미터 급수대에서 수분을 보충했고, 초코파이도 먹어주었다. 5킬로미터 기록이 30분을 훌쩍 넘었는데 동요하지 않았다. 초반에 무리했다간 후반에 걷고 있을 수도 있어. 어차피 후반이 되면 에너지 고갈로 힘이 달리겠지만 마음만은 편해야지. 늘 하던 최면술을 가동하자고. 초반에 힘을 아꼈으니 후반에 쓰자고. 30킬로미터 이상 달린다면 후반에 달릴 힘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자, 제발.

 6킬로미터 지나 구리시에 들어서자 비가 내렸다. 7킬로미터 지점부터는 빗줄기가 굵어져 이렇게 비가 내리다간 시간이 갈수록 고된 레이스가 되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비는 잔잔한 가랑비로 내릴 때가 더 많았고, 정오를 넘긴 후에는 완전히 그쳤다. 여기저기 물웅덩이를 남겨 장애물 달리기가 되어 버렸지만. 

 조금 달리다 보면 몸이 풀리는 느낌이 나고, 자기도 모르게 속도가 오르기도 하는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LSD만 쭉 이어질 것 같았다. 다음 풀코스를 위한 사전 장거리 , 딱 그 수준이었다. 6킬로미터 표지판 아래쪽에 숫자 하나가 더 있었다. 27.0975킬로미터. 2회전하는 풀코스 주자만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과연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피곤할 때는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오늘도 네 번이나 갔다. 8킬로미터, 13킬로미터, 24킬로미터, 33킬로미터.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데 가기도 했다. 온갖 스트레스를 줄여야겠다는 의도, 조금의 노폐물이라도 배출하면 피로가 회복될까 하는 간절함도 더해졌다. 마지막 화장실 들른 이후에는 4시간 30분 넘게 소변보러 갈 일이 없었는데 대회에서만 이러고 있었다. 

1회전 때는 하프만 생각했다. 일단 1회전을 마치고 난 후에나 2회전을 신경쓰자고.
 시계도 보지 않았다. 맞은 편에서 오는 지인들 응원하는 일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입상권 주자, 서브 3 주자, 싱글 주자들이 지나가고, 희규형님이 3시간 20분대로 달려오고 있었다. 팔을 흔들어 응원했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 무리가 지나가고, 4시간 페이스메이커 무리도 지나갔다. 4시간 페메 뒤에는 아는 분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은수형님, 기옥형님, 해병대 정의형님, 희수형님, 진식님...... 그리고 내게서 1킬로미터 이상 앞서고 있는 4시간 20분 페메. 

 조깅 수준의 달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갈 길이 멀다는 생각만 하고, 햄스트링 걱정도 하고. 하프 주자들이 쉴새없이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하프 주자 용왕산 기수님도 추월하면서 나를 응원했다. 미사리 하프에서 2시간을 넘겼던 이 분은 이제 1시간 50분대 초반까지 기록이 올라왔다. 오늘 내게 맞는 페이스가 뭔지는 달려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고, 달리면서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맞으며 땀흘리며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20킬로미터를 넘겼다. 골인점까지 500미터가 채 남지 않았는데 걷는 하프 주자가 있었다. 다 왔는데 갑시다. 그렇게 말해도 대부분 다시 달리는 경우는 없었다. 쥐가 났다던지, 부상을 입었다던지 하는 말을 하는데 이 분은 나를 따라왔다. You made me boost up. 선생님 덕분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습니다, 8년만에 하프 출전인데 힘드네요, 라고 말하며. 나는 거짓말을 보태었다. 이제 곧 내리막이니 달리기 수월할 거예요. (내리막이긴? 평탄해 보여도 살짝 오르막인데. 백 미터가 남지 않으면 정말 내리막이 나오긴 하니. 내게 속았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쪽은 끝이지만 저는 풀코스라 다시 한번 더 갔다와야 해요. 하프 주자는 힘을 발휘했다. 순식간에 맹렬한 기세로 치고 나갔다. 금방 몇 십 미터 차이가 나 버렸다. 힘들어 걸었던 일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던 일 같았다. 그는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했을 수도 있다. 당신은 할 수 있어, 그런...  나도 저렇게 2회전 마지막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출발점이자 골인점 앞에서는 물을 마시자마자 가차없이 돌아섰다. 중도 포기 유혹 급속 차단. 급수대 담당에게는 한번 더 갔다와야 하니 눈 앞이 깜깜하네요, 하는 농담은 하며. 땅따먹기 하듯이 야금야금 달려나갔다. 누적 달리기 거리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침내 16개월만에 그동안 달린 최장 거리를 넘어섰다. 26킬로미터. 급수대에서 초코파이를 두 개나 챙겼다. 비가 내리고 있으니 급수대 탁자 한 개가 급수대 탁자 위에 올라가 물컵에 떨어질 빗물을 막아주고 있었다. 조각 내어 놓았던 초코파이는 비닐 포장 안에 넣어 두었는데, 먹기 좋게 한쪽을 뜯어놓아서 간식 담당의 배려심이 돋보였다. 

 물없이 초코파이 두 개를 26킬로미터와 28킬로미터 사이에서 먹었다. 급히 먹었다가 식도를 막아 질식할 수 있겠다는 우려 때문에 오랫동안 우물우물 씹었다. 초코파이의 당분이 에너지로 변환되기를 갈구하기도 했지만 초코파이를 천천히 섭취하는 데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달리기의 부담을 잊을 수 있었다. 27킬로미터를 지나는 순간 15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풀코스를 달릴 때마다 경험한 것인데 이번에도 똑같았다. 

 가끔 속으로 노래도 불렀다. 김채원 목소리를 떠올리며.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면
겁이 난 없지 없지

........

다치지 않게 다치지 않게
(르세라핌 'FEARLESS')
 
일본어 버전으로도 부르고.....
 

傷さえも 私ならば 恐れ無いわ 無いわ
.....

 

傷つかない キズ傷つかない


 반복하다가 개사까지 해서 불렀다. 

 내 살집도 나의 일부라면
겁이 난 없지 없지

지치지 않게 지치지 않게
 
※ 요즘 르세라핌 김채원 덕질중. 마라톤 완주기에 이름이나 노래 가사 등 관련된 내용을 꼭 넣는 방식으로.

 


 노래에 이어 응원도 잊지 않았다. 지인들을 만나면 박수를 치면서까지. 그 박수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파이팅이기도 했다.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파이팅 해야지. 파이팅 해야지.   4시간 페메를 따라 뛰던 은수형님이나 희수형님 모두 4시간 10분대 전후로 페이스를 늦추고 있었다. 늘 스마트폰을 들고 달리는 희수형님은 내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마침내 30킬로미터를 넘고 마지막으로 반환까지 했다. 앞의 분이 콜라 없느냐고 아쉬움을 표하는데 급수대 담당이 바나나 드세요, 라고 했다. 그 말 듣고 정작 바나나를 먹은 것은 나였다. 후반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또 충전하고...  32.195킬로미터 표지판을 만났다. 10킬로미터 남았다는 뜻. 최면이 필요했다. 이전에 32킬로미터를 달린 바 없다. 10킬로미터 단일 종목에 나왔을 뿐이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런 적 있지 않아? 130번 넘게 10킬로미터 대회에 나왔었는데. 맞다. 100번째 10킬로미터 완주할 때는 한숨도 못 자고 나와 뛴 적도 있었지. 그때보다는 덜 피곤하네. 
 35킬로미터 지점의 마법도 믿었다. 35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 스피드를 올렸던 이력. 34킬로미터부터 35킬로미터 사이에 예비 작업이 필요했다. 천지의 기운을 빌려와 몸에 채우는. 연상하고 또 연상하며 달리는 중에 운동나온 아가씨가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다. 김채원만큼 예쁜 여자였는데 이 분은 풀코스 주자들에게 일일이 엄지척을 해 주고 있었다. 내게도 해 주었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눈은 미와야키 사쿠라를 닮았다. 응원을 받으니 힘이 조금 더 생겼다.

 어쨌든 35킬로미터 지점이 되자 속도가 붙었다. 현저히 속도가 떨어진 주자들을 한명씩 제치고 있었다. 잠깐 사라졌던 노래가 귀에서 들렸다. I got soul, but I'm not a soldier. 이 노래도 들렸다. The Killers의 <All These Thing That I've Done>. 이 노래가 들린다 하면 매우 고무적이었다. 파이팅이 넘칠 때만 귓전을 맴도는 노래라.   물을 먹기 싫어도 급수대를 빠뜨리진 않았다. 물 한 모금, 게토레이 한 방울이라도 마지막 에너지를 위한 준비라고 믿었다. 앞에서 속도를 올리는 주자가 있었다.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자주 보았던 주자였다. 여러 명을 제치고는 있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페이스였다. 하지만 38킬로미터 지점에서 따라잡았다. 거기 오르막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 분보다 3분 빨리 골인하게 된다. 올림픽대교 북단에서는 착각했다. 3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는데 4킬로미터나 남았다고. 1킬로미터 달리기 부담이 줄어들자 힘이 붙었다. 또 한번의 최면 동원. 40킬로미터 지점에 닿으면 신의 영역에 들어서니 인간이 할 일은 다 했고, 그때부터는 초자연적인 힘이 나를 밀어주리라는 것. 40.195킬로미터 표지판을 백여 미터 앞두고 노랑 풍선이 보였다. 4시간 20분 페메라면 이미 갔을텐데 그럴 일은 없었다. 레이스패트롤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4시간 20분 페메가 맞았다. 그의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4시간 23분대로 골인하게 된다. 2킬로미터를 남기고 페메를 추월했다. 4시간 12분이 지나고 있었다. 남은 2킬로미터를 8분 이내로 달릴 수는 없으니 SUB 420은 할 수 없었다. 시간에서 좀더 자유로워지며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달렸다. 햄스트링 통증이 있었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완주한 후 한동안 못 달리게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랬다. 

 달린 거리가 늘어날수록 틀림없는 사실에 또 놀라고 있었다. 아득하게 멀어 보였지만 결국 달리면 42.195킬로미터 골인점이 나타난다는 것. 풀코스를 자주 달려 단련된 주자처럼 달려서 골인했다. 골인하기 직전에는 사진사에게 손짓까지 하며 촬영을 부탁했다. 한달 전 이곳에서 칩이 인식되지 않았던 일이 있어 골인할 때 칩 인식 기계 가까이 붙어서 인식음이 들리는 것까지 확인했다. 

 04:22:27.12

 1회전은 2시간 13분이었는데 2회전은 2시간 9분이었다. 4분의 단축은 모두 35킬로미터 이후에 이룬 것이었다. 1년 하고도 4개월만의 풀코스였지만 한번도 걷지 않았고 초반보다 후반에 빨리 달렸다. 그리고 훈장 하나! 양쪽 엄지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다.
 
 

풀코스 참가비는 5만원이었지만 마니아 참가비는 2만 5천원이었다. 기념품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아 마니아로 참가했다.

 

 

하프 코스 2회전 방식은 익숙하다

 
 
 

대회장으로 이동하면서 비타500제로를 마셨다.

 

뚝섬유원지역에 도착했다.

 

이런 도시락도 있었다. 진행요원들에게 제공된 도시락.... 비싸 보인다.

 

비는 그쳤다.

 

희수형님과 제육볶음을 먹었다.

 

2021년 12월 로운리맨님과 왔던 식당이다.

 

 
 

골인하기 직전이다.

 

완주 후 희수형님이 찍어준 사진

 

 

2021년과 2022년에 풀코스를 딱 한번씩 달렸는데 2023년에는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살을 좀더 빼고 훈련을 더 해서 서브4는 꼭 해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