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역에서 인천 지하철 1호선에 탑승한 후 자고 있었다. 간밤에 2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지하철 덜컹거리는 소리에 이내 적응이 되어 잠을 깨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시청역을 지나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자기 늘어난 승객으로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승객들 대부분이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었다. 제23회 인천국제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문학경기장까지는 세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던 대회가 4년만에 열리는데 무수한 인파가 정상적으로 열리는 대회를 축하한다는 듯 했다.
지하철역에서 로운리맨님을 만나 대회장으로 갔다. 로운리맨님은 동아마라톤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져 인천마라톤 대회 기록을 깨뜨려 보겠다고 했다. 3월 들어 벌써 네 번째 만나는 것인데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못보던 것을 단번에 상쇄시키려는 기세다. 달려보다가 괜찮으면 밟으라고 했는데 나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분에게 엉뚱한 말을 한 셈이 되었다. 로운리맨님은 늘 해오던대로 나중에 퍼지더라도 처음부터 지르는 스타일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로운리맨님은 4킬로미터를 달리고 퍼졌다고 했다. 킬로미터당 4분 10초까지 빨라졌던 페이스가 점점 떨어져 5분을 넘기까지 했다. 오르막에 맞바람에 4킬로미터 이후 17킬로미터는 아주 지옥 체험을 고스란히 하고 있었다고...... 운동장에 들어서기 직전 주로에서 로운리맨님을 보았는데 바로 뒤에 1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가 있었다.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1시간 39분대는 들어갔을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운동장 주로에서 페메에게 추월당하는 바람에 1시간 40분을 조금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로운리맨님이 달리는 동안 나도 나름대로 바빴다. 일단 로운리맨님의 스마트폰이 들어 있는 자켓을 배낭에 넣고 마라톤 용품 단골 판매상을 만나 반바지와 모자를 샀다. (4년만에 만났지만 사장님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5킬로미터 배번을 구해 슬그머니 뛸 수도 있었지만 전날 오후 3시간 9분 동안 달렸기 때문에 그냥 간식과 메달만 얻었다. 운동장 앞 편의점에 들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비싸서 지갑을 열 마음이 달아나기도 했다. 2022 김유정문학상 당선작인 구병모의 단편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다-제목이 특이한 작품이었다. '니니코라치우푼타'- 하프 주자들이 출발한 지 1시간 25분이 지나면서부터는 운동장 진입 직전 주로에 나가 스마트폰을 열어놓고 있었다. 1시간 35분 이내로 들어올 로운리맨님, 내가 골인 지점보다 앞에 나와 있으니 조금 더 일찍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와야 할 분이 오지 않았다. 본명이 아닌 로운리맨이라고 새겨진 배번을 단 분은 지금 어디에? 컨디션이 좋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너무 오버페이스를 하고 말았나? 지난 주 주황색 유니폼과 달리 검정색 유니폼이라 내가 놓치고 말았나?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로운리맨님이 보였다. 힘든 표정이 역력한 모습의 로운리맨님.
그 이후 운동장 밖에서 파는 비싼 순대를 먹고, 더 비싼 어묵은 먹지 않고(꼬치 하나가 3천원....경악했다.), 운동장 앞 도로를 건너가 주말이라 점심 할인이 되지 않는 비싼 돈까스를 먹었다. 그리고 지하철역에서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작별했다. 4월 9일 김포에서 만나기로 하고...... 4월 2일 영주에서 풀코스를 달릴 로운리맨님은 멀리서 마음으로 응원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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