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 쌓아놓은 박스를 가지러 갔다가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물을 보았다.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바닥을 적신 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보일러에서 누수된 흔적은 없었다. 천정에 붙어 있는 온수라인 T밸브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계량기부터 잠근 뒤 물이 떨어지는 쪽의 밸브를 해체했다. 밸브 안의 패킹이 마모되어 있었다. 삭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였다. 씰테이프로 감아볼까 했으나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철물점에 가서 패킹을 달라고 했다. 집 근처의 철물점은 지난 7월 도쿄 올림픽이 개막하던 날 폐업했고, 400미터 떨어져 있는 철물점은 주말이라 일찍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집에서 7백여 미터 떨어진 철물점에 가서 마모된 패킹을 보여주고 패킹 좀 사러 왔다고 말했다.
철물점 사장은 혀를 끌끌 찼다.
-대한민국 어디 가도 패킹만 파는 데는 없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패킹만 별도로 생산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요?
-밸브와 결합되어 있는 제품만 판매한다는 거지요. 패킹만 별도로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요.
-패킹만 교체하면 될 것을, 패킹 때문에 밸브를 아예 구입해야 한다고요? 그게 말이 되요?
-허허,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요. 이런 일 처음 하시나 봐요.
-(미리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밸브 하나만 풀어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세 군데를 다 풀어야 하는데요.
덥썩 구매할 수는 없었다. 좀더 알아보고 싶었다. 결국 40분 쯤 뒤 이 곳에서 주름관 삼방티를 구입하긴 했지만 그에 앞서 철물점 세 군데와 생활용품 판매점 한 군데에 들렀다. 어떤 철물점에서는 주름관에 끼워지지도 않는 제품을 주는 바람에 환불받기도 했고, 또 다른 철물점에서는 가게 안을 다 헤집고도 삼방티 밸브를 찾지 못해서 그냥 나오기도 했다. 처음 들렀던 철물점에 와서 구입한 삼방티를 만지작거리며 이걸 주름관에 어떻게 끼워야 하느냐고 물으니 사장은 답답하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타박을 주었다.
-거기 밸브를 풀고 끼워야죠. 처음 하시는 분들은 패킹 많이 찢어 먹어서 다시 사러 오기도 해요.
결국 사람을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심진 않았다. 지난 6월 수도 누수 작업을 할 때도 셀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을 불러 지출이 컸던 일도 있어 어떻게든 나 스스로 해결하고 말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을 나선 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지하실로 돌아와 밸브를 주름관에서 풀어내었다. 처음 풀었던 것과 다를 바 없이 패킹이 마모되어 부스러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마모된 패킹 때문에 주름관과 밸브가 분리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내가 집을 나갔다 온 사이 온 매제는 아이스라테 커피를 사 와 나를 응원했다. 해체하는 일이 조금 힘들었을 뿐 주름관에 삼방티를 결합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너무 쉽게 결합이 되었다. 손으로만 밸브를 잠그면 누수가 생길 수 있어 아세탈님이 선물한 스패너로 단단히 조여주었다. 아직도 기술쪽으로는 부족한 것이 잠그지 않고 풀고 있기도 했다. 부품을 사러 다닌 시간에 비하면 작업 시간은 매우 짧았다. 처음 하기 때문에 힘들었을 뿐이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셀프로 문제를 해결한 덕분에 적어도 4만원 이상은 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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