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마라톤!

전마협 잠실 마이런 훈련 마라톤(2021/03/14)-10KM

HoonzK 2021. 3. 24. 16:02

 고작 10킬로미터를 뛰기 위해 새벽잠 설치며 잠실까지 간다고요? 그냥 동네에서 조깅이나 하고 말지요. 지인에게 동참을 권유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내가 잠실종합운동장 17번 게이트 앞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도 되지 않아서였다. 아주 일찍 오셨네요, 전마협 장영기 회장은 대회를 준비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렀다 15분 쯤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는데도 여전히 참가자는 나밖에 없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심정으로 서둘러 나온 것은 아니었다. 제한된 인원만 모일 수 있어 대회 참가가 선착순이긴 했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접수를 했기 때문에 일찍 나올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대회가 거의 열리지 않아 이동 시간 소요 계산을 잘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차량 연결도 너무 잘 되어 참가자 도착 1등까지 한 것이었다. 잠실종합운동장 역사를 빠져 나왔을 때 마라톤 용품 판매상도 대회장을 향해 걸어가는 참가자도 없으니 황량하다 못해 음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전마협 직원 한 사람이 벌써 한 분 오셨어요,라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 15분 전 이미 했어야 하는 말 아닌가? 배번을 받고 난 후 손기정 동상 앞까지 와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참가자들이 모여 들었다. 전마협 대회 단골 손님인 상기님이 나타났다. 전마협 회장은 반색하며 주먹 인사까지 했다. 곧 참가자들이 늘어났다. 希洙형님도 보였다. 형님의 배번은 붉은 색이라 내 배번인 초록색과는 달랐다. 무료는 초록색, 선택은 붉은색이었다. 선택은 참가비 1만원을 낸 사람들이라 양말과 완주메달이 지급된다. 완주메달에는 이름과 기록을 새겨준다고 했다.

 

 짐을 맡기고 출발장소인 잠실지구 청소년 광장까지는 몇 분 정도 걸어야 했다. 제한된 인원에 10킬로미터 단일 종목에 그것도 훈련마라톤이라는 방식을 택한 대회. 굳이 10킬로미터를 달리러 잠실까지 와야 했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지만 대회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 나 혼자 긴 거리를 달리는 것보다 의미있다고 믿었다. 출발지점엔 출발 아치가 없었다. 바닥에 청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는데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게 나름대로 출발과 골인을 표시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풀코스의 오랜 시간에 익숙해져 있는 입장에서는 10킬로미터가 번갯불에 콩볶아 먹는 것처럼 짧게 느껴지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때 10킬로미터 참가 신청을 해 놓고 너무 부담스러우니 5킬로미터로 바꿔달라고 주최측에 요청한 일도 있었다. 10킬로미터는 짧은 만큼 쉴틈없이 몰아쳐 달리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어 적당히 타협해 달리는 풀코스나 하프코스보다 어렵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한꺼번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세네명씩, 그것도 거리를 두고 출발하는 방식이라 일찍 도착한 만큼 8시 반이 아니라 7시 반에 출발할 수도 있었다. 10킬로미터 기록증을 받더라도 하프를 달려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 뛰어서는 천호대교에서 급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급수가 제공될 때까지 기다리며 달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모처럼 대회 분위기를 느끼며 달리는데 훈련할 때처럼 물통을 들고 달리고 싶지도 않았다.

 

 내 최대 관심사는 미세먼지였다. 하필이면 대회 당일 미세먼지 강도가 최고를 찍고 있었다.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내려진 상황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KF94 마스크를 쓰고 달리게 되었다. 코로나19 감염 위협 때문이라면 인파가 드물 때 마스크를 살짝 내려 호흡을 돕겠지만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를 내릴 수가 없었다. 달림이들은 덴탈마스크를 쓰기도 하고, 마스크를 턱까지 끌어내리기도 하면서 융통성을 발휘했지만 나는 물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입과 코를 노출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한다고? 내쉰 공기 속 이산화탄소가 마스크 안에 머물고, 그 이산화탄소를 다시 마시는 것이니 이산화탄소 중독이 되지 않을까?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메스껍거나, 상황 파악이 어렵거나..... 마스크를 끼고 운동하면 몸이 더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덴탈마스크, 천마스크, NO마스크 등 세 그룹으로 나누고 사이클을 지칠 때까지 타게 한 결과 운동 후 산소나 이산화탄소 혈중 농도가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다고 했다. 마스크를 쓴다고 심장 박동이 늘어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KF94 마스크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었다. 



 이 코스에서 달리다 보면 늘 잠실롯데타워가 이 일대를 내리누르는 위세로 군림하지만 대회 당일은 달랐다. 희뿌연 대기 속에 갇혀 힘을 못쓰는 허깨비처럼 보였다. 긴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고 목에 버프를 둘렀지만 장갑을 끼진 않았다. 추위도 더위도 없었다. 10도 이하의 날씨, 마라톤 하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다만 몸은 무거웠다. 그동안 인터벌 훈련을 해왔지만 식탐이 과해 체중이 늘면 늘었지 줄지 않아서 뒤뚱거리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希洙형님 뒤를 따라가는데 거리가 점점 벌어져 그 거리를 줄일 수 없었다. 형님의 형광색 티셔츠는 대낮에도 불을 켠 것처럼 내게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가 자꾸만 멀어져가고 있었다. 거리 표지판이 없어 내 페이스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의도 이벤트 광장에서 시작된 거리 표시석을 찾아내어 1킬로미터마다 속도를 재보기로 했다. 16킬로미터 표시석에서 17킬로미터 표시석까지. 6분이 걸리지 않았다. 1시간 이내로 뛰는 게 목표이니 속도의 부담은 덜었다. 53분 이내로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希洙형님을 따라잡는다는 생각은 접었다. 17킬로미터 표시석부터 18킬로미터 표시석까지는 5분 20초, 18에서 19까지는 5분 40초였다. 풀코스 기준으로 SUB-4 수준이니 56분 40초까지는 달릴 수 있겠다 싶었다. 상기님이 바람소리를 내며 앞에서 오고, 천호대교가 앞에 보이기가 무섭게 希洙형님도 나타났다. 천호대교 교각 아래에서 반환 확인 리본을 받고 생수를 마셨다. 26분이 조금 넘었다. 52분대도 가능해졌다. 이제 올림픽대교, 잠실철교, 잠실대교를 차례대로 지나면 레이스는 끝나게 되어 있었다. 지난 해 7월 전마협 훈련마라톤 때 부상으로 내내 걸었던 구간이었다. 무릎이 쑤셨고, 햄스트링도 아팠다. 훈련할 때 이보다 더 빠르게 달린 일이 적지 않은데 무슨 일이람? 대회라고 생각하면서 몸에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었다. 자전거도로로는 달리지 않고 산책로만 따라 달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있으면 속도를 늦추어 조심스럽게 피해가는데 매순간 전력질주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반환하고 나자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스크가 흠뻑 젖어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숨쉬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헉헉대면서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함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단독 훈련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내내 이어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으려면 맞은편에서 오는 주자들을 살펴야 했다. 건너편에서 축구스타킹환님이 오고 있어 불러서 인사를 했다. 덩치 큰 주자 한 사람이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는데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나도 인사를 받았다. 그 사람의 인사는 루틴인지, 아니면 나를 잘 알아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달리기가 점점 힘들어질 무렵 레이스는 끝났다. 49분 59초. 돌아올 때 움직임이 둔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더 빨라져서 반환 후 5킬로미터는 23분대까지 속도를 올린 것이었다. 내가 제치고 갔던 주자 가운데 한 분이 내게 말을 붙이며 마지막 스퍼트가 너무 폭발적이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속도를 올리려고 애쓰긴 했다고 받아드렸다.자신과 동년배로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작용해서 그러는지 내 나이가 62,3세 정도 되지 않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100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나는 38등이었다. 希洙형님은 49분 02초로 32등, 상기님은 45분 02초로 11등이었다. 1등 주자의 기록은 39분 11초였다.


내가 참가한 10킬로미터는 고작 10킬로미터가 아니었다. 적잖이 힘들었던 달리기였다.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대회를 마치고 몇일 동안 훈련을 중단했다. 햄스트링 상태가 좋지 않으니 과거 고통받았던 일이 떠올라 미연에 대비하였다. 더 심한 부상을 막고자 아예 쉬었다. 당초 계획했던 4월 4일 풀코스 도전을 접기로 했다. 일주일에 2번 하게 되어 있는 인터벌 훈련도 자제하면서 새로운 일정 짜기에 돌입했다.

 

흠뻑 젖어버린 KF94 마스크

 

대회장에 올 때는 KF94 마스크를 착용해도 달릴 때는 대부분 덴탈 마스크로 바꾸어 쓰고들 있었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랬겠지만.... 이 날은 코로나19보다 미세먼지가 더 무서웠다.

 

젖어 있으니 흙이 닿아서 바로 오염되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달리는 希洙형님이 찍어준 사진. 출발 직전..... 자주 신지 않는 신발로 웃도리와 색을 맞추었다.

 

 

 

오전 7시가 되지 않았을 때 잠실종합운동장..... 예전에는 대회가 열리면 이곳에 마라톤용품 판매상이 모여 있었다.

 

이번 배번에는 이름이 없었다.

 

손기정 동상에 배번을 올려 보았다.

 

잠실롯데타워가 미세먼지에 갇혀 있는 듯

 

대회장 준비중....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런 것도 없었다.

 

4월 전마협 언택트마라톤 기념품

 

49분 59초의 기록

 

물품 보관 번호가 1133.... 투페어다.

 

대회를 마치고 希洙형님과 순대국을 먹었다.

 

2018년 3월 18일 동아마라톤을 마치고 로운리맨님과 함께 갔던 곳인데 그때보다 가격이 2천원이나 올라 있었다.

 

무료 참가인데 간식도 받고 전마협이 늘 고맙다. 다음번에는 유료 참가를 해야겠다. 반환 확인 고무줄 리본도 갖고 왔다.

 

이 기록증은 3월 23일 우편으로 받았다. 대회 당일 출력 프린터가 고장나서 바로 받아오지 못했다.

 

앞으로 무료 참가자의 경우 이 기록증도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골인 직전 (전마협 촬영)

 

10킬로미터를 달리고 몸이 부은 것 같은데.....

 

다른 주자 뒤로 希洙형님과 내 모습이 잡혔다. 열심히 달린 후 수분 보충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