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참가했다. 무료 참가자는 기록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고 하니 굳이 최선을 다해 뛸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달린 기록이 문서로 남지 않으니 아무렇게나 달려도 상관없지 않는가 하는 계산도 했다. 그런데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최측은 대회 전날 문자로 참가자 전원에게 기록증을 발급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통보를 받자마자 10킬로미터를 완주 세부 계획을 수정했다. 1시간에 육박하지만 1시간은 넘지 않는 여유있는 달리기를 하지 말고 이전 대회처럼 50분을 넘기지는 않는 것으로. 기록증 하나가 조깅을 질주로 바꾼 것이다. 기록증이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하는 게 처음부터 가져야 할 태도였는데 나태한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웠다. 바뀐 계획을 수행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밀고 나가보자는 각오로 박차를 가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숨이 차 견딜 수 없었다. 덴탈 마스크도 어찌나 숨쉬기를 어렵게 하는지 수시로 마스크를 끌어내려야 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가장 자주 끌어내린 달리기가 되었다. 마스크를 끌어내려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마스크를 한사코 끌어내린 것은 다분히 심리적인 이유가 커 보였다. KF94 마스크를 쓰고 달릴 때보다 덴탈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주최측이 출발 시간을 6시 30분부터 7시까지로 앞당기면서 잠을 너무 못 잔 탓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올빼미형이 되어버린 몸을 겨우 달래어 수면을 재촉해도 잠든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잡다한 꿈에 시달리다가 새벽 4시 2분 눈을 떴다. 12분을 더 잘 수 있었지만 그냥 일어났다. 좀 여유를 가져도 되는데 하릴없이 서두르고 있었다. 서두른다고 배낭 지퍼가 열린 것도 몰랐다. 지퍼가 열렸다면 무언가 넣지 않은 것인데 갈아입을 옷과 쓰고 달릴 버프가 담긴 봉투를 방에 놓아둔 채로 대문을 열고 있었다. T map 대중교통 앱으로 151번 버스가 코 앞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뛰쳐나가려고 한 게 문제였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가는 5시 30분 당일 첫 운행 지하철을 탔다. 6시가 조금 넘어 잠실종합운동장역에 도착했다. 운동장 화장실부터 들르고 난 뒤 차니부를 만났는데 아직 6시 20분이었다. 6시 30분경 배번을 수령하고 6시 50분이 되기 전에 달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워밍업 한번 없이 속도를 냈다. 갑자기 몸을 빨리 놀리니 몸이 놀랐다. 놀란 표시가 숨소리를 통하여 표출되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에 내 귀가 거슬릴 정도였다.
산책로에는 여느때 시간과 다를 바 없이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전거도 자주 지나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골인하는 주자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상기님도 보였다. 얼마나 일찍 출발했기에. 숨소리는 거칠고 인상은 잔뜩 찌푸려지고 누군가 내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면 가관이라고 했을 것이다. 인터벌 훈련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대회에 나와 악에 받치게 달리는데 이게 대회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어쨌든 대회에 출전했다고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힘들어도 견디는 것이고...... 시계를 보면서 여유가 생기기를 기대했다. 여유가 생기는 순간 속도를 늦추어 숨을 고를 수 있기를....... 천호대교 반환점. 25분 25초. 3주 전 보다 5초가 빨라졌다. 그렇다고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돌아갈 때 더 빨리 달리지 않는 한 50분 이내 달리기는 요원했다. 돌아가는 동안에는 아는 분 찾으며 인사나누는 즐거움으로 속도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견뎠다. 45분대로 달리는 우리동네버스기사님을 응원했고, 인천고마라톤 춘효형님과는 손끝을 마주치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지만...... 축구스타킹환님과도 석달만에 만났다. HUMAN RACE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는데 나를 잘 아는 분 같았다. 내가 그 분을 모르니 이것 참. HUMAN RACE 하면 광배님부터 떠오르고 그 분 만난 지도 아세탈님 만난 것 만큼 오래 되고 말았다. 달리는 동안 안면이 있는 주자들을 몇 분 더 만났다.
이번 10킬로미터 달리기는 턱마스크 최장 착용 기록을 경신한 레이스가 아닐까 싶다. 지난번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든 쓰고 있지 않든 사람과 가까워지면 마스크를 꼭 쓰고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상대방이 마스크를 잘 쓰고 있으면 굳이 마스크를 끌어올리려 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만나는 올림픽대교와 잠실대교, 그 근방에 오르막이 있었다. 과거에는 오르막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구간인데 아주 미세한 오르막도 오르막으로 느껴지니 이것 참. 골인 지점이 가까워지면 없던 힘까지 끌어내어 뛰어들어가던 일이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렸다. 운동을 적게 한 티가 났다.
구름을 휘감고 있어 신비할 정도로 높아보였던 잠실롯데월드타워는 내가 달려야 할 거리의 반을 넘기고 나자 제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오른편에 있던 123층 마천루가 이제는 왼편에 있게 된 것인데 곧 내 등 뒤로 사라졌다. 이제 주요지형지물은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 그 위세를 위협할 수 있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느낌이라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데 경기장과 나 사이의 거리가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다. 눈길을 한강쪽으로 돌려 달리다가 갑자기 운동장을 보면 별안간 가까워진 느낌으로 만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멀기만 했다. 아득히. 이것 참. 무언가 끝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현실을 몹시 비틀어 놓은 듯 싶었다. 가까워질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할 때가 되어서야 골인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49분 44초
골인한 후 옷을 갈아입고 오니 차니부가 골인해 있었다. 1시간 20초로 달렸던 지난번보다 페이스가 좋아 보였기에 1시간 이내 골인이 당연해 보였는데 1시간 2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그럴리가요? 무슨 일이지요? 천호대교의 반환점도 급수대도 못보고 지나쳤다고 했다. 너무 많이 와 버렸구나 싶어 되돌아왔는데 거기서 꽤 시간을 허비했다고 했다. 그럼 페이스는 50분대로 들어오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떻게 천호대교 반환점을 못 볼 수 있지요? 아무리 참가자들이 적고 개별 출발하면서 주로에 흩어졌지만 지나치기 어려울텐데요.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차니부와 함께 기록증을 받으러 갔다. 차니부는 기록메달도 받아야 했다. 전마협 유튜브 구독 신청을 하고 덴탈 마스크 50개 들이 1상자를 받았다. 유통기한이 살짝 넘은 선스프레이도 두 통을 받았다. 삼성역 부근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3주 전과 같은 메뉴인 양선지해장국이었다. 아직 9시가 되지 않았으니 아침 식사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아침을 먹는 느낌을 오랜만에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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